봄의 한 때
춘일(春日)
서거정(徐居正)
金入垂楊玉謝梅 小池新水碧於苔
春愁春興誰深淺 燕子不來花未開 『四佳詩集』 卷之三十一○第十九
해석
金入垂楊玉謝梅 금입수양옥사매 | 금색은 수양버들로 들어가고 옥빛은 매화를 사양하네【황금이 버들로 든다는 것은 곧 버들 싹이 노랗게 터져 나온 것을 이른 말이고, 옥이 매화를 떠났다는 것은 곧 하얀 매화가 다 졌음을 의미한다.】, |
小池新水碧於苔 소지신수벽어태 | 작은 연못의 새 물빛은 이끼보다 푸르구나. |
春愁春興誰深淺 춘수춘흥수심천 | 봄의 근심, 봄의 흥, 누가 깊고 옅으랴마는, |
燕子不來花未開 연자불래화미개 | 제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네. 『四佳詩集』 卷之三十一○第十九 |
해설
이 시는 봄 경치를 읊은 시로, 역대 선집(選集)에 거의 모두 선재(選載)되어 있으며 중국의 전겸익(錢謙益)이 편찬한 『열조시집(列朝詩集)』에도 수록되어 서거정의 시명(詩名)이 해외에도 떨치게 한 작품이다.
노란 버들에 금빛이 반짝이고 추운 겨울에 피었다 봄이 오자 흰 매화가 지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아 작은 못에 고였는데 이끼보다 푸르다. 나른하고 무료한 봄의 시름과 봄이 와서 느끼는 봄의 흥취는 어느 것이 더 깊은가? 봄이 오지 않아 꽃이 피지 않은 것이 시름이니, 머지않아 제비가 오면 꽃은 필 것이요, 그러면 시름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며, 흥이 일 것이다.
평탄한 벼슬살이를 했던 서거정(徐居正)이기에 다가오는 봄은 고울 것이요, 그러한 봄의 여유로움 또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는 특이하게도 근체시(近體詩)에서 꺼리는 반복된 글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하나의 구(句)에서 대(對)를 이루는 구중대(句中對)를 활용하기도 하였다(金入垂楊과 玉謝梅 / 燕子不來와 花未開).
조선 전기의 서거정 ·강희맹(姜希孟)·이승소(李承召) 등의 관각문인(館閣文人)들은 화려한 수사와 세련된 감성을 위주로 시를 창작하였다. 문학에 있어 실용적(實用的)인 측면을 강조했던 이들이 유미주의적(唯美主義的)인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왕정(王政)의 분식(粉飾)과 대명(對明) 외교의 필요성으로 인해 기교적(技巧的)인 시문(詩文)의 창작이 요구되었고, 한미한 출신에서 집현전 학사로 발탁되어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사람으로서의 엘리트 의식이 귀족적인 성향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저작이 위의 시이다.
이에 대해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61번에서, “사가 서거정은 대제학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명성이 누구보다 성대했다. 그러나 평자들이 그를 중시하지 않은 것은 그의 재주가 화려하고 넉넉한 데만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徐四佳久典文衡, 聲名最盛. 而不爲評家所重, 蓋以才止於華贍而已).”라고 언급하고 있다.
서거정(徐居正)은 관각체(館閣體)를 풍미한 사람으로 정조(正祖)의 『홍재전서(弘齋全書)』 「일성록(日省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의 관각체는 양촌(陽村) 권근(權近)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 이후 춘정(春亭) 변계량(卞季亮),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 등이 역시 이 문체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근고(近古)에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 등이 또 그 뒤를 이어 각체가 갖추어졌다[我國館閣體 肇自權陽村 而伊後如卞春亭ㆍ徐四佳輩 亦以此雄視一世 近古則李月沙ㆍ南壺谷ㆍ李西河 又相繼踵武 各體俱備].”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50~51쪽
인용
'한시놀이터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혼 - 성주임풍루(星州臨風樓) (0) | 2019.02.25 |
---|---|
서거정 - 하일즉사(夏日卽事) (0) | 2019.02.25 |
서거정 - 독좌(獨坐) (0) | 2019.02.25 |
성삼문 - 수형시(受刑詩) (0) | 2019.02.25 |
정약용 -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 其五 (0) | 2019.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