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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 其五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정약용 -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 其五

건방진방랑자 2019. 2. 2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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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도 본뜨지 않은 조선의 시를 쓰리라

노인일쾌사육수효향산체 기오(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 其五)

 

정약용(丁若鏞)

 

 

老人一快事 縱筆寫狂詞

노인일쾌사 종필사광사

競病不必拘 推敲不必遲

경병불필구 추고불필지

興到卽運意 意到卽寫之

흥도즉운의 의도즉사지

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

아시조선인 감작조선시

卿當用卿法 迂哉議者誰

경당용경법 우재의자수

區區格與律 遠人何得知

구구격여률 원인하득지

凌凌李攀龍 嘲我爲東夷

능능이반룡 조아위동이

尤槌雪樓 海內無異辭

원우퇴설루 해내무이사

背有挾彈子 奚暇枯蟬窺

배유협탄자 해가고선규

我慕山石句 恐受女郞嗤

아모산석구 공수녀랑치

焉能飾悽黯 辛苦斷腸

언능식처암 신고단장위

梨橘各殊味 嗜好唯其宜

리귤각수미 기호유기의 與猶堂全書第一集詩文集第六卷

 

 

 

 

 

 

해석

老人一快事 縱筆寫狂詞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쓰는 것이라네.

競病不必拘 推敲不必遲

험운(險韻)하는 것경병(競病): 험운(險韻)으로 시를 짓는 것을 말함. () 조경종(曹景宗)이 개환(凱還)할 때에 양무제(梁武帝)가 잔치를 베풀고 연구(聯句)를 짓도록 하니, 험운인 경병 두 자만 남았을 때 조경종이 최후로 참여하여 바로 지어 쓰기를, “떠날 땐 아녀들이 슬퍼하더니, 돌아오매 피리와 북 다투어 울리네. 길가는 사람에게 묻노니, 곽거병 그 사람과 과연 어떤고?[去時兒女悲 歸來笳鼓競 借問行路人 何如霍去病]” 한 데서 온 말이다. 남사(南史)』 「조경종전(曹景宗傳)에 굳이 구애될 게 없고 퇴고로 굳이 더딜 게 없다.

興到卽運意 意到卽寫之

흥이 오르면 곧 뜻을 펴며 뜻이 이르면 곧 써재끼네.

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

나는 조선 사람으로, 달게 조선의 시를 짓겠노라.

卿當用卿法 迂哉議者誰

그대들은 마땅히 그대들의 법을 쓰라. 우원하구나, 말하는 이들은 누군가?

區區格與律 遠人何得知

구구한 격조와 운율을 먼 지방의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凌凌李攀龍 嘲我爲東夷

능욕하길 즐긴 이반룡은 우리를 동이라 조롱했고,

尤槌雪樓 海內無異辭

원굉도원굉도(袁宏道): 왕세정(王世貞)과 이반룡의 시체(詩體)를 매우 강력히 배격하고 홀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당대에 많은 학자들이 왕세정ㆍ이반룡을 배제하고 그를 따르면서 그의 시체를 공안체(公安體: 공안은 원굉도의 자)라 함.는 더욱 이반룡을 공격했는데설루(雪樓): 이반룡의 서실(書室)인 백설루(白雪樓)의 준말. 천하에선 아무런 말도 없었네.

背有挾彈子 奚暇枯蟬窺

뒤에 활 가진 이가 있으니, 어느 겨를에 짐짓 매미를 엿보랴.

我慕山石句 恐受女郞嗤

나는 한유의 산구시를 흠모하노니, 여인의 시라 비웃음을 받을까 두렵네韓愈山石시를 말하고, 女郞의 시란 곧 여인같이 온순한 풍의 시를 뜻한다. 나라 때의 시인 元好文論詩絶句정이 있는 작약은 봄 눈물을 머금었고 기력 없는 장미는 저녁 가지가 누웠다(이상은 송나라 秦觀의 시임) 하니, 이를 한퇴지의 山石시에 대조해 보면, 이것이 여랑의 시임을 비로소 알리라.有情芍藥含春淚 無力薔薇臥晩枝 拈出退之山石句 始知渠女郞詩한 데서 온 말로, 秦觀의 시를 한유의 山石시와 비유하면 한유의 시는 장부에 해당하고, 진관의 시는 여랑에 해당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3.

焉能飾悽黯 辛苦斷腸

어찌 처량함과 슬픔을 꾸며내려 괴롭게 수고롭게 애간장 끊으랴.

梨橘各殊味 嗜好唯其宜

배와 귤은 각각 다른 맛이 있으니, 기호에 따라 마땅히 할 뿐. 與猶堂全書第一集詩文集第六卷

 

 

해설

이 시는 노인의 한 가지 즐거운 일에 관한 시 여섯 수를 백향산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1832년 지은 것으로 소위(所謂) ‘조선시선언(朝鮮詩宣言)’으로 유명한 시이며, 우리나라의 시를 중국 문학의 예속에서 해방시키려는 다산(茶山)의 강한 주체의식(主體意識)의 발로를 드러낸 것이다.

 

다산은 탁발위론(拓跋魏論), “성인의 법은 중국이면서도 오랑캐의 짓을 하면 오랑캐로 대우하고, 오랑캐이면서도 중국의 짓을 하면 중국으로 대우하니, 중국과 오랑캐는 그 도와 정치에 있는 것이지 강토에 있는 것이 아니다[聖人之法 以中國而夷狄則夷狄之 以夷狄而中國則中國之 中國與夷狄 在其道與政 不在乎疆域也].”라 하여,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이(華夷)의 개념을 달리 적용하여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절대적 권위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동호론(東胡論), “사기(史記)동이는 어질고 선하다.’고 했는데, 참으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물며 조선은 정동(正東)의 땅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 풍속이 예()를 좋아하고 무()를 천하게 여겨 차라리 약할지언정 포악하지는 않으니, 군자의 나라이다. ! 이미 중국에 태어날 수 없었다면 오직 동이뿐이도다[史稱東夷爲仁善 眞有以哉 況朝鮮處正東之地 故其俗好禮而賤武 寧弱而不暴 君子之邦也 嗟乎 旣不能生乎中國 其唯東夷哉].”라 하여, 우리나라가 우수한 문화를 가진 민족임을 자부하고 있다.

 

이처럼 다산에게 있어 중국은 열등의식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시(中國詩)를 흉내내려하지 않고 조선시(朝鮮詩)를 짓고자 했던 것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318~319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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