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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를 읽다 - 13. 춘흥과 가진 자의 여유 본문

책/한시(漢詩)

우리 한시를 읽다 - 13. 춘흥과 가진 자의 여유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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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춘흥과 가진 자의 여유

 

 

상황에 따라 봄의 느낌은 달라라

 

 

1. 구양수(歐陽脩): 산림(山林)의 문학은 그 기운이 고고(枯槁)하고 관각의 문학은 그 기운이 온윤(溫潤)하다고 함.

2. 서거정(徐居正): 계정집서(桂庭集序)에서 기상은 관각과 산림과 불교의 세 가지로 나뉘며 뒤로 갈수록 좋지 않다는 인식을 반영함.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의 내용과 진배없이 관각문학을 우위에 둠.

 

 

 

여유로우니 봄이 좋아라

 

 

1. 이규보(李奎報)춘망부(春望賦)

羯鼓聲高 둥둥 북소리에
紅杏齊綻 살구꽃이 활짝 필 때
望神州之麗景 서울의 고운 봄빛을 바라보면서
宸歡洽兮玉觴滿 임금이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此則春望之富貴也 부귀한 자의 봄 구경이요.
彼王孫與公子 왕손과 귀공자가
結豪友以尋芳 벗들과 봄놀이를 하여
後乘載妓 茜袂紅裳 수레에 노란 저고리 붉은 치마 입은 기생을 싣고
隨所駐兮鋪筵 아무 곳에나 머물러 자리를 깔고
吹瑶管兮吸玊簧 피리와 생황을 울리면서
望紅緑之如織 붉은 꽃과 푸른 잎을
擡醉眼以倘佯 거나하게 취한 채 바라보는 것은
此則春望之奢華也 화사한 봄 구경이다.
有美婦人兮守空閨 고운 아낙네가
別宕子兮千里 바람난 낭군을 천 리 먼 곳에 떠나보내고 독수공방하면서
恨音塵之迢遞 소식이 오지 않는 것을 한탄하고
情搖搖其若水 흘러가는 물처럼 마음이 뒤숭숭하여
望漆䴏之雙飛 쌍쌍이 나는 제비를 바라보며
倚雕櫳而流淚 난간에 기대 눈물을 흘리는 것은
此則春望之哀怨也 애원이 서린 봄 구경이요.
故人遠遊兮送將行 멀리 떠나는 친구를 전송하는데
雨浥輕塵兮柳色青 가랑비 내려 축축하고 버들잎은 푸른데
三疊歌闋 애잔한 이별가에
別馬嘶鳴 말도 함께 슬피 울 때
登崇丘兮望行色 높은 언덕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烟花掩苒兮蕩情 자욱한 아지랑이에 애간장을 태우는 것은
此則春望之別恨也 이별이 한스러운 봄 구경이라 하겠다.
至若征夫邈寄乎關山 수자리 나간 군사가 멀리 변방에서
見邊草之再榮 두 번째 봄을 맞아 풀이 돋아나는 것을 보거나
逐客南遷乎湘水 귀양 가는 사람이 남방의 물가에서
望青楓之冥冥 어둑어둑 푸른 단풍나무를 바라볼 때
莫不翹首延佇 모두 다 머리를 세우고
抱恨怦怦 넋을 놓고 깊은 한에 잠기는 것은
此則春望之覊離也 집 떠난 자의 봄 구경이다.

 

 

2. 서거정(徐居正)춘일(春日)

金入水楊玉謝梅 금색은 수양버들로 들어가고 옥빛은 매화를 사양하네,
小池春水碧於苔 작은 연못의 봄 물빛은 이끼보다 푸르구나.
春愁春興誰深淺 봄의 근심, 봄의 흥, 누가 깊고 옅으랴마는,
燕子不來花未開 제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네.

 

1) 조선 초기 제일 대가 서거정의 솜씨를 잘 보여준 작품.

2) 서거정의 눈에 비친 봄빛은 이규보가 이른 것 중 화사한 봄 구경임. 그는 권근의 외손으로 그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하며 유배 가본 적도 외직에 나간 적도 없으니 그의 눈에 비친 봄빛은 고울 수밖에 없음.

3) 역대 시 선집에 빠짐없이 수록되었으며 중국의 전겸익(錢謙益)이 쓴 열조시집(列朝詩集)에 수록되어 해외에까지 알려짐.

4) 1구와 2구는 황금색과 순백색, 청록색의 색채 대비를 이루며 감각적으로 묘사했기에 첨신(尖新)하단 설명이 가능함.

5) 나른함과 무료함, 제비가 오지 않았다는 시름은 보이나, 그건 진정 봄이 왔을 때의 절정을 위한 장치일 뿐.

6) 파격적으로 ()’을 세 번, ‘()’는 두 번 썼으며, ‘()-()’()-()’과 같은 반의어를 써서 리듬감을 강화함. 아래의 세 시도 반복적인 표현을 쓰고 있음.

7) 1구와 4구는 한 구 내에서 대를 이루는 구중대(句中對).

 

 

3. 춘흥을 노래한 시에서 반복적인 표현이 나온 예들.

1) 월산대군(月山大君)심화고사(尋花古寺): ‘()’가 네 번이나 사용됨.

我自尋花花已盡 나는 절로 꽃을 찾아 왔지만 꽃은 이미 지고,
尋花還作惜花歸 꽃 찾아 다시금 꽃을 아쉬워하며 돌아왔지.

 

2) 남효온(南孝溫)상사성남(上巳城南): ‘()’()’를 반복하면서 ()’()’, ‘(西)’()’이란 상반된 글자로 리듬감을 강화함.

城南城北杏花紅 성의 북쪽과 성의 남쪽에 살구꽃 붉고,
日在花西花影東 해가 꽃의 서쪽에 있으니, 꽃의 그림자 동쪽으로 있네.

 

3) 백광훈(白光勳)춘후(春後): ‘()’을 반복하며 구중대(句重對)를 구사함.

春去無如病客何 봄이 가니 늙은 나그네 어이하랴.
出門時少閉門多 문을 나설 때는 적고 문을 닫을 때 많구나.

 

 

4. 서거정(徐居正)하일즉사(夏日卽事)

小晴簾幕日暉暉 조금 날씨가 개니 발에 햇살이 반짝반짝,
短帽輕衫暑氣微 짧은 모자와 홑 적삼에, 더운 기운이 가시네.
解籜有心因雨長 해진 대쪽은 마음이 있어 비 때문에 자라고,
落花無力受風飛 떨어진 꽃은 힘이 없어 바람 맞아 날리네.
久拚翰墨藏名姓 오래도록 중이와 붓을 놓고 명성을 숨겼으니,
已厭簪纓惹是非 이미 시비를 야기 시키는 벼슬살이 싫어서지.
寶鴨香殘初睡覺 보물 오리 향로엔 향불 사그라들고 잠에서 막 깨어 깨달았네,
客曾來少燕頻歸 손님은 일찍이 옴이 적고 제비만 자주 돌아온다는 것을.

 

1) 초여름 무료함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지은 작품.

2) 벼슬이 싫다 했지만 그러한 마음이 본심이라 말하기는 어려움.

3) 나른함과 한가로움을 가득 담아 낮잠을 즐김.

 

 

5. 성현(成俔)대우제청주동헌(帶雨題淸州東軒)

畫屛高枕掩羅幃 그림병풍, 높은 배게에 비단 휘장을 치고
別院無人瑟已希 별원에 사람 없어 가야금 소리 이미 드물구나.
爽氣滿簾新睡覺 상쾌한 기운이 주렴에 가득하여 선잠이 깨니,
一庭微雨濕薔薇 뜰에 가랑비 내렸는지 장미가 젖어있네.

 

1) 자다 일어나 비에 젖은 장미를 보고 있음.

2) 화려하게 수놓은 병풍과 비단 휘장 안에서 낮잠을 잤는데 그 새 소낙비가 한바탕 내림.

3) 아직 빗방울이 채 떨어지지 않은 붉은 장미를 바라보니 곱기만 함.

 

 

 

서글픈 환경이 스산한 봄으로 남아

 

 

1. 김종직(金宗直)화홍겸선제천정차송중 추처관운(和洪兼善濟川亭次宋中 樞處寬韻)

吹花擘柳半江風 강바람이 꽃에 불고 버들개지 쪼개었고,
檣影搖搖背暮鴻 돛대 그림자는 흔들흔들 저물녘 기러기를 등져 있네.
一片鄕心空倚柱 한 조각 고향생각에 부질없이 기둥에 기대니,
白雲飛度酒船中 흰 구름은 술 싣고 가는 배를 지나 날아가네.

 

1) 시원한 봄바람이 버들가지 가르게 하는데 한강엔 호화로운 배가 떠있음. 그러나 고향에 가고 싶은 맘에 기생들과 술은 눈에 들어오지 않음.

2) ‘술 실은 배엔 서거정 같은 권세가가 타 있고 자신은 묵묵히 쳐다볼 뿐임.

3) ‘백운(白雲)’은 청운(靑雲)과 대비되는 은자의 삶을 상징하며,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을 상징함.

 

서거정 김종직
문학을 겸비한 대학자 학문을 겸한 뛰어난 시인
좋은 화장품으로 곱게 단장하여 화려함 지향 화장기가 전혀 없는 청담함 지향

 

 

2. 이행(李荇)사월이십육일 서우동궁이어소직사벽(四月二十六日, 書于東宮移御所直舍壁)

衰年奔走病如期 늦은 나이에 분주하여 병이 약속한 듯 와서
春興無多不到詩 봄의 흥취가 많지 않아 시 지을 만큼 이르질 않네.
睡起忽驚花事晩 자다 깨니 어이쿠야! 꽃피는 계절이 다 가버려,
一番微雨落薔薇 한 번 보슬비에 장미꽃 져버렸네.

 

1) 15세기 관각 문인들은 가진 자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16세기 관각 문학은 잦은 사화로 누릴 수 없게 됨.

2) 이 시는 1523년 종1품 의정부 우찬성에 있을 때 지은 시로 노쇠한 데다 병마까지 겹친 상태에서 쓴 것임.

3) 서거정이나 성현처럼 무료함에 낮잠을 잔 건 같지만, 깨어났을 때 산뜻한 장미가 아닌 져버린 장미만 보인다는 싸늘함이 다름. 낙관적 세계관은 거세되고 인생의 비애가 자리함.

 

 

3. 허균(許筠)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

田園蕪沒幾時歸 전원이 거칠어졌으니, 어느 때에 돌아갈꼬?
頭白人間官念微 흰머리 난 인간은 벼슬하려는 생각이 적기만 하네.
寂寞上林春事盡 적막한 숲에는 봄 일이 다하였고,
更看疎雨濕薔薇 다시 부슬비가 장미를 적셨다는 걸 보았네.

 

1) 나른함과 무료함이 잘 나타남.

2) 대궐의 온갖 꽃들이 지는 모습을 보니,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 봄빛을 즐기고 싶은 마음뿐임.

3) 보슬비에 젖은 채 곱게 핀 장미꽃이 그나마 위안을 줌.

4) 40대의 이행은 진 장미에 파리한 자신의 모습을 포갰지만, 30대의 허균은 싱싱한 장미에 자신을 포갬.

 

성현 이행
가진 자의 화려한 장미 가진 것조차 지겨워져 파리한 장미
최경창 허균
무소유의 맑은 장미 가지려는 의지는 없지만 해맑은 장미

 

 

 

 

인용

목차

한시사 / 略史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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