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농
농가(農家)
자신이 먹을 것은 직접 농사를 지어 먹어야 한다는 사싱을 지니고 있던 전국시대 사상가인 허행(許行)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농가성진(弄假成眞)
장난삼아 한 것이 진심으로 한 것 같이 되었다는 말이다.
농단(壟斷)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언덕을 말한다. 후에 혼자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농락(籠絡)
남을 제 마음대로 이용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농(籠)’은 죽과 용의 결합으로 흙을 담는 삼태기였다. 하늘을 마음대로 나는 용처럼 물건을 담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자 하였던 데서 만든 글자다. 후에는 조롱(鳥籠), 등롱(燈籠), 농구(籠球), 농성(籠城) 등 대나무가 아니라도 얽어서 만든 것으로 물건을 담고 가두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면 모두 농이라고 했다. ‘락(絡)’은 실로 제각기 흩어져 있는 물건을 얽어맨 것이다. 연결하여 얽어매는 것이 연락, 일맥상통하도록 얽혀 있는 것이 맥락, 오장육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것이 경락이다. 따라서 롱락은 ‘가두고 얽매여 놓는 것’, 곧 구속이나 제한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농락은 ‘제 마음대로 주무루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대체로 천자가 얄팍한 기교로 신하나 백성을 속이고 놀리는 것을 말했다. 방효유(方孝孺)는 명나라 초기의 대문장가이자 충신이었다. 혜제(惠帝)에게 유명한 심려론(深廬論)을 써 치국책을 밝혔다. 그에 의하면 훌륭한 통치자는 덕을 닦고 천심을 닦기 위하여 노력해야지 얕은 잔꾀로 백성을 농락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 만큼 그는 남으로부터 농락당하는 것도 극도로 싫어했다. 후에 연왕(燕王)이 혜제를 죽이고 등극하니 이가 성조(成祖:永樂帝)이다. 성조는 민심을 수습(收拾)하기 위해 그의 문장을 빌리고자 했으나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결국 본인은 물론 삼족을 멸하는 참혹한 벌을 받고 말았다. 농락에 대항한 대가는 그만큼 무서웠다.
농롱(曨曨)
어스레한 모양, 어둠침침한 모양이다.
농리(瀧吏)농(瀧)은 급류(急流)의 뜻으로, 농리는 즉 배가 다니기 어려운 험악한 곳에 특별히 두어 배의 운행을 경계시키도록 했던 아전을 이르는데,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부임해 갈 적에 창락롱(昌樂瀧)에 이르러 농리와의 문답(問答)에 의탁하여 읊은 「농리(瀧吏)」라는 시에서 “남행한 지 육십 일이 지나, 비로소 창락롱을 내려간다. 물살 험악하기 형상할 수 없어 배와 바위 서로 부딪히네. 농리의 아전에게 가서 묻길 조주 몇 리인가? 가면 며칠에 당도하나? 풍토는 다시 어떠한가?[南行愈六旬, 始下昌樂瀧. 險惡不可狀, 船石相舂撞. 往問瀧頭吏, 潮州尙幾里? 行當何時到? 土風復何似]”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六 / 인용: 觀水樓 題詠詩(김종직)
농리요도교염춘(穠李夭桃嬌艶春)
‘화사한 오얏꽃[穠李]ㆍ고운 복사꽃[夭桃]ㆍ요염한 봄[嬌艶春]’이란 뜻으로, 모두 미인(美人)을 형용한 말이다.
농말홀횡촌(濃抹忽橫村)
떠오르는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연무(煙霧)가 붉게 물든 것을 짙게 화장한 여인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서호를 서시(西施)에 비유한다면, 짙은 화장 옅은 화장 모두 어울린다 할까[欲把西湖比西子 淡粧濃抹摠相宜]”라는 구절이 나온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9 「음호상초청후우(飮湖上初晴後雨)」
농매(隴梅)
산 위에 활짝 피어 있는 매화꽃을 이른다. 당 나라 송지문(宋之問) 「제대유령북역시(題大庾嶺北驛詩)」의 “내일 아침 고향을 바라보는 곳, 활짝 핀 산 위 매화 응당 보리라[明朝望鄕處 應見隴頭梅]”에서 나온 것으로 고향을 그릴 때 인용한다.
농산(隴山)
육반산(六盤山) 남단의 별칭으로, 중국 섬서성(陝西省)의 농현(隴縣)과 감숙성(甘肅省)의 평량(平涼) 일대에 깔려 있는데, 산세가 험난하여 그 지방의 요새이다. 옛날에 행역(行役)나간 사람들이 모두 이 산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앵무의 원 서식지(棲息地)로 일컬어 온다.
농산(隴山)
지금의 섬서성과 감숙성을 남북으로 가르는 육반산(六盤山) 남단의 옛날 별칭이다. 산세가 험하여 섬서평원과 감숙고원의 분계로 옛날부터 관중을 지키는 4개의 천연적인 요새 중 하나로 지칭되어 왔다.
농상경(隴上耕)
농상(隴上)은 중국 천수군(天水郡)에 있는 지명이다. 전야(田野)를 가리킨다. 후한 말의 명사(名士) 방덕공(龐德公)이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간곡한 초빙을 사양하고 현산(峴山)의 남쪽에 살며 자기는 전야에서 밭을 갈고 처자는 김을 매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卷八十三 「은민열전(逸民列傳)」
농상증차연여홍(壟上曾嗟燕與鴻)
진말(秦末)에 진승(陳勝)이 큰 뜻을 품었으나 가난하여 품팔이로 밭을 갈다가 밭둑에 앉아 쉬면서 “왕후(王侯)와 장상(將相)이 어찌 종자가 있으랴.”라고 탄식하니, 곁에 사람이 비웃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제비가 어찌 기러기·따오기의 뜻을 알까보냐.”라 하였다.
농서(隴西)
한(漢) 나라 때 흉노(匈奴)가 출몰했던 농산(隴山) 이서(以西)의 지역 이름으로, 농우(隴右) 혹은 농음(隴陰)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북쪽 변방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농서공자증미진(隴西公子曾迷津)
이백(李白)이 하늘나라에서 유배당한 적선(謫仙)의 처지로 세파(世波)에 부대끼며 살았던 것을 의미하는데, 『신당서(新唐書)』 권202에는 이백이 황노(黃老)를 좋아하여 청산(靑山)에 들어가서 생을 마감하려다가 결국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기사가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 한편 이백은 흥성 황제(興聖皇帝)의 9세 손으로서 당 고조(唐高祖) 이연(李淵)과 같은 농서(隴西) 성기(成紀) 사람인데, 그가 지은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도 이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농서원(隴西園)
이씨(李氏)의 본고장이란 뜻으로, 맨 처음 농서(隴西) 성기(成紀) 사람이 이연(李淵)이 당(唐) 나라를 세우고 천하의 이씨(李氏)는 모두 농서(隴西)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노담(老聃)을 시조(始祖)로 삼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구당서(舊唐書)』 卷一 「고조본기(高祖本紀)」
농서자(隴西子)
농서 출신인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농수(隴水)
중국 서부 산악지대인 감숙성(甘肅省)과 섬서성(陝西省)에 위치한 농산(隴山)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일반적으로 깊은 산속에서 흘러나온 강물을 말한다.
농수음(隴水吟)
농두음(隴頭吟)으로, 한 나라의 횡취적곡(橫吹笛曲)이며, 이연년(李延年)이 지었다고 한다.
농승(聾丞)
한(漢) 나라 때 황패(黃霸)가 영천 태수(潁川太守)가 되었는데, 허씨(許氏) 성을 가진 승리(丞吏)가 늙어서 귀머거리가 되었으므로, 독우(督郵)가 그를 쫓아내려 하자, 황패가 말하기를 “허승(許丞)은 청렴한 관리이다. 그는 비록 늙었지만 오히려 배기(拜起)·송영(送迎)에 능란하니 귀가 어두운 것이 무어 해롭겠는가. 잘 도와주라.”라고 하였다.
농아전(籠鵝全)
진(晉) 나라 때 왕희지(王羲之)가 거위를 매우 좋아하여 산음(山陰)의 도사(道士)에게 『도덕경(道德經)』를 써 주고 그 대가로 거위를 싸 간 고사에서 온 말이다.
농암(農巖)
조선 숙종(肅宗) 때의 성리학자(性理學者) 김창협(金昌協)의 호이다.
농암집(農巖集)
김창협(金昌協)의 문집이다.
농옥(弄玉)
춘추시대(春秋時代) 진목공(秦穆公)의 딸이다. 진목공(秦穆公) 때에 소사(簫史)가 퉁소를 잘 불므로, 그 소리를 듣고 봉황새가 날아 왔다 한다. 목공의 딸 농옥(弄玉)이 소사를 좋아하므로 짝을 지어 주었더니 부부가 봉황을 타고 신선이 되어 갔다 한다.
농와지경(弄瓦之慶)
딸을 낳은 기쁨. 또는 딸을 낳은 일. 옛날 중국에서 딸을 낳으면 장난감으로 실패를 주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斯干)」 / 유사어: 농장지경(弄璋之慶)
농우(隴右)
농서(隴西) 지방으로, 감숙성(甘肅省) 일대를 가리킨다. 이씨(李氏)의 자칭 본관(本貫)이다.
농우희음객(隴右喜吟客)
농서(隴西)에서 태어난 시인 이백(李白)은 일찍이 ‘황운성가에 까마귀가 깃들려고 날아와서 까악까악 가지 위에 운다[黃雲城邊烏欲棲 歸飛啞啞枝上啼]’로 시작되는 시를 지었다. 『이태백집(李太白集)』 卷三 「오야제(鳥夜啼)」
농장(弄璋)
생남(生男)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남자를 낳으면 구슬[璋]을, 여자를 낳으면 실패[瓦]을 가지고 놀게 한다.”라고 한 말이 있으므로 아들을 농장(弄璋), 딸을 농와(弄瓦)라 한다.
농장성(農丈星)
농장인성(農丈人星)으로 남두성(南斗星) 서남쪽에 있는 별이름인데, 추수(秋收)를 맡고 있다고 한다. 『진서(晉書)』 天文志
농장인(農丈人)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 “농장인의 한 별이 남두(南斗)의 서남쪽에 있는데 노농(老農), 가색(稼穡)을 맡는다.”라 하였다. 또는 농가(農家)의 늙은이를 말한다.
농장인성(農丈人星)
별 이름이다. 남두성(南斗星) 서남쪽에 있는 별로 추수(秋收)를 주관한다고 한다.
농장지경(弄璋之慶)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 장(璋)으로 만든 구기를 주어 놀게 했다는 데서 나온 말로 사내아이를 낳은 경사를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斯干)」
농장지희(弄璋之喜)
아들 낳은 즐거움. 옛날 사내아이를 낳으면 장난감으로 장(璋)이란 일종의 장난감을 주며 놀게 하였다 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斯干)」 ↔ 농와지경(弄瓦之慶)
농적(隴笛)
농서 지방의 젓대 소리를 말한다.
농조연운(籠鳥戀雲)
새장 속에 있는 새는 구름을 그리워한다. 곧 몸이 속박 당한 사람은 자유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농조추(弄鳥雛)
옛날 초(楚) 나라의 효자(孝子)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에 부모 앞에서 어린애 옷을 입고 새 새끼를 희롱하여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한 일에서 온 말이다.
농주인(弄珠人)
당(唐) 나라 시인 왕적(王適)의 시 「강빈매(江濱梅)」에 “알지 못하는 새에 찾아온 이른 봄빛, 아마도 구슬 갖고 노니는 사람인 듯[不知春色早 疑是弄珠人]”이라는 표현이 있다. 농주인(弄珠人)은 계란(鷄卵)만한 구슬을 차고 있었다는 전설 속의 신녀(神女)로, 매화를 가리키는 시어이다. 주대(周代)의 정교보(鄭交甫)가 초(楚) 나라 한고(漢臯)의 누대 아래에서 강비(江妃) 2녀를 만나 그들이 차고 있는 형계(荊鷄)의 알 크기 만한 구슬을 달라고 요청하자 구슬을 풀어 주고 떠났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다시 확인해 보니 구슬도 사라지고 신녀(神女)도 온데간데 없더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선(文選)』 卷4 張衡 南都賦 註
농중약(籠中藥)
문객(門客)을 비유한 말이다. 적인걸(狄仁傑)이 정원담(貞元澹)에게 “그대는 바로 나의 농 안의 약품과 같으니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되겠다.”라고 하였다. 『당서(唐書)』 「정원담전(貞元澹傳)」
농지우선(農地優先)
농사 짓는 땅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농촉병수(隴蜀竝收)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농추(弄雛)
옛날 초(楚) 나라의 효자(孝子)인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세가 되어서 두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하여 어린애처럼 색동저고리를 입고서 새 새끼를 가지고 장난을 하며 놀았던 데서 온 말이다.
농탄가(弄彈歌)
금곡가사(琴曲歌詞)를 말한 것이다.
농판(隴坂)
① 감숙성(甘肅省) 청수현(淸水縣)에 있는데 큰 들이 있으므로 판(坂)이라 한 것이다.
②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농산(隴山)을 이르는데, 옛날에 행역(行役)나간 사람들이 모두 이 산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농환(弄丸)
① 환(丸)은 구슬로, 태극(太極)을 말한다. 송 나라 소옹(邵雍)의 ‘자작진찬시(自作眞贊詩)’에 “농환하는 여가에 한가로이 오간다[弄丸餘暇 閒往閒來]”라 하였는데, 이에 대한 소주(小註)에 “환(丸)은 태극이다.”라고 하였다. 『격양집(擊壤集)』 卷12
② 어느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자가의 경지에 도취하면 남은 일들이 자연적으로 풀림을 이른다. 시남 의료(市南宜僚)가 구슬놀이를 잘했는데, 그 바람에 초(楚)와 송(宋)의 전쟁이 종식되었다는 것이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농환가(弄丸家)
구슬 놀이 잘하는 사람을 말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注에 “초(楚) 나라 사람 웅의료(熊宜僚)가 둥근 구슬 놀이를 잘 하였는데, 8개의 방울은 늘 공중에 띄워 두고 한 개만 수중에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농환옹(弄丸翁)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누추한 오두막에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자신의 집을 ‘안락와(安樂窩)’라고 이름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즐긴 송(宋) 나라의 철인(哲人) 소강절(邵康節) 소옹(邵雍)을 가리킨다. 『주역(周易)』의 수리(數理)를 연역(演繹)하여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저술하였는데, 자작진찬(自作眞贊)에 “구슬을 굴리는 여가에 틈이 있으면, 한가히 갔다가는 한가히 오노매라[私桂操行 鸎花文才 江山氣度 風月情懷 借爾面貌 假爾形骸 弄丸餘暇 閑往閑來]”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그를 농환옹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는데, 그 시의 자주(自註)에 “환(丸)은 태극(太極)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격양집(擊壤集)』 卷12 「자작진찬(自作眞贊)」
농황(弄潢)
황지농병(潢池弄兵)의 준말로, 반란군을 말한다. 『한서(漢書)』 「공수전(龔遂傳)」에, “백성들이 살 수가 없어서 도둑질하기를 마치 어린애들이 못 속에서 병기(兵器)를 희롱하듯이 했다.”라고 하였다. / 인용: 嶺南歎(윤현)
농희(農羲)
상고 시대의 성왕(聖王)인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를 말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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