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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66. 노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66. 노

건방진방랑자 2019. 11. 1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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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

태산(太山), 또는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맹자(孟子)』 「진심(盡心)공자께서 동산(東山)에 올라서는 노나라를 적다고 여기시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를 적다고 여기셨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라고 하였다.

 

노가(盧家)

부유한 집을 말한다. 낙양(洛陽)의 여인 막수(莫愁)가 부자인 노씨 집에 시집갔다는 내용의 고악부(古樂府)에서 유래한 것이다.

 

노가(勞歌)

손님을 전송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노로정(勞勞亭)이라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멀리 가는 손님을 전송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사문유취(事文類聚)

 

노가(魯家)

동로가(東魯家)의 준말로, 주인 없이 텅 빈 고향집을 가리킨다.

 

노가소부(盧家少婦)

노씨네 부인과 관련하여 양 무제(梁武帝)의 하중지수가(河中之水歌)가 전해 오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하수는 동쪽으로 흐르는데 낙양 소녀의 이름 막수(莫愁)였네. 12세 되자 비단 짜고 14세엔 누에 쳤네. 15세엔 노씨에게 시집을 가 16세에 아후같은 애 낳았네. 계수나무 들보에 깨끗하게 꾸민 방 언제나 울금초 향기 감돌곤 하였다오[河中之水向東流 洛陽女兒名莫愁 年來十二能織綺 十四採桑南陌頭 十五嫁爲盧家婦 十六生兒似阿侯 盧家蘭室桂爲梁 中有鬱金蘇合香]”

 

노가수(魯嘉樹)

() 나라 대부 한 선자(韓宣子)가 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노 나라의 대부인 계 무자(季武子)의 집에서 연향할 때에 거기에 좋은 나무[嘉樹]가 있는 것을 보고 한 선자가 그를 좋다고 칭찬하자, 계 무자가 말하기를 제가 반드시 이 나무를 잘 북돋아 길러서 공께서 각궁(角弓)을 읊은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좌전(左傳)昭公 二年

 

노가옥당(盧家玉堂)

노씨 집의 옥으로 꾸민 전당. 옥계생시전주(玉谿生詩箋註)2 대설(對雪)이미 강령을 따라 옥나무를 뽐내고 또 노가로 들어가 옥당을 시기하네[已隨江令誇瓊樹 又入廬家妒玉堂]”에서 인용한 것이다. 강령은 남조(南朝) () 나라 때의 상서령(尙書令)을 지낸 강총(江總)을 가리킨다. 노씨집은 막수(莫愁)라는 소녀가 집을 옥으로 꾸민 노씨집으로 시집갔다고 하는 양무제(梁武帝)의 하중지수가(河中之水歌)에서 나온 고사이다.

 

노가유막수(盧家有莫愁)

막수(莫愁)는 당() 나라 때 석성(石城)의 여자로 가요(歌謠)를 매우 잘하였는데, 그가 15세의 나이로 노씨(盧氏)의 집에 시집을 갔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노갑이을(怒甲移乙)

갑에게 화나는 일을 당하고서 을에게 옮긴다는 말로, ‘어떤 사람에게서 당한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다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의 강남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한풀이한다와 같은 뜻이다.

 

노거공명부적송(老去功名付赤松)

장량(張良)이 성공한 뒤에 모든 것을 받지 아니하고 다만 소원하는 것은 옛날 신선인 적송자(赤松子)를 따라서 노니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노견쟁능이적참(盧犬爭能異趯毚)

한유(韓愈)모영전(毛穎傳)동곽(東郭)에 사는 토끼인 준()이 날래고 뜀박질을 잘하여 한로(韓盧)라는 사냥개와 능력을 다투었는데, 한로가 준을 따르지 못하였다. 그러자 한로가 화가 나서 송작(宋鵲)이란 개와 공모하여 준을 죽였다.”라고 하였다.

 

노겸(勞謙)

주역(周易)겸괘(謙卦) 구삼효(九三爻)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지라, 군자의 결말이 좋으리니, 길하리라[勞謙 君子有終 吉]”라는 말이 있다.

 

노계(露鷄)

야생의 닭을 말한다.

 

노고(魯鼓)

노 나라의 북이고, 설고는 설 나라의 북이다. 노고와 설고의 구분은 곧 음절이 서로 길고 짧고 한 데에 있었다. 예기(禮記)』 「투호(投壺)

 

노고추(老古錐)

노고(老古)는 존칭이고 추는 물건을 뚫는 것인데 기봉(機鋒)의 예리함을 뜻하는 말로서, 즉 노대원숙(老大圓熟)함을 의미한다.

 

노곡(老穀)

오래된 닥나무라는 뜻이다. () 나라 태무(太戊) 때에 요망한 뽕나무와 닥나무[桑穀]가 금새 자라났다고 하는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

 

노공(魯公)

노군공(魯郡公)에 봉()해진 당() 나라 안진경(顔眞卿)을 추존(推尊)하여 부르게 된 명호(名號)이다.

 

노공(潞公)

노국공(潞國公)으로 송 나라 문언박(文彦博)의 봉호이다. 정호(程顥)에게 평소 특별한 호칭이 없었는데, 그가 죽자 문언박이 중론(衆論)을 널리 수합하여 그 묘에 명도 선생(明道先生)이라고 제()하였다. 제묘는 무덤에 죽은 자의 이름 등을 써서 표시하는 것이다. 송사(宋史)卷四百二十七 정호전(程顥傳)

 

노관(盧綰)

부친과 한고조 유방의 부친인 태상황과는 매우 친한 친구였다. 태상황이 한고조를 낳자 그 부친도 노관을 낳았다. 한고조와 노관은 같은 날에 태어나서 동무하여 같이 자랐다. 고조가 패에서 궐기할 때 노관은 객의 자격으로 종사했다. 고조가 항우(項羽)를 파하고 한나라를 세우자 노관은 장안후가 되었다. 이어서 연왕 장도(臧荼)가 한나라에 투항하자 그 빈자리에 노관이 봉해졌다. 이어서 한고조와 여후(呂后)가 유씨(劉氏)가 아닌 공신들로서 제후에 봉해진 사람들을 차례로 주살하자 노관도 위협을 느끼고 황제에게 조현을 드리러 가지 않았다. 한고조는 번쾌(樊噲)를 시켜 연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이에 노관은 가솔들을 거느리고 흉노로 도망쳤다.

 

노관(老關)

후량(後梁) 관동(關同)은 산수도(山水圖)의 명가(名家)로 추산한림도(秋山寒林圖)가 있다.

 

노구반교(老龜蟠蛟)

늙은 거북이란 비신(碑身)을 받치는 석각(石刻)한 거북 모양의 귀부(龜趺)를 가리키고, 서린 용이란 비신 꼭대기에 서린 모양의 용을 새긴 이수(螭首)를 가리킨다.

 

노구효월(盧溝曉月)

북경(北京)의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인 노구교 가의 새벽달[盧溝曉月]’을 두고 한 말이다.

 

노군후천(老君後天)

도교(道敎)의 태상노군(太上老君)은 천지가 다한 뒤에까지 산다 하였다.

 

노규반온비수자(老虯盤穩秘鬚髭)

소식(蘇軾)땅 속에 천년 묵은 뿌리가 마치 규룡처럼 도사리고 있네.”라고 하는 창포시(菖蒲詩) 일부를 인용한 말이다.

 

노귤(盧橘)

금귤(金橘)의 이칭이다.

 

노귤(奴橘)

이형(李衡)이 용양주(龍陽洲)에 귤나무 천 그루를 심어 놓고 아들에게 나에게 나무하인[木奴] 천 명이 있으니, 너의 의식(衣食)에 아무 걱정이 없다.”라고 이른 고사에서 인용한 말이다.

 

노긍(盧兢)

조선조 후기(1738~1790)의 시인이다. 과시(科詩)에 능했고, 소설 화사(花史)를 썼다.

 

노기(虜騎)

북쪽 오랑캐의 기병(騎兵)이다.

 

노기난(路岐難)

옛날에 어떤 사람이 양()을 잃고 그것을 찾으려 뒤쫓았으나 갈림길이 많아서 끝내 찾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학문의 다단(多端)한 진리(眞理)를 얻기 어려움에 비유한 말이다. 열자(列子)』 「설부(說符)

 

노기다처읍양주(路岐多處泣揚朱)

양주(楊朱)는 길을 가다가 분기(分岐)된 길을 보면 울었는데 한 번 나뉘면 다시는 합칠 수 없는 것을 슬퍼함이다.

 

노기복력(老驥伏櫪)

나이 많은 천리마가 헛간 널빤지 위에 잠을 자고 있다는 뜻으로, 어진 사람이 나이 먹어도 아직 세상에 쓰이지 않고 있음을 비유한다.

 

노기수(路歧愁)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 양주(楊朱)가 사통팔달한 대로(大路)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회남자(淮南子)』 「설훈림(說林訓)

 

노기읍(路岐泣)

옛날 양주(楊朱)가 갈림길을 만나면, 남으로도 갈 수 있고 북으로 갈 수 있다 하여 울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마음에 주관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노기충천(怒氣衝天)

성난 기색(氣色)이 하늘을 찌를 정도라는 데서, 잔뜩 성이 나 있음을 말한다. / 유의어: 노기충천(怒氣沖天)

 

노난행(路難行)

악부곡(樂府曲) 행로난(行路難)을 가리킨 것으로, 대부분 인생행로의 어려움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노남(盧枏)

() 나라의 시인으로, 재주가 높고 특히 시에 뛰어나서 사진(謝榛)과도 교의가 깊었는데, 일찍이 현령(縣令)에게 거슬러서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하였고, 평생 동안 뜻을 펴지 못하고 낙백(落魄)한 생활을 하다 죽었으며, 그의 저서로 멸몽집(蠛蠓集)이 전한다.

 

노남(魯男)

() 나라 남자(男子). 노남자 이야기는 공자가어(孔子家語)2 호생(好生)에 나온다. ()나라에 홀로 사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 과부도 홀로 살고 있었다. 밤에 폭풍우로 과부의 집이 무너져, 과부가 이 남자의 집에 와서 의탁을 하고자 하니, 남자가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과부가 말하기를 그대는 왜 유하혜(柳下惠)가 했던 것처럼 아니하는가? 유하혜는 미처 성문에 들어가지 못한 여자를 품어 주었는데도 사람들이 문란하다고 하지 않았다.”라고 하니, 남자가 말하기를 유하혜는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할 수가 없다. 나는 나의 불가함으로써 유하혜의 가함을 배우고자 한다.”고 하였다. 유하혜는 한겨울 밤에 곽문(郭門)에서 잘 때에 함께 묵던 여자가 추위에 얼어 죽을까 봐 품에 안고 옷으로 덮어 주었는데 아침이 될 때까지 문란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 유의어: 노독거남(魯獨居男).

 

노남자(魯男子)

()나라 남자(男子). 행실이 깨끗한 사람을 말한다. 시경(詩經)소아(小雅) 항백(巷伯)약간 벌어지고 조금 더 벌어지다 남쪽 기성을 이루었네.[哆兮侈兮, 成是南箕.]”성시남기(成是南箕)’ 구절의 모전(毛傳)노나라 사람 중에 어떤 남자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이웃의 과부도 또한 혼자 살고 있었다. 어느날 밤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치자 집이 무너져 버렸다. 과부는 달려가서 그 남자에게 의탁하려 하였지만, 남자는 문을 닫고 부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부인이 창문 너머에서 그 남자에게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나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지요?’ 남자가 말했다. ‘내가 들으니, 남자와 여자는 60세가 되지 않으면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지금 그대가 어리고, 나도 어리니 그대를 들어오게 할 수 없습니다.’ 부인이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유하혜(柳下惠)만 같지 못하신지요? 돌아갈 집이 없는 여자를 따뜻하게 품어주더라도 나라 사람들은 음란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자가 말했다. ‘유하혜는 진실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나는 진실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유하혜의 잘하는 점을 배우려 합니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셨다. ‘유하혜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 중에 이보다 나은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魯人有男子 獨䖏于室 鄰之釐婦 又獨䖏于室 夜暴風雨至而室壊 婦人趨而託之 男子閉戶而不納 婦人自牖與之言 曰子何爲不納我乎 男子曰 吾聞之也 男子不六十不間居 今子㓜 吾亦幼 不可以納子 婦人曰 子何不若栁下恵然 嫗不逮門之女 國人不稱其亂 男子曰 栁下恵固可 吾固不可 吾將以吾不可 學栁下恵之可 孔子曰 欲學栁下恵者 未有似於是也]”라고 하였다. 공자가어(孔子家語)2 호생(好生)/ 인용: 女織屦(황상), 楚亭集序(박지원)

 

노남자지독거(魯男子之獨居)

노 나라에 어떤 남자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과부가 밤중에 폭풍우로 집이 무너지자 그를 찾아와 하룻밤 재워 줄 것을 청하니 문을 잠그고 열어 주지 않았다. 과부가 당신은 어찌하여 유하혜(柳下惠)처럼 하지 않宵旰 그는 성문이 닫힐 때 미처 들어오지 못한 여자를 몸으로 따뜻하게 녹여 주었으나, 국민들이 그를 음란하다고 하지 않았다오.”라고 하자, 그는 유하혜는 그래도 되지만 나는 안 되오. 나는 장차 내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으로써 유하혜라면 해도 되는 행동을 배우려고 하오.”라고 답하였다. 이에 공자(孔子)유하혜를 배우고자 한 사람 중에 이보다 더 흡사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최고의 선을 목표로 하면서도 그의 행동을 답습하지 않으니,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다.”고 칭찬했다 한다. 시경(詩經)소아(小雅) 항백(巷伯)毛傳 / 공자가어(孔子家語)2 호생(好生)/ 인용: 女織屦(황상), 楚亭集序(박지원)

 

노납자(老衲子)

노승(老僧)의 이칭이다. 납자(衲子)는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절간의 승려(僧侶)를 이르는 말이다.

 

노녀비소(魯女悲嘯)

() 나라 한 여인이 슬프게 휘파람을 불므로 사람들이 물으니 나라에 장차 환란이 있을까 걱정한다.”라고 하였다 한다. ,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의 칠실이란 고을에 과년한 처녀가 자신이 시집가지 못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 임금이 늙고 태자가 어린 것을 걱정하여 기둥에 기대어 울자, 이웃집 부인이 비웃으며 이는 노나라 대부가 할 근심이니, 그대가 무슨 상관인가?” 하였다 한다. 열녀전(列女傳)3 漆室女

 

노년(驢年)

기한이 없이 오래 사는 것을 이른다. 12간지(干支) 중에 나귀의 해는 없으므로 비유한 것이다.

 

노노(呶呶)

떠들썩하게 지껄이는 모양, 추근추근하게 변명하는 모양이다.

 

노노(怓怓)

왁자지껄하고 어수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노담(老聃)

노자(老子)의 이름이다.

 

노당익장(老當益壯)

나이가 들어도 패기에 차고 오히려 굳건하다. 사람은 늙을수록 더욱 기운을 내어야 하고 뜻을 굳게 해야 한다. / 유의어: 노익장(老益壯)

 

노대(露臺)

임금이 천상(天象)을 관찰하는 장소를 말한다.

 

노대비(老大悲)

젊었을 때 세월을 허송한 채 벼슬아치로 늙어가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말이다. 악부시집(樂府詩集) 상화가사(相和歌辭) ()장가행(長歌行)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라 하였으며, 두보(杜甫)의 시 곡강대주(曲江對酒)에도 吏情更覺滄州遠 老大徒傷未拂衣라는 표현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6

 

노동(盧仝)

() 나라 사람이다. 소실산(少室山)에 은거하며 스스로 옥천자(玉川子)라 불렀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았다. 일찍이 월식시(月蝕詩)를 지어 원화(元和)의 역당(逆黨)들을 풍자했다. 한유(韓愈)도 노동의 시를 모방하여 월식시를 지었다. []의 품평(品評)을 잘했으며 다가(茶歌)로 유명했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노동상천참득하마정(盧仝上天斬得蝦蟆精)

노동(盧仝)은 당() 나라 제원(濟源) 사람으로 그의 월식시(月蝕詩)고로(古老)의 말에, 하막(蝦蟆)의 정기가 달을 먹는다 하니……뭇별은 다 용서해 주고 하막만 베라.[傳聞古老說 蝕月蝦蟆精……衆星盡原赦 一蟆獨誅磔]”라 하였다.

 

노동수(盧仝睡)

노동(盧仝)은 당() 나라 시인으로 호는 옥천자(玉川子)이다. 그의 시 다가(茶歌)해가 높이 떴는데도 단잠에 빠졌으니[日高丈五睡正濃]’라는 구절이 있다. 고문진보(古文眞寶)前集 卷 8

 

노동지(盧同知)

조선조 문신인 노직(盧稷). 그의 자는 사형(士馨)이고 본관은 교하(交河)이다.

 

노동천권서(盧仝千卷書)

노동(盧仝)은 당() 나라 시인으로 호는 옥천자(玉川子)이다. 고문진보(古文眞寶)前集 卷 8

 

노동파옥(盧仝破屋)

노동(盧仝)은 당() 나라 때의 시인인데, 허물어진 집이란 곧 한유(韓愈)가 노동의 월식(月蝕) 시를 칭찬하여 지은 시에서 낙성에 살고 있는 옥천 선생은 허물어진 집 두어 칸이 있을 뿐이네[玉川先生洛城裏 破屋數間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노두(老杜)

두보(杜甫)를 가리키는 말이다.

 

노둔회잔두(駑鈍懷棧豆)

노둔한 말이 외양의 콩을 그리워하면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진서(晋書)

 

노락(盧駱)

() 나라 때의 시인이며 문장가인 노조린(盧照隣)과 낙빈왕(駱賓王)이다.

 

노래(老來)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사람인데 효자로 알려졌다. 사기(史記)老子傳 正義

 

노래무채(老萊舞綵)

노래는 노래자(老萊子)이다. 노래자는 나이 70에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항상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었다. 초학기(初學記)17

 

노래의(老萊衣)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은사(隱士)노래자(老萊子)가 나이 칠십에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어 늙은 어버이를 기쁘게 한 고사가 있다. 초학기(初學記)17 引 孝子傳

 

노래자(老萊子)

춘추시대(春秋時代) 말의 초() 나라의 은사. 부모에게 효도가 지극하여, 나이 70에도 꼬까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렸으며, 물그릇을 들고 마루에 올라가다가 미끄러지자, 그대로 땅에 엎어져서 아기처럼 울기도 하고, 부모 옆에서 새소리를 흉내내어 부모를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노래지희(老萊之戱)

()나라의 노래자(老萊子)가 칠십의 나이에 무늬 있는 옷을 입고 동자의 모습으로 재롱을 부려 부모에게 자식의 늙음을 잊게 해드린 일.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똑같으니 변함없이 효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노래지희(老萊之戱)

주나라 노래자(老萊子)가 칠십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기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오색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며 일부러 땅에 엎어져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도 하였다는 고사로 지극한 효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노력숭명덕(努力崇明德)

문선(文選)15이릉(李陵)여소무시삼수(與蘇武詩三首)우리 힘써 미덕을 수양하는 일 쉬지 마세,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努力崇明德 皓首以爲期]”를 인용한 것으로, 여기서 명덕(明德)은 영덕(令德)과 같은 말로 곧 미덕이다.

 

노련(魯連)

노중련(魯仲連)으로, () 나라의 장수이다. 일찍이 조() 나라에 머물러 있을 적에 위() 나라에서 진() 나라 왕을 황제(皇帝)로 추대하여 군대를 철수시키게 하려고 하자, 노중련은 진 나라가 무도한 나라임을 역설하면서, 진 나라가 칭제(稱帝)한다면 자신은 동해(東海)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하여 중지시켰다. 또 제 나라의 전단(田單)이 연() 나라의 요성(聊城)을 오래도록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노중련이 글을 써서 화살에 묶어 성 안으로 쏘아 보내 내분이 일어나게 해서 성을 함락시켰다. 사기(史記)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노련기제조(魯連棄齊組)

노중련은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고사(高士)로서 전단(田單)의 천거에 의하여 벼슬이 내려졌으나 나가지 않고 끝내 바닷가에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다. 사기(史記)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노련명(魯連名)

노중련(魯仲連)의 명예. () 나라 사람인 노중련이 일찍이 조() 나라에 머무를 적에, () 나라에서 진() 나라 왕을 황제(皇帝)로 추대하여 조 나라에 있던 진 나라의 군대를 철수시키려고 하자, 노중련이 평원군(平原君)에게 진 나라가 무도한 나라임을 역설하면서, 진 나라가 칭제(稱帝)한다면 자신은 동해(東海)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하여 중지시켰다. 사기(史記)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노련범벽해(魯連泛碧海)

노중련(魯中連)은 전국(戰國) 시대의 고사(高士), ()와 조()가 진()을 제()로 추대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서, 위나라의 사자(使者) 신원연(新垣衍)을 찾아보고 만일 진()을 제()로 추대한다면, 나는 동해(東海)에 빠져 죽을지언정 진나라 백성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사기(史記)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노련유적(魯連遺迹)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제() 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 나라에서 황제를 자처하는 꼴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겠다[蹈東海而死]”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노로(勞勞)

몹시 지친 모양, 이별을 아쉬워하는 모양, 드문드문한 모양, 먼 모양, 노고에 보답함, 공로를 포상함을 말한다.

 

노로가(勞勞歌)

이별의 노래이다. 중국 강소성(江蘇省)강녕현(江寧縣)남쪽에 노로정(勞勞亭)이 있는데, 옛날 그곳은 송별하던 장소로서 떠나는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며 전별하였다. 사문유취(事文類聚)

 

노록반생(轤轆半生)

도르래.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무상한 인생살이에 비유한 것이다.

 

노론(魯論)

① 『논어(論語)를 말한다. 노논어(魯論語제논어(齊論語고문논어(古文論語) 3()의 논어 중에서 현재 전해지는 논어는 노논어에 기초한 것이다.

금문 논어(今文論語)의 일본(一本). 논어(論語)에 원래 제론(齊論고론(古論노론(魯論) 3종이 있었는데, ‘노론은 노인(魯人)이 전한 것으로 후세에 논어(論語)를 가리키는 말로 되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노론분이반(魯論分二半)

논어(論語)에 노론(魯論)과 제론(齊論)이 있는데, 지금 전하는 것은 노론(魯論)이다. 송나라 조보(趙普)가 항상 논어를 읽으면서 송 태조(宋太祖)에게 말하기를 신이 논어(論語)반부(半部)로서 폐하를 보좌하여 천하를 얻었고, 다시 반부로서 폐하를 보좌하여 천하를 다스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노료(嫽嫽)

외조모를 말한다.

 

노룡(盧龍)

중국 하북성의 고을 이름이다. 명 나라 때는 영평부의 관할 지역이다.

 

노류장화(路柳墻花)

길 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 누구든지 쉽게 만지고 꺾을 수 있다 하여 기생(妓生)을 의미한다.

 

노륙(孥戮)

예전에, 남편이나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내나 아들까지 함께 사형에 처하는 것을 이르던 말이다. / 인용: 金將軍應河輓(송영구)

 

노릉(魯陵)

노산군(魯山君) 즉 단종(端宗)의 능()이다.

 

노릉견(魯陵鵑)

노릉은 단종(端宗)을 가리킨 말이다. 세조(世祖)는 단종을 몰아내어 영월(寧越)로 연금(軟禁)시키면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降等)하였다. 두견새는 일명 자규(子規)라고도 한다. 단종은 영월의 자규루(子規樓)에서 두견새가 구슬피 울자 달 밝은 밤 자규새는 구슬피 우는데 시름겨워 자규루에 기대노라. 네 울음 슬퍼 내 마음 괴롭구나 네 소리 없으면 이내 시름없을 것을. 이 세상 괴로운 사람에게 말하노니 부디 춘삼월에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月白夜蜀魂啾 含愁情倚樓頭 爾啼悲我聞苦 無爾聲無我愁 寄語世上勞苦人 愼莫登春三月子規樓]”라 하였다. 즉 이곳에서 울던 두견새를 가리킨 것이다.

 

노린견수(魯麟見狩)

세상이 무도함을 비유한 말이다. 노 애공(魯哀公) 14년에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 기린을 잡았는데, 공자(孔子)가 그 소식을 듣고는, 기린은 성왕(聖王) 시대의 상서인데 성왕이 없는 세상에 나왔다가 잡혀 죽었다 하여, () 나라의 도가 부흥하지 못함을 마음 아프게 여겼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좌전(左傳)哀公 十四年

 

노마십가(駑馬十駕)

둔한 말도 열 대의 수레를 끌 수 있다. 재주 없는 사람도 노력하고 태만하지 않으면 재주 있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비유한다. 순자(荀子)』 「권학(勸學)

 

노마지지(老馬之智)

()나라 환공(桓公)이 길을 잃고 헤맬 때, 관중(管仲)이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 마침내 길을 찾았다고 하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경험이 풍부하고 숙달된 지혜, 쓸모없는 사람도 때로는 유용함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노망(魯望)

() 나라 시인 육구몽(陸龜蒙)의 자이다. 호는 천수자(天隨子), 또는 보리선생(甫里先生)이라 하였다. 그는 육경(六經)에 밝고 춘추(春秋)에 통달하였으나 벼슬하지 않고 송강(松江) 보리(甫里)에 은거, 고저산(顧渚山) 밑에 다원(茶園)을 경영하였으며, 항상 강호(江湖)에 배를 띄워 낚시를 즐겼다. 친구 피일휴(皮日休)와 서로 화답(和答)한 시를 모아 송릉창화시집(松陵唱和詩集)을 편찬하였고, 그 밖에도 뇌사경(耒耜經입택총서(笠澤叢書) 등의 저서가 있다.

 

노면(露冕)

후한 때 곽하(郭賀)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으면서 매우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임금이 그를 대단히 가상하게 여겨 그에게 면류관(冕旒冠)을 하사하면서, 고을을 순시할 적에 일부러 수레의 휘장을 걷고서 백성들에게 그의 면류관 쓴 모습을 보도록 하여 그를 영광되게 하도록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노묘(魯墓)

공자(孔子)가 노() 나라에서 부친의 묘소를 찾아 모친을 합장(合葬)하고 먼저 돌아왔는데, 때마침 폭우가 쏟아지자 제자들이 그 봉분을 수리하고 늦게 도착했던 고사가 전한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노물(老物)

하늘을 도와 세사(歲事)를 성취시키는 만물(萬物)의 신()을 말한다.

 

노미(撈米)

햅쌀에 대하여 묵은 쌀을 노미라고 한다. 이 쌀은 몇 년 동안 보관하더라도 상하지 않게 특수 처리한 쌀이다.

 

노반(鷺班)

백로가 서 있는 것처럼 질서 정연한 조정 관원의 반열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반자려택(魯泮資麗澤)

성균관에서 서로 학문을 강마하였다는 뜻이다. 반궁(泮宮)은 학궁(學宮)으로, 시경(詩經)노송(魯頌) 반수(泮水)즐거운 반수에서 잠깐 미나리를 뜯는다. 노후가 이르시니 그 깃발을 보리라[思樂泮水 薄采其芹 魯侯戾止 言觀其旂]”라고 하였다. 이택(麗澤)은 친구간에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학문을 강습하는 것으로, 주역(周易)태괘(兌卦)두 못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 태괘이니, 군자는 이것으로 붕우간에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라고 하였다.

 

노번(魯璠)

노 나라에서 생산되는 여번(璵璠)으로, 질이 좋은 옥을 말한다.

 

노병(老兵)

주인을 조롱하는 말인데, ()나라 때에 환온(桓溫)을 노병이라고 조롱한 고사가 있다.

 

노병유마(老病維摩)

불교의 유마힐경(維摩詰經)유마힐 거사(居士)는 병으로 늘 누워 있으면서도 문병(問病)하러 온 문수보살(文殊菩薩) 등 여러 보살에게 설교하였다.”라고 하였다.

 

노병준전화예안(老病樽前花翳眼)

늙으면 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옛 시인들은 탄식하였다.

 

노부(老符)

늙은 수재(秀才) 부림(符林)을 이른다. 송 나라 때 소식(蘇軾)이 일찍이 상사일(上巳日)에 술을 가지고 제생(諸生)들을 찾아갔는데, 모두 외출하고 유독 노부 수재(老符秀才)만이 있으므로, 그와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하는데, 부림은 대체로 안빈낙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卷四十二

 

노부(鹵簿)

임금이 행차할 때의 의장(儀仗)을 말한다.

 

노부세(路浮稅)

왜인(倭人)에게 빚을 얻어 쓴 것을 말한다. 이를 범한 경우에는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다같이 사형(死刑)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었다.

 

노부좌승(勞不坐乘)옛날 중국 고대에는 통상적으로 일반인이 수레를 이용할 때는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다녔고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은 군주나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인사에 한해서였다. 백리해(百里奚)는 앉아서 다닐 수 있는 수레를 이용할 수 있는 신분이었지만 겸손하여 그것을 이용하지 않았다 한다.

 

노불(老佛)

활인불(活人佛)로서 노의(老醫)를 말한다.

 

노비(魯丕)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숙릉(叔陵)이다. 성품이 침착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오경(五經)을 정통하였으며 노시(魯詩상서(尙書)를 가르쳐 당시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후한서(後漢書)』 「조비전(魯丕傳)

 

노사(弩士)

고구려 영양왕(嬰陽王) 25년에 수() 나라 왕이 와 정벌하자 왕이 겁이 나서 사신을 보내 항복하겠다고 빌었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그 때 어느 한 사람이 비밀리에 작은 활을 가슴에 품고, 표문()을 가지고 가는 사신의 뒤를 따라 수 나라 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수 나라 왕이 표문을 읽고 있을 때 활을 당겨 그의 가슴을 명중시켰다. 수제는 군대를 회군하려고 하면서 좌우에게 이르기를 내가 천하의 왕으로서 친히 이 작은 나라를 정벌하다가 이렇게 불리한 꼴을 당했으니 만세를 두고 비웃음을 받을 일이다. 지금 저 사람을 보니 그는 바로 형가(荊軻섭정(聶政) 같은 사람이다.”라 하였다 한다.

 

노사(魯史)

노 나라의 역사로 춘추(春秋)를 말한다.

 

노사(露斯)

시경(詩經)에 담담로사편(湛湛露斯篇)이 있는데, 천자가 제후(諸侯)와 연회하는 시다.

 

노사경어운월주(弩射鯨魚隕月珠)

풍파를 잠재우며 항해할 것이라는 말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래의 눈이 변하여 명월주(明月珠)로 된다고 한다. 문선(文選)』 「오도부(吳都賦)

 

노사나(盧舍那)

비로자나(毗盧遮那)를 말한다. 햇빛이 온 세계를 비추듯이 광명(光明)으로 이름을 얻은 부처, 즉 광명불, 보신불이다.

 

노사서운(魯史書雲)

노사(魯史)춘추좌전(春秋左傳)을 가리키는데, 노 나라에서는 춘분(春分추분(秋分하지(夏至동지(冬至입춘(立春입하(立夏입추(立秋입동(立冬) 때에는 반드시 운기(雲氣)를 관측하여 길흉(吉凶)을 점쳐서 그것을 책에 기록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좌전(左傳)僖公 五年

 

노산고(盧山高)

구양수(歐陽修)가 동년(同年)인 유중윤(劉中允)이 벼슬을 버리고 여산(盧山)의 남쪽으로 옮겨 가니, 구양공이 그 절개를 높이 여겨 이 시를 지어 찬미하였다.

 

노산묘(魯山墓)

영월(寧越)에 있는 조선조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이다. 숙부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찬탈되어 노산군에 봉해졌다. 그후 1698(숙종 24)에 복위(復位)되고 묘효(廟號)가 추증되었다. 능호는 장릉(莊陵)이다.

 

노삼가(魯三家)

춘추시대(春秋時代) 노 나라의 세 공족, 곧 맹손씨(孟孫氏숙손씨(叔孫氏계손씨(季孫氏)를 말한다. 환공(桓公)의 자손들로 국정(國政)을 잡으며 권세가 강성해져 왕실(王室)이 도리어 미약했었는데, 뒤에 계손씨의 가신(家臣) 양화(陽貨)에게 권력을 빼앗겼다.

 

노상(魯桑)

뽕나무의 일종으로 오디가 적게 열린다 한다.

 

노생상담(老生常譚)

새롭고 독특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상투적인 이야기를 일컫는 다는 고사성어다. 삼국시대 조조(曹操)가 통치하던 위()나라에 관로(管輅)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천문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친구들과 놀 때도 땅에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려놓고 해설하는 일에 흥미를 가졌다. 어른이 되자, 다른 사람의 점()을 봐주는 데 뛰어난 판단을 보였다. 그 당시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있던 하안(何晏)이 관로에게 점괘(占卦)를 부탁하러 와서 내가 언제쯤 삼공(三公)의 자리에 오를 것인지 알 수 없군요[不知位至三公不]. 요즘 푸른색 파리 열 마리가 내 코에 붙어서 아무리 쫓으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었는데, 이것이 어떤 꿈인지 해몽(解夢)을 해주시오.”라고 말하였다. 관로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 주()나라 성왕(成王)을 보좌하던 주공(周公)은 직무에 충실하여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성왕은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으며, 각국의 제후들도 그를 추앙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도리를 따르고 지켰기 때문이지 점을 잘 치거나 액막이를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상서(尙書)님의 권세는 높은 지위에 있지만 덕행(德行)가 부족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상서님을 보면, 코는 하늘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푸른색 파리가 얼굴에 달라붙는 것은 위험한 징조입니다. 앞으로 상서님이 문왕(文王)을 섬기고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생각하면 삼공이 될 수 있으며, 청파리도 쫓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등양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 말은 이 노생이 늘 하는 얘기지요[此老生之常談]. 나는 너무 많이 들어서 진력이 났소. 신기한 것이 뭐가 있소그러자 관로는 대저 노생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이고, 평범한 얘기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 보인다[夫老生者見不生 常談者見不談].”라고 대답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규잠(規箴)

 

노생지몽(盧生之夢)

중국 당나라 때 노생이 한단으로 가는 길에 주막에서 도사 여옹을 만나 그 베개를 빌어 베고 자면서 일생의 영화를 꿈꾸었다는 데에서 나온 말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노생(盧生)은 당나라 때 인물인데, 여옹(呂翁)이란 도사를 만나 인생의 고통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여옹은 도자기 베개 하나를 주며 잠을 권하였고, 잠이 든 노생은 베개에 뚫린 구멍 속으로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고 예쁜 여성과 혼인도 하며 재상에도 올랐다가 다시 좌절을 맞보고 결국 여든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깨닫고는 인생의 고통과 부귀에 대한 집착을 모두 버리고 참된 삶을 살았다 한다. ()의 이필(李泌)이 지은 황량몽(黃梁夢)이라는 소설에 나온다. / 유의어: 한단지몽(邯鄲之夢)

 

노서(鷺序)

백로(白鷺)가 나는데 차서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관(朝官)의 반차(班次)를 말한다.

 

노석(老釋)

늙은 중을 말한다.

 

노성(老成)

나이 많고 덕이 높은 사람을 이른다. 소순(蘇洵)관중론(管仲論)에서 진나라는 문공의 남은 위의를 전수하여 오히려 제후들의 맹주역할을 100여 년이나 할 수 있었던 건 왜인가? 임금이 비록 불초해도 오히려 노련한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다[晉襲文公之餘威, 猶得爲諸侯之盟主百餘年, 何者? 其君雖不肖, 而尙有老成人5].”라고 했다.

 

노성수원전형존(老成雖遠典刑存)

() 나라 공융(孔融)은 채옹(蔡邕)을 좋아하였다. 채옹이 죽은 뒤에 얼굴이 채옹과 비슷한 늙은 병졸(兵卒) 한 사람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면서 시경(詩經), 노성한 이는 갔으나 전형은 남았구나 하지 않았는가[雖無老成人, 尙有典刑.].”라고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노성승부(魯聖乘桴)

공자(孔子)가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자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고 싶다고 말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본디 세상을 피해 바다를 건너 멀리 떠나고 싶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노성인(老成人)

옛 신하를 이르고, 典刑(전형)은 옛 법도를 이른다. 시경(詩經)대아(大雅) ()비록 노성한 사람은 없으나 그래도 떳떳한 옛 법이 남아 있다.[雖無老成人, 尙有典刑.]”라고 하였다.

 

노소(老蘇)

소식(蘇軾)의 아버지인 소순(蘇洵)을 가리킨다.

 

노소년(老少年)

안래홍초(雁來紅草)의 별칭이다.

 

노수(魯叟)

노나라 늙은이, 공자(孔子)를 이른다.

 

노수부(魯叟桴)

노수(魯叟)공자(孔子)를 이른 말로, 공자가 말하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서 바다에 띄우리라. 그렇게 하면 나를 따를 자는 유()일 것이다[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바다에 나가 노니는 데에 비유한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노수신(盧守愼)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로서 의정까지 되었으며 76세의 나이로 죽었다.

 

노수욕승부(魯叟欲乘桴)

노수(魯叟)공자(孔子)를 말한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서 바다에 띄우리라. 그렇게 하면 나를 따를 자는 유()일 것이다[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라고 하였다.

 

노수절량(魯叟絶糧)

노수(魯叟)공자(孔子)를 가리키는 말인데, 공자가 진(()의 두 나라 사이를 지나다가 광도(狂徒)에게 포위를 당하여 7일간이나 식량이 떨어졌던 일을 말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재액(在厄),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노수철환(魯叟轍環)

노나라 늙은이는 곧 공자(孔子)를 이르는 말로, 공자가 세상에 도()를 행하기 위하여 일생 동안 천하를 주유(周遊)했던 일을 말한다.

 

노수한묘수(魯叟恨苗秀)

노수(魯叟)공자(孔子)를 이르는데, 공자가 학문을 시작만 해 놓고 이루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이르기를 싹 틔우고서 꽃 피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꽃 피우고서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노숙(露宿)

길에서 잠을 잠. 한데서 자다.

 

노숙무추능탁지(老宿無錐能卓地)

노숙(老宿)은 나이와 덕이 높은 유자(儒者)를 이름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손경자(孫卿子)가 진 소왕(秦昭王)의 물음에 답하기를 유자란 아무리 궁곤하여도 부정한 방도로 탐하지 않고,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이 없어도 사직(社稷)을 지키는 대의에 밝다[雖窮困凍餧, 必不以邪道爲貪;無置錐之地而明於持社稷之大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순자(荀子)』 「유효(儒效)

 

노순(鱸蓴鱸)

농어와 순채. ()의 장한(張翰)이 자기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었다. 진서(晉書)』 「장한전(張翰傳)

 

노순몽(鱸蓴鱸)

() 나라 장한(張翰)이 중원(中原)에 와서 벼슬하다가 가을 바람이 일어남을 보고, “고향인 강동(江東)의 순채(蓴鱸)와 농어(鱸魚)의 맛이 그립다하고 곧 행장을 차려 돌아갔다.

 

노승발검(怒蠅拔劍)

파리 때문에 성질이 난다고 칼을 뽑아 듦. 작은 일을 갖고 수선스럽게 화내는 것을 비유한다.

 

노시경편(魯詩駉篇)

()시경(詩經)노송(魯頌)의 편명으로, () 나라 사관(史官) ()이 희공(僖公)의 목마(牧馬)를 칭송한 시이다.

 

노시동궁(盧矢彤弓)

노시는 검은 화살이고, 동궁(彤弓)은 붉은 활인데, 주 평왕(周平王)이 진 문후(晉文侯)를 방백(方伯)에 임명하면서 동궁과 노시를 하사한 데서 온 말이다. 서경(書經)』 「문후지명(文侯之命)

 

노시승리대(魯詩承鯉對)

가전지학(家傳之學)을 이른 말로, 공자(孔子)가 아들인 공리(孔鯉)에게 시경을 읽었느냐고 묻자, 아직 읽지 못했다고 대답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노심초사(勞心焦思)

마음으로 애를 쓰며 속을 태움. 몹시 마음을 졸이고 애태우며 생각한다는 말로, ‘어떤 일에 걱정과 고민을 심하게 많이 하는 것을 말한다.

 

노야어가(魯野漁歌)

어떤 유자(孺子)가 어부가를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르면 내 발을 씻을 것이다.”라고 하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소자(小子)들아 들어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탁하면 발을 씻는 것이니 물이 스스로 취한 것이다[小子聽之!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 맹자(孟子)』 「이루(離婁),

 

노어(魯魚)

실수로 잘못 필사(筆寫)한 글자를 말한다. ()와 어(). 곧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서 오는 잘못을 이른다. 포박자(抱朴子)내편(內篇) 하람(遐覽)글을 세 차례 정도 옮겨 쓰다 보면, ()가 노()로 변하고 허()가 호()로 바뀌곤 한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유의어: 노어지류(魯魚之謬). 노어해시(魯魚亥豕). 노어도음(魯魚陶陰).

 

노오(盧敖)

() 나라 사람인데, 진시황(秦始皇)이 그를 불러 박사(博士)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신선(神仙)을 구하게 하였으나, 그는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고 노산(盧山)에 은거하다가 선인(仙人) 약사(若士)를 만나서 뒤에 신선이 되어 갔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

 

노오생(盧敖生)

노오(盧生)는 진 시황(秦始皇) 때 사람으로, 진시황(秦始皇)이 그를 박사(博士)로 삼고 신선을 구하게 하였는데, 그는 노산(盧山)에 은거하다가 뒤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노오는 북해(北海)에서 노닐고 태음(太陰)을 경유하여 현궐(玄闕)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노옹(潞翁)

() 나라 때 노국공(潞國公)에 봉해진 문언박(文彦博)을 말한다.

 

노위(魯衛)

() 나라는 주공(周公)의 봉국(封國)이고 위() 나라는 주공의 아우 강숙(康叔)의 봉국인데, 두 나라의 정치 상황이 마치 형제처럼 엇비슷하다고 했다. 논어(論語)』 「자로(子路)노나라와 위나라의 정치는 형제다[衛之政, 兄弟也].”라고 하였다. 그래서 형제(兄弟)’의 의미로 쓰이며, ‘비슷하단의미를 지니게 됐다. / 인용: 노위상근(魯衛相近), 노위정무시(魯衛政無猜), 노위형제(魯衛兄弟) / 인용: 詰楊吏(허격)

 

노은공(魯隱公)

기원전 722년에 즉위하여 712년에 죽은 노나라의 군주다.

 

노이무공(勞而無功)

수고했지만 그만한 공이 없다는 말로, ‘수고만 하고 아무런 공이 없다는 뜻이다.

① 『장자(莊子)』 「천운(天運)옛날과 지금이란 물과 육지나 같은 게 아닙니까.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와 수레나 같은 게 아닙니까?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 한다는 것은 마치 육지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수고롭기만 했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 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 勞而無功, 身必有殃].”라는 말이 있다.

② 『순자(荀子)』 「정명(正明)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막연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번잡하고 통일이 없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말은 하지만 요령이 없고, 몹시 애는 쓰지만 공이 없다[愚者之言芴然而粗, 嘖然而不類, 誻誻然而沸. 彼誘其名, 眩其辭而無深於其志義者也. 故窮藉而無極, 甚勞而無功].”라는 말이 있다.

③ 『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는 혼란스런 임금은 백성들에게 지혜에 꾸미도록 하여 도의 까닭을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애는 쓰지만 공이 없다[亂主使民飾於智, 不知道之故, 故勞而無功].”라는 말이 있다.

③ 『관자(管子)』 「형세(形勢)에는 옳지 못한 것에 편들지 말라. 능하지 못한 것을 강제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이와 같은 것을 가리켜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고 말한다[毋與不可, 毋强不能, 毋告不知. 與不可, 强不能, 告不知, 謂之勞而無功].”라는 내용이 있다.

 

노이선생(老李先生)

화석정(花石亭)을 지은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가리킨다.

 

노익장(老益壯)

나이가 들어 늙을지라도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다는 뜻이다.

 

노인령(老人嶺)

황해도 평산(平山) 영풍(永豐) 북쪽에 있는 재이다.

 

노인성(老人星)

남극성(南極星)의 다른 이름이다. 병방(丙方)에서 떠올라 정방(丁方)으로 진다.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별이다. 수성(壽星)이라고도 한다.

 

노일경(老一經)

서생이 다 늙도록 한 경전만 읽는 것을 말한다. 왕유(王維)송조도독부대주득청자(送趙都督赴代州得靑字)어찌 서생의 무리들을 배워서 창 사이서 한 경전만 늙도록 읽으리오[豈學書生輩 窓間老一經]”라고 하였다.

 

노일변(魯一變)

문물(文物)을 새롭게 진흥시킨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제나라가 한 번 변하면 노나라에 이르고 노나라가 한 번 변하면 올바른 도에 이른다[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라고 하였다.

 

노자(魯雌)

꿩이 사람의 거동을 살피다 산골에 내려앉자 공자(孔子)새가 사람의 얼굴색이 나쁨을 보고 날아가 모여 앉았다. 공자께서 산 외나무다리의 까투리가 때에 맞도다. 때에 맞도다라고 말씀하셨다[色斯擧矣, 翔而後集. :“山梁雌雉, 時哉! 時哉!”].”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향당(鄕黨)

 

노자(鸕鶿)

물새의 이름인데, 특히 물고기를 잘 잡아먹는다고 한다.

술그릇을 말한다. 금모(金母)가 여러 신선과 적수(赤水)에 모여 잔치할 때 벽금앵무배(碧金鸚鵡杯)와 백옥노자표(白玉鸕鶿杓)가 있었는데, 앵무배가 비면 노자표가 저절로 술을 따르고 술을 마시려 하면 앵무배가 저절로 들렸다.

 

노자의(老子衣)

효성스러운 상주(喪主)를 말한다. 노래자(老萊子)는 초() 나라의 유명한 효자(孝子)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노자이(老子夷)

노자(老子)14보아도 안 보이는 것을 이()라 이름한다[視之不見 名曰夷]”는 말이 있다.

 

노자표(鸕鶿杓)

술그릇의 이름이다. 이백(李白)양양가(襄陽歌)노자작 앵무배(鸚鵡杯)로 백년 삼만 육천 일에 날마다 삼백 배를 마신다[百年三萬六千日 一日須傾三百杯]”라고 한 시가 있다.

 

노자흥불천(老子興不淺)

() 나라 유량(庾亮)의 부하들이 밤에 남루(南樓)에서 술자리를 차리고 놀다가 창졸 유량이 오니 모두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유량이 그들을 만류하여 이 늙은이도 여기에 흥()이 옅지 않네.”라 하고, 같이 마시며 즐기었다.

 

노잠(老蠶)

노년에 근심 걱정으로 자신을 속박하는 것에 비유한 말로, () 나라 소식(蘇軾)의 석지(石芝)라는 시에 늙은 누에고치 틀어 어느 때나 벗어날꼬. 꿈속에 지인(至人)을 생각하매 공연히 격렬하네.”라 하였다.

 

노장용(盧藏用)

당 나라 노장용(盧藏用)이 과거 시험에 낙제된 후에 도읍에 가까운 종남산에 숨어 있었으므로 임금이 듣고 등용시켰다는 고사가 있다.

 

노재(駑材)

우둔한 재주, 즉 재능이 용렬하다는 뜻이다.

 

노재(魯齋)

허형(許衡)의 호이다.

 

노전(蘆田)

강진 땅의 마을 이름이다. 다산초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바닷가에 갈대밭이 형성되어 붙은 지명이다. / 인용: 哀絶陽(정약용)

 

노전(盧前)

당 나라 초기에 왕발(王勃), 양형(梁炯), 노조린(盧照鄰), 낙빈왕(洛賓王)을 사걸(四傑)이라 칭하였는데, 양형이 내가 왕발의 뒤에 있는 것은 부끄럽고 노조린의 앞에 있기는 어렵다.”라고 하였다.

 

노전(魯殿)

전한 경제(景帝)의 아들로 노왕(魯王)이었던 공왕(恭王)이 세운 영광전(靈光殿)을 가리킨다. 문선(文選)왕연수(王延壽)노영광전부(魯靈光殿賦)연광전만이 홀로 우뚝 남아 있어라.”라고 하였다.

 

노전괴(盧前愧)

헛되이 명예를 입은 것[不虞之譽]’을 비유한 말이다. () 나라 때 왕발(王勃양형(楊炯노조린(盧照鄰낙빈왕(駱賓王)은 모두 시명(詩名)이 높아 사걸(四傑)로 일컬어졌는데, 양형은 노조린을 가장 높이 여겨 나는 노조린의 앞에 있기는 송구스럽고, 왕발의 뒤에 있기는 수치스럽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卷二百一

 

노전분하(爐田分下)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만 나누어 주는 것을 말한다.

 

노전왕후(盧前王後)

문재(文才)의 우열을 말한 것으로, 초당(初唐) , 똑같이 문장으로 명성이 비등하던 왕발(王勃양형(楊炯노조린(盧照鄰낙빈왕(駱賓王)을 천하에서 ···으로 칭해서 사걸(四傑)’이라 부른 데 대하여 양형이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노조린의 앞에 있기는 미안하고, 왕발의 뒤에 있기는 수치스럽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卷二百一

 

노제(老除)

군정(軍丁공천(公賤)을 막론하고 또 실역(實役)에 종사하는 자이거나 신포(身布보포(保布) 등을 내는 자를 막론하고 일정한 노년(老年)에 이르면 신역(身役)을 면제하는 것을 말한다.

 

노제십가(駑蹄十駕)

순자(荀子)』 「권학(勸學)무딘 말이라도 열흘 동안 달려가면 준마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니, 그 공은 멈추지 않는 데에 있다[駑馬十駕, 功在不舍].”라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노조린(盧照隣)

() 나라 사람으로 문장에 능하여 왕발(王勃양형(楊炯낙빈왕(駱賓王)과 함께 당초(唐初) 사걸(四傑)로 일컬어진다. 그는 풍병(風病)이 걸려 수족이 마비되자, 벼슬을 버리고 구자산(具茨山)에 은거하며 오비문(五悲文)을 지어 자신을 한탄하다가 끝내는 영수(穎水)에 투신자살하였다.

 

노주(蘆酒)

갈대의 줄기를 술통 속에 밀어넣어 빨아서 마시는 술, 곧 술을 마신다는 말이다.

 

노주(魯酒)

노 나라의 술이다. 장자(莊子)』 「거협(胠篋)노 나라 술이 묽기 때문에 한단(邯鄲)이 포위를 당했다[魯酒薄而邯鄲圍].”는 고사에서 전()하여 박주(薄酒)란 뜻으로 쓰인다. 전국 때 초 선왕(楚宣王)이 제후들을 조회받을 때, 노 공공(魯恭公)이 뒤늦게 왔는데, 가지고 온 술이 아주 박주였다 한다.

 

노주가(魯朱家)

·(楚漢) 시대 의협심이 대단했던 계포(季布)는 처음에 항우(項羽)에게 붙어 많은 전쟁에서 유방(劉邦)으로 하여금 곤욕을 치르게 했었다. 급기야 항우가 몰락하자 뒤에 고조(高祖)가 된 유방은 천금의 현상금을 내걸고 계포를 찾았는데, 이때 계포는 자기 자신이 머리를 깎고 죄수로 위장한 후, 노인(魯人)인 주가(朱家)가 당대호걸로서 자기 집에다 수많은 문객(門客)을 두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원하여 그 집으로 팔려갔었다. 사기(史記)』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

 

노주경(魯酒輕)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 재앙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 나라의 술은 묽고 조() 나라의 술은 진했는데, 그것을 바꿔서 초() 나라 왕에게 올리는 바람에 엉뚱하게도 조 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이 포위당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장자(莊子)』 「거협(胠篋)

 

노주사마매(壚酒司馬賣)

사마(司馬)는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사마상여가 일찍이 임공(臨邛)의 부인(富人) 탁왕손(卓王孫)의 딸 문군(文君)에게 장가들어 그와 함께 성도(成都)로 돌아왔으나, 가세(家勢)가 빈곤하므로 목로술집을 차리고 문군과 함께 술을 팔았다. 사기(史記)11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노중련(魯仲連)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사람이다. 장평전(長平戰) 이후 진()이 조() 나라 서울을 포위하자, () 나라 임금은 신원연(新垣衍)을 조 나라에 보내어 진왕을 황제로 추대하도록 조왕을 설득하라고 시켰는데, 마침 조 나라에 와 있던 노중련이 신원연을 만나 그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여 이를 저지하였다. 이때 노중련은 만일 진 나라가 황제가 된다면 우리 선비와 인민들을 종으로 부릴 것이니, 나는 차라리 동해 바다에 빠져 죽겠다[彼秦者, 棄禮義而上首功之國也, 權使其士, 虜使其民. 彼即肆然而爲帝, 過而爲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라고 하였다 한다. 사기(史記)卷八十三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노지우(露地牛)

노지백우(露地白牛)를 이르는데 노지는 일체의 번뇌가 단절된 곳이고 백우는 한 점의 염오(染汚)도 없고 오로지 청정한 소로서 법신(法身)의 무구(無垢)에 비유한 것이다. 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喩品) 주희(朱熹)의 시에 飛騰莫羨摩天鵠 純熟須參露地牛라 하였다.

 

노직(魯直)노직은 송() 황정견(黃庭堅)의 자()이다. 황정견은 시()와 문장(文章행초(行草)등이 다 당대를 풍미할 만큼 절묘했는데, 진관(秦觀장뢰(張耒조보지(晁補之)와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로 일컬어졌으나 유독 황정견과 소식(蘇軾)만을 들어 소황(蘇黃)이라고도 하였다. 송사(宋史)卷四百四十四

 

노진(盧禛)

조선전기 대사헌과 예조판서를 역임한 문신으로, 자는 자응(子膺)이고 호는 옥계(玉溪)이다(1518~1578).

 

노착륜(老斲輪)

재주에 정통하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말한다. 장자(莊子)』 「천도(天道)윤편(輪扁)이 말하기를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로써 관찰한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하게 깎으면 헐렁하여 견고하게 되지 않고, 너무 꼼꼼하게 깎으면 빠듯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게 됩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꼼꼼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의 감각에 의하여 마음의 호응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법도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것을 저의 아들에게도 가르쳐 줄 수가 없고, 저의 아들도 그것을 저에게서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칠십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노천(老泉)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송 나라 소순(蘇洵)의 호이다.

 

노초(老艸)

일이 조솔(粗率)함을 말한다. 주자의 훈학재규(訓學齋規)寫字未問工拙如何 且要一筆一畫嚴正分明 不可老艸라 하였다.

 

노추(魯鄒)

추로(鄒魯)맹자(孟子)공자(孔子)의 고향이다.

 

노추(老錐)

노고추(老古錐)의 준말로 노고(老古)는 존경하는 뜻이고 추()는 송곳처럼 예민함을 뜻하는 말로서, 즉 노대 원숙(老大圓熟)함을 의미한다.

 

노추(鑪錘)

도주(陶鑄)와 같은 뜻이다. 유준(劉峻)의 문()雕刻百工 鑪錘萬物이라고 보인다.

 

노추(爐槌)

쇠붙이를 달구고 두들기는 기구이다.

 

노치분자혁난황(老鴟奮觜嚇鸞凰)

소인들이 권세를 빼앗길까 봐 군자를 경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원추(鵷鶵)라는 봉황새가 연실(練實)이 아니면 먹지를 않고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으며 남해(南海)에서 북해(北海)로 날아가는데, 마침 썩은 쥐 한 마리를 잡은 올빼미가 자기 위를 지나가는 원추를 보고는 이크, 큰일났다()”고 놀라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노태(駑駘)

느린 말, 굼뜬 말을 이른다.

 

노파심(老婆心)

늙은 할머니의 마음. 할머니는 아주 자잘한 일까지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지나치게 걱정하는 마음이나 지나친 염려를 가리킨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경험으로 보아 신경을 많이 쓰는데,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거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을 이른다.

 

노팽(老彭)

노팽(老彭)은 곧 8백 세를 살았다는 팽조(彭祖), 이름은 전경(籛鏗)이라 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전술하되 창작하지 않았고 믿고서 옛 것을 좋아했으니, 속으로 우리의 상나라 어진 대부인 노팽에게 견주노라[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라고 한 말이 있다.

 

노풍(老楓)

술이기(述異記)老楓化爲羽人이라 하였다.

 

노학(老學)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냥 늙기만 하여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노한궁(露寒宮)

() 나라 궁전 안의 관소(館所) 이름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만리 저쪽 노한전, 얼음물 담은 맑은 옥 병[萬里露寒殿 開氷靑玉壺]”이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19 괴엽냉도(槐葉冷淘)

 

노한옹(潞韓翁)

노옹(潞翁)은 송() 나라 때 노국공(潞國公)에 봉해진 문언박(文彦博)을 말하고, 한옹은 역시 한국공(韓國公)에 봉해진 부필(富弼)을 말하는데, 문언박이 일찍이 부필·사마광(司馬光) 등과 함께 당() 나라 백거이(白居易)가 만든 구로회(九老會)의 고사를 본받아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만들어 주연(酒宴)을 베풀고 시를 읊으며 서로 즐겼다.

 

노호(老胡)

석가(釋迦)나 달마(達摩) 등 인도의 중을 칭하는 말이다.

 

노화(爐火)

도가(道家)의 연단술(鍊丹術)이다.

 

노화비침(爐火飛沈)

화롯불을 뒤적이다. 화롯불은 도가에서 선약인 단홍(丹汞)을 굽는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과 품덕(品德)을 수양한다는 뜻이다.

 

노후반(魯侯泮)

제후(諸侯)의 학궁(學宮). 시경(詩經)노송(魯頌) 반수(泮水)즐거운 반수(泮水)에 잠깐 그 미나리를 캐었노라.”라고 했는데, 그 주에 반수는 반궁(泮宮)의 물이다. 제후의 학궁을 반궁이라 하니, ··남방에 물이 있어 반벽(半壁)과 같다.”라고 하였다.

 

노희채의(老戲彩衣)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효자인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세에 채색옷을 입고 어린애처럼 장난을 하여 부모를 즐겁게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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