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죽은 이의 생애가 아닌 지향점을 담아낸 만사
世外雲山深復深 | 세상 바깥의 구름 낀 산은 깊고도 또 깊어, |
溪邊草屋已難尋 | 시냇가 초가집 이미 찾기 어렵네. |
拜鵑窩上三更月 | 배견와 위의 한 밤 중 달은 |
應照先生一片心 | 응당 선생의 일편단심을 비추는 것이려니. |
1) 이이가 탄핵을 받자 벼슬을 그만두고 포천 북쪽 창옥병(蒼玉屛)에 배견와(拜鵑窩)라 이름한 초당을 짓고 은거했는데, 배견와(拜鵑窩)는 두견새에게 절을 하는 움집이라는 뜻이다.
2) 성혼(成渾)은 여기서 영의정까지 오른 박순(朴淳)의 이력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국조시산(國朝詩刪)』에선 “사암의 만사는 이 정도로 그쳐야만 한다. 만약 재상의 사업에 착안하였다면 알맞지 않다.”고 했고 “무한한 감상의 뜻을 말 밖에 드러내지 않았으니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이러한 시를 어찌 지을 수 있으랴?”라고 평함.
3) 성혼(成渾)이 박순(朴淳)의 뜻을 잘 알았기에 외형적인 재상으로서의 삶에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은자로서의 삶을 강조한 것을 높게 평가함. 또 절친한 벗의 죽음을 두고 드러내어 통곡하지 않았지만, 벗에 대한 그리움이 이면에 가득하기에 허균이 이 작품을 극찬함.
工部之詩太史文 | “두보의 시에 사마천의 문장 |
一人兼二古無聞 | 한 사람이 두 사람을 겸했다는 걸 예전엔 듣지 못했지. |
雷霆霹靂來驚耳 | 우레가 치고 벼락이 치듯 놀라울 뿐이다.“ |
谿谷先生昔所云 | 계곡 장유 선생이 옛적에 했던 말씀. |
1) 17세기 의고풍(擬古風)의 시문으로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오른 정두경(鄭斗卿)이 죽었을 때 지은 만사임.
2) 장유(張維)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3) 정두경(鄭斗卿)은 두보(杜甫)의 시와 사마천(司馬遷)의 문장을 잘 활용하여, 강건한 맛이 부족한 16세기 한시의 약점을 극복함.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