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끊으며 짓다
절명시(絶命詩)
황현(黃玹)
亂離袞到白頭年 幾合捐生却末然
今日眞成無可奈 輝輝風燭照蒼天
妖氣晻蘙帝星移 九闕沈沈晝漏遲
詔勅從今無復有 琳琅一紙淚千絲
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曾無支厦半椽功 只是成仁不是忠
止竟僅能追尹穀 當時愧不躡陳東 『梅泉集』 卷五
해석
亂離袞到白頭年 란리곤도백두년 |
난리를 크게 겪은 노쇠한 나이에 |
幾合捐生却末然 기합연생각말연 |
몇 번이고 생명 버리려다 도리어 그러하질 못했네. |
今日眞成無可奈 금일진성무가내 |
오늘 참으로 어찌할 수가 없으니, |
輝輝風燭照蒼天 휘휘풍촉조창천 |
반짝반짝 바람에 촛대가 푸른 하늘에 비치는 구나. |
妖氣晻蘙帝星移 요기엄예제성이 |
요사한 기운【요기(妖氣): 매국노들의 발호로 대한제국의 운명이 다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요기는 소인배 또는 매국노를 가리키고, 황제의 별은 紫微垣에 속하는 별로, 황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明 藍智가 「磨崖碑」라는 시를 지어 唐 玄宗이 安祿山의 난을 피해 蒙塵하는 상황을 읊으면서, “이때 요상한 기운이 당나라 基業에 침범하여, 황제의 별이 한낮에 서남쪽으로 옮겨 갔네.是時妖孼侵唐基 帝星白日西南移”라고 하였다.】이 가리니 제왕의 별이 옮겨가고, |
九闕沈沈晝漏遲 구궐침침주루지 |
구중궁월은 침침하여 낮의 물시계는 더디 가네. |
詔勅從今無復有 조칙종금무부유 |
조칙이 이때로부터 다시는 있지 않으리니, |
琳琅一紙淚千絲 림랑일지루천사 |
귀하디 귀한 하나의 편지에 천 개의 실 같은 눈물 주룩주룩. |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
날짐승과 들짐승도 슬퍼하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네. |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
우리나라는 이미 침몰했구나. |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
가을 등불에 책을 덮고 천 년을 회고해보니, |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
인간 세상에 지식인으로 살기가 어렵구나. |
曾無支厦半椽功 증무지하반연공 |
일찍이 나라를 지탱할 조금의 공은 없고 |
只是成仁不是忠 지시성인불시충 |
다만 인(仁)을 이루었을 뿐, 충(忠)은 아니로세. |
止竟僅能追尹穀 지경근능추윤곡 |
마침내 겨우 윤곡【윤곡(尹穀): 宋 潭州 長沙 사람으로, 평소 강직하고 廉正한 것으로 명성이 있었다. 蒙古 군대가 쳐들어와서 潭城을 포위하였을 때 막료로서 성을 방어하는 데 참여하였는데,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妻子에게 뒤따라 죽을 것을 명한 뒤, 집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 단정히 앉아 자결하였다. 『宋史 卷450 尹穀列傳』】을 따르는데 그쳤으니, |
當時愧不躡陳東 당시괴불섭진동 |
당시에 진동【진동(陳東):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진동처럼 간신배들을 몰아낼 것을 극언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뜻이다. 진동은 중국 北宋 欽宗 연간의 太學生으로, 자는 少陽이다. 당시 蔡京 등 6인이 司馬光 등 舊法黨을 철저하게 몰아내고 王安石의 新法을 다시 시행하는 등 전횡을 일삼자, 六賊으로 지목하여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또 金 군대가 침입해 왔을 때 대항을 주장했던 李綱이 파직되자, 태학생들을 이끌고 상소를 올려 그의 복직을 청하기도 하였다. 『宋史 卷455 陳東列傳』】을 따르지 못했던 게 부끄럽기만 하구나. 『 梅泉集』 卷五 |
해설
이 작품은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자,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지은 시이다. 이러한 절명(絶命)은 ‘사(士)’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나라가 망하니 새와 짐승들도 슬피 운다. 나라가 망한 마당에 책을 읽는다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책을 덮고 천고의 오랜 역사를 회고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글을 아는 선비의 구실을 하려고 하니 참으로 어렵다.
「황현전(黃玹傳)」에, “융희 4년 7월 일본이 드디어 대한을 병합하였다. 8월 황현이 그것을 듣고 비통해하며 마시거나 먹을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절명시」 4수를 쓰고, 또 자제에게 글을 남기며 말하기를, ‘나는 죽어야 할 의리가 없다. 다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5백 년 동안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난리에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위로는 황천의 떳떳한 아름다움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 읽은 책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조용히 죽는 것이 정말 통쾌한 일임을 깨달았으니, 너희들은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隆煕四年七月 日本遂倂韓 八月 玹聞之悲痛 不能飮食 一夕作絶命詩四章 又爲遺子弟書 曰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上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吾上不負皇天秉彝之懿 下不負平日所讀之書 冥然長寢 良覺痛快 汝曹勿過悲].”라 하여, 조선에 벼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듯이, 황현의 절명(絶命)은 충(忠)이라는 이유로 자결한 것이 아니라 사(士)로서 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366~36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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