那將月姥訟冥司 | 어찌 장차 월하노인에게 저승에서 말을 하여 |
來世夫妻易地爲 | 다음 생에서 나와 당신의 처지를 바꿔 |
我死君生千里外 | 내가 죽고 그대 천리 밖에 살아서 |
使君知我此心悲 | 그대에게 나의 이런 슬픈 마음 알게 하려나? |
1) 제주에 1840년에 유배되었는데 2년 후에 부인이 숨을 거둠.
2) 김정희는 제주도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여러 번 불평하는 편지를 보냈고 젓갈이며 옷가지를 보내달라는 투정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3) 그후 아내가 죽었다는 부고가 왔고 날짜를 헤아려 보니 자신은 부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반찬 투정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했다.
4) 혼인을 관장하는 신인 월하노인을 데리고 저승에 가서 하소연하여 내세에는 처지를 바꾸게 하겠다고 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함.
鳥獸哀鳴海岳嚬 | 날짐승과 들짐승도 슬퍼하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네. |
槿花世界已沈淪 | 우리나라는 이미 침몰했구나. |
秋燈掩卷懷千古 | 가을 등불에 책을 덮고 천 년을 회고해보니, |
難作人間識字人 | 인간 세상에 지식인으로 살기가 어렵구나. |
1) 시언지(詩言志)는 우리 한시의 정신인데, 위의 시는 그 정신을 잘 보여줌.
2)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이상용이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향 땅의 종가 임청각을 팔아 만주로 떠나면서 공맹은 나라를 찾은 연후에 읽어도 된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정조가 느껴짐.
3) 황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나라 안의 지식인의 책임을 묻고자 했고, 이상용은 상해로 망명하여 해외에서 우리 문화사를 정리했음.
4) ‘인간 중 지식인으로 살기가 어렵구나[難作人間識字人]’라는 명언을 남김.
6. 소리보다 정신을 택하다
1) 김득신(金得臣)의 「증구곡시서(贈龜谷詩序)」에서 “시는 이치와 음향이 중요한데 이 둘을 구비하면 좋지만 이치가 있되 음향이 없는 것은 이치는 없고 음향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함.
2) 우리 한시는 중국 한시의 아름다운 음향을 따르지 못할 바에야 진리를 드러내는 것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3) 소리의 울림보다 높은 정신을 선택한 것이 우리 한시의 특질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