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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8. 풍요 속의 음지(백대붕)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목릉성세의 풍요와 화미 - 8. 풍요 속의 음지(백대붕)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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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대붕(白大鵬, ? ~ 1592 선조25, 萬里)은 조선중기 천예출신(賤隸出身)의 시인으로 유희경(劉希慶)과 함께 조선후기 위항문학(委巷文學) 발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출생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학산초담(鶴山樵談)등에 유희경(劉希慶)정치(鄭致)허봉(許篈)ㆍ심희수(沈希洙) 등과 교유하였다는 기사를 참고로 한다면 아마도 출생연대는 1550년대 전후로 추정된다.

 

취음(醉吟)시에서 자신의 신분이 군함과 수운의 업무를 행하는 전함사(典艦司)의 노예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 역시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허균(許筠)은 그가 궁궐의 개폐와 왕명의 전달을 맡는 액정서(掖庭署)의 사약(司鑰)을 역임하였다고 하였으나 천인 신분의 그가 정6품 잡직(雜職)인 이러한 지위에 어떠한 경로로 보임(補任)될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백대붕(白大鵬)의 위약(萎弱)만당시풍(晚唐詩風)을 본받은 시체(詩體)를 사약체(司鑰體)라고 일컬었던 사실에서 그가 사약(司鑰)의 지위에 올랐을 것이라 추정될 뿐이다.

 

그는 통신사 허성(許筬)을 호종하여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시로써 이름을 날기도 하였다. 이 일로 일본을 잘 안다고 하여 1592년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 1538~1601)을 좇아 전투에 참여했다가 상주(尙州)에서 전사했다.

 

백대붕(白大鵬(의 시는 취음(醉吟), 추회(秋懷), 송일본승문계봉교작(送日本僧文溪奉敎作)3편이 국조시산(國朝詩刪)기아(箕雅)대동시선(大東詩選)에 전하고 있어 그의 시세계는 그 편린(片鱗)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천예(賤隸)중인(中人) 출신과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시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던 사실로 보아 신분적 제약에서 오는 감개를 토로하는 불평지음(不平之音)이 시의식의 근저에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백대붕(白大鵬)의 시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만당(晚唐)의 맹교(孟郊)와 가도(賈島)를 배워 고담(枯淡)ㆍ위약(萎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권필(權韠), 당시 백대붕(白大鵬)의 시를 본받아 만당풍(晚唐風)의 시를 쓰는 사람을 일컬어 사약체(司鑰體)라 하였다 한다. 이에 대하여 허균(許筠)성수시화(惺叟詩話)80에서 당시에 사약체(司鑰體)라 한 것은 그 시체의 위약함을 조롱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백대붕(白大鵬)이 길가에서 술에 취해 누워 있을 때 지나던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즉흥적으로 대답한 것이 취음(醉吟)시이다. 이 작품은 해동유주(東東遺珠)대동시선(大東詩選)소대풍요(昭代風謠)등에는 구일(九日), 기아(箕雅)에는 취음(醉吟)으로 되어 있다.

 

醉揷茱萸獨自娛 술에 취해 수유꽃 꽂고 홀로 즐기다가
滿山明月枕空壺 왼 산 밝은 달에 빈 병 베고 잠들었네.
傍人莫問何爲者 지나는 사람들아 무엇하는 사람인가 묻지 마라,
白首風塵典艦奴 풍진 세월에 머리 센 전함사의 종놈이라네.

 

중양절(重陽節)인 구월 구일에 백발이 성성한 몸으로 수유꽃을 머리에 꽃고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중양절(重陽節)에 수유꽃을 머리에 꽂는 전통은 한시 관습의 유향(遺響)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함노(戰艦奴)의 신분으로 중구일(重九日)에 수유꽃을 머리에 꽂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어서, 시적(詩的) 관습(慣習)을 통하여 자신의 처지를 조롱하고 있는 수법은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머리에 수유꽃을 꽂은 것은 스스로 시인임을 보여준 장식이며 술에 취하여 거리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천예신분의 본래적 자기 모습이다.

 

 

다음은 백대붕(白大鵬)이 일본의 승려 문계(文溪)를 전송하면서 지은 송일본승문계봉교작(送日本僧文溪奉敎作)이다.

 

相國古精舍 洒然無位人 상국의 옛 정사에 씻은 듯이 머무는 사람 없네.
火馳應自息 柴立更誰親 불길같이 달리는 마음이야 응당 그치겠지만, 고목처럼 우두커니 서서 다시 누구와 가까이하리?
楓岳雲生屐 盆城月滿闉 풍악의 구름은 나막신 아래에서 일고 분성의 달빛은 성문에 가득차네.
風帆海天闊 梅柳古鄕春 바람 맞은 돛배는 바다 저쪽으로 멀어지는데 매화와 버들은 고향의 봄빛이로다.

 

백대붕(白大鵬)은 조선을 방문한 일본 승려 문계(文溪)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김해(金海)에서 그를 전송한 듯하다. 분성(盆城)은 김해의 옛이름이다. ‘불길처럼 달리는 성급한 마음이야 시간이 지나면 지식(止息)이 되겠지만, 홀로 고목처럼 우두커니 서서 다시 누구와 가까이 할까?’라 한 함련(頷聯)의 진솔함이 인정(人情)의 농도를 짙게 해준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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