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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 5. 시간에 따라 변하는 내 모습과 같은 연암의 글들 본문

책/한문(漢文)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 5. 시간에 따라 변하는 내 모습과 같은 연암의 글들

건방진방랑자 2020. 4. 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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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간에 따라 변하는 내 모습과 같은 연암의 글들

 

 

이제 전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연암 뒷 세대의 고문가인 홍길주洪吉周(1786-1841)연암집을 읽고 느낀 소감을 피력한 글 한편을 읽어 보기로 하자. 원제목은 독연암집讀燕巖集이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상투를 짜고, 이마에 건을 앉히고는 거울을 가져다가 비춰보아 그 기울거나 잘못된 것을 단정히 하는 것은 사람마다 꼭 같이 그렇게 하는 바이다. 내가 성인이 되어 건을 쓸 때, 눈썹 위로 손가락 두 개를 얹어, 이것으로 가늠하매 거울에 비춰 볼 필요가 없었다. 이로부터 혹 열흘이나 한달을 거울을 보지 않았으므로, 젊었을 때 내 얼굴은 이제 이미 잊고 말았다.

晨鼂起盥頮, 施髮織虎, 坐巾于額, 取鏡以炤, 端其欹邪, 人人之所同然. 余始冠施巾, 加二指眉上, 爲之度, 無待乎鏡炤. 繇是或旬月不對鏡, 少壯之容, 今已忘之矣.

 

벗삼을만한 사람이 있어 한 마을에 여러 해를 같이 살다가 얼굴도 알지 못한 채 떠나가도 한스럽게 생각되는데, 나와 나는 그 가까움이 어찌 다만 한 마을에 사는 것일 뿐이겠는가. 그런데도 이제 내가 내 젊을 적 얼굴을 알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천 년 전에 사람이 있어, 그 도덕이 스승으로 삼을만 하고 그 문장이 본받을 만하면 나는 그와 한 때에 살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한다. 백 년 전에 사람이 있어 뜻과 기운과 의론이 볼만하여도 나는 그와 한 때에 살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한다. 수십 년 전에 사람이 있어, 기운은 족히 육합六合을 가로 지를 만하고, 재주는 천고를 능가할만 하며, 글은 온갖 부류를 거꾸러뜨릴 만하였다. 그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 내가 이미 인사를 통하였으나 미처 만나보지는 못하였고, 미처 더불어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지도 못하였다. 그런데도 내가 한스럽게 생각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미 수십 년 전의 나를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수십 년 전의 다른 사람을 알겠는가?

人有可與友者, 同閈居幾年, 未識面而去, 以爲恨. 我與我其近, 豈直同閈哉. 今余不識吾少時容, 不以爲恨, 何也? 千歲之前有人焉, 其道德可師, 其文章可法, 吾恨其不同時也. 百歲之前有人焉, 志氣言議可觀也, 吾恨其不同時也. 數十歲之前有人焉, 氣足以橫六合, 才足以駕千古, 文足以顚倒萬類, 其在世也, 余已通人事, 然而未及見也, 然而未及與之言也. 然而吾不爲恨, 何也? 余旣不識數十年前之吾, 況於數十年前之他人乎?

 

이제 내가 거울을 꺼내 지금의 나를 살펴보다가 책을 들춰 그 사람의 글을 읽으니, 그 사람의 글은 바로 지금의 나였다. 이튿날 또 거울을 가져다 보다가 책을 펼쳐 읽어보니, 그 글은 다름 아닌 이튿날의 나였다. 이듬해 또 거울을 가져다 보다가, 책을 펴서 읽어보니 그 글은 바로 이듬해의 나였다. 내 얼굴은 늙어가면서 자꾸 변해가고 변하여도 그 까닭을 잊었건만, 그 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더 기이하니, 내 얼굴을 따라 닮았을 뿐이다.

今余取鏡而觀今之吾, 披卷而讀其人之文, 其人之文, 卽今之吾也. 明日又取鏡而觀之, 披卷而讀之, 其文卽明日之吾也. 明年又取鏡而觀之, 披卷而讀之, 其文卽明年之吾也. 吾之容老而益變, 變而忘其故, 其文則不變. 然亦愈讀而愈異, 隨吾之容而肖焉已矣.

묘한 여운을 남기는 글이다. 어찌하여 그 사람을 만나보지 않았건만 그것을 유감으로 생각지 않는단 말인가. 그것은 그의 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그의 입김이 끼쳐 나오기 때문이다. 내 얼굴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그의 글은 언제 읽어도 늘 새로운 감동이 살아 있다. 마치 하루도 같지 않은 내 모습처럼 그의 글은 언제나 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제목은 연암집을 읽고인데 한편 전체를 통 털어도 연암이라는 글자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어떤 사람, 마음만 먹었으면 인사를 나눌 수도 있었던 그 사람의 이야기만 나온다. 내가 읽은 글은 수십 년 전 그의 글인데, 거기에 비친 모습은 영락없이 내 모습이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은 그의 생각과 지금의 내 생각이 같은 데서 오는 동류의식만을 말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내 얼굴이 변하듯 수시로 변하는데, 어째서 그의 글은 변하지 않는가? 이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그 글이 지닌 바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글에서 변하지 않는 요소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어도 가슴을 뛰게 하고, 태초의 그 감동을 그대로 지녀 있다는 바로 그점일 뿐이다. 언제 읽어도 새로운 글, 읽으면 읽을수록 낯설어지는 글, 그는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홍길주는 연암집을 읽고 느낀 감동을 담담한 어조 속에 뭉클하게 담아내었다. 그는 장광설로 연암 문장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대신,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화두 삼아 미묘하고 맛깔스럽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연암! 내게 수십 년 전 내 모습을 기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한 사람. 어제의 나는 이미 내가 아님을,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해야 함을, 정말 위대한 정신은 시간 속에서 빛이 바래지 않음을 알려준 이름.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16살에 시집간 누이가 고생만 하다 43살에 죽다

2. 누이 시집가던 날의 추억과 아련히 겹치는 현재

3. 묘지명의 관습을 깨어 생명력과 감동을 얻다

3-1. 총평

4. 미묘한 감정을 글과 시로 풀어내는 마술사

5. 시간에 따라 변하는 내 모습과 같은 연암의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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