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큰 학자가 되려면 품이 넉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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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구에서 끝까지는 서유본과 만나 이야기한 기쁨과 그에게 주는 당부로 시를 맺었다. 적막히 혼자 병 앓고 있던 나를 그대가 찾아주니 참으로 기쁘고 반가웠네. 얌전한 아가씨 같은 앳된 모습의 자네가 나를 찾아와 둘이 앉아 시 이야기를 하다가 몇날 며칠 날 가는 줄도 몰랐네 그려. 자네의 품은 생각이 꼭 내 생각과 같고 보니 오랫동안 막힌 체증이 하루아침에 쑥 내려간 듯 뻥 뚫리고 말았네. 두 사람 대화의 상쾌함은 마치 생강을 입에 씹고 있는 것만 같았지 뭔가. 그간 그 답답하던 세월이 하도 분해서 시리게 푸른 가을 하늘 보며 한 바탕 통곡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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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자네 한 번 생각해 보게. 목수가 나무를 깎고 아로새기는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대장장이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법이 있던가? 대장장이가 없고 보면 나무 깎는 대패는 누가 만들며 톱이나 칼은 또 누가 만든단 말인가? 집을 지으려면 미장이가 있어야 하고 기와장이도 있어야 하질 않겠나? 솜씨가 좋으면 미장일을 하고, 근력이 좋으면 지붕을 잇는 법이니, 제각금 역할을 나눠야 한 채의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있다네. 만일 목수가 대장장이를 우습게 알고, 미장이가 기와장이를 필요 없다고 한다면, 대패질은 무엇으로 하며 지붕은 누가 인단 말인가? 미장이가 지붕 위까지 흙으로 발라 버린다면 그 집이 도대체 어찌될 것인가 말일세. 이래서야 어찌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있겠나. 이와 같이 문학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익혀야 하네. 이것은 옛것이니 따르고 저것은 지금 것이니 배척한다면, 대장장이가 필요 없다고 떠드는 목수와 다를 바 없을 걸세. 그래서야 어떻게 훌륭한 문학을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문학 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녀야 하네. 자기의 특장을 잘 알아 미장일이 알맞은지 기와 이는 일이 제격인지를 판단해야 하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좋은 작가가 될 수 있겠나?
제 뜻과 같지 않다 해서 성을 내서도 안 될 것이고, 너무 지나치게 깔끔을 떨어도 큰 그릇은 되지 못한다고 보네. 제가 가는 길만 길이고, 제가 하는 문학만 문학은 아닌 것이야. 그렇지만 세상은 대장장이는 대장장이대로, 목수쟁이는 목수쟁이대로 다들 저만 잘나고 옳다고 떠들어대고 탈일세. 미장장이는 기와장이 알기를 우습게 알고, 기와장이는 미장장이 보기를 하찮게 보니 하는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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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학을 하려면 품이 넉넉해야지. 여보게, 좌소산인! 자넨 아직 젊으니 타고난 제 본바탕을 잘 지키고, 교만한 기운을 가라앉혀서, 이 나라의 문학을 올바로 세워 주시게. 발 아파 끙끙 앓으며 적막히 지내는 이 늙은이가 하는 간곡한 부탁일세.
▲ 전문
인용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 解頤匡鼎: 『漢書』 「匡衡傳」에 “아무도 詩를 말함이 없었는데, 그때 마침 匡衡이 왔다. 광형이 시를 말하자 듣는 사람이 입이 벌어졌다. 無說詩, 匡鼎來; 匡說詩, 解人頤”라 한 데서 나온 것으로, 시에 대해 설명을 너무 잘하여 듣는 이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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