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칭찬을 듣고도 기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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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구에서 28구까지 연암은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나도 예전에 이런 칭찬을 들은 일이 있었다. “자네의 문장은 꼭 양한의 풍격이 있네 그려. 시는 꼭 성당의 시와 같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두 번 듣고는 배를 잡고 뒹굴며 웃다가 엉덩이 뼈가 쑤실 지경이었다. 자꾸 그런 소리를 듣다 보니 나중엔 아예 심드렁해져서 밀랍을 씹는 듯 아무런 느낌도 없어졌고, 그런대도 사람들이 자꾸 칭찬을 해대자 참으로 견딜 수가 없어 마침내는 바람 맞은 사람처럼 멍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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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구에서는 말머리를 슬쩍 자신을 질투하는 자들에게로 돌렸다. 자! 자네들 누가 더 잘하는지 솜씨 겨룰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내 말을 잠깐만 들어보게나. 자네들 속이 편안해질 테니. 내 말을 듣고 보면, 자네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문학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문학의 길이 판연히 다른 줄을 알게 될 것일세. 내가 설사 자네들 보다 옛 사람 흉내를 더 잘 낸다 해도 그것이야 부러워 할 것이 뭐란 말인가? 질투할 것은 또 뭔가? 나는 오히려 그런 말 듣는 것이 부끄럽기만 한 것을. 나는 애초에 자네들과 경쟁할 생각이 조금도 없단 말일세.
우리의 흉내란 것은 연나라의 소년이 조나라 사람들의 씩씩한 걸음걸이를 흉내 낸답시고 따라 하다가 종당에는 배우지도 못하고, 제 본래의 걸음마저 잊어버려 마침내 엉금엉금 기어서 연나라로 돌아갔다는 저 ‘한단학보邯鄲學步’의 고사와 다를 것이 뭐 있겠나. 미녀 서시西施가 가슴 아파 찡그리니 그 아름다움이 매우 고혹적이었겠지만, 못생긴 동시東施가 그 흉내를 그대로 내게 되면 보는 이의 혐오감만 더하게 될 뿐이 아니겠나. 중요한 것은 찌푸리는 것이 아닐세. 서시가 찌푸린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해서 아무나 찌푸리기만 하면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은, 옛 사람의 시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아무나 흉내 내기만 해서 그렇게 될 수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너무도 간단하고 단순한 이 이치를 자네들은 왜 그렇게 깨닫지 못하는가?
계수나무야 고귀하지만, 그림 속의 계수나무야 향기도 없고 실체도 없으니 차라리 뒷뜰에 심어진 개오동나무만도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왜 눈앞에서 바람에 일렁이는 살아있는 오동나무는 낮고 더럽다 하면서, 굳이 보지도 못한 그림 속의 계수나무만을 선망하는가 말일세. 우리가 오동나무를 외면하고 계수나무만을 꿈꾼다 해도, 이 땅에선 계수나무를 흔히 볼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초나라 재상 손숙오가 죽었을 때 그 자식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본 우맹이 그를 도우려고 손숙오의 분장을 하고 들어가 그 흉내를 낸 일이 있었지. 그 흉내가 하도 진짜 같아서 초나라 임금도 평소 그와 가까이 지내던 신하들도 모두 죽은 손숙오가 살아서 돌아온 줄로만 알았다지 뭔가. 우맹의 분장과 연기야 과연 일품이었겠지만, 우맹은 종내 우맹일 뿐 손숙오는 아니지 않은가? 다만 한 때의 이목을 속일 수 있었을 뿐이었겠지. 그럴진대 자네들은 왜 옛것과 비슷해지려고만 하는가?
▲ 전문
인용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 예전 燕나라 소년이 趙나라 邯鄲으로 가서 그 나라 사람이 잘 걷는 것을 보고 그 걸음걸이를 흉내내다가 제 본래의 걸음걸이를 잃고서 엉금엉금 기어서 제 나라로 돌아갔다는 고사. 『장자』「秋水」에 나온다. 맹목적으로 남을 흉내 내다가 자기 본래의 모습을 잃고 마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본문으로]
- 西施가 가슴이 아파 이마를 찌푸렸는데, 그 마을의 醜女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흉내내어 이마를 찌푸리자, 마을사람이 문을 닫아 걸고 마을의 거지가 그 마을을 떠나 갔다는 고사. 찌푸림이 아름다운 것은 알았지만 왜 아름다운지는 몰랐던 것이니, 내면의 실질을 외면하고 겉모양만 흉내내는 것의 폐단을 말함. 東施效顰. [본문으로]
- 초나라 재상 孫叔敖가 죽었는데 優孟이 손숙오의 의상을 입고서 그의 행동을 흉내내자 초나라 왕과 신하들이 구별하지 못하고 손숙오가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는 고사. 『사기』「골계열전」에 나온다. 겉모습은 흡사하지만 실질은 같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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