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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인의 입냄새 - 1. 흉내내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본문

책/한문(漢文)

시인의 입냄새 - 1. 흉내내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건방진방랑자 2020. 4. 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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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흉내내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과정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선군의 시고詩稿는 몹시 적어서, 고체와 금체시 모두 50수 뿐이다. 고체시는 오로지 한유韓愈를 배웠는데 기이하고 험벽하기는 그보다 더 해서, 정경情境은 핍근하고 필력이 막힘이 없다. 율시와 절구 등의 시는 항상 성률에 구속되어 마음 속에 말하려는 것을 그대로 쏟아낼 수 없음을 못마땅히 여기셨다. 그래서 왕왕 한 두 구절만 이룬 채 그만 둔 것이 많다.

-김윤조 역, 역주 과정록(태학사, 1997), p.279

 

 

연암이 시 짓기를 즐기지 않았던 것은 그러니까 운자니 평측이니 하는 성률에 얽매여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것이 싫어서였다. 이번에 보려고 하는 연암의 시 증좌소산인贈左蘇山人은 몇 십수밖에 남지 않은 연암의 시 중에서도 험벽한 운자를 한 번도 환운하지 않고 단숨에 내달은 592, 460자에 달하는 장시이다. 좌소산인은 서호수徐浩修의 장남 서유본徐有本(1762-1799)으로, 당대에 석학으로 이름 날렸던 서유구徐有榘의 형이다. 이 시는 연암이 문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작품인데, 표현이 난삽하고 비유가 까다로와 아직껏 전편이 논의된 적이 없다. 이제 작품의 단락에 따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시구 앞에 번호를 매겼다.

 

 

我見世人之 譽人文章者

나는 보았네 세상 사람들 남의 문장을 기리는 것을.

文必擬兩漢 詩則盛唐也

문장은 반드시 양한을 모의하고 시는 언제나 성당 일컫지.

曰似已非眞 漢唐豈有且

비슷하다 함은 이미 참이 아닌데 한당이 어이하여 다시 있으리.

東俗喜例套 無怪其言野

우리나라 풍속이 투식을 좋아하니 그 말의 촌스러움 괴이할 것 없도다.

처음 8구까지는 문필진한文必秦漢, 시필성당詩必盛唐’, 즉 문장을 하려면 선진양한을 본받아야 하고, 시를 지으려면 盛唐을 모범 삼아야 한다는 상투적인 주장에 대한 일침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미 비슷한 것은 가짜다란 말은 공작관집서를 비롯하여 여러 글에서 되풀이해 강조한 것이지만, 여기서도 연암은 양한이나 성당과 비슷해지려 해서는 결코 한당漢唐도 될 수 없고 자기 자신도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왜 남과 비슷해지려 하는가? 비슷하다는 말에는 이미 진짜는 아니라는 뜻이 들어 있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내가 그때 거기를 모방해서 방불해진다고 한들, 지금 여기가 그때 거기로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그때 거기가 된다 한들 지금 여기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터이니 왜 그런 짓을 하는가?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을 좋아하니 그 하는 말이 날이 갈수록 촌스러워 지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聽者都不覺 無人顔發赭

듣는 이들 모두다 깨닫지 못해 얼굴조차 붉어지는 사람이 없네.

騃骨喜湧頰 涎垂噱而哆

멍청이는 기쁜 빛이 뺨에 넘쳐서 침 흘리고 웃으면서 입을 벌리네.

黠皮乍撝謙 逡巡若避舍

교활한 이 갑자기 겸손한 체 하면서 머뭇머뭇 뒷걸음질 피해서는 척.

餒髥驚目瞠 不熱汗如瀉

굶주린 덥석부리 휘둥그레져 덥지도 않은데 땀이 철철 흐르고,

懦肉健慕羨 聞名若蘅若

겁쟁이 뚱보는 너무도 부러워서 이름만 듣고도 향내 물씬 나는듯.

忮肚公然怒 輒思奮拳打

못된 심보 저 사내는 괜히 골내며 주먹을 휘둘면서 때리려 드네.

그래서 남을 흉내 내는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누가 양한과 같다 하고 성당에 핍진하다고 하면 너무 기뻐 침을 흘리며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멍청이도 있고, 손을 저어 그렇지 않다고 짐짓 물러서며 겸손한 체 하는 교활한 자들도 있다. 아니면 그런 칭찬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감당할 수 없다고 발뺌하는 못난 친구도 있고, 또 그것을 선망해서 나는 언제 그런 시를 써보나 하는 사람, 그렇게 못하는 제 자신에게 화가 나서 공연히 심통을 부리며 싸움을 거는 인간도 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소품체란 무엇인가

1. 흉내내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2. 칭찬을 듣고도 기쁘지 않은 이유

3. 전적이 있다면 뭐든 좋단 말인가

4. 지금ㆍ여기를 말하라

5. 큰 학자가 되려면 품이 넉넉해야

6.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시인의 고약한 입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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