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꿈
1. 임용시험은 꿈에 불과했다
꿈, 그건 깨어날 때에야 ‘꿈’임을 알게 된다. 깨어남은 현실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현실이 비현실이었음을, 깨어남이 꿈 자체였음을 알기 위해서는 비약이 필요하다. 그건 내가 처한 상황의 틀에 갇히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제3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깨어났다는 자각이 제대로 된 깨어남이 맞는지 증명될 수도 없다. 『장자』라는 책에서 ‘대각(大覺, 큰 깨어남)’ 운운했던 게 그런 이유일 터다.
▲ 깨어나기 전까지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은 다른 존재였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꿈에서 깨려는 사람아
지금 나의 현실이 꿈일까? 실제일까? 그런 판단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애초에 꿈과 현실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현재를 사느냐’에 달려있는 듯하다.
과거에 고착된 사람, 미래의 기획에 현실을 희생시키며 사는 사람이라면 꿈속에 사는 사람이라 표현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같은 논리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허황된 꿈만 좇으며 사는 사람,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한 채 의식의 사슬로 꽁꽁 묶어 자포자기한 사람도 꿈속에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즉,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꿈속에 사는 존재라 표현할 수 있다. 내가 늘 보아온 광경들, 겪고 있는 현실들을 외면한 채 어딘가로 끊임없이 도망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꿈에서 깨려는 자라면, 현실에 발 딛고 서려는 자라면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직면하여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린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영화 [라디오스타]에 나오는 최곤은 과거의 영광에 멈춰 있는 사람이다. 그는 현실이 아닌 꿈 속에 사는 것과 같다.
임용시험은 하나의 꿈에 불과했다
‘나에게 임용시험은 꿈이었다’라는 선언을 지금에 이르러선 할 수 있다. 파격적인 선언이고 뜬금없는 선언이지만 나에겐 절실하다. 왜일까?
바로 임용시험엔 나의 온갖 욕망이 용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임용만 된다면 그 모든 게 햇볕 아래 녹아내리는 눈처럼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는 심리와 똑같은 심리라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나의 온갖 비극과 비관이 ‘임용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손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나의 첫 임용시험, 그건 한낱 꿈이었다. 그리고 로또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임용에 합격했다손 치더라도 나의 모든 문제들이 말끔히 해결되었을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고개를 넘는 순간 오히려 내 스스로 키워놓은 허황된 꿈들은 더욱 도드라져 보이고 그에 따라 내 모습은 더욱 위축되어 보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문제를 잘못 설정했으니, 이것저것에 치이게 되며 결국엔 생을 좀 먹는 방향으로 나갔을 테니 말이다.
임용은 결코 지금의 이러한 인식, 삶의 가치관을 바꿀 수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이 문제였다.
바로 그게 나에겐 꿈에 가까웠다고 보는 것이며, 그렇기에 ‘임용시험은 꿈이었다’고 말하게 된 이유다. 모든 원한의 해결을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무한정 미루고 지금의 불행을 자초하고 당연시하는 것. 고로 현재를 산다는 건, 그런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에 두 발을 내딛는 것이다. ‘임용에 합격되어 미래가 변한다’는 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현실 인식이 바뀌어 현재가 어떻게 된다’는 투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이 굳고 몸이 굳어선 안 된다. 기존의 것들에 의존하려는 마음,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은 역시나 꿈에서 깨어나기 두려운 자의 몸부림일 수밖에 없다. 떠나려 생각했으면서도 미련 남는 자의 어리석음. 자꾸 얽어매려는 ‘중력의 령(靈)’을 떼쳐버리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거기서 방심하는 순간, 마음은 나약해지고 거짓된 삶이라 할지라도 꿈에서 살려할 테니 말이다.
▲ 두 번째 임용은 광주에서 봤는데 그때 군대 친구 현일이에게 신세를 졌었다.
국토종단을 하며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다
이젠 서서히 깨어날 준비를 해야 한다. 난 이제 광야에 몸뚱이 하나만을 믿고 나서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모든 게 거짓 없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그때 과연 나의 20대는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자신의 삶에 충실했으며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 맺으며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을지 겁이 난다.
그러나 아무리 겁이 난다 해도 거기에만 빠져 있진 않으려 한다. 오히려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 순간이 어떠한 것이든 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포에서 시작하여 고성까지 걸어가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거다. 물론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의존하려 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게 어찌 보면 ‘익숙한 문법을 떠났지만, 떠나지 못한 것’과도 같은 옥에 티였지만, 첫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조금이나마 깨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 것이니 말이다. 첫 술밥에 배부르길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한바탕 꿈이지 않을까.
▲ 임용이란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기에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2. 『김씨표류기』의 김씨처럼 깨어나라
국토종단을 해보니, 어느 것이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겠더라. 그럴 때 우린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되며 꿈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된다.
▲ 2009년 국토종단 당시의 모습. 원통으로 가는 길에 찰칵.
이 영화는 깨어남에 대한 보고서다
이에 관한 흥미로운 보고서가 바로 『김씨표류기』라는 영화다. 김씨는 은행 빚 때문에 한강에 투신하고 만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생명은 수이 끊어지지 않고 한강의 유일한 무인도인 밤섬에 갇히고 만 것이다. 막상 죽으려 생각하고 뛰어내렸지만, 섬에 갇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곳에서 나가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하게 된다. 그건 그만큼 죽음의 욕망 이면엔 삶에 대한 욕망이 숨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제정신이 들고 보니,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신의 모습이 어이없어 보였고, 그는 다시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을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샐비어 꽃의 맛을 보게 됨으로 ‘산다는 건 거창한 의미가 아닌, 작은 의미들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김씨는 죽을 생각을 버리고 무인도에서 자족하며 살고자 맘먹는다.
김씨에게 삶의 이유는 무엇이었나? 그건 바로 ‘맛있는 짜파게티를 먹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살기로 맘먹은 순간부터 잘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섬을 돌며 여러 가지를 수집하던 도중 우연하게 짜파게티 봉지를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 면과 스프까지 있었다면 더 바랄 게 없었겠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면은 사라지고 스프만 있었다는 게 문제이자, 기회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밭을 만들고 새똥에서 씨앗을 발견하여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한 가지 꿈인 면을 직접 만들어 스파게티를 먹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있을 텐데, 그 후엔 과연 무얼 할까?’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그는 죽으려 했다가 한 가지 꿈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에,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다시 자살할 거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 같은 생각이다. 김씨가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끊임없이 방법을 강구하며 생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삶의 계기는 식욕을 통해 불타오르고, 그 해소도 식욕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식욕이라기보다 오히려 ‘살고 싶은 욕망’이라 보아야 맞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룬 순간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자살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이미 생의 기쁨을 맛봤기에, 그런 희열을 다시 누리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테니 말이다.
▲ 죽고자 했던 그 순간에도 샐비어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 맛이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희망을 줬다.
순식간에 뒤집히는 삶이 아닌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삶을 살라
그럼에도 의문이 드는 건 ‘왜 누군가가 보내온 진짜 짜장면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않고 돌려보냈는가?’하는 점이다. 누가 봐도 쉬운 결정이었고, 여태껏 고생해 온 것을 한순간에 보상받는 느낌이었으리라. 그에겐 삶의 의미였기에 오랜만에 맡아본 짜장면 냄새는 그의 모든 신경을 마비시켜 허겁지겁 먹어 치우게 하기에 충분했다. 실상 그런 식으로 마구 먹어 치운다 해도 아무런 문제도 안 된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들뜨던 마음을 억누르고 결국엔 그 짜장면을 돌려보낸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현실적인 유혹을 완전히 제압한 유쾌한 순간이다.
왜 그랬을까?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면을 직접 만들어 짜파게티를 먹겠다는 마음은 단순히 식욕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생을 꾸려가겠다는 ‘깨어남’의 맘가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 의해 쉽게 이루어진 꿈은 자신을 꿈속 세계에 가두려는 『매트릭스』라는 영화에 나오는 ‘파란 약’과 같다. 그건 순간적으로는 달콤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얽어매는 감옥과도 같을 뿐이다.
김씨는 짜장을 돌려보낸 그 순간부턴 이미 자살을 생각하던 초기의 자신과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동적인 인간이 아닌 능동적 인간으로, ‘순식간에 뒤집히는 삶을 바라는 인간’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만들어 가는 인간’으로 말이다. 안도현 시인의 아래 시에 나오는 내용은 김씨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듯하니 한 번 읽어보면 김씨의 마음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변두리 공터 부근
적막이며 개똥무더기를 동무 삼아 지나가다 보면
난데없이 옆구리를 치는 뜨거운
튀밥 냄새 만날 때 있지
그 짓 하다 들킨 똥개처럼 놀라 돌아보면
망할놈의 튀밥장수, 망하기는커녕
한 이십 년 전부터 그저 그래 왔다는 듯이
뭉개뭉개 단내 나는 김을 피워올리고
생각나지, 햇볕처럼 하얀 튀밥을
하나라도 더 주워 먹으려고 우르르 몰리던
그때, 우리는 영락없는 송사리떼였지
흑백사진 속으로 60년대며 70년대 다 들여보내고
세상에 뛰쳐나온 우리들
풍문으로 듣고 있지, 지금 누구는
나무를 타고 오른다는 가물치가 되었다 하고
누구는 팔뚝만한 메기가 되어 진흙탕에서 놀고
또 누구는 모래무지 되고 붕어도 잉어도 되었다는데
삶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제대로
나는 가고 있는지, 가령
쌀 한 됫박에 감미료 조금 넣고
한없이 돌리다가 어느 순간 뻥, 튀밥을 한 자루나 만들어 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뒤집히는 삶을 기다려오지는 않았는지
튀밥으로 배 채우려는 욕심이 크면 클수록
입안에는 혓바늘이 각성처럼 돋지
안 먹겠다고, 저녁밥 안 먹겠다고 떼쓰다
어머니한테 혼나고 매만 맞는 거지
-안도현, 「튀밥에 대하여」
그러니 그런 자신의 삶을 향한 마음을 멈춰선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마음을 미루어선 안 된다. 그런 가운데 그 꿈을 향해 더딜지라도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 나가야 한다. 그럴 때에야 깨어 있는 삶을 살게 된다.
▲ 이토록 간절한 눈빛으로 보고 또 봤다. 그리고 희망을 꿈꿨다.
깨어남을 위한 여정, 이제야 시작한다
다음 주 금요일이면 1차 결과가 나온다. 선발 인원이 1명이 갑자기 늘어나는 초유의 사태까지 있었던 올해 임용은 특별했지만, 내 점수는 간당간당하기만 하다. 열심히 공부했고 맞을 문제는 맞았고 틀릴 문제는 틀렸기에 후회되진 않는다. 단지 결과적으로 확실한 점수(늘 1등으로 합격하길 바랐기에)로 합격하지 못하는 게 기분 나쁠 뿐이다.
어찌되었든 이제는 승복할 때다. 그리고 좀 더 분발하여 갈 길을 나아가야 할 때다. 어느 상황에 놓이건 환히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깨어나는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30대의 삶을 살아볼 것이다. 나의 20대가 알찼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멋진 30대의 삶을 열어가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길을 걸으며 행복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맘껏 드날리고 싶다. 『하얀거탑』이란 드라마에 나오는 “넌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라는 대사처럼, 당당히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승자들의 가치에 편입되지 않는 나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나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 30대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기대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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