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여인의 마지막 제삿날
김시습(金時習)
生佇立以待. 及期, 果一女子, 從侍婢, 腰裊而來, 卽其女也. 相喜携手而歸.
女入門禮佛, 投于素帳之內. 親戚寺僧, 皆不之信, 唯生獨見, 女謂生曰: “可同茶飯.” 生以其言, 告于父母. 父母試驗之, 遂命同飯. 唯聞匙筋聲, 一如人間. 父母於是驚歎, 遂勸生, 同宿帳側.
中夜言語琅琅, 人欲細聽, 驟止其言曰: “妾之犯律, 自知甚明. 少讀『詩』ㆍ『書』, 粗知禮義, 非不諳褰裳之可愧, 相鼠之可赧, 然而久處蓬蒿, 抛棄原野, 風情一發, 終不能戒. 曩者, 梵宮祈福, 佛殿燒香, 自嘆一生之薄命, 忽遇三世之因緣. 擬欲荊𨥁椎䯻, 奉高節於百年. 羃酒縫裳, 修婦道於一生, 自恨業不可避, 冥道當然. 歡娛未極, 哀別遽至. 今則步蓮入屛, 阿香輾車. 雲雨霽於陽臺, 烏鵲散於天津. 從此一別, 後會難期. 臨別凄惶, 不知所云.”
送魂之時, 哭聲不絶. 至于門外, 但隱隱有聲曰: “冥數有限 慘然將別 願我良人 無或踈闊 哀哀父母 不我匹兮 漠漠九原 心糾結兮” 餘聲漸滅, 嗚哽不分.
父母已知其實, 不復疑問. 生亦知其爲鬼, 尤增傷感, 與父母聚頭而泣, 父母謂生曰: “銀椀任君所用. 但女子, 有田數頃, 蒼赤數人, 君當以此爲信, 勿忘吾女子.”
해석
生佇立以待.
양생은 우두커니 서서 여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及期, 果一女子, 從侍婢,
약속하였던 시간이 되자 과연 한 여인이 계집종을 데리고
腰裊而來, 卽其女也.
허리를 간들거리며 오는데, 바로 그 여인이었다.
相喜携手而歸.
그들은 서로 기뻐하면서 손을 잡고 절로 향하였다.
女入門禮佛, 投于素帳之內.
여인은 절 문에 들어서자 먼저 부처에게 예를 드리고 곧 흰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
親戚寺僧, 皆不之信,
그의 친척과 절의 스님들은 모두 그 말을 믿지 못하고,
唯生獨見,
오직 양생만이 혼자서 보았다.
女謂生曰: “可同茶飯.”
그 여인이 양생에게 말했다. “함께 저녁이나 드시지요.”
生以其言, 告于父母.
양생이 그 말을 여인의 부모에게 알리자,
父母試驗之, 遂命同飯.
여인의 부모가 시험해 보려고 같이 밥을 먹게 했다.
唯聞匙筋聲, 一如人間.
그랬더니 오직 수저 놀리는 소리만 들렸는데, 한결같이 인간 같았다.
父母於是驚歎, 遂勸生,
그제야 여인의 부모가 놀라 탄식하면서, 마침내 양생에게 권하여
同宿帳側.
휘장 옆에서 같이 잠자게 하였다.
中夜言語琅琅, 人欲細聽,
한밤중에 말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는데, 사람들이 가만히 엿들으려 하면
驟止其言曰:
갑자기 그 말이 끊어졌다.
“妾之犯律, 自知甚明.
여인이 양생에게 말했다. “제가 법도를 어겼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少讀『詩』ㆍ『書』, 粗知禮義,
저도 어렸을 때에 『시경』과 『서경』을 읽었으므로, 예의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非不諳褰裳之可愧,
『시경』에서 말한 「건상(褰裳)」이 얼마나 부끄럽고
相鼠之可赧,
「상서(相鼠)」가 얼마나 얼굴 붉힐 만한 시인지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然而久處蓬蒿, 抛棄原野,
그렇지만 하도 오래 다북쑥 우거진 속에 묻혀서 들판에 버림받았다가
風情一發, 終不能戒.
사랑하는 마음이 한번 일어나고 보니, 끝내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曩者, 梵宮祈福, 佛殿燒香,
지난번 절에 가서 복을 빌고 부처님 앞에서 향불을 사르며
스스로 한 평생의 박명을 탄식하다가
忽遇三世之因緣. 擬欲荊𨥁椎䯻,
뜻밖에도 삼세(三世)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소박한 아내가 되어
奉高節於百年.
백년의 높은 절개를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羃酒縫裳, 修婦道於一生,
술을 빚고 옷을 기워 평생 지어미의 길을 닦으려 했었습니다만,
自恨業不可避, 冥道當然.
스스로 한스럽게도 업보(業報)를 피할 수가 없어서 저승길을 떠나야 하게 되었습니다.
歡娛未極, 哀別遽至.
즐거움을 미처 다하지도 못하였는데, 슬픈 이별이 닥쳐왔습니다.
今則步蓮入屛, 阿香輾車.
이제는 보련【보련(步蓮): 보보생연화(步步生蓮花)의 준말로, 제(齊) 동혼후(東昏侯)가 금을 파서 연꽃 첩지(帖地)를 만들어 놓고 반비(潘妃)로 하여금 그 위로 걸어가게 하고는 걸음마다 연꽃이 난다고 한 고사.】이 물러날 때고 아향【아향(阿香): 용모가 단정한 晉 나라의 십대 소녀 아향(阿香)이 천둥 수레를 끌고 나갔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法苑珠林』】이 수레를 돌릴 때입니다.
雲雨霽於陽臺, 烏鵲散於天津.
운우(雲雨)는 양대(陽臺)에서 개고 오작(烏鵲)은 은하에 흩어질 것입니다.
從此一別, 後會難期.
이제 한번 헤어지면 뒷날을 기약하기가 어렵습니다.
臨別凄惶, 不知所云.”
헤어지려고 하니 아득하기만 해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送魂之時, 哭聲不絶.
사람들이 여인의 영혼을 전송하자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至于門外, 但隱隱有聲曰: “冥數有限 慘然將別 願我良人 無或踈闊 哀哀父母 不我匹兮 漠漠九原 心糾結兮”
혼이 문 밖에까지 나가자 소리만 은은하게 들려 왔다.
冥數有限 慘然將別 | 저승길도 기한 있으니 슬프지만 이별이라오. |
願我良人 無或踈闊 | 우리 님께 비오니 저버리진 마옵소서. |
哀哀父母 不我匹兮 | 애닯아라 우리 부모 나의 배필을 못 지었네. |
漠漠九原 心糾結兮 | 아득한 구원(九原)【구원(九原): 땅속】에서 마음에 한이 맺히겠네. |
餘聲漸滅, 嗚哽不分.
남은 소리가 차츰 가늘어지더니 목메어 우는 소리와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父母已知其實, 不復疑問.
여인의 부모는 그제야 그동안 있었던 일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되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生亦知其爲鬼, 尤增傷感,
양생도 또한 그 여인이 귀신인 것을 알고는 더욱 슬픔을 느끼게 되어,
與父母聚頭而泣,
여인의 부모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父母謂生曰: “銀椀任君所用.
부모가 양생에게 말했다. “은그릇은 자네가 쓰고 싶은 대로 맡기겠네.
但女子, 有田數頃, 蒼赤數人,
다만 내 딸자식 몫으로 밭 몇 마지기와 노비【蒼赤: 蒼生赤子를 줄인 말이다. 일반적으로 백성을 가리키나 奴婢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몇 사람이 있으니,
君當以此爲信, 勿忘吾女子.”
자네는 이것을 신표로 하여 내 딸자식을 잊지 말게나.”
인용
1화: 양생, 불상과 저포놀이하다
4회: 여인의 집을 찾아가는 길
5회: 여인의 집에서 3일 밤
8회: 여인의 부모와 만나다
9회: 여인의 마지막 제삿날
10화: 양생의 후일담
논문: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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