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金時習)
將及夜半, 月上東山, 影入窓柯. 忽有跫音, 女曰: “誰耶? 將非侍兒來耶?” 兒曰: “唯. 向日娘子, 行不過中門, 履不容數步, 昨暮偶然而出, 一何至於此極也?” 女曰: “今日之事, 蓋非偶然. 天之所助, 佛之所佑, 逢一粲者, 以爲偕老也. 不告而娶, 雖明敎之法典, 式燕以遨, 亦平生之奇遇也. 可於茅舍, 取裀席酒果來.”
侍兒一如其命而往, 設筵於庭, 時將四更也. 鋪陳几案, 素淡無文, 而醪醴馨香, 定非人間滋味.
生雖疑怪, 談笑淸婉, 儀貌舒遲, 意必貴家處子, 踰墻而出, 亦不之疑也. 觴進, 命侍兒, 歌以侑之, 謂生曰: “兒定仍舊曲, 請自製一章以侑, 如何?”
生欣然應之曰: “諾.” 乃製「滿江紅」一闋, 命侍兒歌之曰: “惻惻春寒羅衫薄 幾回腸斷金鴨冷 晩山凝黛 暮雲張繖 錦帳鴛衾無與伴 寶𨥁半倒吹龍管 可惜許光陰易跳丸 中情懣 燈無焰銀屛短 徒收淚誰從款 喜今宵 鄒律一吹回暖 破我佳城千古恨 細歌金縷傾銀椀 悔昔時抱恨 蹙眉兒眠孤館”
歌竟, 女愀然曰: “曩者蓬島, 失當時之約, 今日瀟湘, 有故人之逢, 得非天幸耶. 郞若不我遐棄, 終奉巾櫛. 如失我願, 永隔雲泥.”
生聞此言, 一感一驚曰: “敢不從命?” 然其態度不凡, 生熟視所爲.
해석
將及夜半, 月上東山,
이윽고 밤이 깊어 달이 동산에 떠오르자
影入窓柯.
창살에 그림자가 비쳤다.
忽有跫音, 女曰:
문득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여인이 물었다.
“誰耶? 將非侍兒來耶?”
“누구냐? 시녀가 찾아온 게 아니냐?”
兒曰:
시녀가 말하였다.
“唯. 向日娘子,
“예. 예전에는 아가씨가
行不過中門, 履不容數步,
문 밖에도 나가지 않으시고 걷는 것도 수 걸음을 용납지 않았는데,
昨暮偶然而出, 一何至於此極也?”
어제 저녁에는 우연히 나가셨다가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女曰: “今日之事, 蓋非偶然.
여인이 말하였다. “오늘의 일은 우연이 아니다.
天之所助, 佛之所佑,
하느님이 도우시고 부처님이 돌보셔서,
逢一粲者, 以爲偕老也.
고운 님을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하게 되었다.
不告而娶, 雖明敎之法典,
어버이께 말하지 않고 시집가는 것은 비록 명교(明敎)의 법칙이라 할지라도,
式燕以遨, 亦平生之奇遇也.
서로 즐거이 맞이하게 된 것은 또한 평생의 기이한 인연이다.
可於茅舍, 取裀席酒果來.”
집에서 앉을 자리와 술안주를 가지고 오너라.”
侍兒一如其命而往, 設筵於庭,
시녀가 그 명령대로 가서 뜨락에 술자리를 베푸니,
時將四更也.
시간은 벌써 사경(四更: 새벽 1~3시)이나 되었다.
鋪陳几案, 素淡無文,
안석과 책상을 진열했고 술잔엔 무늬가 없었으며,
而醪醴馨香, 定非人間滋味.
진한 술의 향내는 정녕 인간 세상의 맛은 아니었다.
生雖疑怪, 談笑淸婉,
양생은 비록 의심나고 괴이하였지만, 여인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맑고 고우며
儀貌舒遲,
얼굴과 몸가짐이 얌전하여,
意必貴家處子, 踰墻而出,
‘틀림없이 귀한 집 아가씨가 담을 넘어 나왔구나’ 생각하고는
亦不之疑也.
또한 의심하지 않았다.
觴進, 命侍兒, 歌以侑之,
여인이 양생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시녀에게 ‘노래를 불러 흥을 도우라’ 명하고,
謂生曰:
양생에게 말하였다.
“兒定仍舊曲,
“이 아이는 옛 곡조밖에 모릅니다.
請自製一章以侑, 如何?”
저를 위하여 새 노래를 하나 지어 흥을 도우면 어떻겠습니까?”
生欣然應之曰: “諾.” 乃製「滿江紅」一闋, 命侍兒歌之曰: “惻惻春寒羅衫薄 幾回腸斷金鴨冷 晩山凝黛 暮雲張繖 錦帳鴛衾無與伴 寶𨥁半倒吹龍管 可惜許光陰易跳丸 中情懣 燈無焰銀屛短 徒收淚誰從款 喜今宵 鄒律一吹回暖 破我佳城千古恨 細歌金縷傾銀椀 悔昔時抱恨 蹙眉兒眠孤館”
양생이 흔쾌히 허락했고 곧 「만강홍(滿江紅)」 가락 하나를 지어 시녀에게 부르게 했다.
惻惻春寒羅衫薄 | 쌀쌀한 봄추위에 명주 적삼은 아직도 얇아 |
幾回腸斷金鴨冷 | 몇 차례나 애태웠던가, 향로불이 꺼졌는가 하고, |
晩山凝黛 | 날 저문 산은 눈썹처럼 엉기고 |
暮雲張繖 | 저녁 구름은 일산처럼 퍼졌는데, |
錦帳鴛衾無與伴 | 비단 장막 원앙 이불에 짝지을 이가 없어서 |
寶𨥁半倒吹龍管 | 금비녀 반만 꽂은 채 퉁소를 불어 보네. |
可惜許光陰易跳丸 | 아쉬워라, 저 세월이 이다지도 빠르던가 |
中情懣 | 마음 속 깊은 시름이 답답하여라. |
燈無焰銀屛短 | 낮은 병풍 속에서 등불은 가물거리는데 |
徒收淚誰從款 | 나 홀로 눈물진들 그 누가 돌아보랴. |
喜今宵 | 기뻐라, 오늘밤에는 |
鄒律一吹回暖 | 피리를 불어 봄이 왔으니, |
破我佳城千古恨 | 겹겹이 쌓인 천고의 한이 스러지네 |
細歌金縷傾銀椀 | 「금루곡」 가락에 술잔을 기울이세. |
悔昔時抱恨 | 한스런 옛 시절을 이제 와 슬퍼하니 |
蹙眉兒眠孤館 | 외로운 방에서 찌푸리며 잠이 들었었지. |
歌竟, 女愀然曰:
노래가 끝나자 여인이 서글프게 말했다.
“曩者蓬島, 失當時之約,
“지난번에 봉도(蓬島)에서 만나기로 했던 당시의 약속은 어겼지만,
今日瀟湘, 有故人之逢,
오늘 소상강(瀟湘江)에서 옛 낭군을 만나게 되었으니
得非天幸耶.
어찌 천행이 아니겠습니까?
郞若不我遐棄, 終奉巾櫛.
낭군께서 저를 멀리 버리지 않으신다면 끝까지 시중【건즐(巾櫛): 춘추 시대 진(秦)나라에 인질로 잡힌 진(晉)나라 태자(太子) 어(圄)의 부인이 남편에게 “저의 부친인 이 나라 임금님이 저를 당신의 아내로 삼아서 수건과 빗을 들고 모시게 한 것은, 당신을 여기에 묶어 놓기 위해서였습니다.[寡君之使婢子侍執巾櫛 以固子也]”라고 말한 고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2년】을 들겠습니다.
如失我願, 永隔雲泥.”
그렇지만 만약 제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영원히 자취【운니(雲泥): ‘한 사람은 하늘 위의 구름에 올라타고, 한 사람은 땅 위의 진흙탕을 밟고 다닌다[乘雲行泥]’라는 뜻으로, 이제는 두 사람의 지위가 예전과 현격히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를 감추겠습니다.”
生聞此言, 一感一驚曰:
양생이 이 말을 듣고 한편 놀라며 한편 고맙게 생각하여 대답하였다.
“敢不從命?”
“어찌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겠소?”
然其態度不凡, 生熟視所爲.
그러면서도 여인의 태도가 범상치 않았으므로, 양생은 익숙히 하는 것을 살펴봤다.
인용
1화: 양생, 불상과 저포놀이하다
4회: 여인의 집을 찾아가는 길
5회: 여인의 집에서 3일 밤
8회: 여인의 부모와 만나다
9회: 여인의 마지막 제삿날
10화: 양생의 후일담
논문: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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