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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경지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 1. 경지란 누구인가? 본문

책/한문(漢文)

경지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 1. 경지란 누구인가?

건방진방랑자 2020. 4. 1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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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지란 누구인가?

 

 

이 편지는 경지京之라는 사람에게 보낸 답장이다. 경지가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가 혹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퉁소 연주자인 이한진李漢鎭(1732~?)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이한진은 호가 경산京山이고, 자는 중운仲雲이며,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경지는 그의 또 다른 자가 아닐까 한다. 이한진은 감역監役이라는 말단 벼슬을 지냈을 뿐이다. ‘감역이라는 벼슬은 대개 문과에 급제하지 못한 양반이 음직蔭職으로 하는 벼슬이다. 홍대용과 박지원도 감역 벼슬로부터 벼슬을 시작했다. 이한진은 전서篆書와 퉁소에 능하고 아취가 있었으며, 성대중成大中(1732~1809)홍대용이덕무박제가ㆍ홍원섭洪元燮(1744~1807) 등과 교유했다.

 

성대중의 문집인 청성집에 실려 있는 글인 유춘오의 악회를 기록하다에 의하면, 이한진이 홍대용ㆍ김억ㆍ홍원섭과 더불어 남산에 있던 홍대용의 집인 유춘오에 모여 퉁소를 연주했다고 하며,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양양 부사로 부임하는 연암을 전송하는 글에서는, 문장으론 박지원이 뛰어나고 전서로는 이한진이 뛰어나다고 했다. 이한진은 영조 때의 저명한 문인화가인 이인상李麟祥(1710~1760)의 전서를 계승했다. 이인상의 전서는 그 인간을 반영하여 내면미內面美와 고결함이 대단히 높다. 이한진의 전서는 그만큼은 못하지만 문기文氣가 썩 높다.

 

홍대용은 17671112일 부친상을 당해 고향에 내려가 삼년상을 치른 후 1770년에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유춘오 악회는 1770년에 개시되어 홍대용이 처음으로 벼슬에 나간 1774년까지 성황을 이루었다고 보인다. 당시 연암은 1768년부터 1771년까지는 백탑 부근에 살았고, 1772년부터는 전의감동에 살았다. 백탑 부근이든 전의감동이든 남산 기슭의 유춘오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다. 연암은 이 시절 울적함을 풀기 위해, 그리고 학문적 담토談討를 위해, 자주 유춘오를 찾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하여 그의 사상과 예술은 더욱 더 난숙爛熟되어 갔을 터이다. 이 시기 연암은 유춘오라는 문화적ㆍ예술적 공간을 통해 이한진과도 친분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경지란 누구인가?

2.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편지

3. 석별의 아쉬움을 잇는 사이이야기

4.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곳

5.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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