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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보여주는 시인 당시와 말하는 시인 송시 - 1. 꿈에 세운 시의 나라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보여주는 시인 당시와 말하는 시인 송시 - 1. 꿈에 세운 시의 나라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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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보여주는 시()인 당시(唐詩)와 말하는 시()인 송시(宋詩)

 

 

1. 꿈에 세운 시()의 나라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을 통해 시 나라에 초대된 심의

 

시인은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헤매이는 영혼들의 갈 길을 일깨워주는 선지자(先知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시인은 그 시대를 물끄러미 비춰주는 거울이어야 하는가.

 

조선 전기의 문인 심의(沈義)가 지은 기몽(記夢)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이란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은이가 얼풋 잠이 들었다가 홀연 한 곳에 이르렀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는 화려한 궁궐에는 천성전(天聖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천상(天上) 선계(仙界)에 자리 잡은 시()의 왕국(王國)이었다. 이 나라의 왕은 최치원(崔致遠)이고 수상은 을지문덕(乙支文德)이며, 이제현(李齊賢)이규보(李奎報)가 좌우상(左右相)을 맡고 있다. 그밖에 내로라하는 역대의 쟁쟁한 시인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지위의 고하는 단지 시를 쓰는 능력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당대에 쟁쟁하던 선배인 서거정(徐居正)성현(成俔)ㆍ어숙권(魚叔權) 등은 지방의 미관말직을 전전하고 있는 데 반해, 현세에서 불우를 곱씹던 그는 자신이 꿈속에 세운 가공의 시() 왕국(王國)에서 천자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승승장구한다. 다른 대신들이 손 못 대는 문제도 척척 해결한다. 대개 현세의 불우에 대한 보상심리의 반영인 셈이다.

 

 

 

송풍의 달인 김시습의 반란

 

그런데 이 가운데 문천군수(文川郡守) 김시습(金時習)의 반란 사건이 우리의 흥미를 끈다. 지은이가 시 왕국에서의 일상에 익숙해 갈 무렵 난데없이 김시습(金時習)의 반란 소식이 전해진다. 천자(天子) 최치원(崔致遠)이 당시풍(唐詩風)만을 좋아하여 자기와 같이 송시풍(宋詩風)을 즐겨 쓰는 사람들은 박대하여 등용치 않으므로 참을 수 없다는 사연이니, 참으로 시 왕국다운 반란의 이유다. 이에 이색(李穡)의 천거로 토벌의 임무를 맡게 된 심의(沈義)는 몇 만의 군대를 주겠다는 천자의 제의를 거절하고, 소영비술(嘯詠秘術)만으로 대적하겠다하며 첨두노(尖頭奴) 몇을 데리고 일기(一騎)로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소영비술(嘯詠秘術)이란 천지의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피리 부는 비술(秘術)이니 다름 아닌 시()를 말함이요, 첨두노(尖頭奴)란 머리가 뾰족한 하인이니 붓의 형용이다.

 

적진에 다다른 심의(沈義)가 한 곡조 피리를 불자 반란군은 그만 간담이 서늘해지고 기운이 꺾이며, 두 번 불자 그만 몇 겹의 포위를 풀고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적장(賊將) 김시습(金時習)은 손을 뒤로 묶고는, “사단(詞壇)의 노장(老將)이신 심영공(沈令公)께서 이를 줄은 뜻하지 못했습니다.”하며 투항하고 만다. 반란군의 토벌치고는 싱겁기 짝이 없다.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시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은 소설적 구성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심의(沈義)의 시관(詩觀)과 역대 시인에 대한 평가가 잘 드러나 있고, 두보(杜甫)를 천자로 하는 중국의 시() 왕국(王國)에 천자 최치원(崔致遠)이 초청되어 두 나라의 시인들이 시로써 재주를 겨루는 내용 등 적잖은 흥미소가 가미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김시습(金時習)의 반란 사건이다. 최치원(崔致遠)은 당나라, 특히 화려하고 유미한 시풍으로 대표되는 만당(晩唐) 시기의 인물이니 그가 추구한 것이 당시풍(唐詩風)일 것은 당연하다. 그가 천자가 된 이상, 그 밑에 신하들도 당시(唐詩)를 추구했을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반면 김시습은 송시풍(宋詩風)을 추구하여 여기에서 소외된 것이 불만스러웠고 아예 반란을 꿈꾸게 되었던 것이다.

 

 

 

송시풍과 당시풍의 차이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당시풍(唐詩風)과 송시풍(宋詩風)은 도대체 어떤 시풍을 말하며 둘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반란을 일으켜 바로 잡으려 한 것으로 보아 두 시풍은 타협이나 공존이 어려울 듯하다. 예전 시비평서를 읽다 보면 도처에서 당시(唐詩)에 핍진하다거나, 송시(宋詩)에 가깝다는 식의 평어와 만나게 된다. 또 이 두 가지가 함께 거론될 때면 대부분 으레 당시풍(唐詩風)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일반이다. 비평의 현장에서 당시(唐詩)니 송시(宋詩)니 하는 개념은 왕조 개념을 떠나 시의 취향 혹은 성향을 말하는 풍격 용어로 사용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당나라 시인의 시에서도 송시풍을 찾아볼 수 있고, 청나라 시인의 시에서도 당시풍(唐詩風)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당시(唐詩)와 송시(宋詩)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왜 한시사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빚어 왔던가? 이번 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인용

목차

1. 꿈에 세운 시()의 나라

2.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3.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

4.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

5. 배 속에 넣은 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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