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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위정 - 4. 멋있게 나이를 먹기 본문

고전/논어

논어 위정 - 4. 멋있게 나이를 먹기

건방진방랑자 2021. 9. 2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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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멋있게 나이를 먹기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古者十五而入大學. 心之所之謂之志. 此所謂學, 卽大學之道也. 志乎此, 則念念在此而爲之不厭矣.

 

三十而立,

有以自立, 則守之固而無所事志矣.

 

四十而不惑,

於事物之所當然, 皆無所疑, 則知之明而無所事守矣.

 

五十而知天命,

天命, 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 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 知此則知極其精, 而不惑又不足言矣.

 

六十而耳順,

聲入心通, 無所違逆, 知之之至, 不思而得也.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 如字.

, 隨也. , 法度之器, 所以爲方者也. 隨其心之所欲, 而自不過於法度, 安而行之, 不勉而中也.

程子: “孔子生而知之也, 言亦由學而至, 所以勉進後人也. , 能自立於斯道也. 不惑, 則無所疑矣. 知天命, 窮理盡性也. 耳順, 所聞皆通也. 從心所欲, 不踰矩, 則不勉而中矣.”

又曰: “孔子自言其進德之序如此者, 聖人未必然, 但爲學者立法, 使之盈科而後進, 成章而後達耳.”

氏曰: “聖人之敎亦多術, 然其要使人不失其本心而已. 欲得此心者, 惟志乎聖人所示之學, 循其序而進焉. 至於一疵不存, 萬理明盡之後, 則其日用之間, 本心瑩然, 隨所意欲, 莫非至理. 蓋心卽體, 欲卽用, 體卽道, 用卽義, 聲爲律而身爲度矣.”

又曰: “聖人言此, 一以示學者當優游宿泳, 不可躐等而進; 二以示學者當日就月將, 不可半途而廢.”

愚謂聖人生知安行, 固無積累之漸, 然其心未嘗自謂已至此也. 是其日用之間, 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 故因其近似以自名, 欲學者以是爲則而自勉, 非心實自聖而姑爲是退託也. 後凡言謙辭之屬, 意皆放此.

 

 

 

 

 

 

해석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15살에 배움에 뜻을 뒀고,

古者十五而入大學.

옛적엔 15살에 대학에 들어갔다.

 

心之所之謂之志.

마음이 향하는 것을 지()라 한다.

 

此所謂學, 卽大學之道也. 志乎此,

여기서 말한 배움은 곧 대학의 도이기에 여기에 뜻을 두면

 

則念念在此而爲之不厭矣.

생각하는 게 여기에 있어 배우길 싫어하지 않게 된다.

 

三十而立,

30살에 자신을 정립했으며,

有以自立,

스스로 서게 되면

 

則守之固而無所事志矣.

지킴이 굳세지고 의지를 지키려 노력할 게 없다.

 

四十而不惑,

40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於事物之所當然, 皆無所疑,

사물의 당연한 도리에 대해 모두 의심나는 게 없으면

 

則知之明而無所事守矣.

앎이 분명해지고 지키려 노력할 게 없다.

 

五十而知天命,

50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天命, 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

천명(天命)은 천도의 유행으로 사물에 부여된 것이니,

 

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

곧 사물의 당연한 까닭이다.

 

知此則知極其精,

이것을 알면 앎이 정밀한 데서 지극해지고

 

而不惑又不足言矣.

의혹됨이 없음을 또한 말하기엔 부족하다.

 

六十而耳順,

60살에 귀로 들리는 게 거슬리지가 않았고,

聲入心通, 無所違逆,

소리가 들어오면 마음이 동하여 어긋나거나 거슬리지 않으니

 

知之之至, 不思而得也.

앎이 지극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진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70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더라도 법을 넘질 않았다.”

, 如字.

인생이란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 그리기.” 인생이란 곧 자기가 늙어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자화상을 그려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늙으면 원시(遠視)가 된다. 원시란 무엇인가? 가까운 데 있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살라는 것이다. 멀리 보고 멀리 생각하라는 것이다. 늙으면 귀가 어두워진다. 너무 많은 소소한 것들을 들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늙으면 기억력이 감퇴된다. 그러니 상처로 남는 모든 원망이나 원한마저 다 잊어버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허한 마음을 가지고 허허 웃는 큰 인격체가 되라는 것이다. - 논어한글역주, 461

 

, 隨也.

()은 따른다는 것이다.

 

, 法度之器, 所以爲方者也.

()는 법도의 기물로 모난 것을 만드는 것이다.

 

隨其心之所欲, 而自不過於法度,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되 스스로 법도를 넘어서지 않으니,

 

安而行之, 不勉而中也.

편안히 행하는 경지이고 힘쓰지 않아도 도에 맞는 경지다.

 

程子: “孔子生而知之也,

정이천이 말했다. “공자는 나면서 아는 자질이지만

 

言亦由學而至,

또한 배움으로 말미암아 이르렀다고 말한 것은

 

所以勉進後人也.

후배를 권면하여 나가게 한 것이다.

 

, 能自立於斯道也.

()은 이 도에 자립한 것이다.

 

不惑, 則無所疑矣.

불혹(不惑)은 의혹된 게 없다는 것이다.

 

知天命, 窮理盡性也.

지천명(知天命)은 이치를 궁리하고 본성을 다함이다.

 

耳順, 所聞皆通也.

이순(耳順)은 듣는 것들이 모두 통하는 것이다.

 

從心所欲,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不踰矩, 則不勉而中矣.”

법도를 넘지 않으면 힘쓰지 않아도 도에 맞는 것이다.”

 

又曰: “孔子自言其進德之序如此者,

또 말했다. “공자가 덕에 나아감의 차례를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은

 

聖人未必然,

성인이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但爲學者立法, 使之盈科而後進,

다만 배우는 사람이 법을 세워 그로 하여금 부족한 것을 채운 이후에 나아가고

 

成章而後達耳.”

문장을 이룬 후에 통달하게 할 뿐이다.”

 

氏曰: “聖人之敎亦多術,

호인(胡寅)이 말했다. “성인의 가르침이 또한 재주가 많다.

 

然其要使人不失其本心而已.

그러나 그 요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본심을 잃지 않도록 할 분이다.

 

欲得此心者, 惟志乎聖人所示之學,

그러니 이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성인이 보여준 학문에 뜻을 둬

 

循其序而進焉.

차례를 따라 나아간다.

 

至於一疵不存, 萬理明盡之後,

그래서 하나의 흠이라도 있지 않고 모든 이치가 극진하게 밝혀진 후에 이르면

 

則其日用之間, 本心瑩然,

일상의 사이에 본심이 밝아져

 

隨所意欲, 莫非至理.

뜻이 하고자 하는 것을 따르더라도 지극한 이치가 아닌 게 없다.

 

蓋心卽體, 欲卽用,

대저 마음은 체()고 욕망은 용()이며

 

體卽道, 用卽義,

()는 도()이고 용()은 의()여서

 

聲爲律而身爲度矣.”

소리 내면 음률이 되고 몸소하면 법이 된다.”

 

又曰: “聖人言此,

또 말했다. “성인이 이것을 말하여

 

一以示學者當優游宿泳,

첫째는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오랫동안 무젖어야 하고

 

不可躐等而進;

단계를 뛰어넘어 나가선 안 되는 것을 보여줬다.

 

二以示學者當日就月將,

둘째는 배우는 사람이 일취월장해야 하고

 

不可半途而廢.”

중도에 그만둬선 안 됨을 보여줬다.”

 

愚謂聖人生知安行,

내가 생각하기로 성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동하는 경지로

 

固無積累之漸,

진실로 누적되어 점차 진행되는 건 아니다.

 

然其心未嘗自謂已至此也.

그러나 그 마음에 일찍이 스스로 이미 여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是其日用之間,

일상생활의 사이에

 

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

반드시 홀로 나아감을 깨달았지만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리라.

 

故因其近似以自名,

그러므로 가까운 것으로 스스로 이름하여

 

欲學者以是爲則而自勉,

학자들이 이것으로 법칙을 삼아 스스로 힘쓰도록 한 것이다.

 

非心實自聖而姑爲是退託也.

내심 성인이라 여기면서 일부러 겸손한 척 한 것은 아니다.

 

後凡言謙辭之屬, 意皆放此.

뒤에 나오는 겸사를 말하는 종류들은 뜻이 모두 이와 같다.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한자나이표기법 / 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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