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촉
촉각(燭刻)
과시를 급하게 서둘러 보이던 일. 과거는 통상적으로 사방에 알려서 많은 선비들을 모이게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고 오직 표전(表箋) 두어 가지만을 가지고 시일(時日)을 한정, 실시하는 것을 촉각이라 한다. 이 제도는 특히 조선조 연산군, 중종 때에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촉견폐일(蜀犬吠日)
촉(蜀)나라의 개는 해를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해만 보면 짖는다. ‘식견이 좁은 사람이 선하고 어진 사람을 오히려 비난하고 의심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촉군민가고(蜀郡民歌袴)
지방 수령(守令)이 선정(善政)을 하는 데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염범(廉范)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염숙도(廉叔度)여, 왜 이제야 왔소. 전에는 저고리 하나도 없다가 이제는 바지가 다섯 벌이나 된다오.” 하고 그의 선정을 노래하였다. 『후한서(後漢書)』 卷三十一 「염범전(廉范傳)」
촉규화시(蜀葵花詩)
접시꽃을 두고 읊은 시. 당(唐) 나라 시인 잠참(岑參)의 「촉규화가(蜀葵花歌)」가 있다. 그 전시를 적는다. “昨日一花開 今日一花開 今日花正好 昨日花已老 人生不得恒少年 莫惜牀頭沽酒錢 請君有錢向酒家 君不見蜀葵花”
촉금(蜀錦)
촉 나라의 비단이란 뜻으로, 촉 나라는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인데 옛날부터 그곳에 좋은 비단이 많이 나므로 이 말이 있게 되었다. 「촉금보(蜀錦譜)」
촉노(燭奴)
유사(遺事)에 “신왕(申王)도 사치를 힘썼으니 그때의 유행이 그러하였다. 매일 밤 궁중에서 제왕(諸王)ㆍ귀척(貴戚)들과 모여 잔치할 적에는 용단목(龍檀木)으로 동자(童子)를 조각하여 녹의(綠衣)를 입히고 띠까지 띠게 한 다음 화촉(畫燭)을 들려서 좌우에 벌여 세워 놓고 이름을 촉노라 했으므로 제궁(諸宮)ㆍ귀척들의 집에서도 다 이를 본받았다.” 하였다.
촉당귀(蜀當歸)
난리가 났다는 급보를 듣고 양국충은 먼저 현종에게 권고하여 촉(蜀)으로 피난하자고 하였다.
촉도(蜀道)
파촉(巴蜀)의 잔도(棧道).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촉(蜀) 땅으로 통하는 고갯길인데, 길이 몹시 험하여서 험한 길의 대명사로 쓰인다. 이백(李白)은 「촉도난(蜀道難)」이라는 시를 지어 “촉도의 어려움 하늘 오르는 것보다도 어렵다.” 하였다.
촉도난(蜀道難)
여러 시인들이 읊은 촉도난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당 나라 이백(李白)이 지은 「촉도난(蜀道難)」이 가장 유명하다. 촉도(蜀道)는 중국 사천성(四川省) 촉(蜀) 땅으로 통하는 고갯길인데, 길이 몹시 험하여서 험한 길의 대명사로 쓰인다.
촉도매복(蜀都賣卜)
어떤 사람이 하(河 황하)의 근원을 찾아 부인이 빨래함을 보고 물으니, “여기가 천하(天河)다.” 했다. 한 돌은 주기에 가지고 돌아와 엄군평(嚴君平)에게 물으니, 그가 가로되, “이것은 직녀(織女)의 베틀 바치는 돌이다.” 했다. 엄군평이 촉(蜀) 나라의 도읍 성도(成都)에서 점장이 노릇을 하면서 충효와 신의(信義)로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날마다 백전(百錢)을 얻으면 곧 가게를 닫고 『노자(老子)』를 읽었다. 전설(傳說)이 많음.
촉도읍옥인(蜀道泣玉人)
옥인(玉人)은 미인이란 뜻으로 양 귀비(楊貴妃)를 가리키는데, 당 현종(唐玄宗)이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피하여 파촉으로 피난갈 적에 양 귀비를 처형했으므로 한 말이다.
촉도청천취안대(蜀道靑天醉眼擡)
이태백(李太白)이 「촉도난(蜀道難)」이란 시를 지었는데, 그 시의 끝에 “촉(蜀) 나라 길이 험하여, 푸른 하늘에 오르기보다도 어렵구나[蜀道之難 難於上靑天].”라고 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촉도행(蜀道行)
한(漢) 나라 왕손이 촉(蜀)에 익주 자사(益州刺史)로 부임하다가 가장 험한 공극(邛棘)을 어렵게 알지 않고 말을 채찍질하였다.
촉도행장(蜀道行裝)
가진 재물이 없이 청빈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송(宋) 나라 조변(趙抃)이 필마로 촉 땅으로 들어갈 때 거문고 한 벌과 학 한 마리만 데리고 갔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송사(宋史)』 「조변전(趙抃傳)」
촉룡(燭龍)
① 신명(神名).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된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추형훈(墜形訓)에 “촉룡이 안문(雁門)의 북쪽에 있어 위우(委羽)의 산에 가려 해를 보지 못한다.” 하였다.
② 촉음(燭陰)이라고도 하는데 종산(鍾山)의 신(神)이다. 신장(身長)이 천 리인데 입에 촛불을 머금고 천문(天門)에 비추며, 이 신이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되며 불(吹)면 겨울이 되고 숨을 내쉬면(呼) 여름이 된다 한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북경(海外北經)」
촉루전락(髑髏全樂)
장자(莊子)가 초(楚) 나라를 가다가 바짝 마른 해골을 만나서 말채찍으로 때리며 묻기를, “나라를 망치고 처형을 당해 이 모양이 되었는가, 굶어 죽어서 이 모양이 되었는가?” 하고는 그 해골을 베고 잤더니, 꿈에 해골이 나타나 말하기를, “그대가 말한 것은 모두 산 사람의 누(累)이고 죽은 사람은 그런 걱정이 없네. 죽음의 세계에는 위로 임금도 없고 아래로 신하도 없으며, 또 네 계절의 변화도 없네. 그리고 조용히 천지와 수명을 같이할 뿐이므로, 비록 임금 노릇하는 즐거움도 이 즐거움을 능가할 수가 없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지락(至樂)」
촉루타남면(髑髏詫南面)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장자(莊子)와 해골의 대화 가운데 “위로 임금도 없고 아래로 신하도 없으며, 사시(四時)도 없는 가운데 천지(天地)를 춘추(春秋)로 삼고 있으니, 남면(南面)하는 임금의 즐거움이라 하더라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다. 내가 어찌 남면하는 임금과 같은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수고로운 인간 세상에 되돌아갈까 보냐[, 無君於上, 無臣於下, 亦無四時之事, 從然以天地爲春秋, 雖南面王樂, 不能過也].”라고 한 해골의 대답이 실려 있다.
촉마(蜀麻)
촉군(蜀郡)에서 생산되는 마포를 말한다.
촉마오염(蜀麻吳鹽)
오의 소금(吳鹽)과 촉의 삼(蜀麻)은 다 명품들로서 당(唐)의 제오기(第五琦)가 숙종(肅宗)에게 청하여, 강회(江淮)에다 조용사(租庸使)를 두고 이것들에 대한 조세를 받아들이자고 하였다. 王海 食貨 貢賦 唐賦役法
촉매허재미(蜀買虛齎米)
실속도 없이 남 좋은 일만 한다는 말이다. 오(吳) 나라 전종(全琮)의 부친인 유(柔)가 계양(桂陽)의 수사(守使)로 있을 적에, 전종에게 수천 곡의 쌀을 배에 싣고 오 나라에 가서 교역을 하도록 하였는데(齎米數千斛 至吳交易), 전종이 그곳의 사대부들에게 모두 외상으로 주고 빈 배로 돌아왔다는 고사가 있다. 『삼국지(三國志)』 卷60 吳志 全琮傳
촉발(燭跋)
초가 다 타서 밤이 깊어감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의 “초가 다 타서 아직 밑둥치를 나타내지 않았다[燭不見跋].” 하였다.
촉백(蜀魄)
두견(杜鵑)이의 별칭이다. 옛날 촉(蜀)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로서 망제(望帝)라고 불리운 임금이 있었는데, 제 신하에게 전위(傳位)하고 물러나 죽어서 두견이가 된 뒤 봄철에 밤낮으로 슬피 운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촉혼(蜀魂)ㆍ촉조(蜀鳥)ㆍ귀촉도(歸蜀道)ㆍ두백(杜魄)ㆍ두우(杜宇)ㆍ망제혼(望帝魂)이라고도 한다.
촉백(蜀柏)
촉상(蜀相) 제갈량(諸葛亮)의 측백나무로 서촉(西蜀) 성도(成都)의 제갈량 사당에 거대한 측백나무가 서 있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두시비해(杜詩批解)』 卷十六 「고백행(古柏行)」
촉백성(蜀魄聲)
전설에 의하면, 촉(蜀) 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의 혼백이 화하여 두견새가 되었는데, 항상 한밤중에 ‘불여귀(不如歸)’라고 하는 듯한 소리로 몹시 처절하게 운다고 한다.
촉번(觸藩)
저양촉번(羝羊觸藩)의 준말이다. 『주역(周易)』 「대장괘(大壯卦)」 상육(上六)에, “수양이 울타리를 대질러서 물러가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한다[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하였는데, 저양의 뿔이 울타리에 걸리어 진퇴유곡이 되었다는 뜻으로, 만용을 부려 저돌하다가 도리어 실패함을 비유한 말이다.
촉번저(觸藩羝)
나갈 수도 없고 물러날 수도 없이 궁지에 빠진 것을 말한다. 『역(易)』 「대장(大壯)」 상육(上六)에 “숫염소가 울타리를 받다가 걸리면 물러나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한다[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한 데서 온 말이다.
촉병정주도불미(燭秉程朱道不迷)
정호(程顥)ㆍ정이(程顥)ㆍ주희(朱熹)가 인멸된 성학(聖學)을 다시 밝혀 후학(後學)들을 계도한 공이 마치 어두운 길거리에 촛불을 잡아준 것과 같다는 말이다.
촉사통도(蜀士通道)
석우도(石牛道)를 말한다. 진(秦) 나라 혜왕(惠王)이 촉 나라를 치려고 하였으나 길이 없었다. 이에 돌로 소 다섯 마리를 만들고는 그 뒤에다가 금(金)을 놓아 둔 다음 “소가 금똥을 누었다.”고 소문을 내니, 촉 나라 사람들이 그 소를 달라고 하였다. 혜왕이 주겠다고 하자, 촉에서 역사(力士) 다섯 명을 보내어 길을 뚫고 끌어오게 하였다. 그 뒤 신왕(愼王) 때에 이르러서 그때 뚫은 길을 통하여 가서 촉 나라를 정벌하였다. 『화양국지(華陽國志)』
촉삭노노과시비(蜀朔呶呶果是非)
송(宋) 나라 철종(哲宗) 원우(元祐) 연간에 소식(蘇軾)의 촉당(蜀黨)과 유안세(劉安世)의 삭당(朔黨)과 정이(程顥)의 낙당(洛黨)이 서로들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던 일이 있다. 『송사(宋史)』 卷340, 卷427
촉시(蜀枲)
촉에서 나는 모시로 질이 좋기로 천하에 유명하였다.
촉여만(觸與蠻)
달팽이(蝸牛)의 왼쪽 뿔의 만씨와 오른쪽 뿔의 촉씨가 서로 땅을 뺏으려고 전쟁을 해서 수만 명의 군사가 죽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세인(世人)들이 사소한 일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칙양(則陽)」
촉잠삼면(蜀蠶三眠)
몸이 늙었음에 비유한 말이다. 촉잠은 촉왕(蜀王)의 선조가 맨 처음 백성들에게 잠업(蠶業)을 가르쳤던 데서 누에를 가리키는 말이고, 삼면(三眠)은 누에가 세 번 잠자는 것을 이르는데, 누에가 세 번을 자면 섶에 올라 고치를 짓는 것이므로 늘그막을 말한다.
촉쟁만(觸爭蠻)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달팽이 왼편 뿔에 나라가 있으니 촉(觸)씨요, 달팽이 오른편 뿔에 나라가 있으니 만(蠻)씨이다. 이따금 서로 땅을 다투어 싸워 시체가 몇 만이요, 쫓기고 쫓아 열닷새 만에 돌아왔다[有國于蝸之左角者曰觸氏 有國于蝸之右角者曰蠻氏 時相與爭地而戰伏尸數萬 逐此旬有五日而後反].”하였다.
촉전(蜀牋)
당 나라 시대에 설도(薛濤)라는 기생이 좋은 종이를 새로 고안하였으므로, 그것을 설도전(薛濤牋)이라 하고, 또 그가 살았던 곳의 이름을 따라 촉전이라고도 한다
촉정(蜀丁)
산을 들어 옮길 만한 힘을 지녀, 검각(劍閣)의 길을 뚫었다는 촉(蜀) 땅의 전설적인 오정 역사(五丁力士)를 말한다.
촉제화(蜀帝花)
두견화(杜鵑花)를 가리킨다. 촉(蜀) 나라 망제(望帝)의 죽은 넋이 화하여 두견새가 되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촉좌(蜀髽)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에 “상중(喪中)에는 부인이 실내에서 복머리를 한다.” 하였고, 「촉지(蜀志)」에는 “건흥(建興) 12년 8월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이 54세로 전쟁터에서 죽자, 촉 나라 부인들이 애도하는 뜻으로 상중에 하던 복머리를 하였다.”고 하였다.
촉주편(蜀州篇)
촉주의 글은 고적(高適)이 촉주 자사로 있을 때 두보(杜甫)에게 지어 보내 준 시 「인일기두이습유(人日寄杜二拾遺)」를 말한다.
촉직(促織)
귀뚜라미를 말하는데, 우는 소리가 마치 베 짜는 소리와 같으므로 가을이 되었으니 사람에게 빨리 베 짜라고 재촉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다 한다.
촉천루(蜀天漏)
서촉(西蜀) 지방은 본디 비가 많이 오므로, 두보(杜甫)의 시에도 “강 구름은 어느 밤에나 다하며 촉천의 비는 어느 때나 개일런고[江雲何夜盡 蜀雨幾時乾].”라고 하였다.
촉촉(矗矗)
우뚝 솟은 모양.
촉촉(促促)
짧은 모양, 마음에 여우가 없는 모양, 열심히 일하는 모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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