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청
청간ㅁ(靑簡)
서책(書冊)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역사(歷史)를 집필하는 사람을 가리킨 말이다.
청간문장(靑簡文章)
죽간(竹簡)에 저술한 평생의 글을 말한다.
청간위수편(靑簡爲誰編)
두보(杜甫)의 시에 “운대에선 하루 종일 공신(功臣) 그림 그리는데, 청사는 누굴 위해 엮어질는지[雲臺終日畫 靑簡爲誰編].”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9 「추일기부영회봉기정감심이빈객지방일백운(秋日夔府詠懷奉寄鄭監審李賓客之芳一百韻)」
청강(淸江)
이제신(李濟臣)의 호이다. 이석기는 바로 그의 손자이다.
청강(淸江)
큰 강물을 맑게 하다.
청강공(淸江公)
신흠(申欽)의 처부(妻父)로서 호가 청강인 절도사 이제신(李濟臣)을 말한다.
청강해중룡(聽講海中龍)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말로, 용왕(龍王)의 딸이 나이 겨우 8세에 지혜가 숙성하여 문수보살의 교화로 제법(諸法)의 진리를 깨닫고, 석가(釋迦)에게 와서 보살행을 수행하여 끝내 성불(成佛)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청거(淸渠)
용담현(龍潭縣)의 고호이다.
청검(請劍)
강직한 충신의 기개를 보여 주었다는 말이다. 한(漢) 나라 주운(朱雲)이 상방참마검(尙方斬馬劍)으로 영신(佞臣)인 장우(張禹)의 머리를 베게 해 달라고 청한 고사에서 유래한다. 『한서(漢書)』 「주운전(朱雲傳)」
청경우독(晴耕雨讀)
‘날이 맑으면 밭 갈고, 비 오면 책을 읽음’이란 뜻이다
청계(淸溪)
영유(永柔)의 옛 이름이다.
청계간소영(淸溪看疎影)
송 나라 임포(林逋)의 「매화시(梅花詩)」에, “성긴 그림자 비꼈으매 물이 맑고 얕다[疏影橫斜水淸淺].”란 구절이 유명하다.
청계무(聽鷄舞)
진(晉) 나라 조적(祖逖)이 유곤(劉琨)과 한 이불을 덮고 자다가 한밤중에 때아닌 닭울음이 들리자 유곤을 발로 차 깨우면서 말하기를 “이는 상서롭지 못한 소리가 아니다.” 하고는, 일어나 춤을 추면서 말하기를 “천하가 들끓어 호걸들이 다투어 일어나게 되면 나와 그대는 마땅히 중원(中原)으로 가야 할 것이다.” 하였다. 그 후 조적은 석륵(石勒)의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양자강을 건너다가 강 한가운데서 맹세하기를, “조적이 중원을 평정하지 못하고 다시 강을 건널 때는 이 강에 몸을 던지리라.” 하였다 한다.
청계향(靑桂香)
침향(沈香)을 만드는 향나무에서 추출되는 향 이름이다.
청고(請告)
휴가나 퇴직을 청하는 것을 말한다.
청고옹(靑皐翁)
청고(靑皐)는 화가인 윤용(尹愹)의 호인데, 조부인 윤두서(尹斗緖)와 아버지인 윤덕희(尹德熙)도 모두 그림으로 유명하였다.
청광(淸狂)
병이 들어 미친 사람은 맥(脉)이 탁한데 청광(淸狂)이란 것은 병 없이 미친 것이란 뜻이다.
청광승별소(淸光勝別宵)
음력 8월 보름달이 다른 보름달보다 밝음을 이른다. 한유(韓愈)의 「팔월십오야시(八月十五夜詩)」에 “일년 중 밝은 달이 오늘 밤에 가장 밝다오[一年明月今宵多]”하였다.
청구(靑駒)
한단몽에서 나오는 노생의 말(馬) 이름이다.
청구(靑邱)
동방에 있는 수택(水澤) 이른다.
청구(靑丘)
동국(東國)을 가리킨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컫던 말이다.
청구학(靑丘雘)
선경(仙境)의 좋은 약이나 물건을 말한다. 「해내 십주기(海內 十州記)」에 “청구주(靑丘州)가 남해 진사방(辰巳方)에 있는데, 선초(仙草)ㆍ영약(靈藥)ㆍ감액(甘液)ㆍ옥영(玉英)ㆍ구해(韭薤)ㆍ단학(丹雘) 등 없는 것이 없다.” 하였다.
청군(靑裙)
푸른 옷은 옛날 중국의 평민 복장이다.
청궁(靑宮)
태자궁(太子宮) 곧 동궁(彤弓)을 가리킨다. 동쪽이 청색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다.
청규(靑規)
궁정(宮庭)의 금지(禁地) 또는 어전(御前)에 까는 부들 자리(蒲席)를 이르는데, 주로 간언(諫言)을 드리거나 시사(時事)를 주달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청규(靑虯)
푸른 규룡.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보검이 땅에 묻혀 하늘의 두우(斗牛) 간에 자기(紫氣)를 내뿜다가 발굴되었는데, 한동안 세상에 머물다가 홀연히 물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 용으로 변하더니 물결을 가르며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청금(淸禁)
엄숙하고 청정한 궁중을 말한다.
청금(靑衿)
깃이 푸른 옷으로, 옛날 학생들이 입던 옷이다.
청금무(淸琴撫)
공자의 제자 자천(子賤)이 선보(單父)의 원으로 가서 거문고를 타며 백성을 잘 다스렸다.
청기(靑旗)
술 파는 집. 술을 파는 집에 푸른 기를 달기 때문이다. /유의어: 청패(靑旆), 청렴(靑帘)
청낭(靑囊)
진(晉) 나라 때 곽공(郭公)이 저술했다고 하는, 오행(五行)ㆍ천문(天文)ㆍ복서(卜筮)에 관한 일을 기록한 책이다.
청낭결(靑囊訣)
오행ㆍ천문ㆍ복서(卜筮)의 비결. 곧 그에 관한 서적을 말한다.
청녀(靑女)
서리와 눈을 주관하는 전설 속의 여신으로,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가을 3월에 이르면 청녀가 나와서 서리와 눈을 내린다.” 하였다.
청노(靑奴)
죽부인(竹夫人)과 같은 것으로, 여름 밤에 끼고 자면서 서늘한 기운을 취하는 데 쓰는 대오리로 만든 제구이다. 『사물이명록(事物異名錄)』 「죽노(竹奴)」
청니(靑泥)
푸른 진흙이란 뜻으로, ‘깊은 진흙 속’을 가리킨 것이다.
청담(淸談)
① 명리(名利)‧명문(名聞)을 떠난 청아(淸雅)한 이야기. 고상한 이야기. 위진 시대에 유행한 노장(老莊)을 조술(祖述)하고 속세를 떠난 청정무위(淸淨無爲)의 공리공론(空理空論).
② 고상한 담론, 또는 노장(老莊)을 숭상하여 세무(世務)를 벗어난 청정(淸淨)한 공리공담(空理空談)을 가리키는데, 특히 동진(東晉) 때 사문(沙門)인 지둔(支遁)을 비롯하여 왕연(王衍) 등이 청담으로 유명하였다.
청담아융(淸談阿戎)
청담(淸談)은 속되지 않은 청아한 이야기를 말하고, 아융은 종제(從弟)의 별칭이다. 남제(南齊) 때 뜻이 청아하고 행검이 고결하기로 이름난 왕사원(王思遠)이 무제(武帝)가 죽어 명제(明帝)를 들여세우는 과정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왕안(王晏)에게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가 후회가 없도록 하라고 권한 적이 있었는데, 그말을 듣지 않았다가 나중에 말하기를 “지난날 아융이 나에게 자제할 것을 권했는데 만일 그말을 들었더라면 어찌 오늘과 같은 영광이 있었겠는가.” 하였다. 왕안은 결국 명제로부터 반역을 꿈꾼다는 의심을 받아 화를 당하고 말았다. 『남사(南史)』 卷二十四 「왕사원전(王思遠傳)」
청도(淸都)
전설 속에 나오는 천제(天帝)가 사는 궁궐을 가리킨다.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다는 곳인데 이는 제도(帝都)를 가리킨다.
청도오운(淸都五雲)
청도(淸都)는 전설상의 천제(天帝)가 사는 궁궐로 항상 오색 구름으로 덮여 있다 한다.
청독(靑犢)
후한 광무제 때 여러 반적(反賊) 중의 하나.
청동(靑童)
선인(仙人)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으로, 즉 선동(仙童)과 같은 뜻이다.
청라(靑螺)
‘부처의 머리’를 말한다.
청란미(靑鸞尾)
대빗자루(竹箒)를 말한다.
청랑간(靑琅玕)
낭간(琅玕)은 대(竹)의 이칭. 봉황(鳳凰)이 주리면 대나무 열매를 먹고 목마르면 천지(天池)의 물을 마신다고 한다.
청랑간(靑琅玕)
푸른 산호주(珊瑚珠)를 말한다.
청려배(靑驢背)
당 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눈 속에 나귀를 타고 매화를 찾으며 시를 애써 지었다.
청려장(靑藜杖)
푸른 명아주 대로 만든 지팡이를 말한다.
청련(靑蓮)
당(唐) 나라 때 시인 이백(李白)이 태어난 고향의 현명(縣名). 그래서 이백은 청련거사(靑蓮居士)라 호하였다.
청련거사적선옹(靑蓮居士謫仙翁)
이백(李白)은 촉(蜀)나라의 청련산(靑蓮山) 아래 살았으며, 장안(長安)에 왔을 때 하지장(賀知章)이 그를 만나, “자네는 천상(天上)에서 잠깐 인간(人間)에 귀양살이로 온 신선이다.” 하였다.
청련궁(靑蓮宮)
불사(佛寺)의 이칭(異稱)이다.
청련시금속(靑蓮是金粟)
청련(靑蓮)은 이태백(李太白)의 호이고, 금속(金粟)은 금속여래(金粟如來)의 준말로 유마힐(肹摩詰)을 뜻하는데, 이태백의 시 가운데 “금속여래는 바로 나의 후신일세[金粟如來是後身].”라는 구절이 있다. 『이태백집(李太白集)』 卷18 「답호주가엽사마문백시하인(答湖州迦葉司馬問白是何人)」
청련우(靑蓮宇)
사찰 건물을 말한다. 불교에서 연꽃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꽃이라 하여 불화(佛花)로 삼기 때문에, 불교와 관련된 사물에는 보통 연꽃을 등장시켜 표현하곤 한다. 절을 연궁(蓮宮)이라 한다.
청렴결백(淸廉潔白)
마음이 맑고 바르며 깨끗하고 희다. 개인적인 이익이나 욕심에 마음이 끌리지 않고 곧고 깨끗함
청루(靑樓)
기생집을 말한다.
청루몽(靑鏤夢)
남조 때 문장이었던 기소유(紀少瑜)가 꿈에 문장 육수(陸倕)가 청루 붓 한 묶음을 주며 “자네는 이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 쓰라.” 하였는데 그 뒤로 문장이 크게 진보되었다. 『남사(南史)』 卷七十二 「기소유전(紀少瑜傳)」
청류(淸流)
청렴결백한 사람을 말한다.
청류몰어이당(淸流沒於李唐)
청류(淸流)는 청렴 결백한 선비들을 뜻하는데, 당(唐) 나라 말기에 주전충(朱全忠)이 청류들을 질시하여 조신(朝臣) 30여 인을 백마역(白馬驛)에서 한꺼번에 죽이어 하수(河水)에 던져버린 고사에서 온 말이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당기(唐紀)」
청륙(靑陸)
달이 운행하는 길이다. 『문선(文選)』 「안연지삼월삼일곡수시서(顔延之三月三日曲水詩序)」 주에 “입춘(立春)ㆍ춘분(春分) 때에 달이 동청도(東靑道)로 행하는데, 청륙은 바로 동도이다.” 하였다.
청릉(靑綾)
① 꽃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는 비단의 직조물(織造物)로, 한(漢) 나라 때 상서랑(尙書郞)이 건례문(建禮門)에서 숙직할 때 지급했다는 고급 잠옷이다. 청선(靑璿)이란 말과 같다.
② 푸른 깁으로 만든 이불로, 궁중에서 숙직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한(漢) 나라 때 상서랑(尙書郞)이 번을 서면 푸른 깁으로 만든 이불(靑綾被)과 흰 깁으로 만든 이불(白綾被), 또는 비단 이불(錦被)을 주었던 데서 유래한다.
청릉지(靑綾地)
관각(館閣)을 가리킨다. 한(漢) 나라 때 상서랑(尙書郞)이 건례문(建禮門)에서 숙직할 때 푸른 비단 잠옷(靑綾被)을 지급했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청릉피(靑綾被)
청릉(靑綾)으로 만든 이불을 말한다. 한관의(漢官儀)에 의하면, 상서랑(尙書郞)이 입직(入直)하면 청릉피(靑綾被)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청리첩(靑李帖)
진(晉) 나라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청리내금(靑李來禽)’이라 써서 서첩(書帖)을 만들었다. 청리는 오얏, 내금은 능금이다.
청림(靑林)
천자(天子)의 어원(御苑)을 말한다. 『문선(文選)』 張衡, 사현부(思玄賦)
청명(靑冥)
① 높은 하늘 위의 선경과 같은 제왕의 궁정(宮廷)을 말한다.
② 옛날 보검(寶劍)의 이름이다.
③ 청천(靑天).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명(明) 나라 십주(十洲) 구영(仇英)이 그린 그림 이른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청명상하도 발문을 보면 “도읍의 부성(富盛)은 송(宋)의 변경(汴京)만한 데가 없고, 계절의 번화함은 청명(淸明)만한 때가 없고, 그림을 섬묘하게 그리기는 구영(仇英) 같은 이가 없다[都邑富盛, 莫如汴宋時節, 繁華莫如淸明, 畵品之最纖竗者, 莫如仇英].” 하였으니, 이 그림은 구영이 청명 때 변경의 번화한 풍경을 그린 것이다.
청몽승저(淸夢乘軧)
마음이 고상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위개(衛玠)가 악광(樂廣)에게 꿈이 무엇인가 묻자, 악광이 “생각에서 온 것이다.” 하니, 위개가 “형신(形神)이 아무 사물을 접하지 않고 꾸는 꿈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므로 악광이 “이것은 원인(因)에서 온 것이다. 일찍이 수레를 타고 쥐구멍에 들어가서 철저(鐵杵)를 씹는 꿈을 꾸어 보지 못했다.” 하였는데, 이는 곧 아무 생각도 없고 원인도 없기 때문이라는 데서 온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
청묘(淸廟)
① 『시경(詩經)』 주송(周頌)의 편명(篇名)으로, 주공(周公)이 문왕(文王)의 사당에 제사할 때 드린 시(詩)이기도 하다.
② 종묘(宗廟) 혹은 그곳에서 연주하는 악장(樂章)을 가리킨다. 황종은 12율(律) 가운데 양률(陽律)에 속하는 여섯 종류의 율 중 첫 번째 율이고, 대려는 여섯 음률(陰律) 중 네 번째 율로서, 음악이나 시문이 장엄하고 정대한 것을 비유할 때 곧잘 병칭해서 쓴다.
③ 청정(淸淨)한 사당이란 뜻으로 태묘(太廟) 즉 종묘(宗廟)를 말한다. 『시경(詩經)』 주송(周頌)에 “아, 심원한 청묘, 엄숙하고 화평하며 밝은 공경과 제후이다[於穆淸廟 肅雝顯相]” 하였는데, 이는 주공(周公)이 백관을 거느리고 문왕(文王)에게 제사드린 시이다.
청묘슬(淸廟瑟)
① 『시경(詩經)』 주송(周頌) 「청묘(淸廟)」 시에 가락을 맞춘 비파인데, 줄은 굵고 줄구멍이 넓어서 여운(餘韻)이 길다. 『예기(禮記)』 「악기(樂記)」
② 주 문왕(周文王)의 종묘(宗廟)이므로 즉 문왕의 덕을 찬미한 아악(雅樂)을 말한다.
청묘현(淸廟絃)
『시경(詩經)』 주송(周頌) 「청묘(淸廟)」에 가락을 맞춘 비파로 줄이 굵고 구멍이 넓어서 여운이 길다. 『예기(禮記)』 「악기(樂記)」
청문(靑門)
① 『백악천시후집(白樂天詩後集)』 권10 권주14수(勸酒十四首)의 “어디서도 술 잊긴 어려운건데 청문에서 송별이 많기도 하네[何處難忘酒 靑門送別多].”에서 나온 것으로, 한(漢) 나라 장안성(長安城)의 동남문의 이름인데 서울의 성문을 말한다.
② 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으로, 도성의 동쪽 문을 말한다.
청문과(靑門瓜)
한(漢) 나라 때 은자(隱者) 소평(邵平)이 청문(靑門) 밖에 심었던 오이를 말하는데, 이를 동릉과(東陵瓜)라고도 한다.
청문과지(靑門瓜地)
진(秦) 나라 때 소평(召平)이 동릉후(東陵侯)를 지내다가 진 나라가 망하자 평민이 되어 장안성(長安城)의 청문 밖에 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한다.
청문노방류(靑門路傍柳)
옛날 장안(長安) 동남쪽의 문 색깔이 파랗기 때문에 청문(靑門) 혹은 청성문(靑城門)이라고 불렀는데, 송별하는 사람들이 청문 밖 패교(覇橋)까지 와서 그곳의 버들가지를 꺾어 작별의 정표로 주었던 고사가 전한다. 『삼보황도(三輔黃圖)』 「교(橋)」
청문무금적(靑門撫金狄)
동한(東漢) 헌제(獻帝) 건안(建安) 연간에 계자훈(薊子訓)이라는 선인(仙人)이 장안(長安) 동문 밖에서 진시황(秦始皇) 때 만들어진 적인 동상(狄人銅像)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당시에 이 동상을 만드는 것을 본 뒤로 벌써 5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청문연류(靑門煙柳)
당 나라 이상은(李商隱)이 지은 시 ‘낙유원(樂遊原)’의 “청문 밖엔 연류가 하늘거리고 자각에는 운송이 춤을 추누나[靑門弄煙柳 紫閣舞雲松]”에서 나온 것으로, 청문은 한(漢)나라 장안성(長安城)의 동남문인데 우리나라의 도성문을 가리키고, 연류는 수양버들을 먼 곳에서 바라볼 때 안개처럼 보인다 하여 생긴 말이다.
청문종과(靑門種瓜)
청문(靑門)은 한(漢) 나라 장안성(張安城) 동남쪽에 있던 문 이름인데, 진(秦) 나라 동릉후(東陵侯) 소평(邵平)이 진 나라가 망한 뒤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여기에서 오이를 심어 가꾸며 살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청문학고후(靑門學故侯)
청문(靑門)은 한 나라 장안성(長安城)의 동남쪽에 있는 문을 말하고, 고후(故侯)는 옛 진(秦) 나라 때의 동릉후(東陵侯) 소평(邵平)을 이르는데, 동릉후 소평이 진 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포의(布衣)가 되어 장안성의 청문 밖에 오이를 재배하면서 여생을 보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청문과(靑門瓜) 또는 동릉과(東陵瓜)라고도 한다.
청방(靑駹)
중국에서 볼 때, 조선은 동방이요 동방은 청색(靑色)에 해당하므로, 전하여 조선의 말을 이른다.
청백리(淸白吏)
청렴 결백한 관리.
청백분섬섬(靑白分覢覢)
위진(魏晋) 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 그는 좋아하는 자가 찾아가면 청안(靑眼)으로 대하고, 싫은 자가 찾아가면 백안시(白眼視)했다 한다.
청백안(靑白眼)
① 청안은 반가이 맞이하는 눈길이며 백안은 그의 반대로 싫어하는 눈초리. 진(晉) 나라 완적(阮籍)이 상중(喪中)에 있을 적에 혜강(嵇康)의 형 혜희(嵇喜가 조문을 오자 백안으로 대했고 혜강이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오자 청안으로 대한 데서 온 것이다. 『진서(晉書)』 「완적전(阮籍傳)」
② 호오(好惡)를 분명히 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끊어 버리는 태도를 말한다. 진(晉) 나라 완적(阮籍)이 반가운 이를 만나면 청안(靑眼)으로 대하고 어설픈 사람을 만나면 백안시(白眼視)했던 고사가 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간오(簡傲)」
청백전가(淸白傳家)
한(漢) 나라 양진(楊震)이 말하기를, “내가 자손에게 재물을 주지 않는 대신 청백리(淸白吏)의 자손이란 명예를 전하여 주리라.” 하였다. 대대로 청백한 것을 청백전가(淸白傳家)라 한다.
청변(靑邊)
토란의 일종으로 크기가 병(甁)만하다 한다. 『광지(廣志)』
청부(靑蚨)
구멍 뚫린 동전(銅錢), 즉 돈을 말한다. 청부충(靑蚨蟲) 모자(母子)의 피를 동전에 발라 놓으면, 어디에 있든 서로 날아와 같은 장소로 모여든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수신기(搜神記)』 卷13
청부현(靑鳧縣)
청부(靑鳧)는 청송(靑松)의 고호(古號)이다.
청비(淸碑)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를 가리킨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淸太宗)이 인조(仁祖)의 항복을 받고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기 위해 지금의 송파(松坡)에 세운 것으로, 표면 왼쪽에 몽고문(蒙古文), 오른쪽에 만주문, 뒤쪽에는 한문으로 씌어 있다.
청빈(淸貧)
마음이 깨끗하면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물들지 않고 자연히 다른사람보다 생활은 가난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자신의 지조(志操)를 굽히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청빈(靑蘋)
부평초와 같은 수초(水草)인데, 송옥(宋玉)이 “夫風生於地 起於靑蘋之末”이라고 읊은 이래로 바람과 관련된 시어(詩語)로 쓰이게 되었다. 『문선(文選)』 「풍부(風賦)」
청사(靑詞)
초제(醮祭)에 올리는 축문(祝文)이다.
청사(靑蛇)
칼 이름이다.
청사간편(靑絲簡編)
푸른 실로 죽간(竹簡)을 엮어 만든 책, 곧 고대의 사책(史冊)을 말한다.
청사기사허(靑蛇氣射虛)
청사(靑蛇)는 명검의 이름이다. 허성은 가을철의 시기를 바로잡는다는 별 이름으로,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나온다. 옛날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명검이 땅에 묻혀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를 내쏘았다는 전설이 있다. 『진서(晉書)』 卷36 「장화전(張華傳)」
청사백옥반(靑絲白玉盤)
청사는 푸른 실처럼 생긴 부추나물(韭菜)을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입춘시(立春詩)에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운행되고 나물은 섬섬옥수 거쳐서 청사가 보내지도다[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 한 데서 온 말이다. 『두소릉집(杜少陵集)』 卷十八
청산유수(靑山流水)
푸른 산에 흐르는 물. 청산에 흐르는 물처럼 거침없이 말을 잘한다. 막힘 없이 말을 썩 잘함
청산일발(靑山一髮)
주권(周權)의 시에 “靑山一髮認邳州蕭條暮上魚豚市”가 있음
청살(靑殺)
사책(史冊)을 뜻하는 것이다.
청삼(靑衫)
① 당(唐) 나라 때 품계(品階)가 낮은 하급 문관이 입던 관복으로,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된 백거이(白居易)의 고사에 연유하여, 실의에 빠진 관리를 표현할 때 보통 ‘청삼사마(靑衫司馬)’라고 한다. 백거이(白居易)의 「비파인(琵琶引)」에 나오는 “座中泣下誰最多 江州司馬靑衫濕”이라는 시구는 특히 유명하다.
② 보통 서생(書生)을 뜻하는데, 청색 옷을 입었던 문관 8품과 9품의 관직을 가리키기도 한다.
청상(淸賞)
‘경치 좋은 산수(山水)를 유람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청상(靑裳)
망우초(忘憂草), 즉 원추리의 별칭이다.
청상(靑箱)
집안에 대대로 전해지는 학문을 이른다. 유송(劉宋) 때 왕준지(王准之)의 집은 대대로 강좌(江左)의 옛 일을 잘 알아서 이를 기록하여 푸른 상자(靑箱)에 넣어 두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를 일러 ‘왕씨(王氏)의 청상학(靑葙學)’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송서(宋書)』 卷六十
청상(淸商)
청상곡(淸商曲)을 말한다.
청상곡(淸商曲)
가을에 속하는 상성(商聲)의 맑고도 슬픈 노래를 말한다.
청상악(淸商樂)
고대 한족(漢族)의 민간 음악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畫角三聲刁斗曉 淸商一部管絃秋 他時麟閣圖勳業 更合何人居上頭”라는 구절이 있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 卷17, 河陽石尙書 破迴鶻 迎貴主 過上黨 射鷺𪆁 繪畫爲圖 猥蒙見示 稱歎不足 以詩美之
청상전가(靑箱傳家)
『송서(宋書)』 「왕준지전(王准之傳)」에, 증조 표지(彪之) 때부터 박학한 지식과 사실(史實) 등을 푸른 궤(靑箱)에 넣어 대대로 전수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왕씨 청상학(王氏靑箱學)’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청상조(淸商調)
청상(淸商)은 청량(淸涼)한 가을 바람을 말한다.
청색심전구(淸塞心傳句)
정곡(鄭谷)의 시에 “靈一心傳淸塞心 可公吟後楚公吟”이라 하였다.
청서(靑鼠)
간지(干支)를 오색(五色)과 물상(物像)에 맞춘 것으로, 갑자(甲子)를 말한다.
청석(靑石)
충렬(忠烈)을 격려해 지은 시의 제목. 백장경집 풍유(諷諭)에 보인다.
청석령(靑石嶺)
요동의 봉황성(鳳凰城)에서 서북쪽으로 195리 되는 곳에 있는 고개로, 푸른 돌이 많아 청석령이라 칭한다고 한다.
청성(淸聖)
순결한 성인으로, 백이(伯夷)ㆍ숙제를 가리킨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下에, “백이는 성인 가운데 순결한 자이다[伯夷, 聖之淸者也].” 하였다.
청성노(靑城老)
권호문(權好文)을 가리킨다.
청소로기회(淸嘯虜騎廻)
진(晉) 나라 유곤(劉琨)이 병주 자사(幷州刺使)가 되어 진위장군(振威將軍)의 직함을 띠고 있을 때 오랑캐가 노략질을 자행하는 진양(晉陽)으로 가서 전투를 벌이던 중 오랑캐 기병에게 성이 겹겹으로 포위되어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유곤은 달빛 아래 누각에 올라가 청아하게 휘파람을 불자 적들이 그 소리를 듣고 처량한 생각에 장탄식을 하였고, 다시 한밤중에 피리를 불자 눈물을 흘리며 고향땅을 간절히 그리워하였고, 새벽녘에 피리를 또 불자 적들은 모두 포위를 풀고 달아났다고 한다. 『진서(晉書)』 卷六十二 「유곤전(劉琨傳)」
청송(聽松)
조선 명종(明宗) 때 학자 청송당(聽松堂) 성수침(成守琛)을 말한다. 그의 집이 북악산 기슭에 있었다.
청송서원(靑松誓援)
신의(信義)의 우정을 맺음을 말한다. 『문선(文選)』 「유준광 절교서(劉峻廣絶交書)」에 “청송을 더위잡아 마음을 맹세하고 백수(白水)를 가리켜 신의를 표한다.” 하였다.
청송자(靑松子)
권호문(權好文)을 가리킨다.
청송후조(靑松後彫)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뒤에 시들어짐을 아나니라[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논어(論語)』 「자한(子罕)」 절개가 굳음을 비유한 공자의 말이다.
청쇄(靑瑣)
① 청색 꽃무늬로 장식한 황궁(皇宮)의 문을 말한다. 한 나라 때 궁궐문에 쇠사슬 같은 모양을 새기고 푸른 칠을 한 데서 유래된 말이다.
② 한(漢) 나라 때의 궁궐문 이름으로, 일반적으로 조정(朝廷)을 지칭한다.
청쇄달(靑瑣闥)
청쇄문(靑瑣門). 한대(漢代)의 문 이른다.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이 날이 저물면 청쇄문에 와 입대(入對)하였다. 『운회(韻會)』
청쇄문(靑鎖門)
한대(漢代)의 궁문(宮門) 이른다. 한 나라 때에 궁문에다 쇠사슬 같은 모양을 새기고 푸른 칠을 했으므로 이름인데 급사ㆍ황문(黃門) 등이 아침과 저녁으로 대기해 있다가 진알(進謁)하던 곳이다. 『한구의(漢舊儀)』 上
청승(靑蠅)
쉬파리. 아첨을 떨며 참소를 잘하는 소인배를 가리킨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청승(靑蠅)」에 “쉬파리 윙윙대며 울타리에 앉았나니, 점잖으신 군자여 참언 믿지 말지어다[營營靑蠅 止于樊 豈弟君子 無信讒言].”라고 하였다.
청승(靑繩)
푸른색의 노끈. 전하여 임금이 있는 곳을 말한다. 왕건(王建)의 온천궁행(溫泉宮行)에 “시월 초하룻날 천자가 오셨는데, 푸른 끈 친 어로에는 먼지 한 점 없었네[十月一日天子來 靑繩御路無塵埃].” 하였다.
청승부기(靑蠅付驥)
남의 도움을 힘입어 공명(功名)을 이루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외효전(隈囂傳)」에 “파리는 수보(數步) 이상을 날지 못하나, 곧 준마의 꼬리에 의탁하면 무리에서 뛰어날 수 있다.” 하였다.
청시(淸時)
평화스러운 때. 즉 태평 세대의 뜻이다.
청신(靑薪)
아직 마르지 않은 생나무 땔감.
청신(靑神)
사천성(四川省) 미산현(眉山縣) 남쪽에 있는 지명(地名)이다.
청신등롱(淸晨登隴)
조식(曹植)의 시에 “청신등롱수(淸晨登隴首)”라는 유명한 글귀가 있다.
청신소두(淸晨搔頭)
‘새벽에 머리를 빗는다’는 뜻이다.
청심괴람(靑深愧藍)
푸른빛이 진하여 쪽빛이 무색하다. 푸른빛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도 더 푸르다는 것으로 즉 후진이 선생을 앞지른다는 뜻이다.
청심루(淸心樓)
신륵사(神勒寺) 대안(對岸) 여주(驪州)에 있다. 제가(諸家)의 명제영(名題詠)이 많다.
청심칠자(淸心七字)
요선(堯仙)이 지은 시를 말한다.
청아(菁莪)
‘무성한 쑥과 같이 많은 人材를 교육한다’는 말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의 편명을 줄인 말이다. 청청자아 서(序)에 “청청자아는 인재 기르는 것을 찬미한 노래다.”라고 하였다. / 인용: 海東遺珠序(홍세태)
청아(靑娥)
아리따운 소녀, 즉 관기(官妓)를 가리킨다.
청아낙수(靑蛾落水)
청아(靑蛾)는 눈썹먹으로 그린 푸른 눈썹으로 미인을 말한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할 때 백제의 많은 궁녀들이 부소산(扶蘇山) 서쪽 끝의 절벽에서 백마강에 몸을 던져 빠져 죽은 일을 말한다.
청아시(菁莪詩)
『시경(詩經)』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이 있는데, 그 서(序)에 “인재를 육성함을 즐겁게 여기는 시다.” 하였다.
청안(靑眼)
① 반갑게 맞는다는 뜻이다. 『진서(晉書)』 「완적전(阮籍傳)」에 “완적(阮籍)이 상주가 되었을 때 혜희(嵇喜가 예절을 갖추어 조문하니 완적이 흘기는 눈(白眼)으로 대하고 혜강(嵇康)이 술과 거문고를 갖고 찾아오니 완적이 기뻐하여 반가운 눈(靑眼)으로 맞이했다.” 하였다.
② 청ㆍ백안(靑白眼)을 이름인데, 무릇 안청(眼靑)이란 빛이 푸르고 그 곁의 빛은 희므로 기쁠 때에 바로 푸른빛이 나타나고, 성이 날 때에 흘겨보게 되면 흰빛이 나타나는 것이다. 완적은 예교(禮敎)에 구속되지 않고 청ㆍ백안을 잘하여, 예속(禮俗)의 선비를 보면 백안으로 대하고, 혜강이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오면 기뻐하여 청안으로 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세상이 사람을 중시하는 것은 청안이라 이르고 사람을 경시하는 것을 백안이라 이른다.
청야(淸野)
전쟁 때에 적에게 편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들판에 있는 풀과 나무 및 곡식이나 인가까지도 모두 제거해서 들판이 텅 비게 하는 것이다.
청약(靑蒻)
‘푸른 약초를 엮어 만든 삿갓’을 말한다. / 유의어: 청약립(靑蒻笠).
청양(靑陽)
봄의 별칭이다.
청양곡(靑陽曲)
한(漢) 나라 때 교사가(郊祀歌)의 편명(篇名)이다.
청양관(靑陽館)
평양성(平壤城) 안에 있는 객사(客舍) 이른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장(倭將) 소서비(小西飛)가 평양을 점령하자 김응서(金應瑞)는, 소서비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 평양 기생 계월향(桂月香)과 밀계(密計)하고 밤중에 소서비가 잠이 든 틈을 이용하여 장중(帳中)에 들어가 그의 목을 베었다. 그런데 적장(敵將)은 목이 없이도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아 기둥을 쳐서 칼자국이 났다. 김응서는 소서비의 머리를 꿰어차고서, 계월향과는 같이 적진에서 탈출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할 수 없이 계월향을 죽이고 혼자 성(城)을 넘어 자기 진영으로 온 것을 말한다. 『평양지(平壤志)』, 『병자록(丙子錄)』
청양좌개(靑陽左介)
천자가 정월에 거처하는 집을 말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천자가 정월에는 청양좌개에 거처한다.” 했는데, 그 주에 “명당(明堂) 동쪽에 있는 것이 청양태묘(靑陽太廟)이고, 태묘의 남쪽에 있는 것이 청양우개(靑陽右介)이고, 태묘의 북쪽에 있는 것이 청양좌개다.” 하였다.
청연각(淸燕閣)
고려(高麗) 예종(睿宗) 때 궁중에서 도서를 비치하고 학사(學士)들과 조석으로 경서(經書)를 강론하던 곳.
청연화중생(靑蓮火中生)
파르스름한 불꽃들이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파란 연꽃에 비유한 것을 말한 것이다.
청열석(淸裂石)
‘피리 소리가 청아하다’는 뜻이다. 국사보(國史補)에 “이주(李周)가 연죽(煙竹)을 가지고 피리를 만들었는데, 철석(鐵石)같이 견고하였다. 달밤에 배를 띄우고 불면 그 소리가 청아하면서 웅장하여 산석(山石)도 깨어질 정도였다.” 하였다.
청영(請纓)
결박 지울 밧줄을 청한다는 말로, 스스로 전쟁터에 나가 적을 격파하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뜻이다. 『한서(漢書)』 권64 종군전(終軍傳)에 한(漢) 나라 간의대부(諫議大夫) 종군(終軍)이 왕에게 “긴 끈(長纓)을 주신다면 제가 반드시 남월왕(南越王)을 묶어다가 대궐 아래까지 데려오겠습니다.”고 자청(自請)한 데서 온 말이다. 후인(後人)들은 이로 인해, 군(軍)에 투신하여 나라에 보답하는 것을 청영(請纓)이라고 쓴다.
청영계남월(請纓繫南越)
한(漢) 나라의 종군(終軍)이 남월왕을 결박해 대궐에 바치겠으니 긴 밧줄을 달라고 청한 고사인데, 뒤에는 군대에 투신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한서(漢書)』 「종군전(終軍傳)」
청영지(請纓志)
군대에 투입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종군(終軍)이, 긴 끈을 주면 반드시 남월왕(南越王)을 결박하여 궐하(闕下)에 바치겠다고 지원한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종군전(終軍傳)」
청오(靑烏)
① 까마귀로, 태양을 가리킨다. 태양 안에는 발이 셋 달린 까마귀가 산다고 한다.
② 풍수가(風水家)의 술(術)을 이른다. 진(晉) 나라 곽박(郭璞)의 장서(葬書)에서 한(漢) 나라 청오선생(靑烏先生)의 장경(葬經)의 설(說)을 많이 인용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청오사(靑烏士)
풍수지리가(風水地理家)를 말한다.
청오술(靑烏術)
옛날 팽조(彭祖)의 제자 청오가 지리(地理)를 잘 알았다는 데서, 즉 감여가(堪輿家)의 술수(術數)를 이른 말이다.
청오술(靑烏術)
진(晉) 나라 곽박(郭璞)의 장서(葬書)로서, 즉 풍수지리(風水地理)에 관한 술서(術書)인 청오경(靑烏經)이 있다.
청옥안(靑玉案)
고시(古詩)의 시어(詩語)이다. (漢) 나라 장형(張衡)의 ‘사수시(四愁詩)’에 나오는 “何以報之靑玉案”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인데,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도 “試吟靑玉案 莫羨紫羅囊”이라는 구절이 있다.’案’은 옛 ‘椀’자이다.
청옥주담(聽玉麈談)
진대(晉代)의 고승(高僧) 축도생(竺道生)이 호구산(虎丘山)에서 돌멩이들을 모아 놓고 열반경(涅槃經)을 강의하며 ‘실유불성(悉有佛性)’의 법문을 펼치자, 돌멩이들이 부처의 본의(本意)에 맞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연사고현전(蓮社高賢傳)』 「도생법사(道生法師)」
청완적안(靑阮籍眼)
진(晉)의 완적이 사람을 대할 때 지기(知己)는 푸른 눈으로 보고 속인(俗人)은 흰 눈으로 본 데서 나온 말이다.
청요직(淸要職)
청렴해야 하는[淸] 중요한[要] 자리[職]라는 뜻이다.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관원 + 6부의 전랑(정랑, 좌랑) + 예문관 한림이 여기에 속한다.
왕과 대신들을 대상으로 간쟁과 탄핵을 제기했으며, 피혐과 서경 등의 제도적 장치를 활용하여 왕권과 재상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 이조전랑(吏曹銓郞)은 직급은 정5품에서 종6품 밖에 안 됐지만 대신인 이조판서를 견제하기 위해 인사권을 이조전랑에게 위임한 탓에 실세 자리가 되었다. 이 이조전랑 자리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최초의 붕당인 동인과 서인이 출현하는 도화 선이 되었다. 특히 16세기 이후 언론을 담당하고 있는 삼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와 청요직 인사를 주도하던 이조 전랑의 힘이 커졌다. 하지만 붕당 갈등이 심해져 청요직 자체가 정쟁 도구로 전락하자 되레 이들이 당파 간 갈등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유수원은 대간과 홍문관이 삼사라는 이름으로 연대해 언론 기능을 독점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삼사뿐 아니라 모든 관직에서 일의 경중에 따라 임금께 직접 진술할 수 있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 정약용의 ‘청요직 망국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숙종은 왕권을 강화시키고자 이조 전랑이 후임자를 스스로 천거해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자대권(自代權)’을 없앴다. 영조는 이조 전랑이 청요직 인선을 주관하는 ‘통청권(通淸權)’을 깨뜨려 이조 전랑의 힘을 더욱 약화시켰다. 정조 역시 홍문관 관원인 응교의 임명 순서를 홍문록에 들어간 순서에 따라 오르게 명했다.
청우(靑牛)
① 노자(老子)가 지은 『도덕경(道德經)』를 말한다. 노자가 「도덕경(道德經)」를 짓고 서쪽으로 갈 때 청우를 타고 갔으므로, 이를 인해 노자의 대칭(代稱)으로 쓴다.
② 청우도사(靑牛道士)의 약칭으로 한(漢) 나라 때 방사(方士) 봉군달(封君達)이 항상 푸른 소를 타고 다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곧 도사를 가리킨다.
청우도유사(靑牛渡流沙)
노자(老子)는 주(周)의 주하사(柱下史)로 있다가 세상 어지러움을 꺼려 그 벼슬을 내놓고 청우차(靑牛車)를 타고 함곡관(函谷關)을 지나 유사(流沙)를 건너 대진(大秦)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청우와노령(靑牛臥老苓)
청우(靑牛)는 검은 털의 소, 혹은 신선들이 타고 다닌다는 소. 이백(李白)의 시에 “꽃이 피니 청우가 누웠고, 소나무가 높으니 백학이 잠들었다[花暖靑牛臥 松高白鶴眠].” 하였다. 복령은 오래된 소나무 뿌리에서 기생한 한방재(漢方材)이다.
청우화노석(靑牛化老石)
청우는 푸른 소인데 노자(老子)는 청우를 타고 진(秦) 나라의 함곡관(函谷關)을 지났다. 이때 청우를 매었던 곳에는 청우수(靑牛樹)가 있는데, 청우가 돌로 화했다 한다.
청운(靑雲)
높은 벼슬에 오른 것을 비유한 말이다. 청운지사(靑雲之士)의 준말로, 학덕(學德)이 당세에 가장 높거나 고위 고관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청운군(靑雲君)
심명세(沈明世)의 봉호(封號)로, 심광세의 아우이다.
청운만리(靑雲萬里)
푸른 구름 일만 리. 곧 원대한 포부나 높은 이상을 이르는 말
청운지사(靑雲之士)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백이 숙제가 비록 훌륭했다 하더라도 공자가 칭찬해 주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 행실을 닦고 이름을 세우려고 하는 평민들의 경우, 청운지사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후세에까지 그 이름이 전해질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여기서 청운지사는 은근히 사마천(司馬遷)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청운지지(靑雲之志)
뜻이 고결한다. 출세하고자 하는 뜻이다.
청원(淸源)
바람이 모아져 있는 창고.
청원루(淸遠樓)
평양부 서쪽 9리 양명포(揚命浦) 위에 있는데, 대안(對岸)에 돌을 쌓고 그 위에 다락을 지었는데, 그 밑으로 통할 만하다.
청위종남(淸渭終南)
청위(淸渭)는 중국 섬서(陝西) 서안시(西安市) 곁을 흐르는 위하(渭河)로 물이 맑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종남(終南)은 역시 서안시 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서안시는 한(漢)ㆍ당(唐)을 비롯한 역대 많은 왕조의 도읍지 장안(長安)인데, 흔히 우리 나라 한양과 비유된다.
청유(靑油)
청유막(靑油幕)의 준말로, 장수의 막부(幕府)를 말한다. 막부(幕府)를 청유막 혹은 줄여서 청유(靑油)나 유막(油幕)이라고도 한다.
청유막(靑油幕)
장군의 막부(幕府)를 말한 것이다. 즉 종사관(從事官)들과 작전을 상의하는 장군의 장막(帳幕)을 말한다. 장군의 막료 즉 종사관을 흔히 청유사(靑油士)라고 말한다.
청음(淸陰)
학자이기도 하고 정치가이기도 한 김상헌(金尙憲)의 호이다. 그는 인조(仁祖) 때 좌의정으로 병자호란을 만나 청(淸)과의 굴욕적인 화의를 반대하다가 화의가 성립된 뒤에 심양(瀋陽)으로 잡혀가서 3년 간의 억류 생활을 하였다.
청음경노학지시(淸音警露鶴知時)
8월이 되어 이슬이 내리면 학이 소리를 내어 울면서 살기 좋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고 서로 경계한다고 한다. 「예문유취(藝文類聚)」 卷90
청의동자(靑衣童子)
옛날 전진왕(前秦王) 부견(苻堅)이 사람들을 물리치고 혼자서 사면령(赦免令)을 쓰고 있었는데, 쉬파리(靑蠅)가 한 마리 날아들어와 쫓으면 다시 오곤 하였다. 조금 뒤에 사람들이 사면령 내릴 것을 전부 알고 있으므로, 사실을 알아보니 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길거리에 사면령이 내렸다고 소리치고 다녔다 했다. 그제서야 부견은 전의 쉬파리가 바로 청의동자로 화했음을 알았다 한다. 『백공육첩(白孔六帖)』
청의유욕(靑衣幽辱)
청의(靑衣)는 낮은 관리나 평민이 입는 옷이다. 진(晉) 나라 6대 황제인 회제(懷帝)가 유총(劉聰)에게 포로로 잡혀서 푸른 옷을 입고 술을 따르는 치욕을 당했다. 『진서(晉書)』 卷5 「효회제기(孝懷帝紀)」
청의이환어황포(靑衣已換於黃袍)
하인의 의복인데 진(晉) 나라 회제(懷帝)가 유총(兪聰)에게 포로가 되어 청의를 입고 연회에서 술을 따랐다. 여기서는 휘종과 그 아들 흠종(欽宗)이 모두 금 나라에 잡혀 간 것을 말한다.
청의주(靑衣主)
망국(亡國)의 임금을 가리킨다. 동진(東晉)의 효회제(孝懷帝)가 평양(平陽)에 몽진(蒙塵)했을 때 유총(劉聰)이 큰 잔치를 열고는 회제에게 청의(靑衣)를 입혀 술을 따르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효회제기(孝懷帝紀)」
청이(靑姨)
서리 귀신인 청녀(靑女)를 전용하여 쓴 것이다.
청이불탁(淸而不濁)
깨끗하기만 하고 탁하지 않아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만 굴원(屈原)을 가리킨 말이다. / 유의어: 회석(懷石)
청자(靑紫)
한 나라 제도에, 공후(公侯)는 자주색 인끈을 쓰고 구경(九卿)은 푸른 인끈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공경(公卿)의 지위를 일컫는 말이다.
청작(靑雀)
신선의 사자(使者)를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갑자기 궁전 앞에 청작이 날아들자, 동방삭(東方朔)이 말하기를 “서왕모(西王母)가 오려는 것이다.” 하였는데, 과연 조금 뒤에 서왕모가 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청잠(靑岑)
선산(仙山)의 이름이다.
청재(淸齋)
①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정성스러운 뜻을 표하는 것을 말한다.
② 진시(辰時)에 물 한 잔을 마시고 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음을 일러 청재(淸齋)라 한다고 한다. 『석씨요람(釋氏要覽)』
청전(靑田)
① 산 이름인데 밭에서 청지(靑芝)가 나고 학의 서식처(棲息處)라 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영가군기(永嘉郡記)에 “목계(沐溪)의 들 청전(靑田)에 백학(白鶴) 한 쌍이 살았는데 매년 새끼를 쳐서 키워 떠나 보내고 어미 한 쌍만 그대로 남아서 살았다. 정갈하고 흰 빛이 사랑스러웠다.” 하였다.
② 학이 나는 고장의 이름이다. 초학기(初學記) 제30권에, “수목계(洙沐溪)가 있는데, 청전(靑田)에서의 거리가 9리이다. 이 가운데 백학(白鶴) 한 쌍이 살면서 해마다 새끼를 낳는데, 새끼들은 다 자라면 모두 떠나가고 오직 어미백학 한 쌍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색깔이 아주 희어서 사랑스러운바, 이는 신선이 기르는 학이라고 한다.” 하였다.
청전(靑氈)
① 청전 구물(靑氈舊物)의 준말로, 벼슬살이하던 집안의 구업(舊業)이나 유물을 말한다. 진(晉) 나라 왕헌지(王獻之)의 집에 도둑 떼가 들어 몽땅 털어가려 하자, 왕헌지가 침상에 그대로 누워 있다가 “푸른 담요는 우리 집안의 옛 물건이니 남겨 두지 않겠는가.(靑氈是我家舊物 可特置否)”라고 하자, 도둑들이 놀라 도망쳤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청빈한 선비의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는 변변찮은 재물을 가리킨다. 『진서(晉書)』 「왕헌지전(王獻之傳)」
② 푸른색의 담요인데, 벼슬하는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물건이란 말로, 대대로 벼슬자리를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제70권에, “왕자경(王子敬)이 재실(齋室) 안에 누워 있을 적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훔쳤는데, 온 방 안의 물건을 다 훔치도록 자경은 누운 채로 가만히 있다가 도둑이 탑(榻) 위로 올라가서 훔칠 물건을 찾으려고 하자 왕자경이 소리를 치면서 말하기를, ‘석염(石染)과 청전(靑氈)은 우리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오는 물건이니 특별히 놔둘 수 없겠는가?’ 하였다. 이에 도둑이 물건을 놓아둔 채 도망쳤다.” 하였다.
청전(靑錢)
① 당(唐) 나라 장천(張薦)의 조부 장작(張鷟)은 재주가 뛰어나 여러 차례 과거에 모두 갑과(甲科)로 뽑히니 원외랑(員外郞) 원반천(員半千)은 자주 공경(公卿)들에게 “장작의 문장은 마치 청동전(靑銅錢)과 같아 만번 시험보면 만번 합격한다.” 하니, 사람들은 그를 청전 학사(靑錢學士)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것이다. 『신당서(新唐書)』 「장천전(張薦傳)」
② 청동전(靑銅錢)을 가리키는 말이다.
청전선(靑錢選)
푸른 동전(銅錢)을 여러 개 모아도 모양이 똑같다는 말이다. 서언고사(書言故事) 문장류(文章類)에 “여러 번 과거를 보아 번번이 합격하는 글을 청전만선(靑錢萬選)이라 한다.” 하였다.
청전업수왕(靑氈業守王)
옛날 왕자경(王子敬)이 방에 누워 있었는데, 도둑이 들어 왕자경의 침상을 뒤지려 하므로, 꼼짝 않고 누워만 있던 왕자경이 큰 소리로, “이 청전(靑氈)은 우리 집 세전의 구물(舊物)인데, 특별히 남겨둘 수 없겠소?”하자, 도둑들이 놀라서 그냥 두고 달아났다 한다. 청전은 푸른 빛깔의 털 담(毯)을 말하는데, 사환가(仕宦家)의 세전지물(世傳之物)이나 선대의 가업을 청전고물(靑氈故物)이라 한다.
청전작(靑錢鷟)
당(唐) 나라 장작(張鷟)이 글을 잘 지으니 원반천(員半千)이 그의 글을 “청동전(靑銅錢) 같아서 가려내고 추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칭찬하니, 그때 사람들이 장작을 청전학사라고 불렀다.
청전질(靑田質)
중국 영가군(永嘉郡)의 청전(靑田) 땅에서 생산된다는 유명한 학(鶴)을 말한다.
청전학사(靑錢學士)
문장이 훌륭한 선비를 말한다. 『당서(唐書)』 「장천전(張薦傳)」에 “장천(張薦)의 조부 족(鷟)은 자가 문성(文成)인데 여덟 차례나 제거(制擧)에서 갑제(甲制)가 되었고, 네 차례의 판책(判策)에서 참선(參選)하니 사람들이 ‘족의 문장이 청동전(靑銅錢) 같아서 만선 만중(萬選萬中)한다.’ 하여 청전학사라고 했다.” 하였다.
청점(靑黏)
약초 이름으로 황지(黃芝)를 가리킨다. 후한(後漢)의 번아(樊阿)가 화타(華佗)에게서 이 약초에 대한 비방을 얻어 장수하였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 下 화타(華佗)
청정(靑精)
① 도가(道家)에서 청정석(靑精石)으로 지은 밥(飯)을 이르는데, 이것을 오래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장수를 한다고 한다.
② 식물 이름이다. 일명 남촉(南燭)으로 그 줄기와 잎을 찧어 즙을 짜서 그 즙에다 쌀을 담갔다가 쪄서 말리기를 아홉 번을 한 다음 그 쌀로 밥을 짓는데, 신선(神仙)이 먹는다고 한다. 「신선전(神仙傳)」
청정공작(淸淨公綽)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맹공작(孟公綽)은 조(趙) 나라나 위(魏) 나라 대부의 가신(家臣)은 될 수 있지만 등(滕) 나라나 설(薛) 나라의 대부는 될 수 없다.” 한 말이 있는데, 그 주에 “공작은 노 나라 대부인데, 염정(廉靜)하고 욕심은 없으나 재주가 적은 사람이다.” 하였다.
청정반(靑精飯)
도가(道家)에서 청정석(靑精石)으로 지은 밥을 이르는데, 이것을 오래 복용하면 장수한다고 한다.
청정채(淸淨債)
도(道)에 통하여 청정(淸淨)에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산중에 청정의 빚을 질까 걱정이다[恐負山中淸淨債]” 하였다.
청제(靑帝)
천제(天帝)의 이름으로 동방을 맡은 신인데, 동방은 봄에 해당된다 하여 봄의 신이라고도 한다.
청제(靑齊)
청주와 제주. 중국의 발해와 산동성 지역을 범칭(泛稱)한 것이다.
청제당익로(靑齊當鷁路)
옛날 제(齊) 나라 땅인 청주(靑州) 즉 산동반도 일대가 청(淸) 나라에 넘어간 것을 말한다. 익로(鷁路)는 “물새 여섯 마리가 하늘에서 거센 바람을 만나 뒤로 밀려 날아갔다[六鷁退飛].”는 고사에서 연유하여, 재앙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춘추좌전(春秋左傳)』 僖公 16年
청제수방혼탁하(淸濟須防混濁河)
충정(忠正)한 마음을 견지하며 혼탁한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말라는 말이다. 제(齊) 나라의 제수는 맑고 하수는 흐렸던 데에서 나온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청조(靑鳥)
① 삼족조(三足鳥)라고도 한다. 한 무제(漢武帝) 고사(故事)에 의하면 7월 7일에 홀연히 청조(靑鳥)가 날아와 궁전(宮殿) 앞에 모여들거늘 동방삭(東方朔)이 말하기를 “이는 서왕모(西王母)가 찾아오려는 것이옵니다.” 하더니, 조금 후세 서왕모가 오는데 청조 세 마리가 서왕모의 곁에 모시고 왔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사자(使者)를 가리켜 청조라고 칭호하였다. 『사기(史記)』 卷一百十七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②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의 시녀(侍女)를 이른 말로, 전하여 미인(美人)을 말한다.
③ 세상에서 전하기를, 낙산사(洛山寺) 굴 앞에 가서 지성으로 절하고 조아리면 푸른 새가 나타난다 한다.
청조루(聽潮樓)
강진현(康津縣) 객관(客館) 남쪽에 위치한 누대. 현감(縣監) 오순종(吳舜從)이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청조사(靑鳥使)
여신선 서왕모(西王母)의 사자이다.
청주국(靑州麴)
술을 가리킨다. 좋은 술을 청주종사(靑州從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청주종사(靑州從事)
미주(美酒)의 별칭이다. 좋지 못한 술은 평원독우(平原督郵)라 부르고 좋은 술을 청주종사(靑州從事)라 부르는데 그것은 평원에 격현(鬲縣)이 있고 청주에 제현(齊縣)이 있는데, 좋지 못한 술은 가슴(膈)에서 오르내리고 좋은 술은 배꼽(臍)까지 내려간다는 뜻으로 그렇게 술에다 은어(隱語)를 붙인 것이다.
청죽(靑竹)
청사(靑史)로, 사적(史籍)을 말한다. 고대에는 죽간(竹簡)에 역사를 기록하였다.
청죽게(靑竹偈)
세상과는 동떨어진 별천지의 신비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술사(術士) 비장방(費長房)이 호공(壺公)에게서 푸른 대나무 지팡이를 받아 공중을 비행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卷82下 方術列傳下 費長房傳 / 이백(李白)의 시에 “작별의 지팡이 청죽을 남겨 두고, 노래를 부르며 자연의 땅을 밟노매라[別杖留靑竹 行歌躡紫煙]”라는 표현이 있다. 『이태백집(李太白集)』 卷16 奉餞高尊師如貴道士傳道籙畢歸北海
청준(靑樽)
가득 따른 술잔을 말한다. 술의 별명이 녹의(綠蟻)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청진(淸塵)
청고(淸高)한 유풍(遺風)이나 고상한 기질을 뜻하는 말로, 상대방에 대한 경칭(敬稱)이다.
청질(淸質)
맑고 깨끗한 달빛을 뜻하는 시어이다. 남조 송(宋) 사장(謝莊)의 「월부(月賦)」에 “서서히 떠오르는 저 맑은 바탕이여, 우윳빛 달빛을 내려보내 감싸주네[升淸質之悠悠 降澄輝之藹藹].”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징(淸澄)
맑고 깨끗한다.
청천(晴川)
비가 온 뒤 맑게 갠 날의 시냇물로, 당(唐) 나라 최호(崔顥)의 시 「황학루(黃鶴樓)」에 “비 갠 강엔 선명한 한양의 나무, 방초 금새 무성해진 앵무주로다[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청천고(菁川藁)
강희맹(姜希孟)의 유고(遺藁)를 가리키는데, 강희맹은 당대에 문장이 으뜸으로 일컬어졌으므로, 그가 죽자 성종(成宗)이 서거정(徐居正)에게 명하여 그의 유고를 편집하여 올리게 하였다.
청천백일(靑天白日)
맑게 댄 대낮, 뒤가 썩 깨끗한 일, 원죄가 판명되어 무죄가 됨.
청천벽력(靑天霹靂)
맑개 갠 하늘에서 치는 벼락, 곧 뜻밖에 생긴 변(變)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청철자삼(靑鐵紫蔘)
모두 지방의 특산물을 뜻하는데, 황정견(黃庭堅)의 「송고자돈부하남시(送顧子敦赴河南詩)」에 “자삼은 캘 만하니 진공하는데 옳거니와 청철은 많지 않으니 돈을 주조하지 말게나[紫蔘可掘宣包貢 靑鐵無多莫鑄錢].”한 데서 온 말이다.
청초장시(靑草瘴時)
청초호(靑草湖)는 중국 호남(湖南) 상음현(湘陰縣) 북쪽 백리 지점에 있는 호수 이름으로 남쪽은 상수(湘水), 북쪽은 동정호(洞庭湖)와 통하는데 호수에 푸른풀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왕우승집(王右丞集) 권10 「송양소부폄빈주(送楊少府貶彬州)」의 “청초호 장기 낄 제 하구를 지나가고 흰물결 거센 속에 분성을 나가리라[靑草瘴時過夏口 白頭浪裏出湓城].”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 광주 지방에서는 여름은 청초장, 가을은 황모장(黃茅瘴)이라 부른다 하여 청초장을 여름의 대명사로 쓴다.
청총(靑塚)
한 원제(漢元帝)의 궁녀(宮女)인 왕소군(王昭君)의 묘(墓)를 가리킨다. 그녀가 흉노(匈奴)에게 시집가서 살다가 죽었는데, 호중(胡中)에는 백초(白草)가 많은데도 유독 그녀의 무덤에는 청초가 나므로 일컬은 말이다.
청총월명선패성(靑塚月明仙佩聲)
왕소군(王昭君)의 패옥(佩玉) 소리를 말한다. 왕소군이 한 원제(漢元帝)의 후궁(後宮)에 들어왔다가 선우(單于)에게 시집가서 그곳에서 죽었는데 백초(白草)만 생장하는 그곳에 유독 왕소군의 무덤에는 청초(靑草)가 자랐으므로 청총이라 한 것인데, 그 무덤에서 달밤에 패옥 소리가 난다고 전한다. 『서경잡기(西京雜記)』 卷二
청추(淸秋)
음력 9월을 뜻하는 시어(詩語)이다. 보통 만추(晩秋)를 가리킨다.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을 청추절(淸秋節)이라고도 한다.
청추사락(靑鞦射落)
청추(靑鞦)는 꿩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 가국(賈國)의 대부로 용모가 몹시 추악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반대로 아주 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시집온 지 3년이 지나도록 한마디 말도 건네는 일이 없고 또 웃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를 데리고 강기슭 언덕 위로 가서는 꿩을 쏘아 맞혀 떨어뜨리니, 그 무술에 감탄한 나머지 그제서야 아내가 웃으면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좌전(左傳)』 昭公 二十八年
청추송옥비(淸秋宋玉悲)
송옥(宋玉)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 나라의 시인으로, 굴원(屈原)의 제자인데, 굴원이 쫓겨난 것을 불쌍하게 여겨 지은 「구변(九辯)」에, “슬프구나 가을의 기운됨이여, 소슬해라 초목이 떨어져서 쇠하누나.” 하였다.
청춘치오마(靑春馳五馬)
한(漢) 나라 때 태수(太守)는 다섯 말이 끄는 수레를 탔는데, 우리나라 역시 현(縣)이 아닌 군(郡)의 장관인 경우에는 이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푸른 봄날은 동시에 연소한 나이의 인물임을 은유(隱喩)하고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빛은 쪽풀에서 나왔으나, 그 빛깔은 쪽풀의 빛깔보다 더 푸름. 즉, 원래의 것보다 거기서 파생되거나 응용된 것이 더 뛰어날 때 비유적으로 쓰이는데, 특히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날 때 흔히 쓰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
푸른 색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
청탁병탄(淸濁倂呑)
바다가 깨끗한 강물이나 오염된 강물이나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듯 이 선인이나 악인을 차별하지 않고 오는 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도량이 넓어서 어떤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것을 비유하여 사용되는 말이다.
청탄(靑灘)
일찍이 영천 군수(榮川郡守)를 지냈던 여동근(呂東根)의 호이다.
청태부(靑苔賦)
양(梁) 나라 강엄(江淹)이 지은 글. 청태부에 “내가 산을 깎아 실(室) 하나를 만들었는데, 푸른 이끼가 끼었기에 내 뜻대로 이 부를 짓는다. 아, 푸른 이끼의 무성함이여, 그 무엇도 빛깔이 저와 같을 수 없으리[嗟靑苔之依依兮 無色類而可方].” 하였다.
청편(靑編)
사적(史籍)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청평(靑萍)
옛날의 보검 이름이다.
청평(淸平)
춘천(春川) 북쪽에 있는 청평산. 경운산(慶雲山)이다.
청평거사(淸平居士)
고려 때의 은사(隱士) 이자현(李資玄)을 가리킨다. 이자현은 일찍이 벼슬을 버리고 전국의 명산을 두루 유람하다가 뒤에 춘천(春川)의 청평산에 들어가 청평거사라 자호하고 선학(禪學) 연구로 여생을 보냈다.
청평검(靑萍劍)
옛날의 보검(寶劍) 이름이다.
청평사(淸平詞)
① 당(唐) 나라 현종(玄宗)이, 작약꽃이 만발한 침향정(沈香亭)에서 양귀비(楊貴妃)를 데리고 놀이하면서, 술에 만취되어 주사(酒肆)에 누워 있던 이백(李白)을 불러다가 악부(樂府)를 짓게 하자 그 자리에서 곧 이를 지어 바쳤는데 이것이 곧 유명한 청평조사(淸平調詞) 3장(章)이다.
② 양귀비(楊貴妃)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시(詩)로서, 삼수(三首)로 되어 있다. 기일(其一)은 “구름 보매 의상 생각나고 꽃 보면 얼굴 연상되는데, 봄바람 난간에 스치고 이슬은 꽃에 짙게 내렸구나. 만약 군옥산 위에서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요대의 달 아래에서 만나겠지[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臺月下逢].” 하였고, 기이(其二)는 “꽃 한 송이 요염하고 향기에 이슬 어렸는데, 무산의 구름과 비는 부질없이 창자만 끊는구나. 여보게나 한(漢) 나라 궁중에 누구와 비슷하려나, 귀엽게도 조비연의 새 단장 말쑥하구려[一枝濃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妝].” 했으며, 기삼(其三)은 “이름난 꽃과 경국 미인 서로 기뻐하니, 임금님도 항상 웃음띠고 감상하누나. 봄바람에 그지없는 한 풀려고 침향정 북쪽 난간 의지하였네[名花傾國兩相歡 常得君王帶笑看 解釋春風無限恨 沈香亭北倚欄干].” 하였다.
청평악(淸平樂)
가사의 이름이다. 청아하고 평탄한 악곡이라는 뜻이다.
청평조(淸平調)
악부(樂府)의 곡명(曲名)으로, 당명황(唐明皇)이 달밤에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후원에서 놀며, 이태백(李太白)을 시켜 청평조 3장을 짓게 하였는데, 그 곡조 중에 모란과 양귀비를 비유하여 읊었다.
청포(靑蒲)
① 부들로 방석을 엮어 바닥을 덮은 천자(天子)의 내정(內庭)을 말한다. 임금의 침실에 까는 푸른 털자리라는 설이 있으나 그보다는 임금의 침실에 그어 놓은 푸른색의 한계선이라는 설이 더 우세한데, 황후(皇后)가 아니면 그 선을 넘지 못한다고 하니, 곧 가까이에서 모시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사단(史丹)이 원제(元帝)가 병이 들어 태자를 폐하고 정도왕(定陶王)을 세우려고 하자 곧장 임금의 침실로 들어가 청포 위에 엎드려 간하여 원제의 마음을 돌리게 하였다. 『한서(漢書)』 卷八十二 「사단전(史丹傳)」
② 임금의 자리 앞에 깔린 청포석(靑蒲席)인데, 신하가 임금의 허물을 지극히 간(諫)할 때에는 이 자리에 엎드린다.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의미로, 곧 자연을 말한다.
청풍백로(靑楓白露)
이 시구는, 당(唐) 나라 왕창령(王昌齡)의 중별 이평사 시(重別李評事詩)인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莫道秋江離別難 舟船明日是長安 吳姬緩舞留君醉 隨意靑楓白露寒”
청풍서래 수파불흥(淸風徐來 水波不興)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 초두에 나오는 말로,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와 물결도 일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청풍오월북창면(淸風五月北窓眠)
한가로운 여름날 북창 가에 높이 눕자 맑은 바람이 삽상하게 불어 오더라[夏月虛閑 高臥北窓之下 淸風颯至]는 도연명(陶淵明)의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도잠전(陶潛傳)」
청풍일탑(淸風一榻)
『남사(南史)』 사혜전(謝譓傳)에 “나의 방안에 들어오는 이는 맑은 바람뿐이고 나와 대작(對酌)하는 이는 밝은 달뿐이다.” 하였다.
청필(淸蹕)
황제가 행차할 때 도로를 정리하고 행인을 벽제한다는 말이다. 청(淸)은 도로를 깨끗이 소제한다는 뜻이요, 필(蹕)은 행인을 벽제(辟除)하는 것으로, 옛날 천자가 출행할 때의 의식이었기 때문에 곧 임금의 행차를 말한다. 『북사(北史)』 「유림전(儒林傳)」에 “제(帝)는 곤면(袞冕)을 입고 예용을 갖추고 청필하여 태학에 거둥했다.” 하였다.
청필삼성(淸蹕三聲)
청필(淸蹕)은 임금이 거둥할 때 도로를 깨끗이 쓸고 통행인을 물러서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물러서라’고 세 번 외치는 것을 말한다.
청하(淸河)
청하 최씨(崔氏)를 가리킨 것인데, 중국에서 청하 최씨가 명문(名門)이었다.
청하(靑霞)
푸른 놀. 또는 뜻이 매우 고상함을 말한다. 강엄(江淹)의 한부(恨賦)에 “鬱靑霞之奇意”가 있는데, 선주(善注)에 “청하기의(靑霞奇意)는 뜻이 높음을 말한다.” 하였다.
청학동(靑鶴洞)
지리산(智異山)의 가장 깊숙한 동학(洞壑)에는 청학(靑鶴)이 깃들여 있고 신선들이 산다 하며 역대 시인들의 제영(題詠)이 많다.
청한자(淸寒子)
김시습(金時習)의 호이다.
청해(靑海)
① 북청(北靑)의 옛 이름이다.
② 중국 서북방에 있는 중국에서 가장 큰 함수호(鹹水湖)의 이름인데, 상고 때부터 한(漢) 나라 때까지는 서강(西羌), 동진(東晉) 이후로는 토곡혼(吐谷渾), 당 나라 초기에는 토번(吐番), 명 나라 때는 몽고의 영역이 되었다.
③ 중국 중부의 서쪽에 있는 지명이다. 황하의 발원이 되는 호수인 청해(靑海)가 있어서 이렇게 이름하였으며, 서쪽 변경의 오랑캐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청해진(靑海鎭)
청해성(靑海省) 동북부의 대호(大湖)에 위치한 군영을 가리킨다. 당(唐) 나라 때 가서한(歌舒翰)이 신위군(神威軍)을 배치하여 토번(吐蕃)을 막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청허부(淸虛府)
천상의 신선들이 사는 곳이다.
청헌(淸獻)
송(宋) 조변(趙抃)의 시호이다. 조변이 두 번에 걸쳐 촉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행검을 청렴하게 하여 모범을 보이자 풍속이 바뀌어졌다고 한다. 『송사(宋史)』 卷三百一十六 「조변전(趙抃傳)」
청현(晴懸)
소리가 청량(淸亮)한, 달아 놓고 치는 악기인 쇠북(鍾), 경쇠(磬)와 같은 것을 말한다.
청형(聽瑩)
귀로 듣고서도 그 의미를 모르는 것을 비유한 말로, ‘의혹’으로 풀이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장오자가 말하기를 ‘이는 황제도 듣고서 의혹했던 것이니, 공자가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하였다.[長梧子曰, 是黃帝之所聽瑩也, 而丘也何足以知之.]”라는 말이 보인다.
청혜포말(靑鞋布襪)
두보(杜甫)의 시에 “아, 약야계여, 그리고 운문사여. 나만 홀로 어찌하여 진흙 속에 빠져 있나, 짚신에 버선 신고 이제 숨어 살리라[若耶溪 雲門寺 吾獨胡爲在泥滓 靑鞋布襪從此始].”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4 奉先劉少府新畫山水障歌
청화(淸和)
날씨가 맑고 화창한다.
청화절(淸和節)
음력 4월의 이칭이다.
청황(靑黃)
굴의 열매가 처음에는 푸르다가 익으면 누렇게 된다. 이는 잎의 푸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청황경시재(靑黃竟是災)
꾸밈이 본성을 상실함을 이른다.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백년 묵은 나무를 잘라 제사에 쓰는 술통(犠尊)을 만들어 푸른 빛과 누른 빛으로 꾸미고, 그 잘라버린 끄트머리는 도랑에다 버리는데, 뒤에 그 술통을 도랑에 버렸던 그 끄트머리와 비교해보면, 미악(美惡)의 차이는 있으나 그 나무의 본성을 잃음은 한 가지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청황시목재(靑黃是木災)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백 년 된 나무를 깎아 제기(祭器)를 만들면서 갖가지 색칠을 하여 꾸미고 나머지 토막들은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제기와 나머지 토막들 사이에 미추(美醜)의 차별은 있을지 몰라도 본성을 잃은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百年之木 破爲犧尊 靑黃而文之 其斷在溝中 比犧尊於溝中之斷 則美惡有間矣 其於失性一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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