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초
초(軺)
말이 끄는 작은 수레인데, 특히 사신의 수레를 성초(星軺)라 하였다.
초(初)
사람의 처음에 타고난 착한 본성이란 뜻이다. 공자가 그의 제자 칠조개(漆雕開)에게, “너는 왜 벼슬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하였다.
초(譙)
성문 위에 있는 망루(望樓)를 말한다.
초가난(樵柯爛)
옛날에 왕질(王質)이 산에 나무하러 가서 신선들이 바둑두는 것을 구경하다가 신선이 주는 음식을 얻어먹고 배고픈 줄을 모르고 신선들이 바둑을 다 둔 뒤에 돌아보니 그 동안에 세월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옆에 놓아두었던 도끼 자루가 벌써 썩어 있었다 한다.
초가삼간(草家三間)
세 칸으로 된 규모가 작은 초가.
초가총상수(焦家塚上樹)
후한(後漢) 때 초중경(焦仲卿)의 처(妻) 유씨(劉氏)가 시어미의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나간 뒤 재가(再嫁)를 하지 않고 물에 빠져 죽자 중경 역시 이 말을 듣고 정원의 나무에 목 매달아 죽었던 고사가 “爲焦仲卿妻作”이라는 고시(古詩)로 전해 온다.
초강(焦阬)
유령(庾嶺) 밑에서 생산된다는 차(茶)의 이른다. 이 차는 처음에는 쓴맛이 나다가 한참 있으면 단맛이 돌아온다고 한다.
초강독성(楚江獨醒)
절조를 굽히지 않다가 조정에서 쫓겨나 있는 처지를 비유한 말이다.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맑고, 사람들 모두가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쫓겨 나왔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라는 말이 있다.
초강만염상비누(楚江漫染湘妃淚)
반죽(斑竹)이라는 말이다. 순(舜) 임금이 죽자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초 나라의 상수(湘水)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그 눈물이 대나무에 얼룩져서 반죽이 되었다 한다. 『초학기(初學記)』 卷28 注
초객(楚客)
비방을 당해 초(楚) 지방으로 유배되어 객지를 떠돌았던 굴원(屈原)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고향을 떠난 나그네를 가리킨다.
초객대상강(楚客對湘江)
잘못되어 가는 나라의 형세와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탄식하고 있으리라는 말이다. 초객(楚客)은 상강(湘江) 즉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진 초 나라 삼려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초객부웅풍(楚客賦雄風)
초객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 나라의 문장가인 송옥(宋玉)을 가리키는데, 그가 지은 풍부(風賦)에 의하면 “맑고 시원하여 이목(耳目)을 틔워 주는 것은 대왕(大王)의 웅풍(雄風)이다.”고 하였다.
초객연패(楚客捐佩)
초객은 소인들의 참소를 받아 조정에서 쫓겨난 초 나라의 굴원(屈原)을 말하는데, 굴원의 『초사(楚辭)』에 “내 결옥을 강물 속에 던져버리고 내 패옥을 예수가에 놓아 두었네[捐余玦於江中 遺余珮於澧浦].”라고 하여 벼슬을 그만둔 것을 노래하였다.
초객적래손국고(楚客謫來飡菊苦)
초 나라 사람이란 곧 조정에서 쫓겨나 택반(澤畔)에서 노닐었던 전국시대(戰國時代) 초 회왕(楚懷王)의 충신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그가 지은 「이소경(離騷經)」에 “아침엔 목란에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엔 떨어진 가을 국화를 먹는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하였다.
초객청(楚客淸)
굴원(屈原)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 나라 삼려대부(三閭大夫)이다. 그가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모든 사람들이 다 취해 있어도 나만은 깨어 있고, 모든 사람들이 다 탁하여도 나만은 맑으리라.” 한 말이 있다.
초객풍림제원자(楚客楓林題怨字)
초객(楚客)은 초 나라의 시인인 송옥(宋玉)이다. 송옥이 지은 「구변(九辯)」에 가을이 되어 만물이 시드는 것을 원망한 내용이 있다.
초거(軺車)
말 한 마리가 끄는 수레로, 사신의 명을 받든 자나 급한 명을 전달하는 자가 타는 수레를 말한다.
초경(楚經)
초경(焦卿)
후한(後漢)의 초중경(焦仲卿)을 가리킨다. 처 유씨(劉氏)와 금슬이 매우 좋게 지내다가, 시어미의 학대에 못 이겨 처가 집을 나가 물에 빠져 죽자, 그 역시 뜰 앞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는데, 이에 대한 장편의 고시(古詩)가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위초중경처작(爲焦仲卿妻作)’이라는 제목으로 전해 온다.
초계문신(抄啓文臣)
조선조(朝鮮朝) 정조(正祖) 때에 당하 문관(堂下文官)으로서 문학이 뛰어난 사람을 선출하여 매월 강독 제술(講讀製述)의 시험을 보게 했던 제도이다.
초계탕천(焦溪湯泉)
초계(焦溪)는 일명 초천(焦泉)으로, 탕천(湯泉)과 함께 온천물을 가리킨다. 참고로 사혜련(謝惠連)의 ‘설부(雪賦)’에 “초계도 말라붙고, 탕곡도 얼어붙네.(焦溪涸湯谷凝)”라는 표현이 있다.
초곡(焦穀)
탄 곡식(焦穀)은 싹이 날 수 없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초공(梢工)
뱃사공.
초관(貂冠)
옛날 시중(侍中)이나 상시(常侍)가 쓰던 관
초관(楚冠)
초 나라 사람의 관. 초 나라의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변방에서 귀양살이했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변방에서 쓸쓸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초관우철선(貂冠又綴蟬)
초관(貂冠) 고관(高官)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인데, 거기에 또 매미 날개같이 고운 갓끈은 또 좀 높아야 쓸 수 있는 것이다.
초광(楚狂)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 나라의 은자(隱者)인 접여(接輿)를 가리킨 말로, 전하여 은거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기(史記)』 卷四十七 「공자세가(孔子世家)」, 『논어(論語)』 「미자(微子)」
초광성(招廣成)
공동산(崆峒山)에 광성자(廣成子)라는 선인(仙人)이 있는데 황제(黃帝)가 가서 도(道)를 물었다. 『장자(莊子)』 「재유(在宥)」
초교서(焦校書)
당(唐) 나라 두보(杜甫)와 동시의 사람으로 교서랑(校書郞)이었던 초씨(焦氏)를 이르는데, 그의 이름을 알 수 없다. 두보의 희증우시(戲贈友詩)에 “보응(寶應) 원년 월건 사월에 초 교서랑이란 이가 있어 스스로 자랑하길 완력이 넘쳐서 길 안든 망아지도 탈 수 있다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말에게 밟히어 입술 찢기고 앞니가 다 빠졌는데 그래도 장심은 수그러들지 않아서 동쪽으로 되놈을 잡으려 한다오[元年建巳月 郞有焦校書 自誇足膂力 能騎生馬駒 一朝被馬踏 脣裂板齒無 壯心不肯已 欲得東擒胡].” 한 데서 온 말이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十一
초구(貂裘)
담비털로 만든 갖옷이다.
초구현장(楚丘縣長)
정읍(井邑)의 고호가 초산(楚山)이므로 정읍 현감을 이른 말인데, 후한(後漢) 때 두 아들과 함께 당세에 학덕(學德)으로 명성이 높았던 진식(陳寔)이 태구 현장(太丘縣長)을 지냈으므로, 여기서는 남의 부형을 높이는 뜻으로 한 말이기도 하다.
초국대부(楚國大夫)
초 나라의 대부는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이 초택(楚澤)으로 유배당하여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었다.
초국석위손(楚菊夕爲飱)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목란(木蘭)에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떨어진 꽃잎으로 밥 짓는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하였다.
초국선언(楚國善言)
『대학(大學)』 전10장에 “우리 초(楚) 나라는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단지 훌륭한 사람을 보배로 삼는다[楚國無以爲寶, 惟善以爲寶].”는 초어(楚語)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초국소(楚國騷)
굴원(屈原)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의 충신으로 「이소경(離騷經)」를 지었는데, 모두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내용이다. 그의 깨끗한 충절과 훌륭한 문장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기(史記)』 卷八十四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초국풍(楚國風)
조사(詔使)의 시풍(詩風)을 말한다.
초균(楚均)
초 나라 영균(靈均)으로 굴원(屈原)을 말한다. 영균은 그의 자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
풀뿌리와 나무껍질. 영양이 없는 악식(惡食).
초금(貂金)
고관(高官)의 관(冠)에 꾸민 화려한 장식으로, 보통 시종신(侍從臣)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초금(楚金)
초 나라에서 생산되는 질이 좋은 쇠를 가리키는데, 특히 칼을 만들기에 좋다고 한다.
초녀(楚女)
무산(巫山)의 신녀(神女). 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 유람할 적에 꿈에 한 부인이 찾아와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신녀인데 그대가 고당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침석에 모시고자 왔습니다.” 하였다. 왕이 그의 소원대로 시침(侍寢)하도록 하였더니, 돌아가면서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남쪽 고구(高丘)의 정상(頂上)에 있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 저녁마다 양대(陽臺)의 아래에 내리겠습니다.” 하였다. 송옥(宋玉), 「고당부(高唐賦)」
초능지녕(草能指侫)
요(堯) 임금 때에 조정의 뜰에 난 풀이 아첨하는 자가 조정에 들어오면 휘어져서 그를 가리켰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초단(醮壇)
도가에서 하늘에 제사하는 단장(壇場).
초당남수(草堂柟樹)
당(唐) 나라 두보(杜甫)의 초당 앞에 서 있는 남수(枏樹)가 풍우(風雨)로 인해 뽑힌 것을 말한다. 두보의 남목위풍우소발탄(枏木爲風雨所拔歎)에 “강에 기대어라 초당 앞의 남수……너를 보려고 여기 와서 살았는데……회오리바람 거세게 불어라, 파도 일고 돌이 구르며 구름은 뭉게뭉게. 줄기는 뇌우를 버티려 안간힘을 쓰지만, 뿌리엔 천원이 말라라 어찌 하늘 뜻이랴[倚江枏樹草堂前……誅茅卜居總爲此……東南飄風動地至 江翻石走流雲氣 榦排雷雨猶力爭 根斷泉源豈天意].” 하였다.
초당사걸(初唐四傑)
왕발(王勃)ㆍ양형(楊炯)ㆍ노조린(盧照隣)ㆍ낙빈왕(駱賓王)이다.
초당수문단장인(草堂誰問斷腸人)
당(唐) 나라 고적(高適)이 두보(杜甫)에게 보낸 「인일기두이습유(人日寄杜二拾遺)」라는 시 첫머리에 “인일에 시를 지어 초당에 부치다니, 벗이 고향 생각함을 멀리서 애달피 여김이라[人日題詩寄草堂 遙憐故人思故鄕].”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23 追酬政故蜀州人日見寄 附錄
초당시(草堂詩)
초당(草堂)은 당(唐) 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별칭이다.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 “미풍 따라 가만히 밤중에 내리니, 소리 없이 대지를 촉촉히 적시누나[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라고 하였다.
초당시성(草堂詩聖)
이백(李白)은 시의 성(聖)이라는 말이다.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에 이백의 시집을 초당집(草堂集)이라 하였고, 주자(朱子)는, “白詩…聖於詩者也”라고 하였다.
초당편(草堂篇)
고적(高適)이 두보(杜甫)에게 보낸 「인일기두이습유(人日寄杜二拾遺)」의 시를 가리키는데, 그 첫 구절이 “人日題詩寄草堂”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초당편이라고 한 것이다. 이 시는 고상시집(高常侍集) 권5와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23 부록(附錄)에 실려 있으며,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前集) 권5에도 소개되어 있다.
초대춘몽(楚臺春夢)
초대는 초 나라 무산(巫山)의 양대(陽臺)를 말한다. 초 회왕(楚懷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저는 무산의 여자로 고당의 나그네가 되었는데, 임금님이 여기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원컨대 침석(枕席)을 같이 하소서.” 하므로, 회왕이 하룻밤을 같이 잤는바, 다음날 아침에 여인이 떠나면서, “저는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는데, 아침마다 양대(陽臺)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초도(初度)
새로 임관(任官)된 자에게 계속 10일∼30일을 직숙(直宿)시키는 것을 초도(初度)라 한다.
초도(椒塗)
산초(山椒)를 벽에 바른 궁전으로 후비(后妃)를 말한다.
초동(焦桐)
한(漢) 나라 채옹(蔡邕)이 오동나무가 아궁에서 불타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좋은 오동나무로서 거문고를 만들기에 적당한 줄을 알고 곧 꺼내어 타다 남은 것으로 거문고를 만들었다.
초동급부(樵童汲婦)
나무 베는 소년과 물 긷는 아낙네. 곧 보통 서민을 이르는 말이다.
초두(焦頭)
불을 끄다가 머리를 태운 것을 말한다.
초두란액(焦頭瀾額)
남의 불을 끄다가 머리를 태우고 이마를 데면서도 자기 몸은 돌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초란(楚蘭)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중에 많이 나오는 고결한 난초라는 뜻이다.
초란전(椒蘭殿)
‘후비(后妃)의 궁전’을 말한다.
초란향(楚蘭香)
초란은 곧 초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 택반(澤畔)을 방황하면서 난초를 캐어 허리에 찼다는 데서 온 말이다.
초량주(招涼珠)
서늘함을 부르는 구슬이란 뜻으로, 연(燕) 나라 소왕(昭王)이 항산(恒山)에서 나온 구슬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더울 때 이 구슬을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 몸이 저절로 시원해졌다고 한다. 『습유기(拾遺記)』 「연소왕(燕昭王)」
초록(草綠)
‘의복에 쪽물을 들이는 것’을 말한다.
초록(蕉鹿)
인간의 득실(得失)이 꿈과 같이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정(鄭) 나라의 어떤 사람이 나무를 하다가 사슴을 잡고는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염려되어 구덩이 속에 감춘 다음 풀로 덮어두었다. 그런데 얼마 뒤에 감추어 둔 장소를 잊어버리고는 마침내 꿈속에서 있었던 일로 여겼다. 그 사람이 길을 내려오면서 그 일을 떠들어대자 곁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찾아가서 사슴을 가져갔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
초록동색(草綠同色)
풀빛과 녹색은 같은 색깔이다. 같은 부류끼리는 어울림을 말한다.
초록몽(蕉鹿夢)
초록(蕉鹿)의 꿈은 세상이 혼란스러워 진위(眞僞)를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사슴(鹿)을 잡은 나무꾼이 늪지대 속에 나무(蕉)로 덮어 감춰 두었다가 나중에 그 장소를 잊어버리고는 꿈을 꾸었던 것인가 하고 여기고 말았는데,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사슴을 찾아내자, 나중에 그 사람과 소송을 벌이며 꿈 얘기를 주제로 다투었다는 설화가 있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
초록반혹황중객(蕉鹿反惑隍中客)
인간 세상의 득실(得失)이 꿈같이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정(鄭) 나라 사람이 땔나무를 하러 가서 사슴을 잡아가지고 남이 볼까 염려하여 황중(隍中)에 넣어 파초 잎으로 덮어두었다가 이내 그 사슴 넣어둔 자리를 잊어버리고는 마침내 그것을 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길을 따라 가면서 그 꿈속에 있었던 일을 혼자 중얼거리자, 곁에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 자리를 찾아서 사슴을 훔쳐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
초롱(楚弄)
초 나라 곡조라는 말로, 초 나라 굴원(屈原)의 ‘원유(遠游)’중에 순(舜) 임금의 비(妃)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혼령이 애절하게 비파를 탄다는 ‘상령고슬(湘靈鼓瑟)’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초료(鷦鷯)
뱁새 종류의 작은 새 이름이다.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에 “초료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틀어도 그저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다[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라는 말이 있다.
「초료(椒聊)」
『시경(詩經)』 당풍(唐風)의 편명이다. 이 시에 “산초 열매 주렁주렁, 한 됫박을 채우고 남네[椒聊之實 蕃衍盈升].”라고 하였으므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시구로 쓰게 되었다.
초료(草料)
초료장(草料狀)을 말하며 수령, 진장(鎭將) 등 관원이나 그 가족들이 공무로 지방을 여행할 때에, 필요한 숙식이나 마필 등의 공급을 그 곳의 역참 등에 명령하던 문서이다.
초료기일지(鷦鷯寄一枝)
자신의 분수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에, “뱁새가 깊은 숲에 산다 한들 나뭇가지 한 가지면 족하다.” 하였다.
초료원조영승번(椒聊遠條盈升蕃)
자손이 번성한다는 말이다. 초료는 후추로 료(聊)는 조사(助詞), 『시경(詩經)』 당풍(唐風) 「초료(椒聊)」에 “초료의 열매 번성하여 되에 가득하네[椒聊之實 蕃衍盈升].” 하였는데, 후추는 열매가 많이 달리므로 자손이 많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초료점일지(鷦鷯占一枝)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에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들어가 둥우리를 틀 때 나뭇가지 하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였다.
초료택지(鷦鷯擇枝)
초료는 뱁새를 말하는데,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에 “뱁새가 숲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가지 하나에 불과하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초룡(草龍)
포도(葡萄)를 가리킨다. 당 현종(唐玄宗) 때 사문(沙門) 담소(曇霄)가 포도곡(蒲萄谷)에서 노닐다가 포도를 먹고는 포도의 마른 덩굴 하나를 가져와 자기의 절에 옮겨 심었는데, 이것이 살아나서 덩굴이 대단히 높고 넓게 뻗어 마치 유개(帷蓋)처럼 되고, 그 열매 또한 구슬처럼 주렁주렁 열리었으므로, 시인(時人)들이 그 포도를 초룡주장(草龍珠帳)이라 불렀던 데서 온 말이다.
초룡장(草龍帳)
『유양잡조(酉陽雜俎)』에 “구구(具丘)의 남쪽에 포도곡(葡萄谷)이 있는데, 천보(天寶) 연간에 사문(沙門) 담소(曇霄)가 여기에 왔다가 마른 넝쿨을 얻어서 본사(本寺)로 돌아가 심었더니, 높이가 두어 길이나 자라서 그늘진 땅이 둘레가 10여 장(丈)이나 되었다. 그래서 쳐다보면 마치 유개(帷蓋)와 같았고 그 주렁주렁한 열매들은 마치 자줏빛 구슬처럼 생겼으므로, 사람들이 이것을 초룡주장(草龍珠帳)이라 호칭했다.”고 하였다.
초룡주장(草龍珠帳)
‘포도(葡萄)’를 말한다.
초루(楚膢)
루(膢)는 초(楚)에서 매년 12월에 지내는 제사 이른다.
초루(譙樓)
성문 위의 망루(望樓). 일반적으로 고루(鼓樓)라 부른다.
초루(楚纍)
한(漢) 나라 양웅(揚雄)의 「반이소(反離騷)」에 “삼가 초(楚) 나라의 상루(湘纍)에게 조의를 표한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상강(湘江)에 빠져 죽은 굴원(屈原)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초명(蟭螟)
지극히 작은 전설상의 곤충 이름이다. 무리를 지어 모기 눈썹 사이에 집을 짓고 사는데, 들락날락해도 너무나 작아서 모기가 눈치를 채지 못한다고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초명살적문소상(蟭螟殺敵蚊巢上)
아주 미세한 것을 비유한 것으로, 초명(蟭螟)이란 벌레는 하도 작아서 모기의 속눈썹에 집을 짓고 사는데도 모기는 그것을 모른다고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초목고(草木枯)
① 송(宋) 나라 때 미산(眉山)에서 소순(蘇洵) 및 그의 두 아들인 소식(蘇軾)ㆍ소철(蘇轍)까지 삼부자(三父子)의 대문장가들이 나오자, 당시 미산 사람들의 말에 “미산이 삼소를 탄생시키니, 초목이 모두 말라 버렸다[眉山生三蘇 草木盡皆枯].”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② 훌륭한 인물이 탄생하면 그 지역의 초목이 마른다는 뜻에서, 『동도사략(東都事略)』에 “미산(眉山)에서 삼소(三蘇)가 나니, 초목들이 모두 다 말라졌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초목변쇠상초객(草木變衰傷楚客)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 나라의 시인 송옥(宋玉)을 가리킨다. 송옥의 「구변(九辯)」 첫머리에 “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초목요락(草木搖落)
『초사(楚辭)』 「구변(九辯)」 첫머리에 “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싸늘한 바람 불어옴에, 초목 우수수 떨어지고 모습 쇠하게 바뀌었네[悲哉 秋之爲氣也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초목지명(草木知名)
당(唐) 나라 장만복(張萬福)이 강회(江淮) 지역을 잘 다스려 초목까지 위명(威名)을 알고 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 卷一百七十 「장만복전(張萬福傳)」
초목충어학(草木虫魚學)
『시경(詩經)』은 초목ㆍ조수(鳥獸)ㆍ충어 등 많은 물명(物名)이 나오므로 한 말이다. 이때문에 오(吳)의 육 기(陸璣)는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를 지었으니 이는 『논어(論語)』 「양화(陽貨)」의 “시를 배우면 초목 금수의 물명을 많이 알게 된다[多識於鳥獸草木之名].” 한 공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초미금(焦尾琴)
후한(後漢)의 채옹(蔡邕)이 오동나무가 불타는 소리를 듣고, 좋은 나무인 것을 알고, 불을 때고 있는 자에게 청하여 나무를 꺼내어서 거문고를 만들었는데, 탄 자국이 남아 있었으므로 이름을 초미금이라 했다 한다. 『후한서(後漢書)』 卷六十下 「채옹전(蔡邕傳)」
초미지급(焦眉之急)
‘눈썹에 불이 붙은 위급함’이란 뜻으로 매우 다급한 지경을 말한다. / 유의어: 소미지급(燒眉之急)
초박(楚璞)
초 나라 화씨의 옥덩이란 말이다. 화씨는 변화(卞和)인데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 나라 사람이다. 변화가 옥덩이 하나를 발견하여 전후로 초 나라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모두 기만의 죄로 몰려 양쪽의 발꿈치가 잘렸다. 문왕(文王) 때에 이르러 변화가 또 옥덩이를 안고 형산(荊山) 밑에서 통곡하자 문왕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옥덩이를 쪼개어 가공한 결과 보옥(寶玉)을 얻었는데 이를 화씨벽(和氏檗)이라고 일컬었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초반송화(椒盤頌花)
상고 때 정월 초하루에 손님을 접대할 때는 소반에다 산초(山椒)를 담아 내와 술에다 산초를 넣어 마셨는데, 진(晉) 나라 유진(劉蓁)의 아내가 설날에 초화송(椒花頌)을 지었다고 한다. 두공부초당시전(杜工部草堂詩箋) 권2 두위댁수세(杜位宅守歲)에 “아융의 집에 와서 새해를 맞으니 산초 담은 소반에 하마꽃을 노래하네[守歲阿戎家 椒盤巳頌花]” 하였다.
초반포국(椒盤蒱局)
한 해를 보내며 술을 먹고 윷놀이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초반은 산초 열매를 담은 소반이라는 뜻으로, 술에다 이 열매를 타서 새해의 술로 썼던 풍속이 있다.
초방(椒房)
① 초방전(椒房殿)의 준말로, 후비가 거처하는 궁전 이름이다. 옛날 한 나라 때에 황후 있는 궁중의 내전(內殿)을 호초(胡椒)로 방 바람벽을 발랐으므로 황후 있는 내전을 초방이라 한다.
② 후비(后妃)를 말한다. 후비의 궁전(宮殿)에는 자손이 번성하라는 뜻에서 열매가 많이 달리는 산초 열매를 섞어 벽을 바르므로, 이렇게 부른다.
초백거흔흔(髫白擧欣欣)
치자(治者)가 피치자(被治者)와 고락(苦樂)을 함께 하면 백성들이 모두 나와서 치자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서로 이야기를 할 것[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이라는 말이 『맹자(孟子)』 『앙혜왕(梁惠王)』 下에 나온다.
초백주(椒柏酒)
음력 정월 초하루에 마시는 축하 술이다. 설날에 선조에게 제사를 드리고 가장(家長)에게 올려 축수(祝壽)하는 술을 말한다.
초벽도(楚璧盜)
전국시대(戰國時代) 장의(張儀)가 초(楚) 나라에 유세하며 정승과 술을 마셨는데, 정승의 옥돌이 없어지자 장의를 의심하여 붙잡아두고 수백 대나 매질을 하다가 풀어 준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卷70 「장의열전(張儀列傳)」
초복(楚服)
성복(盛服)을 가리킨다. 엄숙하게 차린 의복.
초복(初服)
① 『초사(楚辭)』 「이소경(離騷經)」의 “물러나 장차 다시 나의 초복을 손보리라[退將復修吾初服].”에서 나온 것으로 처음에 입던 의복인데, 일반적으로 벼슬을 그만두어 관복을 벗고 당초에 입었던 옷을 다시 입는 것을 말한다. 곧 초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② 벼슬하기 이전의 복장으로, 즉 벼슬자리에서 물러나오는 것을 말한다. 『초사(楚辭)』 「이소경(離騷經)」의 “나아가도 들어가지 못한 채 허물만 입게 되었으니, 물러가 다시 나의 초복을 손질하리[進不入以離尤兮 退將復修吾初服]”에서 나온 것으로, 관직을 버리고 벼슬길에 들어가기 전에 입었던 옷을 다시 입기를 원하는 마음을 말한다.
초복록(蕉覆鹿)
인생사의 무상함을 표현한 말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나무를 하다가 우연히 사슴을 잡아 남 몰래 파초 잎새로 덮어 놓았었다. 나무를 다하고 사슴을 찾았으나 장소를 잊어버렸다. 그는 사슴을 잡았던 것이 꿈이려니 생각하고서 그 사실을 되뇌며 돌아왔다. 마침 어떤 사람이 그 말을 듣고는 산으로 들어가 사슴을 찾아 가져와 자기 아내에게 나무꾼의 꿈을 자기가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하였다 한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
초부족(貂不足)
진(晉) 나라 때 조왕윤(趙王倫)의 당(黨)이 모두 경상(卿相)이 되어 그 노졸(奴卒)들까지 작위를 받음으로써, 시중(侍中)ㆍ중상시(中常侍) 등의 관(冠) 장식으로 쓰는 담비꼬리가 부족하여 개꼬리로 대신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초사(楚詞)
굴원(屈原)과 송옥(宋玉)은 초 나라 사람이므로, 그들의 작품인 사부(詞賦)를 초사(楚詞)라 한다.
초사(楚些)
넋을 부른다는 의미를 지닌 노래인 『초사(楚辭)』의 「초혼(招魂)」은 초(楚) 나라 민간의 초혼가(招魂歌) 형식을 본떠서 지은 것이어서 구절 끝에 사(些) 자가 있는데, 이로 인해 초사(楚些)라 명명한 것이다. 혼은 본디 죽은 자의 혼을 말하지만, 초사의 초혼은 송옥(宋玉)이 죄 없이 쫓겨난 굴원(屈原)이 정신이 산란한 채 돌아오지 않는 것을 슬퍼하여 상제(上帝)의 명과 무당의 말을 가탁하여 그 정신을 부른 것이라고 한다.
초사(醮詞)
승원(僧院)에서 단(壇)을 모으고 기도할 때 쓰는 말이다.
초사청풍(楚些靑楓)
초사(楚詞) 「초혼(招魂)」에 “강물은 넘실넘실 강 언덕엔 신나무 있는데, 저 멀리 바라보니 봄마저 가슴 아파[湛湛江水兮上有楓 目極千里兮傷春心]”를 인용한 말이다. 사(些)는 조사(助詞)이다.
초산(焦山)
강소성(江蘇省) 단도현(丹徒縣)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일명 부옥산(浮玉山)이라고도 하는데, 삼국(三國) 때의 고사(高士) 초선(焦先)이 이 산에 은둔하였기 때문에 초산이라 했으며 초선은 천하가 생긴 이래 1인자라 하여 일초(一焦)라 불렀다.
초산(楚山)
①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실의에 잠겼던 초(楚) 나라의 산야라는 뜻이다.
② 정읍(井邑)의 옛 이름이다.
초산집(椒山集)
명 나라 양계성(楊繼盛)의 문집.
초삽(苕霅)
두 시내의 이름이다. 『당서(唐書)』 「장지화전(張志和傳)」에, “물 위에 둥실 뜬 집을 지어 초계 삽계 사이 오가는 게 원이라네[願爲浮家泛宅 往來苕霅間]” 하였다.
초삽범택(苕霅泛宅)
안진경(顔眞卿)이 호주 자사(湖州刺史)가 되었을 때 장지화가 찾아가 알현하자 안진경이 그의 부서진 배를 고치기를 청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가택(家宅)을 물에 띄우고 초계(苕溪)ㆍ삽계(霅溪) 사이를 왕래하고 싶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 卷一百九十六
초삽종래(苕霅從來)
당(唐) 나라 때 은사(隱士)인 장지화(張志和)가 친상(親喪)을 당한 뒤로는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江湖)에 살면서 연파조도(煙波釣徒)라 자호하였는데, 안진경(顔眞卿)이 호주 자사(湖州刺史)로 있을 때 그가 안진경을 찾아가 뵙자, 안진경이 그의 배가 망가졌음을 보고 새것으로 바꾸기를 청하니, 장지화가 말하기를, “나는 집을 물에 띄우고서 초계(苕溪)와 삽계(霅溪) 사이를 왕래하는 것이 소원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 卷一百九十六
초상(椒觴)
① 설날에 임금과 어버이께 세배 드릴 때 분지술(椒酒)을 나눈다. 분지는 옥형성(玉衡星)의 정(精)이므로 몸을 가볍게 하고 늙음을 안 탄다고 한다.
② 옛날 풍속에 산초의 꽃이나 열매로 술을 담궜다가 정월 초하루에 자손이 장수를 축원하는 뜻으로 자기 집안의 어른에게 올렸다고 한다. 『초학기(初學記)』 卷四 『사민월령(四民月令)』
초상(蕉裳)
파초 잎이 치마처럼 넓다는 뜻이다.
초생(楚甥)
사위를 말한다.
초생당(草生塘)
진(晉) 나라 사영운(謝靈運)이 그의 종제 혜련(惠連)을 꿈속에 보고 나서 지은 시에 ‘못가에는 봄풀이 돋아났다네[池塘生春草]’라는 명구를 지었다는 데서 흔히 멀리 헤어진 아우를 그리는 고사로 쓰인다.
초생옥소(焦生屋燒)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초선(焦先)의 고사. 『고사전(高士傳)』에 “그는 들불(野火)에 집을 태운 뒤에 밖에서 자는데, 마침 큰 눈이 퍼부었으나 옷을 벗어 멘 채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여겨 다가가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다.
초서(草書)
해서(楷書)를 실용적인 데에서 더욱 빨리 쓰고자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글자의 발달 순서는 행서 → 초서 순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초서는 한대에 유행하였는데 빠르게 쓸 수는 있었으나 남이 알아보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즉 초서와 느린 해서의 단점을 보완하여, 해서보다는 조금 획을 흘려서 쓰며, 초서보다는 덜 간략한 글자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행서는 생활서로서뿐만 아니라 획의 변화무쌍함 때문에 예술서로서도 각광을 받을 수 있었다.
초선(超禪)
스님 무학(無學)을 말한다.
초선(貂蟬)
담비 꼬리와 매미 날개. 모두 고관(高官)의 관(冠)의 장식으로 썼기 때문에 전하여 조관(朝官)을 말한다.
초선관(貂蟬冠)
옛날 시중(侍中)의 관을 초피(貂皮)와 매미깃(蟬翼)으로 꾸몄는데 이를 초선관이라 한다.
초선두무출(貂蟬兜鍪出)
초선(貂蟬)은 임금에게 근시(近侍)하는 관직인 중상시(中常侍)의 관(冠)에 꽂는 것인데, 남북조(南北朝)시대에 주반룡(周盤龍)이 변방에 대장(大將)으로 있다가 불려와서 중상시가 되었다. 임금이 묻기를, “초선이 투구보다 어떤가.” 한즉, 대답하기를, “초선이 투구에서 나왔습니다.” 하였다.
초성(楚聲)
굴원(屈原)과 송옥(宋玉)의 시에 엿보이는 애상조(哀傷調)의 노래를 말한다.
초성(草聖)
당(唐)나라 사람 장욱(張旭)이 초서(草書)를 잘 써서 초성(草聖)의 칭호를 얻었는데, 기실은 공손 대랑(公孫大娘)의 칼춤 추는 것을 보고서 예술이 일취월장되었다 한다.
초성(草聖)
초서(草書)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여 초성(草聖)으로 불렸던 후한(後漢)의 장지(張芝)를 가리킨다.
초소(楚騷)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초(楚) 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으로, 굴원이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겼으나 임금이 간사한 자의 참소를 듣고 멀리하므로 이를 지었다고 한다.
초소성지언(楚昭誠知言)
초(楚) 나라 소왕(昭王)이 군중(軍中)에서 병이 들었는데 그때 새처럼 생긴 붉은 구름이 태양을 끼고 나는 시늉을 하여 왕이 태사(太史)를 불러 물었더니 태사 말이, 이는 초 나라 왕에게 불리한 징조인데 그 불길을 장상(將相)에게로 떠넘길 수는 있다고 하자 소왕은 말하기를, “장수와 재상이라면 바로 나의 팔다리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일인가.” 하고 듣지 않았고, 또 점을 쳤을 때 황하(黃河)가 병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점괘가 나와 대부(大夫)가 빌 것을 청하자 소왕은 또 말하기를, “우리는 선왕(先王) 때부터 강수(江水)ㆍ한수(漢水)만이 우리 국경 안에 있어 망제(望祭)를 지내왔을 뿐이므로 국경 밖에 있는 황하가 병의 빌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고 역시 듣지 않자 공자(孔子)가 그 말을 전해듣고는, 초 소왕은 대도(大道)를 통한 사람이라고 격찬을 하였다. 『사기(史記)』 「오세가(楚世家)
초소유매(楚騷遺梅)
어떤 사물에 대해 시로 읊지 않은 것을 말한다.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에 많은 꽃들을 언급하면서도 매화에 대해서만은 언급하지 않았다.
초수(苕水)
소내. 정약용(丁若鏞)의 출생지인 광주군(廣州郡) 초부면(草阜面) 마현리(馬峴里) 소천(苕川)을 말한다.
초수(楚囚)
초 나라의 죄수란 뜻으로,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초(楚) 나라 사람인 종의(鍾儀)가 진(晋) 나라에 갇혀 있었던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죄수의 몸으로 타향에 있는 슬픔을 비유한 것이다.
초수광가(楚叟狂歌)
초(楚)의 은자(隱者) 접여(接輿)가 거짓 미쳐 노래를 하며 공자(孔子) 곁을 지나갔다. 그 노래에 이르기를, “봉이여 봉이여! 어쩌면 덕(德)이 그리도 시들했느뇨. 지난 일이야 탓한들 무엇하랴만 미래야 제 길을 갈 수도 있느니 제발 그만두려무나. 지금 정치에 뜻을 둔다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니라”하였다한다. 『사기(史記)』 卷四十七 「공자세가(孔子世家)」, 『논어(論語)』 「미자(微子)」
초수비(楚囚悲)
서진(西晉) 말년에 중원(中原)을 잃고 강남으로 피난을 온 신하들이 단양(丹陽) 신정(新亭)에서 모임을 갖고는 서로들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자, 승상 왕도(王導)가 “서로들 왕실에 힘을 바쳐 중원을 회복할 생각을 해야 할 때에, 어쩌자고 초 나라 죄수처럼 서로들 울기만 하는가[當共戮力王室 克復神州 何至作楚囚相對].”라고 꾸짖었던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초수음고유사월(楚囚吟苦猶思越)
진(晋) 나라 종의(鍾儀)가 초(楚) 나라에 포로가 되어 갔더니 진후(晋侯)가 음악을 하여 보라고 시켰다. 종의는 자기의 고국 소리를 연주하였다. 또 월(越) 나라 장석(莊舃)이 초(楚) 나라에 벼슬하여 현달(顯達)하였는데 한 번은 병이 나서 누워 있었다. 초왕(楚王)이 사람을 시켜 장석을 가 보게 하며, “장석이 자기의 고국을 생각하는지 알아 보라.” 하였다. 가본 즉 장석은 월 나라 소리로 앓고 있었다.
초수응의채(草樹凝衣彩)
아버지를 모시고 오면서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재롱을 부릴 것이라는 말이다. 옛날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에 색동옷을 입고 어버이 앞에서 어린애처럼 재롱을 떨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사전(高士傳)』 上 「노래자(老萊子)」
초신(楚臣)
본디 초 나라 신하 굴원(屈原)으로, 귀양살이하는 신하를 말한다.
초신비(楚臣悲)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슬픔을 말한다. 초신은 비방을 당해 초(楚) 지방으로 유배되어 객지를 떠돌았던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초신음택반(楚臣吟澤畔)
전국(戰國) 시대 초(楚) 나라 충신(忠臣) 굴원(屈原)이 회왕(懷王)으로부터 방척(放斥)을 받은 후 못가(澤畔)에 행음(行吟)하던 일을 말한다.
초신초췌(楚臣憔悴)
초 나라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쫓겨나 강가에 노닐어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림에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에 생기가 없었다.” 하였다.
초신패(楚臣佩)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離騷)에, “가을 난초를 길러서 패(佩)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초실(椒室)
궁중(宮中)의 내실(內室)을 말한다. 초(椒)는 열매가 많이 열고 향기가 성하므로 자손의 번성을 축원하여 그 열매를 섞어 궁중 내실의 벽을 발랐다.
초심일촌보춘휘(草心一寸報春暉)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말한 것. 초심(草心)은 촌초심(寸草心)의 준말로 조그마한 마음을 뜻하는데, 효자가 부모를 사모하는 정을 말하며, 춘휘(春暉)는 봄의 햇빛으로 부모의 은덕을 말한다.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어떻게 촌초(寸草)의 마음을 가져다가 삼춘의 따뜻한 햇빛을 보답할거나[那將寸草心 報得三春暉].” 하였다.
초야우둔(草野遇遯)
소인이 조정에서 권세를 잡아 국사가 어지러우므로 초야의 충의로운 선비들이 분개한다는 것이다. 송 나라 주희(朱熹)가 66세 때인 영종(寧宗) 1년 5월에 환장각 대제(煥章閣待制)의 직명을 띠고 고향에 있으면서, 한탁주(韓侘冑)의 모함으로 영주(永州)로 귀양간 재상 조여우(趙汝愚)의 억울함을 변론하는 내용과 한탁주가 임금을 속여 도학을 위학(僞學)이라 규정하여 금지하고 충직한 신하를 몰아내는 등 간교한 짓을 자행하는 작태에 대해 장문의 소장을 지어 올리려 하였다. 그러자 문인 채원정(蔡元定)이 그것을 섣불리 올리지 말고 시초(蓍草)를 뽑아 점을 쳐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라고 청하여 점을 쳐보니, 소인이 뜻을 얻은 상황에서 군자는 집안에 들어앉아 집안의 일만 돌본다는 의미의 둔(遯)의 가인괘(家人卦)가 나와 그 소장의 초고를 불태워버리고 호를 둔옹(遯翁)이라 고침과 동시에 사직소만 계속 올렸다. 『주자대전(朱子大全)』 附錄 卷六 年譜
초양(初陽)
양(陽) 한 획이 처음 생긴다는 11월을 가리킨다.
초어(樵漁)
벼슬을 버리고 나와서 산에서 나무하고 물에서 고기 잡는 데 취미를 붙이겠다는 말이다.
초여담자(初如噉蔗)
진(晋)나라 고장강(顧長康)이 감자(甘蔗)를 꼬리에서부터 먹이 들어가며, “점입가경(漸入佳境)한다.” 하였다.
초연망설례(楚筵忘設醴)
‘신하를 대우하는 정성이 해이해짐’을 말한다. 초 원왕(楚元王)은 노(魯)의 목생(穆生)ㆍ백생(白生)ㆍ신공(申公)을 매우 후히 대우하여, 그들을 위해 주연(酒宴)을 베풀 때마다, 특히 술을 즐기지 않는 목생을 위해서 항상 단술을 준비했는데, 그 다음 임금이 즉위하여서도 항상 그렇게 하다가 뒤에는 단술 놓는 것을 잊었으므로, 목생이 마침내 임금의 정성이 해이해짐을 탄식하고 떠나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초원왕전(楚元王傳)」
초연질질(初筵秩秩)
초연은 손님들이 막 와서 자리에 앉는 것을 이른 말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빈지초연(賓之初筵)」에 “손들이 막 자리에 나아감에 좌우로 질서가 있도다[賓之初筵 左右秩秩]” 한 데서 온 말이다.
초염(楚豔)
초(楚) 나라 지방의 미녀(美女)를 특별히 일컫는 관용어이다.
초엽록(蕉葉鹿)
인간 세상의 득실(得失)이 모두 꿈과 같이 덧없다는 뜻이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 에 “정(鄭) 나라 사람이 나무를 하다가 놀란 사슴을 만나 때려잡은 뒤에 남들이 볼까봐 도랑 속에 넣고 파초잎으로 덮어놓고는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조금 있다가 그만 숨겨 놓은 장소를 잃어버렸으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꿈으로 여기고 말았다. 그가 도중에 그 일을 이야기하면서 왔는데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가서 감추어 놓은 사슴을 찾아 가져갔다.” 하였는데, 여기서 온 말이다.
초옥(楚玉)
초 나라의 보옥인 화씨벽(和氏璧)을 말한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초옥(楚獄)
① 초 나라의 옥사(獄事)이다. 초 나라 충신 굴원(屈原)이 소인들의 무함으로 심리를 받았다는 데서 억울하게 벌을 받는 것을 말한다.
② 후한(後漢) 초왕 영(楚王英)의 옥사(獄事)로 수천 명이 애매하게 연좌되어 억울하게 죽은 대표적인 원옥(寃獄)이다.
초왕대(楚王臺)
전국시대(戰國時代) 초 회왕(楚懷王)이 꿈속에서 무산의 여신과 만나 정을 나눴던 고당(高唐)의 궁관(宮觀)이다.
초왕실궁초인득지(楚王失弓楚人得之)
초나라 임금이 잃은 활을 초나라 사람이 얻는다는 말이다. 도량이 좁은 것을 비유하는 뜻의 고사성어다.
초왕운몽(楚王雲夢)
사마상여가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는데, 초왕(楚王)이 운몽(雲夢)에서 사냥하는 광경을 썼다.
초요(楚腰)
초(楚) 나라 궁녀(宮女)의 허리, 초왕(楚王)이 가는 허리의 여자를 사랑한 데서 유래한 것인데, 전하여 미인(美人)의 가는 허리를 가리킨다.
초요(僬僥)
‘주유(侏儒)’와 같은 뜻으로 ‘난장이’를 말한다. 중국에서 동족으로 40만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난장이 나라로,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1자 5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得僬僥國, 人長一尺五寸]. 『열자(列子)』 「탕문(湯問)」 / “난장이에게 물건을 높이 들도록 시킬 수 없고 난장이에게 높은 곳의 물건을 내리도록 시킬 수 없다[僬僥不可使擧, 侏儒不可使援].” 『국어(國語)』 「진어(晉語)」 四
초요(招搖)
북두성(北斗星) 자루의 맨 끝인 제 칠성(七星)의 이름으로, 이 별은 왼쪽으로 계속 회전하여 정월에는 동방을 가리키고 가을에는 서방을 가리킨다. 진(晉) 나라 육기(陸機)의 ‘의명월교야광(擬明月皎夜光)’이라는 시에 “초요의 별빛이 서북방을 가리키자, 하늘의 은하수 동남쪽으로 기우누나[招搖西北指 天漢東南傾].”라는 표현이 나온다.
초요강(招搖杠)
초요(招搖)의 깃대는 곧 군기(軍旗)를 말하는데, 『한서(漢書)』 「예악지(禮樂志)」의 “招搖靈旗 九夷賓將”의 주에 “초요성을 기(旗)에 그려서 정벌을 하기 때문에 영기(靈旗)라 한다.” 하였다.
초우미표삼협모(楚雨未飄三峽暮)
무협의 신녀(神女)가 초양왕(楚襄王)의 꿈에 나타나 교접하고는 그녀가 가면서 하는 말이 “아침엔 구름이 되고 저녁엔 비가 되리라.” 했다. 남녀의 합환(合歡)을 ‘운우(雲雨)’라 한다. 여기서는 모란꽃 피지 않은 것이 신녀(神女)의 비(雨)가 나부끼지 않음과 같다는 뜻이다. 삼협(三峽)은 사천성(四川省)과 호북성(湖北省)의 경계인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있는 세 협곡으로 무협(巫峽), 구당협(瞿唐峽), 서릉협(西陵峽)이다.
초운상수(楚雲湘水)
초 나라 구름과 상강(湘江)의 물로 남녀의 그윽한 정을 상징하며, 주로 초운상우(楚雲湘雨)라고 한다. 여기서는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참고로 명(明) 나라 고계(高啓)의 제기상(題妓像)이란 시에 “추낭(秋娘)을 보지 못한 지 이제 몇 해나 되었는고. 초운(楚雲)과 상우(湘雨)에 생각이 하염없네.” 하였다.
초운행공자고서(楚雲行共鷓鴣栖)
두 사람 모두 남쪽 지방으로 유배될 운명에 처했다는 말이다. 초(楚) 나라는 굴원(屈原)처럼 조정에서 쫓겨나는 처지를 표상하고, 항상 따뜻한 지방에 사는 자고새를 통해 남쪽 지방으로 떠나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 이백(李白)의 시에 “我似鷓鴣鳥 南遷嬾北飛”라는 구절이 있다. 『이태백집(李太白集)』 卷22 醉題王漢陽廳
초원란(楚畹蘭)
초 회왕(楚懷王) 때 굴원(屈原)이 소인들의 참소를 당하여 쫓겨난 뒤, 임금을 생각하여 근심스런 심정을 읊은 「이소경(離騷經)」에 “가을 난초를 엮어 차노라[紉秋蘭以爲佩].” 한 데서 온 말이다. 『초사(楚辭)』 離騷經
초월(楚越)
서로 간에 관계가 먼 것을 가리킨다. 초(楚) 나라와 월(越) 나라는 서로 상관없는 나라이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초월유(楚越逾)
초 나라와 월 나라.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 “서로 다른 것을 따지면 다같이 뱃속에 있는 간(肝)과 담(膽)도 초월처럼 멀다 할 것이다[自其異者視之, 肝膽楚越也 ; 自其同者視之, 萬物皆一也].” 하였다.
초윤이우(礎潤而雨)
소순(蘇洵)의 글에, “주춧돌에 물기가 있어 축축하면 비가 올 징조[礎潤而雨].”라 하였다.
초은(招隱)
① 숨어 사는 선비를 나와서 벼슬하도록 부르는 일을 말한다.
② 진(晉) 나라의 좌사(左思)라는 사람에게 초은시(招隱詩)가 있었으니, 초은이란 말은 돌아와 산림속에서 살라고 부른다는 말이다.
초은계수편(招隱桂樹篇)
『초사(楚辭)』 가운데 회남소산왕(淮南小山王)이 지은 「초은사(招隱士)」에 “계수나무가 무더기로 남이여, 깊은 산이로다[桂樹叢生兮山之幽].” 한 것을 말한다.
초은사(招隱詞)
은사(隱士)를 부르는 노래이다.
초은시(招隱詩)
① 은자(隱者)를 구하여 찾는 뜻을 서술한 시편의 이름으로, 특히 진(晉) 나라 때 장화(張華)ㆍ좌사(左思)ㆍ육기(陸機) 등에게서 지어졌다.
② 진(晉) 나라 사람 좌사(左思)가 지은 시(詩)의 이른다. 은거하여 사는 즐거움을 읊은 것이다.
초은조(招隱操)
은자(隱者)를 위한 노래 곡조다.
초음(噍音)
급한 소리이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其哀心感者 其聲唯以殺”라 하였다.
초의(草衣)
속성은 장(張)씨, 이름은 의순(意恂), 자는 중부(中孚)인데 무안(務安) 사람이다. 벽봉(碧峯)을 따라 출가하여 적공(積功)한 끝에 교리(敎理)에 정통하고 선경(禪境)을 회척(恢拓)하였다. 뒤에 사방을 운유(雲遊)하여 동서(東西) 산해(山海)의 승(僧)을 다 참알하고 돌아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을 위시하여 홍 석주(洪奭周)ㆍ신위(申緯) 등과 종유하였으며, 특히 추사와는 방외(方外)의 교(交)를 맺어 왕복 서한이 권축(卷軸)을 이루었음.
초의옹(草衣翁)
은자(隱者)를 말한다. 은자가 입는 옷을 초의(草衣)라고 한다.
초인비가(楚人悲歌)
초(楚) 나라 시인 송옥(宋玉)이 가을의 서글픈 정경을 읊은 노래로, 『초사(楚辭)』 「구변(九辯)」에 실려 있다.
초인소(楚人騷)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초(楚) 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으로, 굴원이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겼으나 임금이 간사한 자의 참소를 듣고 멀리하므로 이를 지었다고 한다.
초인이득초인궁(楚人已得楚人弓)
초공왕이 나가 놀다가 활을 잃었다. 좌우가 찾아보기를 청하니, 왕이 “그만두라. 초인(楚人)이 잃은 활을 초인이 얻었으리니 또 찾아 무엇하리오.” 하였다.
초인이소(楚人離騷)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초(楚) 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으로, 굴원이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겼으나 임금이 간사한 자의 참소를 듣고 멀리하므로 이를 지었다고 한다.
초인일거(楚人一炬)
남김없이 불에 타 폐허로 변한 것을 말한다. 항우(項羽)가 함양(咸陽)을 점령한 뒤, 진(秦) 나라 궁실을 모두 태워 석 달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기(史記)』 卷六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사기(史記)』 卷7 「항우본기(項羽本紀)」
초인혼(楚人魂)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말한다. 초 나라 굴원(屈原)이 소인들의 참소에 의해 쫓겨났지만 임금에 대한 충성이 끝내 지극했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초인휴(楚人咻)
맹자(孟子)가 대불승(戴不勝)에게 이르기를 “자네가 왕(王)을 착하게 하고자 하는가? 내 분명히 자네에게 고해 주리라. 초(楚) 나라 대부(大夫)가 자기 자식에게 제(齊) 나라의 말을 가르칠 경우, 제 나라 사람 하나가 스승 노릇을 하고, 초 나라 사람 여럿이 곁에서 떠들어댄다면 아무리 날로 매를 때리면서 제 나라 말을 가르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장악(莊嶽; 제 나라 거리의 이름) 사이에 수년 동안을 둔다면 역시 날마다 매를 때리면서 초 나라 말을 하게 하더라도 또한 되지 않을 것이다. …… 설거주(薛居州) 한 사람의 힘으로 송왕(宋王)을 어떻게 하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下
「초자(楚茨)」
더부룩한 납가새.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한 편명인데, 유왕(幽王)의 학정을 비난한 시이다.
초자불성무협몽(楚子不成巫峽夢)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초(楚) 나라 양왕(襄王)이 무산(巫山) 아래에 와서 자는데, 꿈에 선녀가 와서, “저는 무산의 선녀인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어 하늘에 떠 있고, 밤이면 비가 되어 무산에 내립니다.” 하고, 양왕과 즐거운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초장(椒漿)
‘향초로 만든 즙’을 말한다,
초장록(蕉藏鹿)
꿈 속에서 있었던 허무한 일을 말한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에, “들판에서 나무를 하고 있던 정(鄭) 땅 사람이 사슴을 잡은 다음 이를 죽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고 가져갈까 염려되었다. 이에 사슴을 끌어다가 구덩이 속에 감추고는 풀로 덮은 다음 몹시 기뻐하였다. 그런데 얼마 뒤에 감추어 둔 장소를 잊어버리고는 드디어 꿈 속에서 있었던 일로 여겼다. 그 사람이 길을 내려오면서 그 일을 떠들어 대자 곁에 있던 사람이 듣고는 그 말에 따라 찾아가서 사슴을 얻었다.” 하였다.
초재(蕉齋)
심염조(沈念祖)의 호이다.
초저(草苴)
살아 있는 풀을 초(草), 죽은 것을 저(苴)라고 한다.
초전(椒殿)
후비의 궁전을 말한다.
초정(楚亭)
초정은 박제가(朴齊家)의 호, 자는 재선(在先)이다.
초정자(楚亭子)
초정(楚亭)은 박제가(朴齊家)의 호이며 자(子)는 높여서 붙인 말이다. 박제가는 문장에 뛰어났으며 당시 아정 등과 함께 4검서(檢書)의 한 사람이었다.
초제(招提)
범어(梵語) 카투르데사(caturdeśa)의 음역(音譯)으로, 사방을 말하는데, 곧 사방의 중들이 모이는 곳으로 절을 말한다. 열반경(涅槃經)에 “초제는 승방(僧坊)이라”하였고, 당회요(唐會要)에는 “관(官)에서 사액(賜額)하는 것은 사(寺)가 되고 사조(私造)하는 것은 초제난야(招提蘭若)라 한다.” 하였다. / 인용: 佛國寺與世蕃話(김종직), 南白月二聖, 題僧軸(임유후)
초제(醮祭)
‘성신(星辰)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초조(招潮)
‘게’의 별칭이다.
초조곡(楚調曲)
악부(樂府) 중 상화가(相和歌)의 1부(部)이다. 대산(大山), 소산(小山)은 한(漢) 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문인들의 저술을 정리할 때 『시경(詩經)』의 대아(大雅)와 소아(小雅)처럼 비슷한 종류끼리 묶어서 구별한 분류 방식이다.
초조탄파애추란(楚操彈罷哀秋蘭)
초 나라 곡조란 곧 『초사(楚辭)』의 「이소경(離騷經)」를 말하고, 추란(秋蘭)은 즉 난초의 이명(異名)으로 이소의 “秋蘭兮蘼蕪” 에서 온 말이다.
초종계자기(初終計自奇)
장량(張良)은 부귀(富貴)를 버리고 신선이 되겠다고 벽곡(辟穀)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신(韓信)이나 소하처럼 화(禍)와 욕을 당하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지모(智謀)가 훌륭하였다고 칭찬한 것이다.
초주(楚奏)
초 나라 지방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타향에서 곤경에 처해 고향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진(晉) 나라 왕이 초 나라 죄수 종의(鍾儀)에게 거문고를 타보라고 명하자, 종의가 고향을 그리며 자기 나라 토속의 곡조를 연주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좌전(左傳)』 成公 九年條
초주(椒酒)
① 초백주(椒柏酒). 산초(山椒) 열매를 담아 빚은 술. 정월 초하룻날 이 술을 선조에게 올려 강신(降神)한 후에 집안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자손 되는 이들이 각자 가장(家長)에게 또 이 술을 올린다 한다.
② 초실(椒實)로 빚은 술인데, 옛날 풍속에 정월 초하루 자손들이 가장(家長)에게 초주를 따라 올렸다.
초지(草池)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를 요약한 말로, 멋진 시구(詩句)를 말한다. 남조 송(宋)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종일토록 시 한 편을 완성하지 못하다가, 꿈속에서 족제(族弟) 사혜련(謝惠連)을 만나 보고는 곧바로 ‘지당생춘초’라는 명구(名句)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남사(南史)』 卷19 「사혜련전(謝惠連傳)」
초지(初地)
불교의 용어이다. 십지(十地)의 제일지(第一地)로서 환희지(歡喜地)를 가리킨다.
초지불변(初志不變)
‘처음의 뜻이 변치 않음’이란 말이다.
초지일관(初志一貫)
‘처음의 뜻 하나로 끝까지 꿰뚫음’이란 말로, ‘처음 품은 뜻을 한결같이 밀고 나아감’이란 뜻이다. / 인용: 도인을 칭송하는 품격 있는 김시습의 한시
초지족(鷦枝足)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의 “뱁새는 깊은 숲에 둥지를 치는데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에서 나온 것으로, 자기의 분수에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초차신의(草次新儀)
조선 인조가 친히 땅바닥에 내려가 청 태종에게 절하고 항복한 일을 가리킨 말이다.
초창(怊悵)
‘믿지 못하여 슬퍼함’이란 뜻이다.
초창(草創)
‘초고(草稿)를 쓰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정나라에서 사령장을 만들 때에 비침이 대략적으로 초고를 만들고 세숙이 초고를 다시 검토했으며, 행인인 자우가 문서의 전체 내용에 맞도록 수정했고 동리의 자산이 문장을 매끄럽게 했다[爲命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脩飾之, 東里子産潤色之].”라고 했다.
초초(慅慅)
지친 모양, 근심스러운 모양
초초(杪杪)
가늘고 작은 모양
초초(梢梢)
나무 끝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조금, 꼬리가 처진 모양, 나무의 잎이나 곁가지가 없이 쭉 뻗어난 모양, 나무들의 우듬지
초초(僬僬)
달음박질하여 체통을 갖추지 못하는 모양, 밝게 살피는 모양
초초(哨哨)
말이 많은 모양, 작은 소리의 형용
초초(迢迢)
멀고 아득한 모양.
초초(楚楚)
산뜻한 모양, 가시덤불이 우거진 모양, 고통하는 모양
초초(噍噍)
새의 지저귀는 소리
초초(招招)
손을 들고 부르는 모양
초초(草草)
① 부사간략하게. 대강대강. 허둥지둥. 적당히.
② 형용사걱정하는 모양. 불안한 모양. 바쁜 모양. / 인용: 潼關吏(두보)
③ 명사편지 끝에 붙여 겸양을 나타내는 상투어.
초초(悄悄)
풀이 죽어 근심하는 모양, 고요한 모양
초추(杪秋)
말추(末秋)로, 늦가을이란 뜻이다.
초추취량시(初秋驟凉詩)
송(宋) 나라 때 시인 육유(陸游)의 초추취량시(初秋驟凉詩)에 “我比嚴光勝一籌 不敎俗眼識羊裘 滄波萬頃江湖晩 漁唱一聲天地秋 飮酒何嘗能作病 登樓是處可消憂 名山海內知何限 準擬從今更爛遊”라고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검남시고(劍南詩藁)』 卷七十七
초충상근일상안(草虫相近一床安)
『시경(詩經)』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귀뚜라미 요놈 보소. 칠월엔 들판이요, 팔월달엔 처마 밑. 구월에 문 앞에 서 있더니, 시월엔 나의 침상 밑으로 기어드네[七月在野 八月在宇 九月在戶 十月蟋蟀入我牀下].”라는 구절이 있다.
「초충시(草蟲詩)」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편명으로, 집에 홀로 남아 있는 아낙네가 계절의 변화에 감회를 느낀 나머지 멀리 밖에 나가 있는 남편을 생각하며 지은 시이다.
초택(楚澤)
유배지(流配地)를 말한다.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상수(湘水) 가에서 행음택반(行吟澤畔)했던 고사에서 기인한 것이다.
초택고(楚澤枯)
초(楚) 나라 굴원(屈原)을 가리키는 말이다. 굴원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 택반(澤畔)에서 행음(行吟)할 적에 안색은 초췌하고 형용은 고고(枯槁)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사기(史記)』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초택성(楚澤醒)
조정에서 쫓겨난 초(楚) 나라 굴원(屈原)과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조정에서 쫓겨난 뒤 못가에서 시를 읊조렸다.(行吟澤畔)”는 구절과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혼자서만 깨어 있다[衆人皆醉我獨醒].”는 구절이 나온다.
초택신(楚澤臣)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택반(澤畔)에서 행음(行吟)했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사기(史記)』 卷八十四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초택영란인(楚澤詠蘭人)
초(楚) 나라 삼려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을 말한다. 굴원이 간신들의 참소를 받아 상강(湘江)의 못 가(澤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이소경(離騷經)」를 지었는데, 그 글 안에 난초를 비롯하여 기타 많은 향초를 읊은 글이 들어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사기(史記)』 卷八十四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초택지(楚澤枝)
초택은 초 지방에 있는 호수를 말한다. 굴원(屈原)이 이곳으로 귀양 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난초와 국화가 많았다.
초토(草土)
상중에 있는 것을 말한다. 부모의 상중에는 거적자리를 깔고 앉고 흙덩이를 베고 잠을 잔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초토화(草土禍)
부모의 상(喪)을 말한다.
초평목장(初平牧場)
옛날 황초평(黃初平)이 양을 쳤는데 도사(道士)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에 들어가 40여 년 동안 도술을 닦으면서 집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형 초기(初起)가 여러 해 동생을 찾다가 하루는 시장에서 도사를 만났는데 초평이 금화산에서 양을 치고 있다 하였다. 그래서 찾아가 보고는 초평에게 네가 기르고 있는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초평은 가까이 산동(山東)에 있다고 하였다. 초기가 가보았으나 양은 보이지 않고 다만 흰 돌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돌아와 양이 없다고 하니, 초평은 ‘있는데 형께서 못보았을 뿐입니다.’ 하고는 같이 가 돌에게 ‘양은 일어나라’ 하자 흰 돌이 모두 일어나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 한다. 「신선전(神仙傳)」
초풍(樵風)
중국 절강성(浙江省) 약야계(若耶溪)에 초풍경(樵風涇)이 있는데, 아침에는 남풍이 불고 저녁에는 북풍이 불어 배로 나뭇짐을 실어 나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공령부회계기(孔靈符會稽記)」
초풍전(椒風殿)
후비(后妃)가 거처하는 궁전.
초피모(貂皮帽)
청(淸) 나라 제도에서 문관(文官)으로 4품 이상에게 쓰도록 했던 모자이다.
초현(草玄)
『태현경(太玄經)』를 초한다. 한(漢)의 양웅(揚雄)이 『역(易)』을 본떠서 태현경을 지었음.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에 “양웅(揚雄)이 바야흐로 태현경을 초하면서 스스로 몸 갖기를 깨끗이 하였다.” 한 말이 있다.
초현객(草玄客)
‘초현(草玄)하는 사람’은 곧 한(漢) 나라 양웅(揚雄)을 가리킨다. 양웅이 벼슬에 나가지 않고 조용히 들어앉아 『태현경(太玄經)』를 초했다는 말로, 조용히 앉아 문필(文筆)에나 종사하고 있는 사람에 비유한 말이다.
초현자(草玄子)
한(漢)나라의 양웅(揚雄)이 큰 학문과 문장이면서 적막하게 들어앉아서 태현(太玄)이라는 글을 저술하였다.
초현축대(招賢築臺)
연(燕) 나라가 제(齊) 나라에게 패한 뒤 소왕(昭王)이 즉위해서 자신을 낮추고 후한 폐백을 갖추어 어진 자를 초빙하고자 하였다. 이에 먼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곽외(郭隗)를 위해 누대를 개축하고 스승으로 섬겼다. 그러자 악의(樂毅)가 위(魏) 나라에서 오고, 추연(鄒衍)이 제(齊) 나라에서 오고, 극신(劇辛)이 조(趙) 나라에서 오는 등 선비들이 다투어 왔다. 『사기(史記)』 卷34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초혜(楚惠)
친한 벗 둘이 서로 만난 자리를 말한다. 초(楚)는 곧 초 나라 사람인 장자(莊子)를 가리키고, 혜(惠)는 바로 장자(莊子)의 친구인 혜자(惠子)를 가리킨 것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초혼(招魂)」
송옥(宋玉)이 지은 것이다. 옛날에 사람이 죽으면 사람을 시켜서 지붕 위로 올라가서 북쪽을 향해 서서 “皐 某復”이라고 외치고 죽은 사람의 옷으로 세 번 외치고 내려와서 그 옷을 시체에 덮는다. 이 예(禮)를 복(復)이라 하고 해설하는 사람들은 「초혼(招魂)」ㆍ복혼(復魂)이라 하며 사랑의 도(道)를 다하고 도사(禱祠)의 일을 다했다고 여기는데, 아마도 그 다시 살기를 바라는 것인 것 같다. 이같이 했는데도 살지 않는다면 다시 소생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장례를 치룬다.
초혼부(招魂賦)
초혼은 산 사람의 넋을 부르는 것을 이른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송옥(宋玉)이 초(楚) 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정상을 가련하게 여겨, 근심걱정에 의해 곧 없어져 가는 굴원의 넋을 회복시켜서 그를 오래 살도록 하고자 초혼부를 지은 데서 온 말이다.
초혼초미귀(楚魂招未歸)
이미 죽어서 어찌할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초혼은 곧 초 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넋을 말하는데, 송옥(宋玉)이 굴원의 죽음을 불쌍히 여겨 그의 넋을 부르는 의미로 「초혼(招魂)」의 글을 지은 데서 온 말이다. 『초사(楚辭)』 「초혼(招魂)」
초홀(秒忽)
‘극히 가는 것’을 이른다. 『한서(漢書)』 「서전(敍傳)」에 “産氣黃鐘 造計秒忽”이라 하였다.
초화(椒花)
산초나무 꽃으로 신년(新年)을 축하할 때 자주 쓰인다.
초화랍주(椒花臘酒)
옛날 풍속에 산초의 꽃이나 열매로 술을 담궜다가 정월 초하루에 자손이 장수를 축원하는 뜻으로 자기 집안의 어른에게 올렸다고 한다. 『초학기(初學記)』 卷四 『사민월령(四民月令)』
초화송(椒花頌)
신년 축사(新年祝詞). 새해를 축하하여 올리는 노래를 말한다. 진(晉) 나라 유진(劉臻)의 처 진씨(陳氏)가 조정에 바친 신년 축하 시를 말하는데, “하늘이 한 바퀴 돌아, 이제 정월 초하루. 봄날의 광휘(光輝) 흩뿌려지며, 맑은 경물(景物) 새로워라. 빼어나게 아름다운 신령스런 꽃, 따다가 조정에 바치옵니다. 성상의 기용(氣容) 이 꽃에 조응(照應)하여, 길이 만년토록 사시옵소서[旋穹周廻 三朝肇建 靑陽散輝 澄景載煥 標美靈葩 爰採爰獻 聖容映之 永壽於萬]”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진서(晉書)』 「열녀전(列女傳)」 劉臻妻陳氏
초화주(椒花酒)
산초(山椒)와 여러 가지 약재(藥材)를 넣어 빚은 것으로, 정월 초하루에 제사를 마치고 여러 자손들이 그 가장(家長)에게 올리며 새해를 축하하는 술.
초황록몽(蕉隍鹿夢)
인생의 득실(得失)이 무상하여 꿈과 같음. 정(鄭) 나라 사람이 땔나무를 하다가 놀란 사슴을 발견하고 그를 잡아 남이 볼까 싶은 마음에서 죽은 사슴을 해자 속에다 넣고 나뭇잎으로 덮어두었다. 나중에 그 둔 곳을 기억 못하고는 그것이 꿈이라 생각하고 돌아오면서 그 사실을 혼자 뇌까렸는데, 곁에서 그 말을 들은 자가 있어 그가 말한 대로 찾아가보니 과연 사슴이 있어 그가 가져갔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
초휴(楚咻)
거센 이론(異論)을 말한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下에 “제 나라 사람 한 명이 가르치고 많은 초 나라 사람이 떠들어대면 매일 매를 때리면서 제 나라 말을 습득하게 하더라도 될 수 없을 것이다.[一齊人傳之 衆楚人咻之 雖日撻而求其齊也 不可得矣]”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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