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 시로 자연을 읊으며 임금을 경계하다
『소화시평』 권하 4번에서는 한시를 통해 정치적인 풍자를 하고 있다고 홍만종은 보고 있다. 중요한 건 ‘작가가 정말 그런 의도로 썼냐?’하는 것을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본질은 뭐냐?’를 따지는 작업이 될 텐데, 문학작품을 볼 때 본질적인 의미로 들어가 따지다 보면 시비를 가리려 하게 되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그래왔듯 ‘정답’을 원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서 오히려 작품을 이해하는 마음에 심한 왜곡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소화시평을 공부하는 이상 홍만종이 품평한 시어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고, 도무지 납득이 안 될 땐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달아 생각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錦籜初開粉節明 | 대껍질이 막 벌어져서 마디가 분명하다가 |
低臨輦路綠陰成 | 임금 가는 길에 낮게 임해서 녹음을 이루었네. |
宸遊何必將天樂 | 임금님 거둥에 하필 천악을 거느리겠는가? |
自有金風撼玉聲 | 절로 가을바람 불 땐 옥소리가 울릴 텐데. |
『소화시평』 권하 4번의 첫 번째 소개된 최승로의 시는 단순한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궁궐 동쪽 연못 근처에 대나무들이 자라나기 시작한 상황이다. 그런 대나무를 보며 어떤 시를 읊을지가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든다. 아마 일반적인 서술법이라면 그렇게 자라나는 대나무들이 궁궐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그리고 그 안에 자연이 주는 어마무시한 생명력이 얼마나 잘 깃들어 있는지를 서술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 최승로는 1~2구에선 새로 난 대나무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대나무가 얼마나 파릇파릇한지, 그리고 어느 곳에서 자라나고 있는지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주 평이한 ‘대나무에 대해 읊은 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3구에서 내용이 확 달라진다. 어찌 보면 최승로는 3구를 말하기 위해 대나무란 소재를 끌어왔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임금의 거둥길엔 수많은 음악들이 연주되고 그에 따라 악공들이 뒤따르게 된다. 그만큼 인력낭비와 조세낭비를 초래하게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임금의 거둥은 권력을 과시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 전지전능함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과잉의전과 악공의 장대한 연주 등이 무시로 펼쳐졌던 것이다. 최승로는 바로 이와 같은 현실에 일침을 놓고 있다. 대나무가 이제 막 자라 짙은 녹음을 만들어냈고 가을쯤 되면 대숲 사이로 바람이 불어 옥소리 날 테니, 그렇게 소모적이고 과시적인 거둥을 하지 말고 자연 그대로를 즐기며 수수하게 진행되는 거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이렇게 말을 했으니 홍만종이 “이 시는 음악을 풍자적으로 경계하는 뜻이 있다[有諷戒音樂之意].”는 아주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를 해석하면서 4구의 해석에서 조금 빗나갔다. 대나무가 피어오를 때는 봄이란 시간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가을바람’과 매칭이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미래를 예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을바람이 불 때쯤엔 더 울창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옥소리 절로 들릴 테니, 악공들을 굳이 거느릴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自有金風撼玉聲 | |
기존 해석 | 수정된 해석 |
절로 가을바람 불어 옥을 흔들어 소리 내는데. | 절로 가을바람 불 땐 옥소리가 울릴 텐데. |
하권 4번 | |
禁中東池新竹 | 登鐵嶺 |
임금에게 | |
放鴈 | 臥水木橋 |
욕심을 따르는 무리에게 | |
十月望後雨 | 襄陽途中 |
목민관에게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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