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하며 욕심을 내려놓는 경지란
迷花歸棹晩 待月下灘遲 | 꽃에 빠져 배 돌리기 늦었는데 달을 기다리다 여울 내려가기 또 늦었네. |
醉睡猶垂釣 舟移夢不移 | 취해 자면서도 오히려 낚시대 드리우니 배는 가도 꿈은 그대로구나. |
『소화시평』 권하 3번에 여섯 번째로 소개된 송익필의 시도 시 자체에 담겨 있는 의미보다 그 시를 읽고 홍만종이 그려낸 의미가 더 적나라하기 때문에 홍만종의 시를 보는 관점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다.
1~2구에선 배를 타고 꽃구경을 나선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꽃구경에 흠뻑 빠지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배를 돌려 떠나야 할 시간이 지체되었다. 지금처럼 일분 일초 단위로 시간을 체크하며 움직이는 시대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모습이기도 하다. 꽃에 한 눈 파는 건 ‘씨잘데기 없는 것’에 정신을 파는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치다 타츠루쌤이 강연에서 말한 것처럼 한눈 팔 수 있는 것, 미혹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에겐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거기서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꽃에 흠뻑 빠져들었던 시인은 어느덧 저녁이 되었음을 인지하게 됐고 그때부턴 ‘달 한 번 보고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달을 기다리며 느리게 노를 젓기도 했다. 여유로움과 자연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그 마음이 무척이나 부럽기만 하다.
3~4구에 오면 시인은 꽃을 보느라, 달을 보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홀짝 홀짝 술을 마셨던가 보다. 이 구절은 마치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 절로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다. 꽃을 벗 삼아, 달을 벗 삼아 술을 한잔씩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취기는 올라왔고 자신은 모른 채 몽환적인 분위기에 휩싸이게 됐다. 그러니 배는 움직이지만 그런 몽환적인 분위기의 꿈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구절을 술 때문에 취기가 올라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펼쳐졌다고 보아도 좋지만, 더 시적으로 보자면 꽃과 달에 취해 마치 선경(仙境)에 들어간 듯 느껴졌다고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걸 현재의 뇌과학에선 ‘몰입’이란 말로 쓰듯이, 자신과 외부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져 그대로 빠져드는 경지이니 말이다.
이에 대해 홍만종은 ‘지조를 지키고 변하지 않으려는 뜻이 있다[有操守不變之意].’라고 평을 쓰고 있다. 지조를 지킨다는 건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을 지킨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무얼 지킨다는 걸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교수님은 이에 대해 ‘무욕(無慾), 무심(無心)하려는 마음을 견지하려는 것’이라 풀이해줬다.
하권 3번 | |
遆職後 | 示兒 |
일희일비하거나 욕망을 따르는 무리에게 | |
復寄仲始司藝 | 送僧之楓岳 |
사람의 인품과 물욕에 대해 | |
江上 | 南溪暮泛 |
벼슬길에 나가려는 사람에게 | |
詠雲 | 歧灘 |
改頭換面와 口蜜腹劒하는 사람에 대해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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