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정박한 모습과 선비들의 출처관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 저물녘 푸른 강위에 날씨는 차갑고 물은 절로 파도치네. |
孤舟宜早泊 風浪夜應多 | 외로운 배 마땅히 일찍 정박한 것은 풍랑이 저녁에 응당 많기 때문이지. |
『소화시평』 권하 3번에 다섯 번째로 소개된 최수성의 시는 시의 내용보다 홍만종의 해석이 더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최수성의 시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기보다 아주 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반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처세술의 한 방향으로 본 것은 홍만종의 시평이기 때문이다.
1~2구에선 저물녘 강가의 풍경을 읊고 있다. 아무래도 계절적인 배경은 늦가을 내지는 초겨울일 것 같다. 그러니 저물녘 강가엔 차가운 한기가 돌고 그 한기를 더욱 배가(倍加) 시키듯 파도가 일어나니 말이다. 이 구절을 읽는 것만으로도 스산함이 물씬 느껴지고 뼈마디에 한기가 치고 들어오는 것 같은 추위가 한껏 느껴진다.
이럴 때 우리가 취해야 하는 행동은 매우 명확하다. 빨리 배를 대고 집에 들어가 몸을 녹여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흐름에 따라 시인도 3~4구를 썼는데 3구에선 빨리 배를 정박했다는 것을 먼저 말했고, 4구에선 그에 대한 이유를 읊었다. 이런 경우가 바로 인과가 뒤집어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배를 빨리 정박한 이유를 2구를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날이 추워지니 빨리 배를 대야 한다’는 논조로 이해하는 것인데, 그보단 4구를 원인으로 보는 게 더 의미가 풍부해진다. 2구는 단순히 계절적인 배경만을 암시해준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단 저녁이 되면 풍랑이 훨씬 거세져 배를 정박하기 훨씬 어려워질 테니 그 전에 미리 배를 대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가 쉬우니 말이다.
이런 일상담에 홍만종은 “급류에서 용감히 물러서는 뜻이 있다[有急流勇退之意].”고 풀이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가 흔히 쓰는 용퇴(勇退)라는 단어를 여기서 묵도하게 된다. 지금도 용퇴라는 말을 쓸 땐 정치판이나 권력의 장에서 자기로 인해 조직이 흔들리는 걸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물러서는 것을 표현할 때 쓰고 있다. 그런데 이때 쓰인 용퇴는 조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진퇴에 관한 이야기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벼슬할 만한 시대이면 벼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벼슬을 하게 되면 사(士)이고, 은둔하게 되면 처(處)라고 하여, 처사(處士)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논어』나 『맹자』를 보면 어떤 경우에 벼슬하고 어떤 경우엔 물러서야 하는지를 여러 편에서 다루고 있다.
하권 3번 | |
遆職後 | 示兒 |
일희일비하거나 욕망을 따르는 무리에게 | |
復寄仲始司藝 | 送僧之楓岳 |
사람의 인품과 물욕에 대해 | |
江上 | 南溪暮泛 |
벼슬길에 나가려는 사람에게 | |
詠雲 | 歧灘 |
改頭換面와 口蜜腹劒하는 사람에 대해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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