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복이 기러기를 통해 경계하고 싶은 것
雲漢猶堪任意飛 | 하늘은 오히려 니 뜻대로 날 수 있는데, |
稻田胡自蹈危機 | 어쩌자고 논을 밟아 위기에 처했나? |
從今去向冥冥外 | 이제부터 까마득한 저 하늘 밖으로 날아가서 |
只要全身勿要肥 | 다만 몸을 보전하길 구하고 살찌길 구하지 말라. |
『소화시평』 권하 4번에서 권사복의 시와 신천의 시도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다. 막상 시를 볼 땐 몰랐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보니 하권 4번에 나오는 6편의 시는 교묘히 안배가 되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2편씩 같은 주제를 말하는 시를 묶음으로 내용을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한 번 듣는 것보다 두 번 들으면 더 뇌리에 강하게 박히듯, 아마도 홍만종은 그걸 염두에 두고 이런 식으로 편집한 것이리라.
권사복의 시를 읽는 순간 당연하게도 『성호전서』의 글이 떠올랐다. 여기선 시로 얘기한 것을 『성호전서』에선 산문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소재나 주제가 모두 같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여러 고전에서도 주로 나왔던 내용들이다. 특히 장자의 ‘제사에 쓰이는 소[犧牛]’에 대한 이야기도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다. 소에게 최상의 음악을 들려주고 최고의 음식을 먹여주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신께서 흠향할 최고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 결코 소를 위해 그렇게 해주는 건 아니다. 그처럼 여기서도 잡은 기러기에게 배불리 먹게 해주거나 또는 야생기러기에 먹이를 놓아주거나 하는 건 기러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걸 잡아먹기 위해 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 시에선 ‘몸을 보전하라[全身]’라고 말하고, 『성호전서』에선 ‘잘 스스로를 보전했다[善自保也]’고 말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홍만종의 시평이 재밌다. 당연히 자신을 중심에 놓고 이익이나 욕심에 휩쓸리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로 풀을 만도 한데, 홍만종은 자신에 대한 경계라기보다 다른 사람을 비유의 대상으로 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익을 쫓는 무리를 비유했다[以譬逐利之徒].’라고 시평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권사복의 시를 통해 다음에 보게 될 시도 자신에 대한 경계의 의미보단 그러한 무리들을 경계한 글이란 걸 유추할 수 있다.
하권 4번 | |
禁中東池新竹 | 登鐵嶺 |
임금에게 | |
放鴈 | 臥水木橋 |
욕심을 따르는 무리에게 | |
十月望後雨 | 襄陽途中 |
목민관에게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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