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시로 자연을 읊으며 임금을 경계하다
崩崖絶磵愜前聞 | 깎아지른 벼랑 깊은 골짜기는 전에 듣던 그대론데, |
北塞南州道路分 | 북쪽 변방과 남쪽 고을의 길이 철령에서 갈라진다네. |
回首日邊天宇淨 | 머리 돌리니 해 근처 하늘은 맑은데, |
望中還恐起浮雲 | 바라보는 가운데 다시 뜬구름 일어날까 두렵다네. |
『소화시평』 권하 4번의 두 번째 소개된 이직의 시는 숨겨진 맥락까지 있는 시였지만, 나는 너무도 단순하게 생각했다.
단순히 시만 보면 1~2구에선 철령의 지리적인 위치에 대한 설명을, 그리고 3~4구에선 철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보다가 갑작스레 ‘구름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괜한 걱정’ 정도로 읽혔다. 이렇게만 읽으면 단순히 생각나는 글이 바로 ‘기우(杞憂)’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천해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가고 있으면서, 더욱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고 가고 있으면서 구름이 일까 걱정한다는 것은 ‘사서 하는 걱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이 이 부분에 대한 느낌을 말하라고 했을 때, “이건 마치 씨잘데기 없이 하는 걱정 많은 사람의 시 같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교수님은 이 글에 담겨 있는 정서에 대해 얘기해주더라. 그건 바로 해와 구름에 대한 것이었다. 권상 99번에 있는 석주 권필의 시에서 우린 이미 ‘해와 구름’이 성리학적인 관점으론 어떻게 쓰이는지 용례를 봤었다. 해가 본성이라면 구름은 그걸 가리고 있는 기욕 내지는 기질이라 본 것 말이다. 이처럼 시에선 그저 단순히 쓰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도 그건 마찬가지다. 단순히 자연을 읊은 게 아니고, 그저 괜한 걱정을 써놓은 것도 아니다.
해 | 뜬 구름 |
임금 | 간신 |
해를 가린다는 건 곧 ‘지존을 멋대로 가지고 논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도 최근에 다시 경험했듯이 국정농단이 바로 그것이다. 간신들이 임금의 언로를 막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모든 걸 쥐락펴락하는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3~4구는 간신이 일어날 것에 대한 걱정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니 이쯤 되면 반사적으로 이건 ‘우국충정(憂國衷情)’을 담은 시라는 것까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시에 대한 홍만종의 평가는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 있다는 사실이다. “참소를 근심하고 비난을 두려워하는 뜻이 있다[有憂讒畏譏之意].”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우국충정의 뜻을 담고 있다’는 정도로 보지 않고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있다고 보았으니 말이다. 이에 대해 교수님은 간신들이 일어나 국정을 장악하면 머지않아 그 사람들에 의해 자신은 무고한 참소를 당하고 그에 따라 실각할 뿐만 아니라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미래적인 시각까지 담아 시평을 썼다고 말해줬다.
이렇게 두 편의 시를 보니 그저 자연을 읊은 게 아니라, 자연이란 매개물을 통해 정치 풍자, 그리고 임금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까지 두루 담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래서 시가 재밌는 것이다. 겨우 28자 밖에 쓰지 않았음에도 그 안에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마치 제갈공명이 원정을 떠나며 「군대를 출진시키며 올리는 표문[出師表]」에 썼던 것처럼 후주에게 간곡히 말하던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으니 말이다.
하권 4번 | |
禁中東池新竹 | 登鐵嶺 |
임금에게 | |
放鴈 | 臥水木橋 |
욕심을 따르는 무리에게 | |
十月望後雨 | 襄陽途中 |
목민관에게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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