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정문부의 공적에 일어난 논공행상을 비분감으로 담아내다
이 시는 함경도 땅에서 왜군을 몰아낸 의병대장 정문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원래 『삭방풍요(朔方風謠)』 속에 들어 있는 작품인데, 『삭방풍요(朔方風謠)』는 시인이 정조 1년(1777) 겨울에 함경도 경흥부사(慶興府使)로 좌천되어 갔던바, 이때 견문한 사실들을 잡아서 쓴 것이다.
시는 첫 머리에 “정평사는 기남자로다 / 당신 아니런들 함경도 백성들 흑치(黑齒) 면치 못했으리[鄭評事奇男子 微爾盡黔北人齒]”라고 주인공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들어간다. 요컨대 그 인물은 ‘기남자(奇男子)’요 그 업적은 함경도를 적군의 수중에서 회복한 것이다. 이런 규정이 진실임을 증언한 것이 시의 내용인 셈이다. 그런데 임명대첩이 함경도 전역의 전세를 뒤집는 데 결정이었으므로 「임명대첩가(臨溟大捷歌)」라 제목을 삼은 것이다.
이 임명전투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이, 전체적 조명으로부터 함경도로 좁혀들어 왜군에게 유린을 당하고 내부적으로 반역자ㆍ부역자가 속출하는 사정을 엮어내면서 정문부가 등장하게 된다. 시를 총결하는 부분에서 또 다시 “만약 정공 아니런들 두만강 안쪽 우리 차지 아니요 / 중국으로 쳐들어가는 것도 이곳에서 시작되었으리[不然不惟豆江以內非吾有 荐食上國從此始]”라고 정문부의 역사적 공헌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산문 | 함경도의 왜구를 대파한 정문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다 |
1 | 임진왜란의 발발로 관북까지 무너지다 |
2 | 정문부가 의병을 일으켜 전세를 역전하다 |
3 | 혼비백산하는 왜구들 |
4 | 승승장구의 미담을 가려버린 함경도 감사 |
5 | 100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정문부의 평가 |
인물의 형상을 역사의 구체적 사실ㆍ사건의 전개에 따라 그려냄으로써 작품은 서사성이 뚜렷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시인의 두 가지 의식 내지 정감의 경향이 엿보인다.
하나는 민족적ㆍ애국적 의식이며 다른 하나는 비분의 감정이다. 후자는 특히 뒷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바, 주인공이 그런 큰 공을 이루었음에도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제외되고 마침내는 시안(詩案)에 걸려 죽은 사실이 후세의 시인으로 하여금 비분감(悲憤感)을 갖게 하였다. 그런 사례가 옛일만은 아니라고도 느꼈을 것이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126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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