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유당전서가 아닌 한객건연집에 실린 이유
나는 이 자료를 한 필사본 책에서 발견하였다. 겉에 ‘사대사(四大家)’라 씌어 있는 내표제는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이라 했다. 이 책은 연암의 제자로 나란히 문명(文名)을 날리던 이덕무(李德懋)ㆍ유득공(柳得恭)ㆍ이서구(李書九)ㆍ박제가(朴齊家)의 시 모음인데 이미 간행되어 널리 보급되었으며, 필사본도 더러 눈에 띄는 것이다. 그런데 끝에 부록으로서 남상교(南尙敎)ㆍ이학규(李學逵)ㆍ이가환(李家煥)ㆍ이용휴(李用休)의 시 한두 편과 함께 마지막 몇 장에다 정약용의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라는 제목의 장시가 씌어 있었다. 이 부록에 다산과 함께 들어간 다섯 분은 기호지방(畿湖地方) 남인 계열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이 책을 베껴서 꾸민 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길은 없으나 추측건대 역시 기호 남인계의 후예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교분을 통해 자료를 입수하여 한때 식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을 필사하면서 끝에 적어 놓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시문집 가운데에는 빠져 있다. 그런데 이동환 교수가 소장한 책자 속에서 또 발견된다. 그 책자 역시 필사본으로 모두 다산의 시를 베껴놓은 것이라 한다. 작품의 필치라든지 여러 가지 자료적 정황으로 미루어 다산작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지은 때는 언제일까? 작가 자신이 가경(嘉慶) 계해(癸亥), 곧 순조 3년인 1803년에 작중의 사실을 보았노라고 언급해놓았다. 이 연대는 작중의 사건이 실제로 발생한 때다. 창작연대는 그 후가 될 것이다. 확증이 없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1803년으로부터 그리 먼 시기는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대개 그 해 아니면 그 이듬해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1803년에는 「애절양(哀絶陽)」을, 다음 1804년에는 「하일대주(夏日對酒)」를 쓴다. 이 어름에 짓지 않았을까 보는 것이다.
어떤 연유로 이 작품이 다산의 정리된 시문집 가운데에서 빠졌을까? 이 역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현재 남아 있는 다산시 자료가 제대로 정리된 상태가 아님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연대적으로 살펴보면 1811년부터 8, 9년 사이에는 시작품이 홀랑 빠졌다. 이 시기의 시들은 분명히 망실되었을 것이다. 또 1803~4년 상에도 실린 작품이 평소 그의 시 생산량에 견주어볼 때 아주 적은 편이다. 다산의 시인으로서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현재 남겨진 자료로서는 완전치 못하다. 다산시 자료의 발굴에 유의해야겠다는 점을 이 자리를 빌려 제언한다.
나는 근래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에서 특히 서사시 문학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다산의 이 작품을 처음 대하자 더욱 흥미를 가졌음이 물론이다. 나는 작품을 널리 공유하는 뜻에서 감히 번역을 하여 소개하거니와, 혹시 오역이나 이해의 잘못이 보이면 바로 잡아주시기 바란다. 끝으로 이동환 교수가 아끼던 자료를 한부 복사해주어서 필자가 가진 작품에 결손이 있는 부분을 보충했음을 밝힌다.
인용
1. 지방민의 이야기를 담다
2. 내용 및 예술적인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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