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용 및 예술적인 특징
이 작품은 360행의 장편 서사시다. 다산시 가운데에서 최대의 작품이다. 문제는 길이에 있지 않다. 하나 시인이 주어진 사건에다 주제를 부여해 엮어가는 데 그만한 분량이 소요되었을 것이므로, 길이는 거기 상응하는 비중과 의미가 들어가 있다고 본다.
물론 작품에 대한 결정적 평가는 앞으로 충분한 논의와 분석을 기다려서 내려질 것이다. 나는 처음 소개하는 입장에서 이 시의 내용 및 예술적인 특징에 관해 몇 가지 측면을 언급해두고자 한다.
첫째, 작품 구성상의 특징
이 시는 한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내용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이야기를 시형식으로 엮은 셈이다. 그런데 어디에 이런 여자가 살았는데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더라는 식으로 풀어나가지 않고 서술 공간과 시간이 한 지점 한 시각에서 시작하여 끝맺고 있다.
시의 현장은 강진읍내의 어느 거리다. 그곳에 한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등장하는데 중의 행색을 하고 있다. 옆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따라온다. 이 젊은 여자는 바야흐로 종놈들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판이다. 현대 소실이나 영화에서 보는 장면 제시적 수법을 연상케 한다.
거기서 시인이 무슨 영문인지 묻게 되어, 젊은 여자는 목이 메어 말을 못 하고 어머니가 대신 나서서 사정을 들려준다. 이후부터 끝까지 등장인물의 대사로만 엮인다. 시의 끝맺음 역시 마침 그 자리에 둘러섰던 사람들이 주인공의 운명에 대해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하는 말로 처리된다. 맨 처음 장면에서 인물을 인상 깊게 묘사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시인에 의한 직접적인 서술ㆍ묘사ㆍ설명이 생력되어 있다. 시인의 감회나 평설까지도 문면(文面)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있다. 요컨대 전편을 극적인 전개방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둘째, 주제사상과 그 표출상의 특징
다산은 이 작품에서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가? 위에서 지적한 대로 시인 자신의 의사는 전혀 표명되어 있지 않다. 대사 속에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대사에 의해서 인물의 형상화가 이루어지고 사건이 드러나므로, 그 인물 형상과 사건을 분석해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사건은 주인공이 소경에게 시집가는 데서 일어난다. 육신이 멀쩡한 여자가 불구자를 남편으로 만나는 거기에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신랑 명색이 앞을 못 보는 봉사에다 추한 몰골의 늙은이다.
소경은 이미 나이가 높아
칠칠에 사십구 마흔아홉이라오.
전에 벌써 두 번 초례를 치러
내 아이는 이제 세 번째 여자라.
초취에서 두딸을 낳고
재취에서 아들 하나를 얻어
사내자식도 이미 다 큰 아이요,
작은딸이 지금 스물세살이랍디다.
答瞽年已高 七七四十九 前已再成醮 兒乃第三婦
前婦産二女 後婦擧一男 男年已成童 少女今卄三 -1
한창 꽃처럼 피어난 18세기 소녀가 이런 환경 속에 시집이라고 가보니 자기보다 나이가 위인 전처 소생의 두 딸과 아들 녀석이 새엄마를 갖가지로 구박하고 모함해서 도저히 참고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늙은 소경마저 모진 학대를 가한다. 주인공 앞에 놓인 삶의 자리는 지옥보다 험악하고 철창보다 고달픈 곳이었다. 이 생지옥으로부터 탈출을 꾀한 것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막다른 길마저도 이 가련한 여자에게는 허용되지 않고 관가로 붙들려가는 것이 현재의 지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보람있게 꾸미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소망이며 권리다. ‘소경에게 시집 간 여자’에 대해서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이 비극적인 운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먼저 그 여자를 핍박한 자들의 행위와 성격을 따질 필요가 있다. 주동자는 늙은 소경이고 방조자는 친정아버지며 후원자는 강진 고을 원님이다. 늙은 소경이 자기의 부유한 재산을 미끼로 던져 유혹하자 아버지가 얼른 넘어간 것이다. 늙은 소경의 경우 부를 이용해서 한 여성의 인격을 빼앗고 짓밟았으며, 아버지의 경우 가장(家長)의 위취에서 자신의 물질적인 안락을 위해 딸의 인생을 희생시켰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부녀자의 행실 왜 그리 편협한고?
남편을 헌 버선짝처럼 팽개치다니
지금부턴 다시 머리를 기르고,
부부간에 금실 좋게 지어라.
女行何褊斜 棄夫如弊襪 自今長髮毛 復與調琴瑟 -10
원님이 내린 판결이다. “금실 좋게 지내어라”라니 말은 그럴듯하다. 그렇지만 피고인이 기왕에 무슨 억울한 사정과 고통에 당했으며, 이 판결의 결과 그녀의 인생이 장차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여권(女權)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판결의 이론적 근거는 여성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윤리다. ‘예의로 살인을 한다’는 말도 있거니와, 이 경우가 바로 여성 일반을 억압했던 윤리규범의 족쇄를 채워 가련한 여성을 다시 사지로 밀어넣은 꼴이다. 이처럼 원고 측에 절대로 유리하게 관권을 움직였던 내막에는 부의 힘이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추축하기 어렵지 않다. 요컨대 비극은 기본적으로 빈부(貧富)의 모순에서 발단하였고 또 여성을 멸시하고 속박한 봉건윤리에 의해서 양성된 것이다.
시인은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의 운명에 대해 연민의 정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렇게 만든 사회적 모순과 예속(禮俗)의 잘못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바로 이 작품의 주제사상이다. 그런데 시인은 결코 자신의 목소리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대화의 수법을 운용해서 주인공의 인생을 제시할 뿐이다. 주제사상은 구체화된 형상 속에 잠재해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연극을 감상하듯 주인공의 역경을 구체적으로 살펴서 이해하고 또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한 것이다.
셋째, 인물 형상의 대립과 전형성
혼인 비극으로 엮인 이 서사시에서 갈등의 축은 젊은 여자와 늙은 소경이 인연을 맺음에 있는데, 거기에 친정어머니와 아버지가 주요 인물로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각기 나름으로 성격을 지닌 생동하는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 주인공은 시의 서두에서 벌써 비상한 관심을 끌도록 인상적으로 등장하지만, 서사적 전개가 진행됨에 따라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 여자는 지아비에 대해 무조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도덕률을 거부한다. 이 측면에서는 확실히 저항적이다. 한편으로 어머니가 개가를 권유하자 받아들이지 않는다. 의식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뇌리에 개가란 금수의 행동으로 비쳐진 듯싶다. 어쨌건 그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여자의 도리를 거역하는 대신 신앙생활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의지가 집요하고 강경함을 작품은 묘사하고 있다. 어머니가 딸의 진정을 생각해서 적극 만류할 때도 뿌리쳤거니와, 관권의 개입으로 붙잡혀 가서 시집살이의 지옥에 다시 갇혔을 때도 용감히 탈출했던 것이다. 봉건 예속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삶의 길을 모색하였지만, 어떤 진취적인 진로를 개척하지 못하고, 기껏 종교 신앙에 안주하려 했다. (그것마저 차단당했지만) 이 여자의 형상에서 우리는 고결한 인격을 실현하려는 여성의 한 시대적 전형을 마주한다.
소경은 이 여자와 반대되는 면모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젊음과 늙음, 아름다움과 추함, 청초함과 비루함으로 상반되어, 도저히 한 쌍의 짝으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생활관습에서도 소경은 “때때로 무슨 일이 났다 하면 급급히 산통을 흔들어대며[時來怪事發 急急搖籤筒]” 점을 치는데, 그 꼴이 여자에게는 역겹게 느껴진다.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의 운명은 사실 특수한 사례에 속하는 것이다. 소재상에서 보편성을 결여한 것처럼 보이는데, 갈등의 축에 놓인 두 인물을 이같이 대립적으로 형상화시킴으로써 보편적 의미와 함께 전형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여자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 두 인물은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의 경우 부에 현혹된 나머지, 신랑감이 두 눈이 먼 사람임을 뻔히 알고도 “다만 좀 안 된 건 한짝 눈이 짜긋하나 얼굴은 한창 젊은 사람이라대[所嗟眇一目 顔色乃嬋媛]”라고 거짓말을 하여 혼담을 이루도록 하며, 뒤에 신랑의 정체가 드러나자 아내에게 “나 역시 남의 속임을 당했으니 임자는 나를 보고 원망할 것 없네 (……) 사람의 기수란 하늘이 정해준 걸 화복의 엇갈림 그 누가 알겠냐[我自受人欺 卿無我怨望 (……) 命𡢺有天定 倚伏詳能詳].”라고 얼레발을 치고 되지 못한 운명론을 끌어다 기어이 결혼을 시키고 마는 것이다.
반면에 어머니 쪽은 딸의 운명에 대해서 마냥 서러워하고 안타까워한다. 중이 된 딸이 옷가지와 잘라낸 머리털을 친정으로 보내는 장면이 있다. 이때 어머니는 그것을 끌어안고 소경의 집으로 달려가서 “싹뚝 잘려진 이 한줌의 머리칼 바로 우리 아이의 구름결 같던 머리라네[鬅鬙一掬髮 是兒如雲髮].”라고 한가한다. 그로 인해 딸은 종적이 탄로나서 붙잡혀오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머니가 공연히 주책을 떨어서 딸을 곤경에 빠뜨린 꼴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의 무분별한 처사를 탓하면서도 오죽이나 절통(切痛)했으면 그랬겠느냐고 동정심이 일어난다.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의 친정집은 가난하고 무지를 면키 어려웠던 우리네 서민 가정의 전형이다. 작중에 전개된 내용 역시 서민생활의 비극으로서 전형성을 띠고 있거니와, 여자의 아버지는 가난과 무지 때문에 왜곡된 구시대 가부장의 형상으로, 어머니는 가부장의 권위에 눌려 지내면서 자식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쏟는(약간은 무분별하지만) 모정의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넷째, 표현상의 몇 가지 특징
위에서는 대개 작품의 골격과 전반에 걸친 사항을 검토했는데, 이제 언어표현의 수법에 속하는 세절(細節)에서 발견되는 특징들을 열거해본다.
① 사건이나 정황의 묘사가 생생하게 되어 있는 점
혼례를 치르던 날 신랑 행차가 신부집에 당도했을 때의 장면을 보자.
동리사람들 눈이 휘둥그레 서로 둘러보고
가까운 손들 낙심해서 도로 마루에 오르고
이모님들 차마 못 봐 달아나더라
里人瞠相顧 親賓還上堂 諸姨走且匿(慝) 阿母涕滂滂 -5
신랑의 의외의 생김새에 놀라 일으키는 반응이 이처럼 친소 관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남을 포착해 그려서, 우리가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가령 청순한 여성이 음흉한 늙은이에게 유린당하는 첫날 밤의 상황은 “신방에서 소곤소곤 소린 들리질 않고 한바탕 요동치는 소리뿐일러라[不聞耳語聲 但聞鬨一場].”라고 간결하게 처리한다. 그 여자의 곤욕스러운 몸부림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 표현이 생생하게 구사되어 결국 작품의 형상성을 높이고 있다.
② 여러 가지 풍속도를 그려낸 점
혼수 마련, 신랑이 장가들러 가는 행렬, 소경이 점치는 모습, 중이 되는 절차 등의 대목을 보면 자못 상세하게 묘사해서 마치 김홍도의 풍속도를 펼친 듯싶다. 이런 부분은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작품 내용을 생활과 밀착시켜 풍부하게 해주고 ‘조선적 정조’를 살리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③ 시어가 천근(淺近)하면서도 비속하지 않고 사설이 장황하면서도 산란(散亂)하지 않은 점
당초 한시 형식 때문에 일상 구어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시구를 평이하게 엮어나가면서 천근한 생활어를 대폭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대목에서는 판소리 사설이 그렇듯 장황하게 나열되고 어떤 구절들은 사설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비사실과 과장을 조금 끼워넣기까지 했다. 그런데 천근하면서 심원한 뜻이 있고 장황하면서도 간결한 멋이 있다. 이 점은 작품의 특이한 표현미학이라고 여겨진다.
④ 서정성이 함축된 점
이 작품은 당연히 서사를 위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서사적 과정 속에 정감이 스며 있어 경우에 따라선 서정성이 강렬해지기도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서술방법과 관련이 있다. 작품상에서 진술자는 시인이 아니고 주인공의 어머니다. 모정의 형상인 어머니가 딸의 기막힌 사정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야기는 저절로 회한이 서리고 눈물이 섞이기 마련이다. 특히 운명의 고비인 여자가 신방에 들어가게 되는 혼인날 저녁이나 보림사의 암자에서 어느 여승의 딸의 소식을 가져온 장면 같은 데서는 서정적인 표현이 고조되고 있다. 시인도 작중에서 다른 청자들과 함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주인공의 인생을 알게 된다. 그 이야기를 점점 들어감에 따라 감동하여 연민의 정까지 생겨나게 된다. 서사와 서정을 교묘한 수법으로 결합시켜 심대하고 독특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하겠다.
인용
1. 지방민의 이야기를 담다
2. 내용 및 예술적인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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