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Holocaust
일제강점기에서 1970년대까지 교회 운동과 민족 운동을 이끌었던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은 일찍이 베트남과 우리 민족을 ‘수난의 여왕’이라 부르며 역사적으로 크나큰 고통을 받은 대표적인 민족으로 꼽았다. 그러나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큰 수난을 당한 민족은 역시 유대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고향을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진 이후 유대인은 가는 곳마다 차별과 학대에 시달렸다(→ 디아스포라). 더욱이 유대인은 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나라의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서도 탄압과 배척을 받았다.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결과로 일어난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은 원래 번제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뜻의 고유명사로 만들었다.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1933년에 독일 총리로 집권하자마자 한 달 만에 반유대주의를 정책으로 시행한 것은 그것을 관철시킬 만한 대중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이 유럽 각국에서 심한 박해를 받은 것은 일단 박해를 가한 측의 비인도적인 행위도 문제지만 유대인들에게도 원인이 있었다.
그들은 유대교 특유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을 버리지 않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했으며, 어디서나 자신들만의 신앙과 생활습관을 전혀 바꾸려 하지 않았다. 왕따를 자초한 셈이다. 게다가 재산 소유권이 제한되어 있는 탓에 유대인들은 주로 현금을 다루는 장사나 대금업에 종사했으므로 현지 주민들에게서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무려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학살극을 변명할 수는 없다. 나치 독일이 치밀하게 수순을 밟아간 과정은 홀로코스트가 얼마나 계획적인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35년에 나치 독일은 일단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해 학살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곧이어 유대 회당(시나고그, synagogue)을 비롯한 유대인 기관들을 파괴했으며,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고 집단 수용소에 감금하기 시작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수용소에 감금되지 않은 유대인들은 유대인 표시를 한 채 게토(ghetto)라고 불리는 유대인 거주 지구에서 사실상 갇힌 상태로 살아야 했으며, 남자들은 군수공장에 징집되어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묘한 것은 그렇게 가혹한 정책이었음에도 반유대주의는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파시즘 체제의 창시자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흉내를 내고자 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가 맨 먼저 반유대주의를 입법화했고 뒤이어 헝가리와 루마니아도 유대인 박해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개전 초기에 독일이 중부 유럽 전역을 장악하자 반유대주의도 점령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나치 수뇌부는 유대인을 장기적으로 격리시키려는 계획을 구상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아프리카 동남부의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유대인을 대거 이주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거나 전황이 독일에 불리해지지 않았더라면 SF 영화와 같은 그 황당한 계획이 실천에 옮겨졌을지도 모른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면 이스라엘은 종전 후 마다가스카르에 건국되었을 테고 오늘날 중동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치솟았던 독일의 위세가 죽고 연합국의 기세가 오르기 시작하는 1942년 나치는 드디어 결정적인 홀로코스트를 준비했다.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이라는 명칭이 붙은 반제회의에서 나치 독일은 모든 유대인을 집단 수용소에 감금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학살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으나 회의에서는 일단 강제노동을 통해 유대인의 자연 감소를 유도한 뒤 남은 유대인들은 “적절하게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그 말은 사실상 학살을 의미했다. 곧바로 대량 처형을 위한 가스실을 설치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전쟁 기간 동안 처형된 유대인은 400만 명에 달했으며, 그 밖의 방식으로 살해된 수를 합하면 모두 600만 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된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 유대인들이 연합국 측에 전폭적으로 재정 지원을 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덕분도 있지만 홀로코스트로 인한 유대인의 엄청난 비극에 공감하는 국제적 분위기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중동 문제가 생겨났으니 한 비극의 해결이 다른 비극을 낳은 셈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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