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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환경(Environment)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환경(Environment)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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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Environment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인간을 신이 창조한 세계의 주인으로 규정했다. 인간은 지상에서 신을 대리하는 역할이었으므로 신이 부여한 권리를 바탕으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었다. 자연환경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탄생한 도가 사상은 인간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인(聖人)은 만물을 알지만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살아갈 뿐 무엇을 소유하거나 무엇에 의지하지 않는다[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노자, 도덕경(道德經)2

 

인간은 환경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역할일까, 아니면 환경의 일부로서 환경에 관철되는 법칙에 순응하는 존재일까? 인간에게는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이 존재하면서 스스로 존재를 문제 삼는 이중적 존재방식을 취한다고 말했는데(현존재), 그 논리를 연장하면 인간은 자연에 속하면서도 자연을 대상화하는 이중적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환경 문제를 떠올리면 인간 대 환경이라는 노골적인 대립 구도를 설정하기 쉽다. 그렇게 인간을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몰아붙인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환경과 인간의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인간 역시 환경에 속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문제는 복잡하다.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자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행위자다. 환경이 만들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그 환경을 파괴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일까?

 

그 질문은 환경에 관한 사상과 이론의 근저에 놓인 중요한 주제이며, 일상적으로도 자주 마주치는 문제이다. 실제로 개발과 보존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전개될 때마다. 또는 둘 중 어느 한 측의 입장 - 주로 개발의 논리 - 을 의도적으로 대변하려는 힘겨룸이 벌어질 때마다 그 문제는 표면상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가장 깊숙한 쟁점이 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숲을 뒤엎고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면 그건 환경 파괴일까? 일단은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환경의 산물인 인간이 자신을 위해 하는 활동이 어떻게 환경과 논리적으로 배치될 수 있을까?

 

 

같은 라틴어 어원[civitas]에서 비롯된 도시(city)와 문명(civilization)은 역사적으로 항상 제국주의와 행보를 같이 했다. 제국주의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식민지가 반드시 필요하듯이, 도시라는 공간은 애초부터 시장을 중심으로 탄생하고 발달한 만큼 살아남기 위해서 주변에 방대한 농촌을 거느리고 수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문명이 야만(savage)을 뜻하는 라틴어silva에서 나왔다, 즉 자연환경을 굴종시키며 발전했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문제는 그런 식의 발전이 자연은 물론이고 문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명이 자연에 가한 상처는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도시를 오히려 자연 상태로 만든다. 자연은 위험이고 문명은 안전이라는 철석같은 믿음이 깨어지기 시작한다. 현대에 환경 문제가 대두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환경오염은 문명의 초창기부터 있었다. 기원전 1만 년 전 인간이 최초로 동식물을 사육하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것(농업혁명)이 환경오염의 시작이다. 그때부터 인간은 삼림을 개간해 밭과 도시를 건설했고, 지구상에 골고루 분포된 광물자원을 도시로 집중시켜 자연의 균형을 파괴했다. 인류 문명의 초창기에 예외 없이 대홍수가 있었다는 신화는 아주 일찍부터 삼림 파괴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대기오염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토양과 물의 오염은 인류 문명과 거의 역사를 같이한다.

 

환경 파괴가 인간의 행위에 기인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인간의 일상적 활동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주된 요인을 찾는 논리도 있다. 사회생태학은 사회의 계급구조가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동기와 수단을 만들어냈다는 입장을 취한다. 미국의 생태학자인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1921~2006)은 봉건사회가 몰락하면서 유기적 사회가 붕괴되었고, 뒤이어 등장한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만이 아니라 자연 세계까지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자기 파괴적 성향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그래서 북친은 지배와 억압의 체제를 전복시켜야 자연과 인간 사회가 조화와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무정부주의적 환경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환경을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환경을 보존하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과 환경은 원래부터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관계다. 사하라를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는 혼자 출발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자신의 트럭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늘한 해질녘이 되면 길을 떠난다. 차비를 받으려는 게 아니라 운전사에게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막 도로의 곳곳에 도사린 모래언덕과 구덩이를 건너가려면 사람들이 트럭을 밀어주어야 한다. 트럭을 인간으로, 사막을 환경으로 보면 알기 쉽다. 트럭은 강하지만 그 강함으로는 부드러운 사막의 모래언덕을 넘을 수 없다.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상호 의존하는 것, 이것이 인간과 환경의 올바른 관계다.

 

 

▲ 제주행 비행기에서 본 새만금.

 

 

 

 

인용

목차

제석봉의 횡사목

그대여, 자연과 감응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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