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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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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노는 것이 직업이라면 언뜻 부러워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로 먹고 사는 연예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노는 날에 일해야 한다. 직업적 운동선수는 휴일에 더욱 열심히 경기를 해야 한다. 경마의 기수나 프로게이머는 남들이 즐기는 경주나 컴퓨터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대부분 일과 놀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놀 여유가 전혀 없이 일만 해야 하는 사람도 안됐지만 반대로 할 일이 전혀 없어 놀아야만 하는 사람도 딱하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인 로캉탱은 놀면서 살 수 있는 연금 생활자다. 그는 남아도는 시간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롤르봉 후작이라는 프랑스 역사상의 한 인물을 취미로 연구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실존, 즉 존재의 무근거함을 깨닫는다. 그가 소일거리이자 연구 주제로 택한 롤르봉은 결국 그 자신의 텅 빈 근거를 메우기 위한 소재에 불과했다. 일과 놀이가 완전히 분리되면 지킬과 하이드처럼 이중생활을 하게 되거나, 일도 놀이도 무의미해지게 된다.

 

 

 

그러나 놀이는 단순한 여가 활용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다.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인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는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전통적인 견해에서는 놀이가 문화의 일부분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호이징가는 오히려 문화가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놀이는 문화의 한 하위 분야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인 범주다. 게다가 놀이는 인간의 삶에서 부차적인 여가 활동이 아니라 도리어 근본적인 활동이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인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굴 벽화를 보면 인류는 초기부터 일과 놀이와 삶을 일치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처럼 놀이도 놀아 본 사람만이 놀 줄 아는 법이다. <하나비>라는 일본 영화에는 두 명의 불행한 사내가 나온다. 주인공인 니시 형사는 딸을 잃고 백혈병에 걸린 아내의 치료비 때문에 야쿠자에게 빚까지 진, 한마디로 이 세상에 미련이 있을 이유가 없는 인물이다. 또 주인공의 단짝 친구이자 콤비였던 호리베 형사는 총상을 입고 하반신 불구가 되면서 단란하던 가정마저 박살난 사람이다. 병문안을 온 니시에게 호리베는 이렇게 말한다. “한가한 것도 고역이군, 어머니는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라는데, 지금까지 늘 바쁘게 살아오느라 뭘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바쁘게 살아오느라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동안 한 일은 많았어도 놀아본 적은 없다는 이야기다. 호리베의 그 말은 역설이지만, 주어진 일만 열심히 수행하면서 일상에 매몰된 채 사는데 익숙해진 생활인들에게는 뼈저린 역설이다.

 

지금이라면 쉰이라는 나이를 아직 한창 일할 때로 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쉰이면 오히려 일할 만큼 일한 나이였다. 남들이 40년에 걸쳐 하는 일을 불과 20년 동안에 우지끈뚝딱 해치웠으니 이젠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호리베가 말했듯이 그동안 일만 하느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를 잊었다는 사실이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100원짜리 장기나 화투판을 벌이는 시아버지와 하루 종일 며느리와 손자들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시어머니도 그런 경우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누구나 할 줄 알 것 같은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사랑을 그렇게 갈망하면서도 사랑보다는 성공, 권위, , 권력 등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모든 정력을 사용하고 있다.” (프롬, 사랑의 기술).

 

놀이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을 일로만 때운 사람들은 막상 그 일이 떨어져나갔을 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비극을 예방하려면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반드시 놀이의 기술도 배워둬야만 한다. 늘 아이들은 놀이보다, 공부를, 어른들은 놀이보다 일을 중시해온 우리 사회에서, 정작 그 공부와 일의 발전을 저해해온 것은 바로 호모 루덴스의 관념이 없었던 탓이다.

 

 

 

 

 

 

인용

목차

걸음걸이에 삶은 영글어간다

변산에 모여든 호모루덴스들

이성을 비웃으며 노는 너구리들

호모루덴스를 지향하는 예술을 위해

호모루덴스들, 평화의 공원에서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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