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문화
Subculture
문화를 놓고 수준을 논하거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문화상대주의), 특정한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집단 또는 특정한 문화가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다. 사회적 엘리트에게는 그들 나름의 문화가 있고, 노동자에게는 노동자 특유의 문화가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한 사회의 전반적이고 지배적인 문화와 별도로 소집단만이 지닌 문화를 하위문화라고 부른다.
사회의 주류 문화로부터 거리를 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하위문화는 원래 일탈적인 집단의 문화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생겨났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청소년 비행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하위문화의 개념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부정적인 뜻은 사라지고 특정한 직업 집단, 연령층, 지역, 취향 등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된다.
주류가 없으면 비주류가 있을 수 없듯이 사회의 전체 문화와 하위문화는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그러나 전체 문화가 하위문화를 통제하고 제약하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하위문화가 독자적으로 발달하면서 전체 문화에 대해 순기능 혹은 역기능을 하는 관계다. 전체 문화의 빈틈을 메워주는 경우에는 순기능이지만 전체 문화에 대해 적대적이고 파괴적인 역할을 할 경우에는 역기능이다.
상류층, 청소년 등 사회의 각 계층에 고유한 하위문화, 도시와 농촌 같은 지역별 하위문화는 대체로 전체 문화에 대해 순기능을 한다. 그러나 사회와 학교의 폭력배 문화, 비도덕적인 취향의 향락 문화는 사회에 유해하고 독소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사회에 적대적인 하위문화라고 해서 무조건 역기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배 문화가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질서를 저해하는 경우에는 대항문화(counter-culture)가 진보적인 역할을 한다.
독재 세력과 민주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던 1970~80년대 우리 사회에서는 군사문화가 지배적인 주류 문화였다. 이럴 경우 대항문화는 부당한 지배를 제어하고, 궁극적으로 군사 문화를 종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하지만 문화와 정치는 다르므로 대항문화는 직접적인 정치 운동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부당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취함으로써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당한 작용을 한다.
문화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문화적 본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물리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외적인 강제력이 가해지면 획일화되기 쉽다. 후자의 측면에 주목하는 정치권력은 문화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방식으로 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1970년대에 박정희(朴正熙, 1917~1979) 군사정권이 국민교육헌장과 새마을운동으로 국가지상주의의 가치관을 전 국민에게 고취하려 한 게 바로 그런 사례다.
그러나 주류 문화는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도 하위문화는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위문화는 권력 집단의 의도에 따라 형성되거나 폐기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를 알려면 주류 문화보다 하위문화를 보아야 한다. 선진 사회의 특징은 다수 대중을 위한 장치보다 소수자에 대한 정교한 배려에 있는 것처럼 하위문화야말로 그 사회의 힘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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