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상사동기(想思洞記)
「상사동기」는 「영영전(英英傳)」라고도 불리었는데, 젊은 유생인 김생이 회산대군의 궁녀인 영영을 사랑하게 되어 우여곡절 끝에 결연을 맺는다는 이야기이다. 「상사동기」도 「운영전」처럼 작자나 창작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이 17세기 초에 지어졌다는 것은 다른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다. 권전(權佺)의 『석노유고(釋老遺稿)』에 ‘余罹病久矣, 病中無聊莫甚, 使兒輩讀想思洞記’【박노춘의 「고전문학관계기록 3편」(『숭전어문학』 5, 숭전대 국어국문학회, 1976)에서 재인용.】라는 기록이 있는데, 권전은 권필의 조카로 1583년에 태어나 1651년에 죽었다【차용주(1989), 『한국한문소설사』, 아세아문화사, 270쪽.】. ‘권전이 병중에 무료하여 아이들로 하여금 「상사동기」를 읽게 하여 들었다’는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권전이 죽은 1651년 이전에 이미 창작되어 널리 읽혔을 가능성이 높다.
「상사동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성균관 진사인 김생은 어느 날 성균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우연히 미인(영영)을 보고 반하여 뒤를 좇는다. 영영이 상사동의 한 민가로 들어가자, 김생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이후 김생은 영영을 생각하며 근심에 쌓여 있는데, 하인 막동이 그 까닭을 알고 영영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김생은 막동이 알려준 방법대로 손님을 전송하는 사람으로 가장하여 영영이 들어간 집을 빌려 며칠을 머물면서 동정을 살핀다. 그 집 주인은 칠순 노파였는데, 뒤늦게 김생이 자기 집에 온 까닭을 알고 영영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영영은 자신의 조카이지만 회산대군의 시녀이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생이 한번이라도 만나게 해 달라고 간곡하게 사정하자, 노파는 이미 죽은 영영의 모친 제사를 핑계로 영영을 상사동으로 오게 한다. 노파의 집에 이른 영영은 김생을 사모하지만 회산군이 항상 자신을 곁에 두고 시중을 들게 하기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뒤, 김생에게 회산대군이 외출하는 보름날 저녁에 궁중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보름날 저녁에 김생은 영영이 가르쳐 준대로 무너진 궁벽 틈을 이용해 궁중 안으로 들어가 영영과 운우지정을 나눈다.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김생은 편지라도 전하고자 했지만 상사동 노파마저 죽었기 때문에 전할 길도 없는지라, 모든 희망을 잃고 몽상에 젖어 지낸다. 3년 뒤 영영에 대한 그리움이 점차 줄어들자, 김생은 다시 학업에 전념하여 과거에 급제한다. 3일 동안 유가(遊街)를 벌이는 사이에 김생은 회산군댁 앞을 지나다가 옛 일이 생각나서 일부러 취한 척하고 말에서 떨어진다. 이를 본 회산군 부인이 김생을 부축해서 집안으로 모시게 하며, 여기에서 김생은 영영과 재회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길만 주고받는다. 김생은 영영이 몰래 전해준 편지만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영영의 편지를 읽고는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져 마침내 병들어 눕는다. 동창생인 이정자가 문병을 왔다가 김생의 사연을 듣고는, 회산군댁 부인이 자기의 고모이며 회산군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이후 김생과 영영은 이정자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게 되며, 김생은 공명을 버리고 끝까지 장가들지 않은 채 영영과 함께 생애를 마친다.
「상사동기」는 「운영전」과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두 작품의 남주인공인 김진사와 김생 모두 진사과에 합격한 젊은 유생이며, 여주인공인 운영과 영영은 실존했던 인물인 안평대군과 회산대군의 궁녀라는 점이다. 즉 두 작품은 모두 궁녀와 젊은 유생의 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또 남주인공이 사랑을 실현하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각각 노비인 특과 막동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도 일치하고 있으며, 「운영전」의 무녀와 「상사동기」의 노파가 두 연인의 만남을 중개하는 상황설정도 유사하다. 따라서 「운영전」과 「상사동기」는 서로 실질적인 영향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상사동기」는 「운영전」과 마찬가지로 궁녀와 젊은 유생의 사랑을 통해 자연스런 감정의 발현인 남녀의 애정을 억압하는 중세적 이념과 틀을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상사동기」는 「운영전」만큼 이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했다고 보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운영전」은 비록 몽유록이라는 형식적 장치를 빌기는 했지만 운영과 김진사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중세적 이념과 틀의 반인륜적 측면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상사통기」는 궁녀인 영영과 젊은 유생인 김생이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즉 「상사동기」는 영영과 김생의 사랑을 낭만적인 결연담의 형식으로 호도함으로써 중세적 이념과 틀의 반인륜적 측면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박일용(1993), 「운영전의 비극적 성격과 그 사회적 의미」, 『조선시대의 애정소설』, 집문당, 187쪽.】. 다만, 소설의 발전과정으로 볼 때, 「상사동기」의 행복한 결말은 전기소설의 환상성을 극복하면서 통속적인 국문소설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정하게 진전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용
1. 머리말
2. 작품의 성격과 그 의의
1) 주생전
2) 위경천전
3) 운영전
4) 상사동기
5) 최척전
3.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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