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애정전기소설의 성격과 그 의의
이상구(Lee, Sang- Gu)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에 애정을 주제로 한 일군의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 「상사동기」 「최척전」이 바로 이들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권필이나 조위한 등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한문 문어체로 씌어져 있으며, 『금오신화』 가운데 「이생규장전」이나 「만복사저포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금오신화』가 산 사람과 죽은 여귀(女鬼)와의 사랑 등 비현실적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면, 이들 작품은 사건과 갈등을 현실적인 토대 위에서 형상화함으로써 중세적 질곡을 보다 사실적으로 묘파하고 있다.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은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중세적 이념과 체제 하에서 애정에 따른 질곡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상사동기」와 「최척전」은 비록 행복한 결말을 맺지만 신분적 질곡에 따른 애정갈등과 전란으로 인한 서민들의 험난한 삶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이 이룩한 현실주의적 성취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들 작품은 사건을 현실적 토대 위에서 형상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에서 소외된 지식인들의 낭만적인 욕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1. 머리말
임진채란 직후인 17세기 초에 애정을 주제로 한 일군의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 「상사동기」 「최척전」 바로 이들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권필이나 조위한 등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한문 문어체로 씌어져 있으며, 『금오신화』 가운데 「이생규장전」이나 「만복사저포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금오신화』가 산 사람과 죽은 여귀(女鬼)와의 사랑 등 비현실적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면, 이들 작품은 현실적인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은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중세적 이념과 체제 하에서 애정에 따른 질곡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상사동기」와 「최척전」은 비록 행복한 결말을 맺지만 신분적 질곡에 따른 애정갈등과 전란으로 인한 서민들의 험난한 삶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간 학계에서는 이들 작품이 주제로 삼고 있는 애정의 사회적 성격과 이들 작품이 이루어낸 현실주의적 성취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왔다.
애정전기소설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금오신화』와 17세기에 창작되었던 「주생전」 및 「운영전」 등에 한정되었는데, 이는 이들 작품이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있다는 점에 크게 힘입었다. 실로 우리 고전소설사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들 작품이 연구대상으로 부각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며, 연구자들의 논의도 비극적 구성의 의미탐구에 집중되었다【관련된 주요 논문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소재영(1976), 「석주 권필론」, 『승전대논문집』 6, 숭전대 인문과학언구소. / 김일렬(1977), 「주생전 소고」, 『어문논총』 11, 경북대 국문과. / 정규복(1970), 「운영전의 문제」, 『고대문화』 11, 고려대 총학생회. / 김일렬(1971), 「운영전 고(I)」, 『어문논총』 1, 경북대 국문과. / 소재영(1971), 「운영전 연구」, 『아세아연구』 41,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 성현경(1977), 「운영전의 성격」, 『국어국문학』 76, 국어국문학회.】.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임병양란과 문학적 대응이라는 면에서 「주생전」과 함께 「최척전」이 새롭게 연구대상으로 부각되었으며, 「상사동기」는 「운영전」과 비교하는 차원에서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거론되기 시작하였다【관련된 주요 논저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소재영(1980), 『임병양란과 문학의식』, 한국연구원. / 강진옥(1986), 「최척전에 나타난 고난과 구원의 문제」, 『이화어문논집』8, 이화여대 한국어문학연소. / 민영대(1987), 「최척전에 나타난 작자의 애정관」, 『국어국문학』 98, 국어국문학회. / 민영대(1987), 「최척전 연구」, 『한남어문학』13, 한남어문학회. / 배원룡(1981), 「운영전과 영영전의 비교고찰」, 『국제어문』2, 국제대. / 박일용(1987), 「운영전과 상사동기의 비극적 성격과 그 사회적 의미」, 『국어국문학』98, 국어국문회. / 김낙효(1989), 「영영전의 구조와 의미」, 『한국학논집』16, 한양대.】.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연구는 작품론과 작가론에 한정되어 전개되었으며, 애정전기소설을 통합적으로 고찰하려는 시각은 마련되지 못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애정전기소설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활력을 띠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연구경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첫째, 사실주의에 대한 관심의 부각이다. 현대문학계의 경우 이미 80년대부터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고전문학계에서는 『우리나라 문학에서 사실주의의 발생, 발전 논쟁』(사계절, 1989)이라는 제목하에 북한의 연구성과가 소개되면서 사실주의적 관점에 따른 연구가 촉발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가장 주목을 받게 된 것이 바로 17세기 애정전기소설이다. 17세기 애정전기소설은 전대의 소설들과는 달리 사건과 갈등의 전개가 철저하게 현실적 토대 위에서 전개되고 있는바, 이들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산출되었던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 언제 발생했느냐는 논쟁의 대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은 김시습의 『금오신화』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최치원」이나 「조신」 등 나말여초(羅末麗初)에 나온 위기(偉奇)가 최초의 소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관련된 주요 논문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지준모(1975), 「전기소설의 효시는 신라에 있다-조신전을 해부함」, 『어문학』 32, 한국어문학회. / 조수학(1975), 「최치원전의 소설성」, 『영남어문학』 2, 영남어문학회. / 지준모(1976), 「신라수이전 연구」, 『어문학』 35, 한국어문학회. / 임형택(1981), 「나말여초의 전기문학」, 『한국한문학연구』 5, 한국한문학연구회. / 정학성(1982), 「전기소설의 문제」, 『한국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 / 이헌홍(1982), 「최치원전의 전기소설적 구조」, 『수련어문논집』 9, 부산여대.】. 이 주장은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80년대에 말에 이르러 몇몇 소장학자들이 우리나라 소설사의 구도를 새롭게 조명하려고 시도하면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관련된 주요 논문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김종철(1988), 「서사문학사에서 본 초기소설 성립문제-전기소설과 관련하여」, 『고소설연구논총』(다곡 이수봉선생 화갑 기념논총). / 신재홍(1989), 「초기 한문소설집의 전기성에 관한 반성적 고찰」, 『관악어문연구』 14,서울대 국문과. / 박희병(1992), 「한국고전소설의 발생 및 발전단계를 둘러싼 몇몇 문제에 대하여」, 『관악어문연구』17, 서울대 국문과. / 박일용(1992), 「명흔소설의 낭만적 경향성과 그 소설사적 의미」, 『관악어문연구』 17,서울대 국문과. / 이혜순(1933), 「전기소설의 전개」, 『고소설사의 제문제』(성오 소재영교수 환력기념논총), 집문당. / 박희병(1994), 「설화와 전기소설의 장르와 그 성격-전기소설의 문제」, 『한국한문학연구』 17, 한국한문학연구회 / 김종철(1995), 「고려 전기소설의 발생과 그 행방에 대한 재론」, 『어문연구』 26, 충남대 국문과. / 박희병(1995), 「전기적 민간의 미적 특질」, 『민족문학사연구』 7, 민족문학사연구소. / 설중환(1995), 「조선초기 전기소설의 개념과 형성」, 『경산 사재동박사 화갑기념논총』. / 장효현(1995), 「전기소설의 연구 성과와 과제」, 『민족문화연구』 28,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 김종철(1995), 「전기소설의 전개 양상과 그 특성」, 『민족문화연구』 28,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 윤재민(1995), 「전기소설의 인물 성격」, 『민족문화연구』 28,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 박일용(1995), 「전기계 소설의 양식적 특징과 그 소설사적 변모 양상」, 『민족문화연구』 28,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 윤재민(1996), 「전기소설의 성격」, 『한국한문학연구』 창럽 20주년기넘특집호, 한국한문학회】. 이 과정에서 '전기(傳奇)' 또는 '전기소설(傳奇小說)'의 개념 및 성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이 논의는 『삼국사기·열전』의 「온달」과 「설씨녀」, 『삼국유사』의 「김현감호」 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17세기에 창작된 「주생전」 「위경천전」 「운영전」 「상상동기」 「최척전」의 장르적 성격에 대한 논의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의 큰 흐름에 따라 애정전기소설에 대한 연구는 개별 작품론과 작가론에서부터 전기소설의 장르적 또는 미적 특성, 소설사의 전개과정에서 이들 작품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의의, 현실주의적 성취와 한계 등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그 결과 현재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되어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수렴하여 17세기 애정전기소설의 성격과 의의를 정리하는 가운데, 작자 및 창작시기 등 그간 문제가 되어 왔던 몇몇 논란거리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인용
1. 머리말
2. 작품의 성격과 그 의의
1) 주생전
2) 위경천전
3) 운영전
4) 상사동기
5) 최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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