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Structuralism
“하나님이 그들(인간)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이 성서의 구절에 가장 알맞은 시대는 천지창조의 시기보다 19세기 후반일 것이다. 인간은 세상 만물의 주인이었고 자유로웠다. 과학적·철학적 이성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고 모든 이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는 한없이 투명했다. 비록 당시의 현실은 폭풍 전야였으나 지성의 영역은 더없이 안정적이었다.
이 휴머니즘의 절정기, 이성 만능시대에 휴머니즘과 이성에 반대하는 구조주의가 탄생한 것은 아이러니다. “물질적 존재 조건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충분히 성숙하기 전까지는 새롭고 고도한 생산관계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강요』” 마르크스는 사회혁명의 시기를 말한 것이지만 이 말은 지적혁명에도 적용된다. 구조주의는 기존의 지성이 충분히 성숙했을 때 등장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구성했으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무의식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의 테두리 내에만 머물지 않고 지성의 영역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 전까지 인간의 정신은 청순한 여배우처럼 늘 맑고 밝은 이미지였다. 비록 신체는 생물 유기체로서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이따금 부도덕하고 추한 탐욕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정신은 언제나 고결한 기품을 자랑했다. 그런데 무의식은 인간의 정신이 처음부터 이중적이고 분열적이라는 비밀을 폭로한 것이다. 마냥 예쁜 집에도 뒷간이 있듯이 정신의 내부에는 흉물스럽고 추악한 무의식이 도사리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을 깎아내렸다. 그 전까지 인간은 이성을 바탕으로 사유하며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 존재로 간주되었다. 인간은 신이 부여한 능력과 권한으로, 인간만이 지닌 언어라는 수단으로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소쉬르는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구조의 지배를 받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인간이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자신의 말과 글은 실상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문법에 맞춰 자신이 만들지 않은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이 무의식에 의해 분열되고 언어구조에 의해 주인의 자리에서 쫓겨난 비참한 상황은 구조주의가 자라나는 토양이 되었다. 프로이트와 소쉬르의 영향을 받고서 구조주의의 싹을 틔운 사람은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였다.
레비스트로스는 여러 사회의 친족관계, 생활양식, 신화, 종교, 예술, 요리 등의 문화적 측면을 연구해 인간 사회의 공통적인 요소를 추출하고자 했다. 인간 사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르고 각 사회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지만 그 다양한 현상의 배후에는 불변의 측면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여러 사회의 드러난 차이점을 표층으로 규정하고, 그 배후에 감춰져 있으나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요소를 심층으로 규정하면서 이것을 구조라고 불렀다.
이렇게 구조주의는 언어학과 인류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특정한 이론 체계라기보다는 방대한 방법론에 가깝기 때문에 하나의 사조를 이루었다. 대체로 구조주의의 특징은 무의식을 강조하고(레비스트로스는 사회구조를 사회적 무의식이라고 말했다), 이성의 동일성을 부인하며, 주체를 사유의 중심으로 보는 대신 오히려 구조 - 언어구조와 사회구조 - 의 산물이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반(反)지성주의이고 반인간주의지만 도덕적인 의미의 비합리주의나 비인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구조주의는 전통적 형이상학을 거부하지만 오히려 형이상학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인간존재를 분석하고 설명하기에 더없이 유리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형이상학은 인간을 분석의 주체로 설정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구조주의는 인간을 중심에서 탈락시켰으나 인간을 분석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확고히 정립함으로써 훨씬 더 객관적인 분석의 지평을 열어놓았다. 반휴머니즘을 기치로 내세우는 구조주의가 휴머니즘보다 더 휴머니즘에 가까운 게 아닐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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