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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에로스 & 타나토스(Eros & Thanatos)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에로스 & 타나토스(Eros & Thanatos)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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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 타나토스

Eros & Thanatos

 

 

goat는 원래 염소를 뜻하지만 scapegoat는 희생양으로 번역한다. 염소가 졸지에 양으로 둔갑한 이유는 염소를 한자어로 산양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염소를 불에 태워 번제(燔祭)를 지냈다고 한다. 염소는 인간의 삶을 위한 제물이었던 셈이다. 나중에는 염소만이 아니라 소나 새 같은 다른 동물, 심지어 사람까지 제물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희생되는 것들을 총칭하여 희생양이라 했다.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의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린 사실은 당시의 사상과 풍습으로 보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일이었다.

 

고대의 종교에서 비롯된 이 희생양을 통한 정죄 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종교의 탈은 벗었으나 오히려 더욱 기만적인 자기 합리화 방식으로 사용된다. 표면상으로는 희생양의 도덕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은근히 자기 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희생양을 내세우는 경우다.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꼬집을 수는 없어도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사태가 벌어졌을 때 희생양이 필요해진다. 비합리적인 것이 합리화의 수단이 되는 셈이다.

 

 

20세기 초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도 이 끔찍한 사태의 책임을 물을 희생양이 필요했다. 물론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등 패전국들은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했지만 전 세계가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만큼 모두의 분노를 표출할 공공의 적이 따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던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생각한 희생양은 엉뚱하게도 인간이 아닌 신이었다.

 

전쟁을 겪기 전에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을 사랑의 신 에로스에 비유했다. 그는 에로스가 자기 보존의 성적 충동을 의미한다고 보고 생명을 향한 무의식적 의지로 해석했다. 그런데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되자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이 있다면 죽음의 본능도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죽음의 신 타나토스에 비유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타나토스는 모이라이(Moirae, 운명), 히프노스(Hypnos, ), 네메시스(Nemesis, 복수), 에리스(Eris, 다툼)의 형제로 등장한다.

 

 

원래 프로이트는 에로스와 함께 타나토스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었으나 전쟁 전까지는 두 개념을 병치시키지 않고 타나토스를 에로스의 부수적인 의미로만 여겼다. 즉 에로스가 본래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해 삶의 본능이 좌절될 때에만 타나토스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삶의 본능은 있어도 죽음의 본능이란 없으며, 죽음은 삶의 길이 막혔을 때나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최대의 참극을 겪은 뒤 프로이트의 생각은 달라졌다. 타나토스는 에로스에 종속된 의미가 아니라 에로스와 동등한 위상을 지닌 인간의 본능이었다. 인간에게는 삶과 생성의 본능만이 아니라 죽음과 파괴의 본능도 있었다. 타나토스는 에로스와 무관하게 실재하는 본능이므로 단순히 에로스가 위축될 때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삶의 길이 막히지 않아도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인류 사회가 진보의 길로 나아가도록 하려면 에로스만 조장해서는 안 되고 타나토스를 통제하고 조절해야 한다. 오히려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에로스보다 타나토스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에로스가 좌절될 경우에는 번영이 지체될 뿐이지만 타나토스가 활개를 친다면 사회 전체에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타나토스도 에로스처럼 무의식적인 본능이자 충동이므로 그 방향은 예측할 수 없다. 외부를 향한 공격성으로 표출될 수도 있는가 하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자기 파괴로 나아갈 수도 있다. 세계대전의 전범국들은 전쟁에서의 승산을 따지기도 전에 이미 타나토스에 사로잡혀 상호 공멸의 전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삶은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타나토스에 시달리는 정신질환자는 삶이 주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태어나기 전의 상태, 즉 비유기체의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 무생물로 환원되고자 하는 이 본능이 억제되지 못하면 환자는 자살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무의식에 적용되는 에로스/타나토스의 개념을 곧바로 사회적 차원에 접목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프로이트가 주장하듯이 인간 개인에게 타나토스의 본능이 있다 해도 그것이 집단적 충동으로 전화되려면 단순히 본능의 메커니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프로이트의 설명은 전쟁의 비극을 소수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몰아붙여 결과적으로 더 근본적인 원인을 은폐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 선발 제국주의 진영과 후발 제국주의 진영이 식민지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나토스보다는 오히려 에로스가 작용한 결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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