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어 사전 - 약한 고리(Weak Link)

약한 고리

Weak Link

 

 

사슬은 많은 고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똑같은 모양의 고리들이 이어져 사슬을 이루지만 고리가 하나라도 끊어지면 사슬 전체가 무력해진다. 자전거를 묶어놓은 사슬의 열쇠를 잃어버렸을 경우 단 하나의 고리만 풀면 자전거를 사용할 수 있다. 어떤 고리를 풀어야 할까? 당연히 많은 고리들 중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풀어야 한다. 녹이 슬었다거나, 이음새가 다른 고리보다 더 벌어져 있다거나……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인 사슬과 고리를 이론적 비유로 삼아 약한 고리라는 말을 개념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이다. 이 단순한 용어에는 탁월한 전략가인 레닌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숨어 있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사상을 통해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사회주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얻은 레닌은 조국인 러시아의 사정을 보고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하면 내부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0세기 초까지도 여전히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차르(tsar) 체제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러시아는 자본주의가 발달하기는커녕 유럽에서 가장 뒤처진 나라였다.

 

혁명적 분위기는 충만하지만 과연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할까?

“혁명적인 이론이 없이는 혁명적인 실천도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기에 레닌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레닌은 실천을 위한 이론적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마르크스의 시대와 다르다. 이것이 화두였다.

 

마르크스의 시대에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을 배경으로 했는데, 이는 시장이 무한대로 존재해야만 가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이 본격화되고 얼마 안 가서 자본주의 각국의 국내 시장은 포화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변모되어 시장의 확대를 위해 해외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급기야 식민지마저 고갈된 19세기 말부터 자본주의는 또다시 독점자본주의로 변형되었다. 이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어 자본주의는 나라마다 불균등한 발전 양태를 보였으며, 자본주의의 모순도 나라마다 다른 양상으로 심화되었다. 레닌이 약한 고리의 개념을 떠올린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다.

 

 

러시아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면서 제국주의 진영에 속한다. 후진 자본주의 국가의 모순은 제국주의라는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주체적 역량이 어느 정도 성숙해 있다면 그 약한 고리에서 먼저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충분히 가능하다!

 

더구나 이 혁명이 성공하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혁명을 유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할 것이다.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강조한 마르크스와 달리 혁명의 주체적 요인을 강조한 레닌의 이론은 결국 러시아라는 후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자본주의의 성숙도가 미약하지만 그 대신 차르 체제의 가혹한 억압이 있었다. 또한 혁명을 수행할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정당이 있었다. 그래서 레닌은 러시아가 제국주의의 사슬을 끊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끝끝내 사회주의 신생국의 질곡이 되었다. 혁명에 성공한 소비에트(Soviet) 정권은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해야 했고, 정치권력의 안정을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해야 했다.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실험이 불과 한 세기도 못 버티고 실패로 끝난 이유는 애초에 기형적인 혁명으로 시작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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