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Ⅴ. 대대(待對)와 무대(無對) - 2. 대대 논리의 해체: 무대(無對), 자시(自是)와 자피(自彼)의 의식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Ⅴ. 대대(待對)와 무대(無對) - 2. 대대 논리의 해체: 무대(無對), 자시(自是)와 자피(自彼)의 의식

건방진방랑자 2021. 7. 3. 16:37
728x90
반응형

4. 자시(自是)와 자피(自彼)의 의식

 

 

장자는 지금 우리로 하여금 갓난아이로 되돌아가라고 권하는 것일까?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장자가 권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 장자철학에서 갓난아이는 하나의 이념으로 도입되어 있다. 다시 말해 어른으로서 우리는 갓난아이로 상징되는 유동성을 확보해야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삶을 잘 영위하기 위해 서 타자와 잘 소통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경상초(庚桑楚)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처럼 순진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고, 또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다. 또 하루 종일 보면서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다. 길을 가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앉아 있어도 할 일을 알지 못한다. 외부의 타자에 순응하고, 그 타자의 흐름에 자기를 맡긴다. 이것이 삶을 기르는 방법이다.

能兒子乎! 兒子終日嘷而嗌不嗄, 和之至也; 終日握而手不掜, 共其德也; 終日視而目不瞬, 偏不在外也. 行不知所之, 居不知所爲, 與物委蛇而同其波. 是衛生之經已.

 

 

흔히 더럽고 추한 사람을 보면 어른들은 인상을 쓰지만, 갓난아이는 오히려 그런 사람과 어울려 즐겁게 놀 수 있다. 이것은 갓난아이가 자신이 조우하는 타자를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어른들이 항상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의식, 즉 자시(自是)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갓난아이는 나와 너가 분리되지 않는 의식, 자피(自彼)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자피라는 의식의 상태로부터 자시라는 의식의 상태로 이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런 식으로 우리는 나는 남자다라든가, ‘저기에 있는 여자는 아름답다라든가, 아니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른으로서의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일 수 있으며, 나아가 타자와 잘 소통할 수 있는가? 갓난아이는 거울을 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이 자기의 모습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거울을 보고 그 거울에 비친 상이 자신의 모습인지를 안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에 묻은 것을 지우기도 하고 화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거울에 비친 상이 자신의 모습인지를 알 수 있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거울에 비친 상과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거울에 비친 상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서 거울에 비친 상은 네 모습이 맞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거울의 상과 자신의 모습 이외의 제3자가 바로 공동체의 규칙이다. 이 공동체의 규칙은 내가 무엇을 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타자가 원해서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해명해준다. 이런 이해에 따르면 우리는 스스로를 공동체의 규칙이 욕망하는 대상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나라고 여기는 자시(自是)라는 의식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나와 너, 추녀와 미녀, 즐거운 것과 불쾌한 것 등의 구분은 결국 나를 통해서 작동하고 있는 공동체의 규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결국 어른으로서의 우리는 공동체의 규칙이 꾸고 있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 ‘저기에 있는 여자는 아름답다고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처럼 평가를 내린다. 이런 메커니즘 속에서 과연 타자와의 소통은 가능하기라도 한 것일까? 바로 이런 질문에서 장자가 저것과 이것이 동시에 소멸한다[彼是方死]‘고 말한 자피(自彼)라는 해체의 논리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인용

목차

장자

원문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