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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Ⅵ. 꿈과 깨어남 - 2. 꿈 은유의 중요성, 예(禮)가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다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Ⅵ. 꿈과 깨어남 - 2. 꿈 은유의 중요성, 예(禮)가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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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 은유의 중요성

 

 

1. ()가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다

 

 

타자와 조화롭게[] 관계하겠다는 공자의 서의 정신은 자신이 의도한 것과는 달리 나 자신과 타자에게 동시에 폭력적일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왜 이런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공자가 예에 대해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는 서의 정신은 오직 조우한 타자가 나와 동일한 욕망 구조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적절한 관계 맺음의 원리로서 기능할 수 있다. 나아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이란 사실 예가 원하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 결국 공자의 서는 나뿐만 아니라 타자도 예라는 동일한 심판자 밑에 두려는 의지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양화(陽貨)편을 보면 공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친하게 대하면 불손하게 되고, 멀리하면 원망을 한다.

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이런 공자의 술회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이로부터 우리는 공자의 서의 원리가 단지 여자가 아닌 사람들(=남자들)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지식인층)에만 적용되었던 것임을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서의 원리가 보편적 의의를 갖는 것이라면 여자와 소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하지 않았겠는가동일한 삶의 규칙을 공유하고 있는 남자 지식인들에만 적용되는 원칙, 즉 예라는 법조문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통용되는 원칙은 결코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보편적 원칙일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이제 장자가 공자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으며 또 무엇을 문제 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공자로부터 주체와 타자 사이의 진정한 관계 맺음, 소통이라는 문제를 떠맡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소통을 하기 위해 예라는 매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공자의 확신을 문제 삼고 있다. 장자에 따르면 예라는 매개가 소통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계속 예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매개라고 주장하고 나아가 이런 주장을 타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자는 자기만의 꿈속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아가 자신의 꿈을 모든 타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이 원하지 않은 것을 타자에게 하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정의되는 서는 타자와 적절히 관계 맺게 해주는 원칙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진정한 관계 원칙은 타자가 원하지 않는 것을 타자에게 하지 마라[人所不欲, 勿施於人]”라고 표현되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다음과 같은 의문이 발생한다. 우리는 어떻게 타자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그 고유한 타자의 내면을 읽을 수 있을까?

 

 

 

 

인용

목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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