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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Ⅹ. 날개 없이 나는 방법 - 1. 수양의 세계와 삶의 세계, 장자가 말하는 수양론 본문

고전/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Ⅹ. 날개 없이 나는 방법 - 1. 수양의 세계와 삶의 세계, 장자가 말하는 수양론

건방진방랑자 2021. 7. 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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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자가 말하는 수양론

 

 

장자의 철학도 수양론, 즉 내향적 실천론이라는 중국 철학 일반의 성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장자의 수양론이 전제하는 마음도 이념으로서의 마음(=본래적 마음), 현상적 마음(=비본래적 마음), 주체적 마음으로 분열되어 있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의 본래적 마음이 타자와 부드럽고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비인칭적인 마음[]이라고 한다면, 비본래적 마음은 나는 나다라고 집착하는 인칭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장자의 수양론은 앞에서 살펴본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吾喪我]’라는 언급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먼저 수양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주체적 마음[]은 자신의 현상적 마음[]이 소통에 부적절하다는 통찰을 가져야 한다. 그 다음에 주체적 마음은 이런 자신의 현상적 마음을 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현상적으로 고착된 마음을 잊게 되었을 때 주체의 마음[]은 비인칭적인 마음을 회복하게 된다.

 

이렇게 비인칭적인 마음을 회복한 주체적 마음은 본래적인 주체적 마음일 수 있을까? 그러나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래적 마음을 소통의 마음으로 결단하고 비본래적 마음을 잊으려고 노력했던 주체적 마음은 역설적이게도 비인칭적인 마음을 회복함으로써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타자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자철학이 지닌 역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직 주체만이 주체의 자리를 타자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역설! 주인이 스스로 손님이 되려는 역설!

 

장자의 수양론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주체가 차지하고 있는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타자를 위해 비우는[] 데 있다. 장자의 수양론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타자가 들어와도 넉넉히 쉴 수 있는 넓은 마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회복했다고 해서 소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방을 넓게 비워놓았지만 어떤 손님도 오지 않았을 때, 우리는 이 비워 있는 집의 주인이 타자와 소통했다고 아직 말할 수 없다.

 

수양론적 공간에서 정립되는 타자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타자 일반으로 이념으로서만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수양론의 경우에 생각되는 타자는 추상적으로 나의 머리 속에서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타자 일반으로 정립되는 수양론적 공간에서의 타자는 구체적인 삶의 세계 속에서 조우하는 타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왜냐 하면 삶의 세계에서 만나는 타자는 모두 단독성을 가진 구체적인 다양한 타자들, 형식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타자들일 수밖에 없다. 소통은 바로 이런 삶의 공간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자가 수양론을 별도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타자와의 소통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구체적인 삶의 세계 속에서 타자와 조우하고 그 타자의 단독성에 귀기울이면 되지 않았을까? 타자를 초대하기 위해서 깨끗하게 치워진 방은 그 자체로 나르시스적인 결벽증에 빠져 있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는 인칭적 자의식을 비운다는 수양이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할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양은 그 자체로 숭고한 목적이 아니라 타자와 적절하게 소통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엄격하게 말해서 타자와의 소통을 위해 수양의 세계는 반드시 삶의 세계와 통합되어야만 할 것이다.

 

 

 

 

인용

목차

장자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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