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극기(金克己)와 진화(陳澕)의 소이(小異)
김극기(金克己, ?~?, 호 老峯)와 진화(陳澕, ?~?, 호 梅湖)는 시대적으로도 선후(先後)의 차가 있을 뿐 아니라 개성의 빛깔에서도 서로 농도를 달리 하는 소이(小異)가 발견되지만, 남용익(南龍翼)은 그의 『기아(箕雅)』 서문(序文)에서 이들의 시세계를 ‘유려(流麗)’로써 한 데 묶었다[流麗則鄭司諫ㆍ金內翰ㆍ李銀臺ㆍ陳翰林ㆍ鄭雪谷ㆍ鄭圓齋].
그러나 진화(陳澕)에 대해서는 「한림별곡(翰林別曲)」 제1장에서 ‘원순문 인로시 공로사육 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元淳文, 仁老詩, 公老四六, 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이라 한 것을 비롯하여 『고려사(高麗史)』에서 ‘어려서 이규보와 명성을 나란히 하여 당시엔 이정언과 진한림으로 불렸다[少與李奎報齊名, 時號李正言ㆍ陳翰林]’이라 한 이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ㆍ『지봉유설(芝峯類說)』ㆍ『성수시화(惺叟詩話)』 등에서 이규보(李奎報)와 진화(陳澕)는 서로 이름을 나란히 한 것으로 말해져 왔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陳澕)와 이규보(李奎報)가 함께 시로써 일시에 이름을 드날린 소단(騷壇)에서의 비중을 말한 것이며 그 시의 내질(內質)이나 특장(特長)에서 대동(大同)하다는 말과는 다르다. 서거정(徐居正)이 그의 『동인시화(東人詩話)』 권하(卷下) 4번에서 이규보(李奎報)의 「하일즉사(夏日卽事)」와
輕衫小簟臥風櫺 | 대닢자리 가벼운 적삼으로 바람 난간에 누웠다가 |
夢斷啼鶯三兩聲 | 꾀꼬리 울음 두세 소리에 꿈이 깨었네. |
密葉翳花春後在 | 나무 잎에 꽃이 가리어 꽃은 봄 뒤에도 남아 있고 |
薄雲漏日雨中明 | 엷은 구름에 해가 새어나와 비 속에서도 밝구나. |
小梅零落柳僛垂 | 매화 떨어지고 버들은 어지러이 춤추는데 |
閑踏淸嵐步步遲 | 한가로이 山 기운 밟으니 걸음마다 더디네. |
漁店閉門人語小 | 어점은 문을 닫고 사람 소리 적은데 |
一江春雨碧絲絲 | 온 강 봄비가 실실이 푸르네. |
를 가리켜 품조운격(品藻韻格)이 한 손에서 나온 것 같다고 하였으며, 그는 또 진화(陳澕)의 「송도(松都)」 시(詩)와 정지상(鄭知常)의 「서도(西都)」를 대비한 곳에서 사어(詞語)가 청신미려(淸新美麗)하여 나란히 함께 갈 만하다고 했다. 그러나 서거정(徐居正)이 이규보(李奎報)의 「하일즉사(夏日卽事)」와 진화(陳澕)의 「야보(野步)」를 가리켜 ‘마치 한 손에서 나온 것 같다’고 추켜올린 것은 이규보(李奎報)와 진화(陳澕)의 시세계가 그 내질(內質)에서 전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웅혼(雄渾)한 이규보(李奎報)의 시작(詩作) 가운데서도 특히 완려(婉麗)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하일즉사(夏日卽事)」의 솜씨가 진화(陳澕)의 「야보(野步)」와 너무도 닮아 있음을 말했을 뿐이다.
이에 반하여 진화(陳澕)의 「송도(松都)」와 정지상(鄭知常)의 「서도(西都)」를 대비하여 ‘청신미려(淸新美麗)’로 합평(合評)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시작(詩作)이 하나로 묶여질 수 있는 공통분모(共通分母)를 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남용익(南龍翼)이 지적한 ‘류려(流麗)’의 근거를 서거정(徐居正)이 일찍이 사실로써 보여준 것이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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