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주(洪奭周, 1774 영조50~1842 헌종8, 자 成伯, 호 淵泉)는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과 함께 ‘연대문장(臺淵文章)’으로 이름을 얻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다.
선조의 부마였던 홍계원(洪桂元) 이후 꾸준히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영예를 누린 그의 가계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더욱 융성하게 되었으며, 아우 길주(吉周)와 현주(顯周) 등도 현달(顯達)하였다. 김창협(金昌協)ㆍ박지원(朴趾源)의 뒤를 이어 한 장석(韓章錫)ㆍ김윤식(金允植)ㆍ이건창(李建昌)ㆍ김택영(金澤榮) 등에 이르는 중간단계에서 고문가(古文家)의 전통을 빛낸 큰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풍산세고(豊山世稿)』를 간행하면서 “우리 집안이 문학을 전수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 십팔대인데 그 성취한 바의 깊이와 높이를 우리 자손들이 감히 논의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예의가 아니면 일컫지 않고 경전이 아니면 기술하지 않아 오로지 화평전식(和平典寔)함으로 종주(宗主)를 삼았다[吾家以文學相傳紹 迨今十八世矣 其所就深淺高下 非我後子孫所敢議 若其非禮義不稱 非經傳不述 一唯是和平典 寔以爲主者 「豊山世稿跋」]”고 한 바와 같이 그의 고문(古文)은 가학(家學)으로 지켜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정조의 학문장려책으로 신설된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발탁되어 규장각에서 6년간 특별교육을 받았으며 정조ㆍ순조ㆍ헌종을 차례로 보필하여 61세에 좌의정에 오를 때까지 여러 요직을 두루 맡았다.
시보다는 고문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홍석주(洪奭周)는 사상적 주조로 보면 존심(存心)과 구방심(求放心)을 신조로 성리학(性理學)을 옹호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당시 김정희(金正喜)에 의해 제고된 훈고학(訓古學)ㆍ금석학(金石學)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으며, 성리학 자체에 대해서도 공리공론(空理空論)을 지양하고 소쇄응대(掃灑應對)ㆍ읍양진퇴(揖讓進退) 등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의 문학관은 주로 시보다는 문장 평가에 집중되고 있거니와 사달(辭達)을 중심으로 억양개합(抑揚開闔)에 의한 문장의 고법(古法)을 체득하여 간결근엄(簡潔謹嚴)한 경지을 열어보여야 한다는 데 귀착되고 있다.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에 그의 문장이 여러편 수록되어 있는 것도 이론과 창작의 실제를 일치시키려 했던 노력의 결과라 할 것이다.
경세가로서, 문장가로서의 이름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홍석주(洪奭周)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것이 옳은 평가가 될 것이다. 그의 시편 중에서 『대동시선』에 수록된 가작은 「차영명루한운(次永明樓寒韻)」(七絶), 「장서도중(長湍途中)」, 「강경포(江鏡浦)」(이상 五律), 「장림(長林)」, 「차상사운(次上使韻)」, 「추일등루차포옹운(秋日登樓次圃翁韻)」(이상 七律), 「강여사(姜女祠)」(五古) 등 7편에 이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장림(長林)」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蕭蕭寒雨正催詩 | 쓸쓸한 찬 비 정히 시(詩)를 재촉하는데 |
十里平林又一奇 | 십리(十里)에 뻗은 숲 또 하나 기경(奇景)이로다. |
濃翠連綿秋色裏 | 짙은 녹음은 가을 빛 속에 이어져 있고 |
半江隱見夕陽時 | 강물은 은은히 노을질 때 나타나네.. |
輕舟渺渺隨桃葉 | 가벼운 배로 아득히 복사잎 따라가니 |
遠岸依依唱竹枝 | 먼 언덕에는 희미하게 죽지사(竹枝詞) 들린다. |
不盡臺城楊柳感 | 대성(臺城)의 버드나무 느낌 다하지 않았는데 |
東明舊國幾回移 | 동명(東明)의 옛나라는 몇 번이나 바뀌었나. |
이 시는 차분한 어조로 평양성을 지키기 위하여 축조된 옛 행성(行城)의 버드나무 숲을 본 감회와 동명왕(東明王)의 고사(故事)를 교직(交織)한 것이다. 그러나 ‘화평전실(和平典實)’함을 문장의 모범으로 삼는 고문의 대가답게, 이 작품에서도 역시 정감(情感)의 표출에 있어 화평함과 전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인용
'책 >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6. 후사가와 죽지사(개요) (0) | 2021.12.21 |
---|---|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5. 경세가의 시편(김매순) (0) | 2021.12.21 |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5. 경세가의 시편(이가환) (0) | 2021.12.21 |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5. 경세가의 시편(정약용) (0) | 2021.12.21 |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4. 위항인의 선명(박윤묵) (0) | 2021.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