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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한시 문학의 종장 - 1. 한말의 사대가(황현)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한시 문학의 종장 - 1. 한말의 사대가(황현)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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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黃玹, 1855 철종6~1910, 雲卿, 梅泉)은 전남 광양의 한미한 시골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구한말의 급박한 정세 속에서 가장 많은 우국시를 남긴 당시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소년 시절부터 청운(靑雲)의 꿈을 간직했으나 34세에 겨우 진사(進士)가 됐으며, 이것도 상경(上京)한 지 10여년 만에 얻은 결과였다. 창강(滄江)과 마찬가지로 이건창(李建昌)의 발천(發薦)으로 서울의 문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시명(詩名)이 드러났으며 이를 계기로 이건창(李建昌)김택영(金澤榮) 등과 문우(文友)의 교분을 다지게 되었다.

 

그는 문보다는 시에서 빼어났으며, 특히 절구에서 보여준 굳센 힘은 강직한 그의 성품과 함께 타고난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백면서생(白面書生) 시절의 시 가운데 수작(秀作)이 많지만, 날카로운 시대의식을 담은 시들은 대부분 서울 생활에서의 염증을 느끼고 귀향한 다음에 지어진 것들이다.

 

그가 성균생원(成均生員)이 되던 1888년 무렵 이미 정사(政事)는 기울고 있었으며 외우(外憂) 또한 날로 가중되는 형세여서, 서울의 거리는 그의 말대로 귀국광인(鬼國狂人)의 무리가 들끓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울을 떠나게 되었으며 다시 서울에 올라오는 일이 드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의 투철한 시대의식과 날카로운 비평정신은 스스로 많은 우국시를 남겼으며, 소중한 구한말의 야사 자료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이룩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많은 상세우국(傷世憂國)의 시편들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이충무공의 용기와 지략을 고대하는 충무공구선가(忠武公龜船歌), 충무공이 병사들을 조련하던 곳이었는데도 이제는 일본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벽파진(碧波津)을 바라보며 당시의 정세를 비장하게 읊은 벽파진(碧波津), 의기(義妓) 논개(論介)의 절조를 기리고 있는 의성논개비(義城論介碑), 목포항을 통해 외국상품이 범람하는 와중에서 우리의 쌀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상황을 탄식한 발학포지당산진(發鶴浦至糖山津), 을사조약의 비보를 접하고 비분강개를 토로한 문변(聞變)등을 들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다시 말할 것이다.

 

 

여기서는 황현(黃玹)의 마지막 우국(憂國) 시작(詩作)이자 대표작으로 널리 인구에 회자되어온 절명시(絶命詩)4수 가운데 셋째 수를 보기로 한다.

 

鳥獸哀鳴海岳嚬

새 짐승 슬피 울고 산하(山河)도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이 강산이 속절없이 망했구나.

秋燈掩卷懷千古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되새겨 보니

難作人間識字人

글 배운 선비 구실 참으로 어렵구나.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지은 작품으로 황현(黃玹)의 의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황현(黃玹)은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나라로부터 쌀 한톨 얻어 먹은 은혜도 입은 일이 없지만,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비분강개하던 지사(志士). 이 작품에서 그는 나라가 일본에 의하여 패망당한 비극을 조수(鳥獸)와 산하(山河)도 울부짖고 찡그리는 것으로 극대화하고 있지만, 그러나 정작 그가 슬퍼한 것은 500년 동안 선비를 양성한 나라에서 나라가 망하는 날에 이르러 선비가 해야 할 구실을 스스로 찾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음뿐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황현(黃玹)의 시는 초기작 가운데 수작(秀作)이 많으며, 그 가운데서도 그의 뛰어난 사실적인 수법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종어요(種菸謠). 작품을 보기로 한다.

 

大雨一夜川流洪

밤새도록 큰 비 내려 냇물이 불고

霮䨴三日因濛濛

사흘 내내 안개비로 눈 앞이 어둑하네..

秧務如焚村無傭

모내기에 바빠서 마을에 일꾼이 없는데

何人獨向山雲中

어떤 이가 홀로 산 속으로 가는가?

雉驚格格叢莾翻

꿩은 놀라 꺽꺽대며 덤불에 날고

蓬藟萬朶眞珠紅

넝쿨 딸기는 떨기마다 진주처럼 붉네.

一擔就安松根上

솔 등걸에 한 짐 벗어 쉬고 있노라니

猫耳戢戢靑筠籠

담배 모는 옹기종기 소쿠리에 푸르네.

石崖坡坨不辨畝

돌 벼랑이 험준하여 밭이랑은 희미하고

瓦壟千疊迷溝縫

들쭉날쭉 논두렁에 도랑물이 혼미하네.

無袖布襦半膝褌

소매 없는 삼베적삼, 반 무릎 잠방이로

嗚嗚獨自歌相舂

혼자서 즐겁게 방아타령 부르네.

心忙手嫺不用鋤

마음 바빠도 손이 익어 호미도 쓰지 않고

指夾拳築何精工

손가락으로 잡고 주먹으로 다짐이 어찌 그렇게 工巧한가?

過時寧揀根苗脆

때 지나면 약한 모야 절로 가려지리니

善生不怕沙土鬆

잘 자란 모는 거친 모래 땅 두려워하지 않는 법.

一根一手田如海

한 손에 한 뿌리씩, 밭은 바다같은데

始起杳然如難終

처음에 아득하여 못 끝낼 것 같았지.

半生蓄我爪甲

반 평생 다져놓은 내 손톱 날카로와

頃刻見此籃子空

잠깐 사이에 담배 바구니가 텅 비었구나.

蝦蟆呑月輪蝕入

두꺼비 달을 삼켜 둥근 바퀴 다 먹히듯

郭索奔泥旁行窮

진흙탕 기던 게, 게걸음이 다한 듯.

地黑葉靑靑漸多

땅은 검고 잎 푸르니 푸름 점점 더해가며

蝶翅萬片粘春叢

나비 날개 만 조각이 봄 숲에 붙어 있네.

百歲枯樹山鵲噪

백년 묵은 고목에 산까치 울어대고

午日微綻來霽風

한낮 햇살 삐져 나오며 갤바람 불어온다.

風便細喉悄欲斷

바람 결에 가는 소리는 끊길 듯 말 듯.

農謳遠近無南東

먼 듯 가까운 듯 농가(農歌)는 방향을 알 길 없네,

我亦十年爲佃客

나 또한 십년 동안 소작농 노릇 하며

秧秧麥麥人之同

남들처럼 모 심고 보리 갈았다네.

秋熟要盡公私稅

가을 농사 짓고 나면 세금과 소작료로 다 없어지고

磬室依舊豐非豐

곳간은 예와 같아 풍년에도 풍년 아니네.

自種菸艸田於山

산 속에 밭 갈아 담배 농사 지은 후론

柴門犬老氂蒙茸

사립문에 늙은 개도 꼬리털 북슬하네.

但得年年菸價翔

해마다 담배값 날개 돋듯 오르기만 한다면

肯羡三百囷廛崇

어찌 삼백석 높은 곳간 부러워하리?

痴氓免餓眞好命

어리석은 백성이야 굶주림 면하는 게 좋은 팔자니

水田莫笑山田農

논 부치는 사람들 산농사 짓는다 비웃지 마오.

 

종어요(種菸謠)는 고시(古詩)에서 특장(特長)을 보인 매천(梅泉)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민풍(民風)을 그대로 읊은 일종의 기속시(紀俗詩)이다. 몸소 농사를 짓는 고초와 여유로움을 시화(詩化)하고 있다. 산 속에서 담배 농사를 지으면서 느낀 풍요와 한가로움을 호기있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농촌의 풍경을 사실적이고 회화적으로 묘사하여 생동감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농민들이 애써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와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은 조선말기 사회의 피폐함을 확인하는 관풍적(觀風的)인 성격도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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