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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다이어리,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브리콜라주, 인류의 잃어버린 꿈의 조립법] - 5. 원시문명 그 속으로 들어가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브리콜라주, 인류의 잃어버린 꿈의 조립법] - 5. 원시문명 그 속으로 들어가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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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원시문명 그 속으로 들어가다

 

 

신화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몸속으로 스며들어온 것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진화의 맨 꼭대기에서 살아가는 가장 우월하고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나무와 바위, 코요테, 독수리 물고기, 두꺼비들과 함께 각자의 목적을 완성하면서 삶이라는 성스런 고리를 구성하고 있는 일원일 뿐이다. 그들 모두가 그 성스런 고리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있으며, 인간 역시 다르지 않다.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김영사, 2003, 495.

 

 

레비스트로스가 원시문명 탐험을 떠났던 시기, ‘문자 없는 사람들의 원시문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말리노프스키로 대표되는 기능주의 혹은 실용주의적인 관점. 이 관점에서는 문자 없는사람들의 사유가 전적으로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의 충족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원시문명의 의식주와 성적 충동 등 아주 기본적인 생활 패턴만 알면, 그들의 사유 시스템 전체, 즉 그들의 신념, 신화, 제도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둘째, 레비브륄로 대표되는 신비주의적 관점. 그것은 원시문명이 근대문명과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감성과 사유로 지탱된다고 본다. 원시문명은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사유가 아니라 전적으로 강렬한 감정과 신비로운 상상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관점은 과학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원시문명의 감성을 무시했고,

두 번째 관점은 서구인의 관점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원시문명만의 독자적인 과학을 배제해버렸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문명을 바라보는 실용주의적 관점과 신비주의적 관점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원시 부족은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으며, 동시에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존재였다. 그는 문자 없는사람들의 사고는 주변 세계를 단지 이용하는 실용적 욕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또한 그들이 단지 신비주의적사유가 아닌 과학적 사유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문자가 없다고 해서 문명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문자 있는문명이 문자 없는문명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을 가슴 속에 각인시킨 것일까.

 

 

 

 

영화 아바타에서 제이크 또한 나비족의 문명에 대한 엄청난 편견 속에서 나비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문명사회가 원시문명에 파견한 침입자 제이크는 한없이 야만적이고 불합리한 종족이라 믿었던 나비족이, 뭔가 인간의 각별한 치료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열등한종족이라 믿었던 나비족이, 그의 짐작과는 달리 훨씬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문명을 가꾸고 있음에 놀란다. 무엇보다도 제이크는 뭔가 단단히 결핍된 것이라 믿었던 나비족의 문명이 더없이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의 열정 위에 뿌리를 박고 있음을 느끼며 점점 더 그들의 삶에 매혹을 느낀다.

 

 

 

 

나비족은 자동차가 없는것이 아니라 자동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친구 이크란다이어호스가 있다. 평생 단 한 명만을 자신의 몸 위에 태우는 이크란은 그들에게 단지 운송수단이 아니라 평생의 지기가 된다. 나비족은 고함과 채찍으로 동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카락을 동물의 감각기관과 연결하여 서로의 마음을 읽어낸다. ‘주체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대상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교감하는 입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여 자연을 친구로 만들고 자연의 친구로서의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 또한 제이크처럼 원시문명을 충분히 가까이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멀리서만바라봤을 때의 근거 없는 루머와 턱없는 스캔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신화과학의 부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과학의 힘을 통해 비로소 신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 나는 인간 경험의 총체를 수학 모델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은 켤코 없어요. (……) 이와는 바대로, 사회생활과 그것을 둘러싼 경험적 현실은 인간 세계에서 무작위로 펼쳐지는 영역인 것으로 내게는 생각됩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전적으로 우연적인 역사에 복종합니다. 나는 그저, 무질서가 지배하는 이 거대한 경험의 수프 속에는 여기저기에 구성의 섬들이 형성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접근으로 전체 현상을 철저히 규명할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어요. 기상 상황을 설명하기 이한 정교한 기호논리학 모델이 일몰 때 느끼는 미학적인 감정을 설명해줄 수 없듯이 말이에요.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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