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가뭄을 인재의 측면으로 다루다
「기경기사」는 바로 「전간기사」를 읽고서 감명과 자극을 받아서 쓴 것이다.
「기경기사」의 시인 이학규는 정약용이 강진에 있을 당시 같은 처지로 경상도 김해 땅에 우거해 있었다. 기사 경오 양년(1809~10)에는 전라도나 경상도나 온통 흉년이 들었다. 시인은 “내가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둘러보건대 영남의 변두리로 천재나 민막이 저쪽과 대략 비슷하다. 그럼에도 홀로 가슴을 두드리고 길이 한숨만 쉬며 마음속에 묻어두고 침묵을 지키면서 천재ㆍ민막의 놀랍고 겁나고 징계해야 할 사실들을 죄다 가려둔 채 전하지 않게 한다면 실로 애석한 노릇이 아닌가[顧余所處止, 亦惟嶺外, 則天菑民瘼, 蓋略同焉. 獨擣心永歎, 齎志泯默, 使夫天菑民瘼之可警可怵可勸可懲者, 悉泯而不傳, 爲可惜也]”라고 이 시를 창작한 외적 정황과 내적 심경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총 16편에 이른다. 「전간기사」에 비해 구체적 사실들을 다양하게 포괄하여, 현실의 복잡한 상황을 보다 풍부하게 반영한 편이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5편을 뽑아 실었다.
「북소리[擊皷]」는 한발에 기우제를 올리는 행위가 농민 수탈로 가중되는 사정을 풍자한 내용인데, 하나의 민속적 화폭으로 의미가 있다.
「구산(龜山)」에서는 「구지가」라는 옛 노래와 관련하여 우리 문학사에 유명한 곳인 구산의 산기슭에서 감사의 순시를 눈가림하기 위해 ‘헛 메밀 갈기’를 하는 모습이 풍자적 화폭으로 그려진다.
「호랑이[虎狼]」에서는 지방 아전들에 의해 자행되고 관장이 비호하는 음성적 비리가 파헤쳐지고 있으며,
「쌀내기[糶米]」와 「북풍(北風)」에서는 재해와 고난 속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끈덕지게 노력하는 백성들을 보살피고 도와주기는커녕 부당하게 빼앗고 짓밟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 여러편을 통해서 당시 통치체제, 행정체계의 제반 구조적 모순을 실감케 되는데, 가뭄의 재난은 실로 ‘천재(天災)’가 아니고 ‘인재(人災)’였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 기경기사는 전간기사에 견주어 시적 형상화의 밀도는 떨어지지만 현실주의의 진전된 측면이 또한 없지 않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393~39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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