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춘향전과 전불관행
이 시는 미천한 신분을 타고난 여자가 자기 주체를 순결하게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사연이다. 「춘향전(春香傳)」과는 이야기의 전말이 유사하면서 흥미롭게 대비되는 면을 보이고 있다.
우선 인물 설정을 보면, 춘향은 전불관에, 구모씨는 이도령에, 변사또는 신임 진장에 대응되는바, 삼각관계를 이룬 구도가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사건의 경과 또한 사랑과 이별, 그다음에 끼어든 힘있는 자의 횡포로 갈등을 유발하는 동일 유형이다. 그뿐 아니라 세부에 들어가서도 대조되는 부분이 더러 나온다. 예컨대 진장이 불관을 회유하는 장면이나 불관이 집장 사령에게 매맞는 장면, 이모가 불관을 타이르고 불관이 유언 비슷한 말을 하는 정경 등은 내용이 그대로는 아니지만 「춘향전(春香傳)」의 어느 대목을 금방 연상케 한다.
신분 모순이 애정 갈등을 초래하고 나아가 인간 기본권의 유린을 야기하는 현상은, 특히 중세 말기에 하나의 보편적 서사구조로 나타난다. 「춘향전(春香傳)」과의 사이에 보이는 유사성은 기본적으로 이런 측면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전불관행(田不關行)」은 그 근거 사살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시인은 실제 사실에서 취재하여 이 시를 쓰면서 이미 판소리로 널리 알려진 「춘향전(春香傳)」의 내용을 참작한 것 같다.
「전불관행(田不關行)」은 위와 같이 「춘향전(春香傳)」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른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 불관은 춘향과 같은 신분 부류에 속한다. 그렇지만 불관의 처지는 고아의 신세로 불우하기 짝이 없다. 춘향의 외관이 자못 야단스럽게 그려지는 데 반해서 불관은 열악한 민중 현실과 좀더 친근하게 설정된 셈이다.
그리고 작중에서 갈등의 진전이 각기 완전히 상반된 방향으로 귀결되고 있다. 불관 앞에는 자기를 위기로부터 구출해줄 ‘님’이 출현하지 않아,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통한 종말이 있을 뿐이다. 「춘향전(春香傳)」이 희극적인 것이라면, 「전불관행(田不關行)」은 비극적인 것이다. 「춘향전(春香傳)」의 행복한 결말은 실은 현실이 아니고 환상인데, 다만 민중적 희망의 투영이며, 그것은 민중적 낙관주의라고 보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터다. 합리적 인식을 소유한 시인으로서는 환상으로 현실을 호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불관행(田不關行)」의 비참한 결말은 확실히 현실성이 있으며, 작품의 주제사상을 심화하고 미학적 성격까지 규정짓고 있다.
작품은 결말을 향해서 사건이 발전하는 구조인데, 주인공 전불관이 부딪치는 여러 경우에 대처하는 그 자세가 곧 자결의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셈이다. 자결의 길로 기어이 나아가는 그 과정에서 전불관의 형상이 부각된다. 가령 “제 행동 돌아보건대 잘못이 없삽거늘 매를 치다니 법도에 어긋납니다”라고 관장에게 대드는 말에서 그의 저항적 성격이 드러나며, “사는 길을 택하자면 짐승같이 될 터이지……”라는 그의 서글픈 탄식에서 떳떳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각성을 읽을 수 있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284~285쪽
1 | 전불관의 기구한 삶 |
2 | 새로 부임한 진의 장수가 수청 들라고 |
3 | 수청을 거부하고서 겪은 고초 |
4 | 관기에 매여 있는 운명이란 |
5 | 관기제도의 문제점과 임용제도의 문제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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