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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와 21세기, 18장 - 지고의 가치를 말하는 사회는 문제사회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18장 - 지고의 가치를 말하는 사회는 문제사회

건방진방랑자 2021. 5. 10.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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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大道廢,
대도폐,
큰 도가 없어지니
有仁義.
유인의.
인의가 있게 되었다.
慧智出,
혜지출,
큰 지혜가 생겨나니
有大僞.
유대위.
큰 위선이 있게 되었다.
六親不和,
육친불화,
육친이 불화하니
有孝慈.
유효자.
효도다 자애다 하는 것이 있게 되었다.
國家昏亂,
국가혼란,
국가가 혼란하니
有忠臣.
유충신.
충신이라는 것이 있게 되었다.

 

 

1. 지고의 가치를 말하는 사회는 문제사회

 

내가 대학교 때 노자라는 반역의 서를 처음 읽었을 때, 나의 흥분 속에 가장 충격적으로 직접 와닿은 장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치 않고 이 장을 꼽을 것이다. 이 장이 나의 느낌에 던지는 반어적(反語的) 비꼼은 나의 일상적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인의(仁義)니 효자(孝慈)니 충신(忠臣)이니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선()으로 받아들여지는 지고(至高)가치들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민주(Democracy)니 정의(Justice), 자유(Liberty)니 하는 따위의 것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우리 전통사회에서 추구했던 사회질서의 기강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고의 사회적 가치로 받아들이는 덕목들의 존재이유를 도적(道的)으로 분석해 보면 그것은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유가가 인의(仁義)를 말하게 되는 것은, 바로 노자가 말하는 대도(大道)가 폐()해졌기 때문에 비로소 발생하는 말엽적 현상이다. 자꾸만 큰 지혜를 운운하니깐 따라서 큰 위선이 생겨나는 것이다. 지혜를 운운치 않으면 위선도 생겨날 자리가 없는 것이다.

 

효도하라! 자애롭게 자식을 대하라 라는 따위의 도덕적 명제가 근원적으로 육친(六親)이 불화(不和)하니까 생겨나는 것이다. 육친이 불화하지 않으면, 효자(孝慈)니 형제간의 우애니 하는 따위를 근원적으로 의식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충신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국가가 혼란해졌다는 사실의 방증일 뿐이다. 우리는 충신을 절대적으로 숭상할 필요는 없다. 그 국가를 혼란치 않게 만드는 근본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충신을 만들려고 도덕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충신이 나올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헌신할 수 있는 큰 인물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여기 반어적(反語的) 아이러니는 유가적 통념을 깨기에 충분한 것이다.

 

현 정권이 2의 건국;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라가 너무 극심하게 해체되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하나의 사례가 될지언정, 그 어느 누구도 2의 건국에 성심성의껏 동참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는 없다. 그 모두가 레토릭(수사학)에 불과한 것이다. 어찌 인의(仁義), 효자(孝慈). 충신(忠臣)이다 하는 것들이 2의 건국보다 더 나은 레토릭일 수 있으랴! 왕필은 말한다.

 

 

매우 아름다운 이름은 크게 추한 것에서 생겨난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결국 같은 것이라는 말이 곧 이것을 의미한다.

甚美之名, 生於大惡, 所謂美惡同門.

 

육친이란, 부자ㆍ형제ㆍ부부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육친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고 국가가 스스로 다스려진다고 한다면, 효자니 충신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은 도무지 있을 곳이 없어질 것이다.

六親, 父子, 兄弟, 夫婦也. 若六親自和, 國家自治, 則孝慈, 忠臣不知其所在矣.

 

고기들은 물속에서 서로를 잊고 헤엄친다. 그래서 서로를 윤택하게 하는 덕이 스스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魚相忘於江湖之道, 則相濡之德生也.

 

 

 

2. 새로 발견된 죽간에 실린 내용과의 차이점

 

그런데 최근 죽간(竹簡)의 발견은 이 장의 해석에 있어서 획기적인 새 축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야기시킨 것이다. 사실 죽간(竹簡)의 발견 이전에 이미 백서(帛書)의 연구단계에서 이러한 문제가 충분히 제기되었어야 했으나, 그 때만해도 왕본(王本)과의 외면적인 연속성 때문에 백본(帛本)의 해석을 크게 달리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마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새로 발견된 죽간(竹簡) 텍스트(丙本 두번째)의 전문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故大道廢, 安有仁義?

六親不和, 安有孝慈?

邦家昏亂, 安有正臣?

 

 

여기서 명백히 우리는 이 구절의 해석을 왕본(王本)과는 달리 할 수밖 에 없는 국면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이 장의 해석과의 통사적 연계성 때문에 나는 전장의 신부족 안유불신(信不足, 安有不信)?’의 해석을 기존의 안일한 해석과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유불신(安有不信)’불신(不信)’이 의미론적으로 부정적 맥락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왕본(王本)대도폐 유인의(大道廢, 有仁義.)’에서 인의(仁義)가 전면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사태인 것에 비하여, 간본(簡本)대도폐 안유인의(大道廢, 安有仁義)’인의(仁義)’는 꼭 부정되어야 할 사태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지고의 가치로 긍정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해도, 대도(大道)에 대한 차선책으로, 사회질서의 한 방편으로 긍정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교적 덕목이라고 지칭되는 가치들이 죽간(竹簡) 노자에게서는 전혀 대립의식을 띠고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故大道廢, 安有仁義?
고대도폐, 안유인의?
그러므로 대도가 폐하여졌으니
어찌 인의가 작용할 수 있으리오?
六親不和, 安有孝慈?
육친불화, 안유효자?
이미 육친이 불화한데
어찌 효자를 운운할 수 있으리오?
邦家昏亂, 安有正臣?
방가혼란, 안유정신?
이미 나라가 어지러운데,
어찌 바른 신하가 설 자리가 있으리오?

 

 

뉴앙스가 상통하기는 하면서도 왕본(王本)이 인의(仁義)ㆍ효자(孝慈)ㆍ충신(忠臣)을 완전히 대도(大道)ㆍ육친(六親)ㆍ국가(國家) 후의 타락사태로 보는 부정적 시각과는 분명한 출입(出入)이 있다. 이것은 노자라는 텍스트의 오리지날한 성격이 결코 인의(仁義)를 말하되, 유가를 의식하면서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 역으로 말하면 인의(仁義)라는 가치가 결코 유가에 의해서 독점된 가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왕필텍스트나 백서 텍스트는 이러한 부정적 맥락, 大道(대긍정)仁義(대부정)의 극적인 콘트라스트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慧智出, 有大僞라는 한 구절을 후에 삽입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慧智出, 有大僞가 문맥의 구조로 볼 때 기타 세 구절과는 이질적 성격의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인용

목차 / 서향 / 지도

노자 / 전문 / 18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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