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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자와 21세기, 17장 - 역사에 성군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본문

고전/노자

노자와 21세기, 17장 - 역사에 성군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1. 5.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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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太上, 下知有之;
태상, 하지 유지;
가장 좋은 다스림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자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其次, 親而譽之;
기차, 친이예지;
그 다음은,
백성들을 친하게 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其次, 畏之;
기차, 외지;
그 다음은,
백성들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其次, 侮之.
기차, 모지.
그 다음은,
백성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이다.
信不足焉, 有不信焉.
신부족언, 유불신언.
믿음이 부족한 곳엔
반드시 불신이 있게 마련이다.
悠兮, 其貴言.
유혜, 기귀언.
그윽하도다 !
그 말 한마디를 귀하게 여기는 모습이여.
功成事遂,
공성사수,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다 되어도
百姓皆謂我自然.
백성개위아자연.
백성들은 모두 한결 같이 일컬어
나 스스로 그러할 뿐이라 하는도다!

 

 

1. 죽간 병조에도 들어 있는 파편, 죽간 을조와 병조의 차이

 

이 장은 노자가 인간세의 정부(government) 형태를 자기의 철학적 입장에서 가치위계적으로 논한 대목으로서 노자의 정치철학(political philosophy)를 논구할 때 많이 인용되는 장()이다.

 

언뜻 보아서 유가나 법가에 대한 분별적 의식이 배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후대에 성립한 파편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놀라웁게도 병조(丙組) 죽간(竹簡)의 첫 부분을 거의 전장 그대로 장식하고 있다.

 

병본(丙本)에는 17장과 18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죽간(竹簡) 중에서도 병본(丙本)의 뚜렷한 성격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즉 죽간의 을본(乙本)의 성격이 수도(修道)ㆍ치신(治身)의 개인적 수양에 치우쳐 있다고 한다면 병본(丙本)의 성격은 주로 치국(治國)의 사회적 주제에 치우쳐 있는 것이다. 분명히 을본(乙本)과 병본(丙本)의 성립과정이 그러한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선집(選集)되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竹簡 乙本 治身
竹簡 丙本 治國

 

 

 

2. 이상적인 정치는 지배자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太上, 下知有之)

 

왕필은 태상(太上)’을 대인(大人)이라 하여[太上, 謂大人也] ‘위에 있는 통치자’(the supreme ruler)의 의미로 보고 뒤에 나오는 문장의 유지(有之)의 목적격의 도치형태로 보았다.

 

그러나 太上 其次 其次 其次의 형식은 선진의 타문헌, 좌전(左傳), 전국책(戰國策), 한비자(韓非子), 문자(文子), 일주서(逸周書)등에 그 용례가 나오고 있으므로, 왕필의 해석은 정확하다고 볼 수가 없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 옛날에는 어떠어떠 했고, 그 다음에 , 그 다음엔, 그 다음에 의 뜻으로 인간세의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후세에 이를 수록 타락의 정도가 심해가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역사적 전제가 없이도, 그냥 가치관의 서열을 공시적으로 표현한 말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즉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은 , 그 다음으로는 그 다음으로는의 뜻으로 풀어 무방할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어떠한 정치의 형태일까? 첫 구문의 하지유지(下知有之)’가 영 해석이 매끄럽지 않다 하며 많은 고증가들이 그것을 부지유지(不知有之)’로 바꾸어 해석했다. 즉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국민들이 지배자가 있는지도 알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아래[]를 아니의 자형혼동의 결과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백서(帛書) ()ㆍ을()이 모두 정확하게 하지유지(下知有之)’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죽간본(竹簡本)하지유지(下知有之, 下智又之)로 되어 있는 것이다. 항상 고증가들의 무리한 교정이 얼마나 아전인수격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실증하여 준 것이다.

 

하지유지(下知有之)’의 뜻은 아랫 사람들이 다스리는 자가 있다는 것만 안다는 뜻이다. 치자(治者)가 하등의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왕필은 이에 주를 달아 말했다.

 

 

태상이란 대인을 말한 것이다. 대인은 백성 위에 있음으로 태상이라 표현한 것이다. 대인은 백성 위에 있으면서 함이 없는 일에 거하고 말이 없는 가르침을 행하고, 만물이 잘 되어가도 그것을 자기가 주관해서 시작하려 하지 않는다.

太上, 謂大人也. 大人在上, 故曰太上. 大人在上, 居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爲始.

 

그러므로 자연히 아랫 사람들이 그냥 있다는 것 만을 알뿐이다. 이것은 백성들이 군말없이 편하게 지배자를 따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故下知有之而已. 言從上也.

 

 

다시 말해서 노자23에서 말한 성인지치(聖人之治)를 재확인한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정치는 무위(無爲)의 다스림이요, 불인(不仁)의 다스림이요, 자연(自然)의 다스림이요, 억지가 없는 다스림이다. 국민이 지배자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그 지배자의 군림적 성격에 대해 어떠한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지배자가 있는지도 모르게 스스로 굴러가는 것이다. 모든 조직의 이상적 운영은 그 조직의 리더가 있는지도 모르게 스스로 굴러가는 것이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3. 무위의 정치에서 인의의 정치로, 인의의 정치에서 법제적 정치로 흐르다(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기차친이예지(其次親而譽之), 여기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유가적인 인()의 정치를 연상할 수 있다. 유위적인 사랑이 있고, 왕필의 표현대로 조립시화(造立施化)’ 즉 만들어 주고[], 세워 주고[], 베풀어 주고[], 교화시켜주는[] 정치인 것이다. 왕필은 말한다.

 

 

무위로써 일에 처할 수 없고, 말이 없는 것으로써 가르침을 삼을 수 없게 되니까 선을 세우고 베품을 행하는 짓을 하게 된다. 그래서 밑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친함을 얻고 칭찬을 받게 하는 것이다.

不能以無爲居事, 不言爲敎, 立善行施, 使下得親而譽之也.

 

 

()의 정치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또 무엇인가?

 

 

기차 외지(其次, 畏之), 여기서 우리는 법가적(法家的)인 세계를 연상케 된다. 무위(無爲)의 정치가 깨지면서 인의(仁義)의 정치가 있게 되고, 인의(仁義)가 깨지면서 권위주의적 법()의 질서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상ㆍ벌에 의한 두려움()의 의타적 기준에 의하여 그 질서의 틀을 짜는 것이다. 왕필은 말한다.

 

 

또 다시 은혜와 인자함을 베푸는 것으로써는 이제 사물을 부릴 수가 없게 되므로 하는 수 없이 위협과 권세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不復能以恩仁令物, 而賴威權也.

 

 

법의 질서란 결국 도덕이 파기되는 곳에서 솟아나는 위권(威權)이다. 그것은 위협적 권위(intimidating authority).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러한 위협적 권위라도 좋다. 이러한 법제(法制) 질서마저 깨져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4. 법제정치가 무너지면 공포정치가 등장한다(其次侮之)

 

법령이 먹힌다는 것은 그래도 그 사회는 질서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법질서마저 먹히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국민에게 수모감과 수치감을 안겨주는 압제와 공포의 정치인 것이다. 모지(侮之)! 국민을 모멸하는 정치! 국민을 수치와 수모로 몰아넣는 정치! 한마디로 국민을 강간하는 정치다!

 

그것은 우리나라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체제로부터 전두환 정권의 광주인민대학살을 거쳐 문민정부에 이르는 780년대의 역사를 회고하면, 하루도 길거리에 최루탄의 매콤한 연막이 사라질 날이 없었던 나날을 연상하면, 노자가 말하려는 이 최하의 정치행태를 너무도 쉽고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780년대를 지나 오늘에 우리 역사가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동아시아 역사 발전의 전단계를 비교적으로 상고할 때, 너무도 장쾌한 우리 민족의 슬기의 소치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17장에서 우리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키는 대목은 바로 다음 구절이다.

 

 

무위정치(太上)

인의 정치(其次)

법제정치(其次)

공포정치(其次)

 

 

 

5. 고증학자들의 주먹구구식 의견 표명(信不足焉, 有不信焉)

 

이 구절의 가장 평범한 해석은 믿음이 부족하도다! 그러니 불신이 있도다!’이다.

 

그런데 백서(帛書)죽간(竹簡)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청()나라 때의 유명한 고증학자 왕념손(王念孫)은 끝의 언()을 없애고, 이 구절은 신부족 언유불신(信不足, 焉有不信)’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기발한 텍스트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그의 주장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의 의미를 어시(於是, 이에, 그러므로)’로 풀이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신부족언 유불신언(信不足焉, 有不信焉)’신부족 언유불신(信不足, 焉有不信)’으로 바꾸어도 의미상에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후자의 의미가 ()이 부족(不足)하다, 이에 불신(不信)이 있다의 평범한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상식적인 한문 문법을 따라 이해하자면, ‘신부족 언유불신(信不足, 焉有不信)’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믿음이 부족한데 어찌하여 불신이 있겠는가?

 

()’의 뜻은 어찌하여 ~인가?’로 새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해놓고 보면 도무지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무언가 이상하다! 이러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야기시킨 상황이 바로 백서(帛書)죽간(竹簡本의 발견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王本 信不足焉, 有不信焉.
帛甲本 信不足, 案有不信.
帛乙本 信不足, 安有不信.
簡本 信不足, 安有不信.

 

 

간본(簡本)이 나오기 전 백서(帛書)만 나왔을 때, 그러니까 780년의 백서(帛書)를 교석하는 학자들은 신부족 안유불신(信不足, 案有不信)’의 의미를 앞서 왕념손(王念孫)이 지적한 바대로 안()을 언()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또 그 의미를 이에’, ‘그러므로’, ‘등의 뜻으로 새겨, 아주 평범한 문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말해서 왕본(王本)과 별 의미상의 차이가 나지 않는 분위기로 맞추어 해석한 것이다. 고명(高明)은 말한다.

 

 

지금 왕필본의 언()자는 백서 갑본은 안()으로, 을본은 안()으로 표기해 놓았다. ()ㆍ안()ㆍ안() 세 글자는 요새말의 접속사인 어시(於是, 이에), (, 그런즉)과 같은 것으로 그 뜻이 일치한다. 왕인지(王念孫의 아들이며 고증학의 대가)가 지은 경전석사2권에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於是, , 과 같다. 이라고도 쓰고, 이라고도 쓰는데 그 뜻은 다 같다.’

按今本焉字, 帛書甲本作案, 乙本作安. , ,安三字皆如今語中之連詞於是或則, 意義相同. 王引之經典釋詞卷二: ‘, 猶於是也, 乃也, 則也. 安或作案, 或作焉, 其義一也.’

 

 

이 고증학자들의 말은 아주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들은 문장의 의미의 오리지날한 맥락과 그 역사적 변천과 그 글자들의 의미론적 분석에 있어서 완전히 주먹구구식의 때려맞추기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감각에는 도저히 유불신(有不信)’이나 안유불신(安有不信)’그러므로 불신이 있다로 해석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진부한 의미의 부연(reiteration)일 수가 없는 것이다.

 

 

6. ()믿음이 아닌 믿음직스러운 말이다

 

유불신(有不信)’이나 안유불신(安有不信)’는 무엇인가 반어적(反語的)인 역동성이 숨어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은 바로 이 17장에서 다 판결될 수는 없었지만, 다음의 18에 해당되는 죽간(竹簡)의 문장패턴과의 연속성 속에서 분명하게 재해석되어야 하는 엄청난 상황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이나 안()이 문장 앞에 올 때는 그것은 분명하게 의문사이다. 어찌 , 어찌 이다. 현대 중국말에 나리(哪裡)’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안유불신(安有不信)’은 분명히 어찌하여 불신이 있을 수 있겠는가[哪裡有不信]’의 뜻이 된다. 의미론적으로 정반대의 뜻이 되는 것이다.

 

우선 ()’이라는 글자가 왜 이 정부형태론을 나열하는 맥락에서 등장했는가를 우리는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은 상형자도 아니요, 형성자도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회의자(會意字)이다. 즉 인()과 언()이라는 두 개의 의미를 합쳐서 만든 글자라는 뜻이다. 그 모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20세기 기독교가치의 팽배, 서양중세철학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우리나라 언어에 크나큰 혼란이 일어났다. ()은 그 대표적인 용례에 속한다. ()신앙(Belief)’이나 종교적 믿음을 나타내는 말이 전혀 아니다.

 

()은 일차적으로 []’에 관한 것이다. 한 인간의 말이 얼마나 증명, 신험될 수 있는가? 그 신험, 신빙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단어다(8 참조). ()은 현대언어 철학에서 말하는 사실과의 대응관계나 논리적 정합성을 표현하는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의 문제인 것이다. ()은 곧 믿음직스러운 말이다. 누구의 말인가? 여기서는 치자(治者)의 말인 것이다. 지배자의 정령(政令)을 말하는 것이다. 지배자의 조령(詔令)에 대하여 피지배자가 신복(信服)하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7. 상호 간에 충분한 믿음이 없는데 어찌 무위의 정치를 이야기하리오

 

앞 뒤 문맥을 잘 살펴보면, 무위정치 인의정치 법제정치 공포정치의 순서는 곧 이 ()’의 타락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진정한 무위(無爲)의 정치는 하지유지(下知有之)’ 밑에 있는 사람이 치자(治者)가 있다는 것만 아는 정치, 다시 말해서 지배자가 일체 정령(政令)으로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 정치이며, 그것은 처무위지사(處無爲之事)하며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하는 다스림인 것이다. 여기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불언(不言)’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언(不言)은 곧 불신(不信)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不信 = 不言

 

다시 말해서 우리는 불신(不信)’을 후대의 관념에 따라 나쁜 뜻으로 새긴 것이지만, 그것은 최소한 노자의 오리지날한 맥락에 있어서는 좋은 뜻이요, 최상의 정치, 즉 정령(政令), 고칙(誥則)이 필요없는, 법제(法制)적 위압이 필요없는 불언지교(不言之敎)의 상태를 나타내는 반어적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쟁점이 되고 있는 구문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려지는 자 사이의 정령조차도 충분한 믿음이 성립하지 않는데, 어찌 그러한 정령조차 필요없는 무위의 정치를 논구할 수 있으리오?

信不足, 安有不信?

 

 

바로 이러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의 맥락 속에서 그 다음에 연이어 나오고 있는 귀언(貴言)’의 필연적 의미가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왕필은 이러한 오리지날한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왕필의 왜곡으로 후대의 모든 해석가들이 반어적 연막을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8. 지배자는 한마디 말이라도 주저한다(悠兮, 其貴言)

 

바로 여기의 귀언(貴言)’은 불언(不言), 불신(不信)과 의미론적으로 통하는 맥락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귀언(貴言)’은 말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통치자는 말 한마디를 내뱉는 것을 삼가야 하고 어렵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에 유혜(悠兮)’라는 감탄사가 백()ㆍ간()에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王本 悠兮
帛本 猶呵
簡本 猶乎

 

 

왕필의 표현이 가장 아브스트랙트(abstract, 추상적)하다. ‘()’라는 것은 유예(猶豫)’의 모습이다. 즉 우물쭈물대는 모습, 주저하는 모습인 것이다(15에 이미 나옴). 통치자는, 성인은 말 한마디 내뱉는 것을 어렵게 생각해야 하며, 말할 때는 주저주저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혜(悠兮)! 기귀언(其貴言)’주저주저 하는도다! 말 한마디 하기를 어려워하는 저 모습이여의 뜻인 것이다.

 

 

9. 역사에 성군이 존재하면 안 되는 이유(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공성사수(功成事遂)’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자연(自然)’ 즉 비틀즈가 말하는 ‘Let it be" 의 최초의 명료한 용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다 되어도(功成事遂)’는 지배자의 노력에 의한 훌륭한 결과를 지칭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모두 일컫기를, ‘아자연(我自然)’이라 한다는 것이다.

 

여기 만약 요새 이론의 함의에 의하여, ‘자연(自然)’을 명사로 해석한다면, 서양식의 ‘Nature’라는 자연을 의미한다면, 그 뜻은 이렇게 요상하게 될 것이다.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다 완수되어도 백성들은 모두 일컬어 나는 그린벨트다 라고 하는도다 !

 

도대체 이렇게 조잡한 번역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노자 이해수준이 이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노자(老子)의 자연(自然)은 명사로 쓰인 적이 없다. 그것은 상사(狀詞)일 뿐이며 기술적 술부 전체이다. 인간의 입에서 만들어진 자연(自然, tzu-jan)’이라는 말 자체가 노자(老子)에서 최초로 규정된 것이며, 우리의 모든 자연(自然)에 관한 용례는 노자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이루어져도 백성들은 모두 한결같이 말한다: 나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그 얼마나 아름다운 유토피아(Utopia)의 현실적 모습인가? 동양인이 그리는 유토피아(Utopia)는 달성불가능한, 어디에도 있지 아니한 우토포스(utopos)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원칙일 뿐이다. 인간세를 다스리려 하는 자들이여! 온갖 국회의원, 관료, 대통령들이여! 노자의 이 말을 명심하시게! 그대들의 정치적 공이 이루어지고 경제적 플랜이 다 완수되어도 백성입에서 이 한마디가 나오도록 허시게! 나 스스로 그러하다! 자연은 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기술일 뿐이다. 정치의 지고의 목표는 치자의 공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 아니라, 치자의 공을 역사에서 지우는 것이다. 치자는 백성의 스스로 그러함의 한 계기일 뿐인 것이다. 영원히 그 이름이 드러나야 할 존재가 아닌 것이다. 역사에 성군(聖君)이 존재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인용

목차 / 서향 / 지도

노자 / 전문 / 17 / 노자한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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